2006년 3월 16일 목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야구에서 배우는 신뢰·조화의 리더십
올 들어 한국 스포츠가 연일 낭보를 전해오고 있다.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의 소나기 금메달, 세계 주니어피겨스케이팅 및 스피드 스케이팅 제패, 월드컵의 자신감을 높여준 축구대표팀의 선전, 범주는 다르지만 미국의 한국계 프로풋볼선수 하인스 워드의 MVP 등극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의 약진이 눈부시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수선하고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스포츠가 그나마 활력소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엔 야구대표팀이 일을 냈다. 아시아 맹주임을 자부하던 일본을 제치더니, 급기야 공지의 세계 최강인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을 꺾는 기적을 일궈냈다.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우리 대표팀은 이미 거둔 성적만으로도 최상의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야구대표팀의 선전은 스포츠가 주는 감성적 쾌감을 넘어 여러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최대 강점으로 신뢰의 지도력이 창출해낸 인화를 꼽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실력 연봉차이 등에 관계없이 동일한 믿음과 배려로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냈고, 선수들은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전체를 위해 기꺼이 솔선과 희생을 떠안았다. 김인식 감독이 보여준 신뢰와 조화의 지도력은 우리 지도자들이 배우고 새겨야 할 또 하나의 전범이 됐다.
승리의 또 다른 요인은 기본기다. 미국과 일본의 장점을 우리는 두루 섭취했다. 현지 전문가는 “한국은 던지고 받고 뛰고 치는 데 흠잡을 데 없는 기본의 야구를 했다. 그 점에서 미국보다 나았다”고 평했다. 우월감에 취해 미국야구가 잃어버린 ‘기본’을 한국이 실천하고 있었다는 반성이었다. 야구에만 해당하는 지적은 아니다.
힘들고 어지러운 우리의 현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기본과 정도를 지키는 것임을 새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현실문제를 회피케 하는 마약이란 비판도 받지만 그래도 스포츠에서 얻는 교훈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 야구팀을 자랑스러워하며 앞으로도 선전을 기대한다.
[한겨레신문] 뭇생명에 희망 주는 새만금 판결을
오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5년 동안 지속돼 온 새만금 논란에 역사적인 금을 긋는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새만금 간척사업과 같은 대형 국책사업을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비상식적인 업무추진이 주민과 환경단체들로 하여금 법에 호소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신규사업에 투자하려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투자 목적의 구체성, 투자 기대 효과, 투자 규모의 적정성, 예상되는 부작용 등 최소한 이런 항목들을 바탕으로 사업 타당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할 것이다. 판단하기 어려우면 여러 분야의 전문가에게 성공 가능성과 위험요소를 두고 좀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 사업은 노태우 옛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시작된 이후 여러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기본적인 사항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개인이라도 당연히 밟을 절차를, 4조원이 넘는 대형 사업을 벌이면서 정부는 무시했다. 더 필요하지도 않을 농지를 조성한다는 사업목적처럼 소요예산 및 사업 후유증에 대한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단지 정치인들이 표를 얻자고 무리하게 벌이는 선심 행정의 하나라는 사정을 잘 아는 국민들은 대법원의 결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판단을 사법부에 맡겼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조정능력을 잃었음을 뜻한다. 그런 상태가 15년째 지속돼 온 셈이다. 그것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는 반대하다가 국정을 총괄하게 되니 앞장서서 지지를 선언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처럼,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자율적 조정 기능을 말살한 탓이다.
새만금 사업처럼 여러 부처가 관여되는 사안의 조정은 국무조정실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의사를 미리 선언했으니, 그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환경문제에서 대통령을 자문하는 전문가 집단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들이 소극적인 구실만 한 건 아니었다. 총리실 주관으로 구성된 민관 공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조사단장이 일방적으로 왜곡해 보고하거나, 사업추진에 불리한 자료의 생산과 공개를 담당한 부처의 권한을 억제하는 짓이 일어났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새만금 사업은 그 성격상 몇 가지 법리로 명쾌하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대법원도 복잡한 배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위해 공개변론과 같은 절차를 밟은 것으로 국민들은 이해한다. 대법원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수많은 논란이 뒤따를 것이며, 응분의 조처가 필요할 것이다.
새만금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은 합리적인 정책 추진 방안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조정능력의 확립은 투명성에서 비롯된다. 시화호, 영산호처럼 실패한 정책들과 새만금 사업 추진과정의 문제점을 면밀히 점검하면, 개선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은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근본적으로 척결시킬 수 있는 토대를 대법원이 이번 기회에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대법원은 정치권과 행정 관료는 물론, 전문가 집단의 잘못도 엄격하게 추궁해야 한다.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징표를 갈구하고 있다.
[동아일보] 박승, 한덕수, 권오승
이달 말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어제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별 강연을 했다. 여기서 그는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고, 외국 자본에 대한 국내 자본 역차별을 막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융·산업 분리 원칙의 완화나 폐지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의견이 큰 틀에서 옳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왜 임기 중에는 다른 얘기만 잔뜩 하다가 떠날 때가 돼서야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지 안타깝다.
박 총재는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기업 투자와 소득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노무현 정권이 주장하는 ‘양극화 해소법’과 사뭇 다른 견해다. 박 총재가 재벌정책이나 복지대책 등에서 ‘코드정책’의 문제점을 진작 소신껏 지적했더라면 청년 실업자와 빈민층의 고통도 조금은 덜어졌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과거엔 ‘시장경제와 개방화의 전도사’로 꼽혔다. 2004년 5월 국무조정실장 시절엔 “기업인이 공무원 앞에서 ‘맞습니다, 맞고요’를 연발하는 것은 공직자 눈 밖에 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라며 기업인 편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부총리 재임 1년간 그가 국민에게 보여 준 모습은 코드 맞추기였다. 1월엔 “강력한 부동산대책으로 건설업이 다소 침체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부동산을 정상(正常)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며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치논리를 흉내 냈다.
그의 장담을 비웃듯 서울 강남 집값 상승률은 여전히 전국 최고이고 지난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 이후의 서울시내 전세금은 그 직전 6개월에 비해 3.7배의 상승률을 보였다. 또 강남지역 아파트의 보유세는 최고 300%까지 오르게 된다. 이런 ‘세금폭탄’으로는 뛰는 부동산 값을 잡기 어렵고, 결국은 집값과 전세금을 다시 올린다는 점을 잘 알 만한 한 부총리가 정치논리로 만들어진 8·31대책을 그냥 수용한 이유는 뭘까.
말썽 많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임에 권오승(공정위 경쟁정책자문위원장) 서울대 법대 교수가 임명됐다. 강 위원장 시절의 공정위는 재벌에 대한 규제와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에 대한 조사 등에 매달렸다. 새 위원장도 전임자처럼 경직적인 기업규제에 집착한다면 한은 박 총재가 말한 ‘기업투자와 소득(증가)의 선순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코드로 경제 비트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서는 곤란하다.
[조선일보] 중국,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연구개발 기지로
중국이 세계의 제조공장을 넘어 세계의 연구개발(R&D) 기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우선 외국기업들이 설립한 중국 내 R&D센터가 750개에 이른다. 2002년 252개에서 4년 만에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연구소 숫자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연구개발의 質질이다. 세계적인 가정용품 제조업체 프록터 앤드 갬블은 1988년 24명의 연구원으로 중국에 R&D센터를 설립해 중국인의 세탁과 양치질 습관을 연구했다. 중국인에게 맞는 洗劑세제와 치약 등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중국 내 R&D센터가 5곳으로 늘었고 300여 명의 연구원이 아시아·東歐동구·南美남미 등 세계시장에 내놓을 신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베이징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 연구소는 현재 200명 수준인 연구개발인력을 올해 8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최고의 중국 人材인재들이 몰려드는 덕분에 베이징연구소의 생산성이 미국 본사와 영국 케임브리지의 MS연구소보다 높다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R&D 거점으로 떠오를 수 있는 힘은 값싸고 풍부한 고급 인력에서 나온다. 중국은 매년 이공계 대학 졸업생을 100만명, 석·박사를 19만명씩 배출하고 있다. 해외유학에서 돌아오는 인재도 해마다 1만명이 넘는다. 미국에서 연구원 1명을 고용할 돈으로 중국에선 8~9명을 쓸 수 있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지난해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R&D센터 開設개설 후보지에서 중국이 1위에 오른 게 당연하다.
한국은 차마 거론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 209개 외국기업 연구소를 조사했더니 60%가 연구원 20명 이내의 ‘구멍가게’ 수준이었고 30%는 특허 등 知的지적재산권을 한 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름만 연구소일 뿐 실제로는 고객지원센터 역할밖에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한국기업과 중국기업만을 놓고 보면 아직은 한국기업이 연구개발 능력과 기술수준에서 앞선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의 연구개발 네트워크와 資源자원을 토대로, 국내 연구개발 자원만 파먹고 있는 폐쇄적 연구 풍토의 한국을 치받고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앙일보] 700회를 맞은 위안부 수요시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15일로 700회를 맞았다. 수요일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이 시위를 모르는 국민이 별로 없을 정도가 됐다. 말이 쉬워 700회지, 시위는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여름 땡볕과 엄동설한 추위에서도 그들은 비켜가지 않았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고발하고 그들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 온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일본은 묵묵부답이지만 수요시위가 던져준 파장과 영향력은 의외로 크다. 첫째,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일본 정부가 저지른 행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명백한 범죄임을 인정했다. 할머니들은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전쟁 중의 강간과 성노예.강제임신 등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는가를 국제사회에 처절하게 고발했다. 또한 수요시위는 유엔 상임이사국을 꿈꾸는 일본 정부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 큰 의미는 수요시위가 위안부 할머니의 자기치유의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기까지에는 '침묵의 반세기'가 있었다. 할머니들은 수치와 분노로 숨을 죽였고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시위 초기에도 할머니들은 피켓과 마스크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낮은 목소리'로 시작했던 할머니들은 이제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임을 깨닫게 됐고 일본이 범죄국가임을 '당당하게'고발하고 있다. 다시는 이런 만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15년의 세월 동안 105명의 할머니들이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이들의 외침을 도외시해 오고 있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일반의 관심도 멀어져 가고 있다.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한.일 조약을 근거로 무조건 책임을 기피해 오고 있는 일본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정부 역시 엉뚱한 과거사에만 매달리지 말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경향신문] 신속한 정부 대응이 빛난 KBS 기자 피랍사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취재 중이던 KBS의 용태영 두바이 특파원이 외국기자 2명과 함께 피랍됐으나 다행히 하루 만에 풀려났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2년 전 고 김선일씨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은 행여 불행한 사태가 닥치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무사히 풀려났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특파원이 이렇게 풀려나기까지는 정부 당국이 신속히 사태 해결에 나선 것도 주효했다고 본다. 정부는 그의 피랍 사실을 파악한 뒤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해외 출장 중인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로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힘써줄 것을 요청했다. 국내에서도 관련 정부부처들의 대책회의가 열렸다. 외국에 나가 있는 자국민의 안위를 염려하는 모습을 모처럼 보여주었다.
용특파원을 납치한 조직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계열의 무장 조직인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직은 이라크의 과격단체와는 달리 외국인을 함부로 해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우리는 사태 발생부터 해결까지 정부가 보여준 적극적 자세를 평가하고 싶다. 이 사건은 분쟁지역을 취재하던 한국인 기자가 납치된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에 따라 언론사들이 위험지역을 취재할 때 비슷한 사태에 대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끝없는 갈등과 대결 구도 속에서 빚어진 것이다. 우리는 2000년 9월 시작된 2차 인티파다(봉기) 이래 양측의 충돌로 약 5,000명이 숨졌으나 이 가운데 압도적 다수인 4,000명이 팔레스타인인이란 사실을 다시 주목한다. 이 싸움에서 절대 강자는 이스라엘이고 그 뒤의 미국이다. 이번 사건도 이스라엘이 촉발한 혐의가 짙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안의 예리코 교도소를 공격해 수감된 PFLP 지도자 아메드 사다트의 신병을 빼앗았고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외국인 납치행각으로 맞선 것이다.
[한국일보] 야구에서 배우는 신뢰·조화의 리더십
올 들어 한국 스포츠가 연일 낭보를 전해오고 있다.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의 소나기 금메달, 세계 주니어피겨스케이팅 및 스피드 스케이팅 제패, 월드컵의 자신감을 높여준 축구대표팀의 선전, 범주는 다르지만 미국의 한국계 프로풋볼선수 하인스 워드의 MVP 등극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의 약진이 눈부시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수선하고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스포츠가 그나마 활력소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엔 야구대표팀이 일을 냈다. 아시아 맹주임을 자부하던 일본을 제치더니, 급기야 공지의 세계 최강인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을 꺾는 기적을 일궈냈다.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우리 대표팀은 이미 거둔 성적만으로도 최상의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야구대표팀의 선전은 스포츠가 주는 감성적 쾌감을 넘어 여러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최대 강점으로 신뢰의 지도력이 창출해낸 인화를 꼽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실력 연봉차이 등에 관계없이 동일한 믿음과 배려로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냈고, 선수들은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전체를 위해 기꺼이 솔선과 희생을 떠안았다. 김인식 감독이 보여준 신뢰와 조화의 지도력은 우리 지도자들이 배우고 새겨야 할 또 하나의 전범이 됐다.
승리의 또 다른 요인은 기본기다. 미국과 일본의 장점을 우리는 두루 섭취했다. 현지 전문가는 “한국은 던지고 받고 뛰고 치는 데 흠잡을 데 없는 기본의 야구를 했다. 그 점에서 미국보다 나았다”고 평했다. 우월감에 취해 미국야구가 잃어버린 ‘기본’을 한국이 실천하고 있었다는 반성이었다. 야구에만 해당하는 지적은 아니다.
힘들고 어지러운 우리의 현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기본과 정도를 지키는 것임을 새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현실문제를 회피케 하는 마약이란 비판도 받지만 그래도 스포츠에서 얻는 교훈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 야구팀을 자랑스러워하며 앞으로도 선전을 기대한다.
[한겨레신문] 뭇생명에 희망 주는 새만금 판결을
오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5년 동안 지속돼 온 새만금 논란에 역사적인 금을 긋는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새만금 간척사업과 같은 대형 국책사업을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비상식적인 업무추진이 주민과 환경단체들로 하여금 법에 호소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신규사업에 투자하려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투자 목적의 구체성, 투자 기대 효과, 투자 규모의 적정성, 예상되는 부작용 등 최소한 이런 항목들을 바탕으로 사업 타당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할 것이다. 판단하기 어려우면 여러 분야의 전문가에게 성공 가능성과 위험요소를 두고 좀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 사업은 노태우 옛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시작된 이후 여러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기본적인 사항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개인이라도 당연히 밟을 절차를, 4조원이 넘는 대형 사업을 벌이면서 정부는 무시했다. 더 필요하지도 않을 농지를 조성한다는 사업목적처럼 소요예산 및 사업 후유증에 대한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단지 정치인들이 표를 얻자고 무리하게 벌이는 선심 행정의 하나라는 사정을 잘 아는 국민들은 대법원의 결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판단을 사법부에 맡겼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조정능력을 잃었음을 뜻한다. 그런 상태가 15년째 지속돼 온 셈이다. 그것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는 반대하다가 국정을 총괄하게 되니 앞장서서 지지를 선언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처럼,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자율적 조정 기능을 말살한 탓이다.
새만금 사업처럼 여러 부처가 관여되는 사안의 조정은 국무조정실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의사를 미리 선언했으니, 그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환경문제에서 대통령을 자문하는 전문가 집단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들이 소극적인 구실만 한 건 아니었다. 총리실 주관으로 구성된 민관 공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조사단장이 일방적으로 왜곡해 보고하거나, 사업추진에 불리한 자료의 생산과 공개를 담당한 부처의 권한을 억제하는 짓이 일어났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새만금 사업은 그 성격상 몇 가지 법리로 명쾌하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대법원도 복잡한 배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위해 공개변론과 같은 절차를 밟은 것으로 국민들은 이해한다. 대법원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수많은 논란이 뒤따를 것이며, 응분의 조처가 필요할 것이다.
새만금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은 합리적인 정책 추진 방안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조정능력의 확립은 투명성에서 비롯된다. 시화호, 영산호처럼 실패한 정책들과 새만금 사업 추진과정의 문제점을 면밀히 점검하면, 개선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은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근본적으로 척결시킬 수 있는 토대를 대법원이 이번 기회에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대법원은 정치권과 행정 관료는 물론, 전문가 집단의 잘못도 엄격하게 추궁해야 한다.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징표를 갈구하고 있다.
[동아일보] 박승, 한덕수, 권오승
이달 말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어제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별 강연을 했다. 여기서 그는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고, 외국 자본에 대한 국내 자본 역차별을 막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융·산업 분리 원칙의 완화나 폐지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의견이 큰 틀에서 옳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왜 임기 중에는 다른 얘기만 잔뜩 하다가 떠날 때가 돼서야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지 안타깝다.
박 총재는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기업 투자와 소득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노무현 정권이 주장하는 ‘양극화 해소법’과 사뭇 다른 견해다. 박 총재가 재벌정책이나 복지대책 등에서 ‘코드정책’의 문제점을 진작 소신껏 지적했더라면 청년 실업자와 빈민층의 고통도 조금은 덜어졌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과거엔 ‘시장경제와 개방화의 전도사’로 꼽혔다. 2004년 5월 국무조정실장 시절엔 “기업인이 공무원 앞에서 ‘맞습니다, 맞고요’를 연발하는 것은 공직자 눈 밖에 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라며 기업인 편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부총리 재임 1년간 그가 국민에게 보여 준 모습은 코드 맞추기였다. 1월엔 “강력한 부동산대책으로 건설업이 다소 침체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부동산을 정상(正常)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며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치논리를 흉내 냈다.
그의 장담을 비웃듯 서울 강남 집값 상승률은 여전히 전국 최고이고 지난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 이후의 서울시내 전세금은 그 직전 6개월에 비해 3.7배의 상승률을 보였다. 또 강남지역 아파트의 보유세는 최고 300%까지 오르게 된다. 이런 ‘세금폭탄’으로는 뛰는 부동산 값을 잡기 어렵고, 결국은 집값과 전세금을 다시 올린다는 점을 잘 알 만한 한 부총리가 정치논리로 만들어진 8·31대책을 그냥 수용한 이유는 뭘까.
말썽 많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임에 권오승(공정위 경쟁정책자문위원장) 서울대 법대 교수가 임명됐다. 강 위원장 시절의 공정위는 재벌에 대한 규제와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에 대한 조사 등에 매달렸다. 새 위원장도 전임자처럼 경직적인 기업규제에 집착한다면 한은 박 총재가 말한 ‘기업투자와 소득(증가)의 선순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코드로 경제 비트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서는 곤란하다.
[조선일보] 중국,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연구개발 기지로
중국이 세계의 제조공장을 넘어 세계의 연구개발(R&D) 기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우선 외국기업들이 설립한 중국 내 R&D센터가 750개에 이른다. 2002년 252개에서 4년 만에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연구소 숫자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연구개발의 質질이다. 세계적인 가정용품 제조업체 프록터 앤드 갬블은 1988년 24명의 연구원으로 중국에 R&D센터를 설립해 중국인의 세탁과 양치질 습관을 연구했다. 중국인에게 맞는 洗劑세제와 치약 등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중국 내 R&D센터가 5곳으로 늘었고 300여 명의 연구원이 아시아·東歐동구·南美남미 등 세계시장에 내놓을 신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베이징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 연구소는 현재 200명 수준인 연구개발인력을 올해 8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최고의 중국 人材인재들이 몰려드는 덕분에 베이징연구소의 생산성이 미국 본사와 영국 케임브리지의 MS연구소보다 높다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R&D 거점으로 떠오를 수 있는 힘은 값싸고 풍부한 고급 인력에서 나온다. 중국은 매년 이공계 대학 졸업생을 100만명, 석·박사를 19만명씩 배출하고 있다. 해외유학에서 돌아오는 인재도 해마다 1만명이 넘는다. 미국에서 연구원 1명을 고용할 돈으로 중국에선 8~9명을 쓸 수 있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지난해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R&D센터 開設개설 후보지에서 중국이 1위에 오른 게 당연하다.
한국은 차마 거론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 209개 외국기업 연구소를 조사했더니 60%가 연구원 20명 이내의 ‘구멍가게’ 수준이었고 30%는 특허 등 知的지적재산권을 한 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름만 연구소일 뿐 실제로는 고객지원센터 역할밖에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한국기업과 중국기업만을 놓고 보면 아직은 한국기업이 연구개발 능력과 기술수준에서 앞선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의 연구개발 네트워크와 資源자원을 토대로, 국내 연구개발 자원만 파먹고 있는 폐쇄적 연구 풍토의 한국을 치받고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앙일보] 700회를 맞은 위안부 수요시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15일로 700회를 맞았다. 수요일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이 시위를 모르는 국민이 별로 없을 정도가 됐다. 말이 쉬워 700회지, 시위는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여름 땡볕과 엄동설한 추위에서도 그들은 비켜가지 않았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고발하고 그들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 온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일본은 묵묵부답이지만 수요시위가 던져준 파장과 영향력은 의외로 크다. 첫째,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일본 정부가 저지른 행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명백한 범죄임을 인정했다. 할머니들은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전쟁 중의 강간과 성노예.강제임신 등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는가를 국제사회에 처절하게 고발했다. 또한 수요시위는 유엔 상임이사국을 꿈꾸는 일본 정부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 큰 의미는 수요시위가 위안부 할머니의 자기치유의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기까지에는 '침묵의 반세기'가 있었다. 할머니들은 수치와 분노로 숨을 죽였고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시위 초기에도 할머니들은 피켓과 마스크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낮은 목소리'로 시작했던 할머니들은 이제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임을 깨닫게 됐고 일본이 범죄국가임을 '당당하게'고발하고 있다. 다시는 이런 만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15년의 세월 동안 105명의 할머니들이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이들의 외침을 도외시해 오고 있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일반의 관심도 멀어져 가고 있다.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한.일 조약을 근거로 무조건 책임을 기피해 오고 있는 일본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정부 역시 엉뚱한 과거사에만 매달리지 말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경향신문] 신속한 정부 대응이 빛난 KBS 기자 피랍사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취재 중이던 KBS의 용태영 두바이 특파원이 외국기자 2명과 함께 피랍됐으나 다행히 하루 만에 풀려났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2년 전 고 김선일씨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은 행여 불행한 사태가 닥치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무사히 풀려났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특파원이 이렇게 풀려나기까지는 정부 당국이 신속히 사태 해결에 나선 것도 주효했다고 본다. 정부는 그의 피랍 사실을 파악한 뒤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해외 출장 중인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로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힘써줄 것을 요청했다. 국내에서도 관련 정부부처들의 대책회의가 열렸다. 외국에 나가 있는 자국민의 안위를 염려하는 모습을 모처럼 보여주었다.
용특파원을 납치한 조직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계열의 무장 조직인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직은 이라크의 과격단체와는 달리 외국인을 함부로 해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우리는 사태 발생부터 해결까지 정부가 보여준 적극적 자세를 평가하고 싶다. 이 사건은 분쟁지역을 취재하던 한국인 기자가 납치된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에 따라 언론사들이 위험지역을 취재할 때 비슷한 사태에 대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끝없는 갈등과 대결 구도 속에서 빚어진 것이다. 우리는 2000년 9월 시작된 2차 인티파다(봉기) 이래 양측의 충돌로 약 5,000명이 숨졌으나 이 가운데 압도적 다수인 4,000명이 팔레스타인인이란 사실을 다시 주목한다. 이 싸움에서 절대 강자는 이스라엘이고 그 뒤의 미국이다. 이번 사건도 이스라엘이 촉발한 혐의가 짙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안의 예리코 교도소를 공격해 수감된 PFLP 지도자 아메드 사다트의 신병을 빼앗았고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외국인 납치행각으로 맞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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