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2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오늘의 사설
[한국일보 사설-20080522목] 어이없는 대한상의 교과서 수정요구안
대한상공회의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역사 교과서 개정 요구안이 논란을 빚고 있다. 주요 사항만 들어보면 기존 교과서 서술 중 “1990년대 들어 영화 산업은 미국 할리우드 대자본의 물량 공세에 맞서 한국적 특성이 담긴…”이라는 구절에 대해 할리우드 물량공세 운운은 반미적 언급이므로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유신 헌법은 대통령에게 각종 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인 권리를 부여해”라는 부분에서 ‘초헌법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할 것을 주장하며, “(해방 후 혼란기에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일일이 반박할 필요는 없겠다. 역사를 해석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한상의도 의견을 내는 것은 자유다. 다만 상의가 상공업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상공업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상공회의소법의 보장을 받는 법인이고, 1884년(고종 21년) 한성상업회의소로 출발한 이후 100 년 넘게 그 목적에 충실하게 활동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국민 대다수의 상식과 동떨어진 내용을 주장하고 있어 오히려 상공업자 일반의 역사 인식이 매우 왜곡돼 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크다.
어쨌거나 상의가 주장한 내용의 타당성을 따지는 일은 부차적인 문제다. 교육부가 교과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상의처럼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는 단체와 개인은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의견의 홍수 속에서 정부가 엄정하게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교육부 장관이 최대한 중립적이어야 할 교과서 문제에 좌우라는 이념적 취향을 잣대로 들고 나온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부디 교과서만큼은 좌우니 이념이니 실용이니 하는 차원을 떠나 진실을 토대로 한 올바른 후세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주기를 다시 한 번 간곡히 당부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522목] 비인도적 이주노동자 단속 중지하라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간 사냥’이 다시 시작됐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별로 검거 목표까지 세웠다고 한다. 이 달에 추방하겠다고 계획한 이주노동자 수만 해도 서울 600명, 부산 250명 등 모두 3천명이다. 단속반원은 목표를 채우려고 무리하게 좇고, 절박한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려고 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뿐 아니라 많은 불상사가 예상된다. 이미 지난 1월 조선족 노동자 한 사람이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8층 건물에서 추락해 숨졌으며, 지난달에도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 한 명이 3층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정부는 단속 근거로 불법 체류라는 잣대를 내세우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차별적인 고용 허가제 때문이다. 국내 노동자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저임금을 강요하면서도 사업장을 이동하지 못하게 하고, 게다가 일에 익숙해질 만하면 출국시키는 상황에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이주노동자들이 선택할 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비인도적인 과잉 단속을 하기에 앞서 ‘노예 허가제’라고 비판받는 고용 허가제부터 손질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본적인 차별부터 먼저 철폐해야 한다.
며칠 전 이주노조의 토르너 위원장과 소부르 부위원장을 법무부가 강제 추방한 것도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외 인권단체들도 지적했듯이, 지난달 총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이 두 사람을 같은날에 동시에 체포한 것은 누가 봐도 이주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표적 단속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주노조 지도부 체포와 추방이 벌써 세 번째다. 게다가 법무부는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진정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두 사람을 추방하지 말도록 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도 무시했다. 최소한의 법적인 절차마저 내팽개친 셈이다. 이러고도 인권국이라 할 수 있는가.
헌법상의 노동삼권은 내국인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법원의 최종 결정을 남겨두고 있지만, 이주노조는 이미 고법에서 합법이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각종 차별과 탄압을 즉각 중단하고, 국제기준에 맞게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20080522목] 혜원女高처럼 ‘변하는 학교’가 이긴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혜원여고가 일반계 고교로는 처음으로 기숙사를 세우기 위해 첫 삽을 떴다. 학생들은 밤늦도록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됐다며 신나는 표정이다. 교장과 교사들이 기숙사 건립을 지원할 기업을 찾아 뛰어다닌 끝에 ㈜부영의 기부를 받아냈다.
이 학교는 올해 초 400석 규모의 독서실형 자율학습실을 만들어 전자카드로 출결 사항을 자동 체크해 학부모에게 문자메시지로 알려주고 있다. 교사들은 논술강의를 위해 토요일에도 나온다. 대학생 선배들도 1, 2학년생 30여 명을 모아 놓고 방과후 그룹지도를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대에 한 해 19명까지 보냈던 명성을 되찾기 위한 혜원여고의 변신 노력 뒤에는 고교선택제도가 있다. 현재 중학교 2학년생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0학년도부터 서울 거주 중학생의 20∼30%는 지역에 상관없이 원하는 학교를 골라서 갈 수 있다. 이에 따라 이 학교처럼 경쟁 무풍지대였던 일반계 고교까지도 학생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교육의 질을 높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강남에 비해 입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던 일부 강북 학교들은 우열반 강화는 물론 교사가 과목별로 맞춤형 강의를 하는 특별면학실까지 운영하고 있다. 명문대반을 만들고 멀티미디어 강의 시설 및 체력단련 시설을 갖추겠다는 학교도 있다.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을수록 서비스와 상품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교육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 간 경쟁의 최대 수혜자는 학생과 학부모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사교육에 매달릴 이유도 줄어든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우열반이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했지만 학력(學力)이 높은 학생들을 떨어지는 학생들과 한 교실에 놓아두고 둘을 동시에 피해자로 만드는 교육이야말로 인권 침해다.
세계 각국이 벌이고 있는 교육개혁은 거의 혁명에 가깝다. 방법은 각각 달라도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더 많은 자율과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큰 원칙은 같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만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자율과 선택, 그리고 경쟁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열정의 불씨를 댕길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20080522목] 한강에서 58년 전 추락 조종사 유해 찾는 미군을 보며
20일 서울 한강 당산철교 아래에서 미국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 수중탐사팀 13명이 강 밑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1950년 9월 22일 한강 밤섬 근처에 추락한 F-7E 전투기 조종사와 관제사 유해를 찾기 위해서였다. 58년 전 전사한 미군이면 부모는 물론이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 상당수는 세상을 떴을 것이다. 그 58년 동안 한강은 숱한 홍수를 겪었고 1980년대엔 하상(河床) 모래를 퍼 올리는 대규모 준설도 벌어졌다. 전투기 추락 지점을 정확하게 안다 하더라도 조종사 유해가 바다로 쓸려가거나 깊은 뻘 속에 파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미군은 그걸 알면서도 인류학자, 폭발물 전문가까지 동원해 유해를 찾고 있다.
19일엔 미국 버지니아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1950년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숨진 잭 타이 육군 중사의 유해를 안장하는 행사가 있었다. 타이 중사 유해는 북한까지 들어간 미군 JPAC가 2002년 압록강 부근에서 발굴해 그동안 신원확인 작업을 벌여 왔다.
JPAC의 구호는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의 희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미 공군기가 추락했던 하노이 인근 마을을 실종 조종사의 두 아들과 함께 찾아가 직접 유해 발굴에 참여했다.
아무리 국가의 부름이라 해도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거나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가 목숨을 바친 군인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기념하지 않으면서도 아들과 남편과 형과 동생을 전쟁터로 내보내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정부는 2000년에야 전사자 유해 발굴을 시작해 2000여 구를 찾아냈지만 그나마 신원이 확인된 것은 100명이 채 안 된다. 전국에 묻혀 있는 13만 전사자 유해를 한 해 400구씩 발굴한다 해도 30년 넘게 걸린다. JPAC 부대 휘장엔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는 북한에 살아 있는 국군포로들을 빤히 쳐다보면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전사자와 포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떤 노력과 비용을 들여서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나라다운 나라다.
[서울신문 사설-20080522목] 발등의 불 확인된 AI인체감염 위험성
올해 온 나라를 휩쓴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인체감염 가능성이 있고 치사율도 높은 중국 안후이형 계통으로 확인됐다. 서울신문이 어제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보도한 내용이다. 인체감염 바이러스와는 종류가 다르다는 정부의 해명과는 완전히 다르다. 정부의 해명이나 발표가 자고 일어나면 뒤집히곤 하던 ‘광우병괴담’에 이어 이젠 ‘AI 인체감염공포’가 발등의 불로 확인된 것인가.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역학조사위원회는 지난 16일 “이번 AI는 인체감염 사례가 있는 베트남형이나 인도네시아형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또 ‘국민들이 잘 몰라서’ 구태여 알리지 않았다면서 이번 AI가 2.3.2계통이라고 했다. 이는 치사율이 65%에 이르는 안후이형(2.3형)의 변종에 해당한다. 무시무시한 이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당국이 고의 축소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지난달 살처분에 동원된 후 AI 의심증세를 보였지만 세균성 폐렴환자로 발표된 육군병사의 증세에 대해서도 ‘혹시’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달 초 과학계 인사들이 모여 “AI가 현실적으로 광우병보다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으나 귀담아듣지 않았다.AI 확산에 따른 인플루엔자 대유행(판데믹) 예방백신의 경우 일본은 3000만명분, 스위스는 모든 국민이 맞을 수 있는 734만명분, 미국은 590만명분을 각각 비축 중이다. 우리 정부는 올해 안으로 4만명분을 비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유일한 AI 치료제인 타미플루도 겨우 135만명분을 비축하고 있을 뿐이다.
2003년 첫 발생 이후 6년째를 맞지만 제대로된 예방 매뉴얼 하나 없는 우리의 한심스러운 현주소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들 앞에 AI유전자 분석결과를 정확히 알리고,AI를 종식시킬 수 있는 세부 대책과 백신 확보방안 등을 제시하라. 그것만이 국민들을 AI인체감염공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80522목] 30년만에 석유의존도 낮춘 미국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에 육박하는 가운데 미국의 해외 석유의존도가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미국의 해외석유 의존도는 올해 1분기에 57.9%를 기록, 지난해 58.2%보다 하락했으며 이런 추세로 가면 2015년에는 50%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세계 최대 석유소비국인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얘기이고 보면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미국의 해외 석유의존도 감소를 추세적이라고 보는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어 보인다.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미국 멕시코만에서의 생산증가 등의 요인들도 물론 있겠지만 과거와 다른 흐름이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자동차 연비를 개선하고 바이오 연료 생산량을 늘리도록 지난해 법제화된 '에너지 자립과 안보에 관한 법(the Energy Independence and Security Act)'의 영향이 현실화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여기에 미국 소비자들이 고유가라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도 큰 요인이다.
2006년 조지 W.부시 미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미국이 중동으로부터 수입되는 석유에 중독돼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미국 정부는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것이 해외 석유의존도 감소 등의 결실(結實)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올 만하다. 이것을 보면 해외 석유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제유가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일각에서는 연내 200달러까지도 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우리의 에너지 대응책은 너무 안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유가가 치솟자 부랴부랴 해외자원 확보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결코 아니다. 근본적으로 석유 소비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석유의존도를 낮추는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재구성, 에너지 효율의 획기적 향상 등 강력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고, 소비자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석유위기에다 지구온난화 문제까지 겹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오늘의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유광종(국제부문차장-20080522목)] 중국의 눈물
중국엔 나이 든 남동생에게 몸을 주려 했던 누나 이야기가 있다. 가난하면서 능력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장애까지 겹쳐 늘 그늘 속에서 혼자 살아온 남동생. 장가는커녕 마을 주민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움츠리고 쪼그라들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던 그 동생이다. 타향에서의 오랜 시집생활 끝에 잠시 동생을 보러 왔던 누이. 이불이 하나만 있어 자신은 부뚜막 옆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초로의 동생에게 그녀는 속옷을 풀어헤친 채 이렇게 외친다. “그냥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충 한 번만이라도 여자의 맛을 느껴 보렴.” 그러나 동생은 도망치듯 문을 뛰쳐나가 비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 작가 한사오궁(韓少功)이 지은 『마교사전(馬橋詞典)』에 나오는 대목이다. 후난(湖南)성의 외진 지역인 마교에서 실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모아 소설 형식으로 펴낸 작품이다. 장가 못 간 남동생에게 ‘여인’의 역할을 하려 했던 누이의 심성을 좋게 여길 사람은 적겠지만, 지독한 가난과 고단한 삶 속에 녹아 있는 정리(情理)의 세계는 자못 큰 공감을 가져다 주는 장면이다.
중국인에게는 전쟁과 재난·궁핍이 불러일으킨 환난(患難)에 관한 의식이 크다. 큰 땅에서 사람이 제 욕심을 채우고자 일으킨 수많은 전쟁, 시도 때도 없이 밀어닥치는 흉년과 홍수의 갈마듦. 펄벅의 『대지』에서 그런 장면은 여과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됐지만 그 연원은 사실 매우 오래 됐다.
‘시의 성인(詩聖)’으로 추앙받는 두보(杜甫)는 그 작품에서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청해(靑海) 땅 끝을!/ 예부터 백골을 거둬주는 사람 없어) “새 귀신 원망하고 묵은 귀신 통곡하니/ 흐리고 비 뿌리면 들리는 소리 훌쩍훌쩍(新鬼煩寃舊鬼哭, 天陰雨濕聲<557E><557E>·지영재 편역 『중국시가선』)”이라고 했다. 막 생명이 다한 귀신과 먼저 저승에 닿은 귀신이 함께 운다는 정황. 전쟁과 기근으로 스러진 생명의 부르짖음이 참담하고 처연하기만 하다.
재난이 가져다 주는 참화에 늘 전전긍긍했던 중국인들. 그들은 급기야 “태평성세의 개로 태어날지언정, 난세의 사람으로는 살지 말자(寧爲太平狗, 莫作亂世人)”는 유명한 맹세를 남긴다.
중국인이 요즘 쓰촨(四川)의 대지진으로 느끼는 아픔은 그 외형의 크기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였던 고통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이해할 대상이다. 특히 쓰촨의 오지에서 빈곤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주 피해자다. 그를 지켜보는 일반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는 두보의 처절한 외침과 차라리 태평시절의 개로 살자는 비감 어린 원망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그 아픔을 이해하고 덜어주는 데서 이웃인 한국의 역할을 찾아보자.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철웅(논설위원)-20080522목] 흑백대결, 또는 화합
197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미국에서 ‘블랙 앤드 화이트’란 팝송이 히트해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것이. ‘스리 도그 나이트(Three Dog Night)’란 재미있는 이름의 그룹은 노래한다. “잉크는 검은 색이고 페이지는 하얀 색이에요. 둘 덕분에 우리는 읽고 쓰기를 배우지요. 한 아이는 검고 한 아이는 하예요. 온 세상이 이것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아요(The ink is black, the page is white. Together we learn to read and write. A child is black, a child is white. The whole world looks upon the sight. A beautiful sight)”
이 곡은 당초 1955년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를 불법으로 본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고무받아 작곡된 것이라고 한다. 다분히 이념적인 이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국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 있다. 바로 흑인 민권운동의 고조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이 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였다. 킹은 흑인과 백인이 화합하는 인종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런 점에서 통합주의(integrationism) 신봉자였다. 흑인 저항운동에는 또다른 흐름이 있었다. 그것은 말콤 엑스로 대표되는 흑백 분리주의(segregationism)였다. 그는 철저한 백인지배 국가에서 통합주의는 허구라고 비판하며 흑인들이 정체성을 찾아 급진적 해방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60년대 중·후반에 각각 암살당해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살아있었다면 공히 깜짝 놀랄 대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아버지가 아프리카 출신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의원을 제치고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은 것이다. 이는 곧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와 미국 사상 첫 대선 흑백대결이 펼쳐지게 됐음을 의미한다. 그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결과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궁금증들이 꼬리를 문다. 과연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 사회에서 표심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오바마가 취약층인 백인노동자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흑인보다 인구가 더 많아진 히스패닉은 어디로 향할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짙어질 조짐인 인종주의적 투표성향이 팝송 ‘블랙 앤드 화이트’를 그야말로 ‘흘러간 옛노래’에 그치게 하는 게 아닌가.
[매일경제신문 칼럼-기자24시/최승진(유통경제부)-20080522목] 레퍼리와 엄파이어
'심판'은 영어로는 다양한 의미로 번역된다. 그중에서도 구분되는 것은 '레퍼리(Referee)'와 '엄파이어(Umpire)'다. 축구 심판은 레퍼리를, 야구 심판은 엄파이어라는 말을 쓴다.
레퍼리라는 말은 심판이 선수들과 같이 뛰며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는 종목에서 쓰인다. 엄파이어는 선수들과 같이 뛰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판정을 내리는 심판을 지칭한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경기인지 아닌지에 따라 심판을 칭하는 말이 다른 것이다.
축구의 현대화가 시작됐던 19세기 중반에는 축구 심판을 엄파이어라고 썼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는 곧 레퍼리라는 말로 바뀐다. 당시 영국에서는 축구 경기를 치르면 부상자는 물론 사망자가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격렬한 축구 경기를 원만하게 마치려면 축구 심판은 선수들 틈에서 적극적으로 판정을 해야 했다.
쇠고기 수입업체 사장을 인터뷰하며 정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가 의문스러웠다. 논란이 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 여부를 민간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정부는 엄파이어가 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입업체 사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도 자본논리가 개입된다고 털어놓았다. "우리가 바잉파워가 있습니까, 바게닝 파워가 있습니까. 미국 수출업자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 사업이 어려워지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주지 않는 이상 업체들 힘만으로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특히 국민 건강이 담보로 걸린 시장에서 정부는 엄파이어보다는 레퍼리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심판이라는 말은 '저지(judge)'라는 말로도 번역된다. 점수를 매기는 피겨스케이팅 등의 종목의 심판, 즉 채점자를 말한다. 정부 관련 기관이 수입업체들에 공동선언 서명과 광고비 집행 등을 권유했다는 보도를 보면 정부는 스스로 '저지'임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을까.
[서울경제신문 칼럼-시론/이을형(전 숭실대 법대학장)-20080522목] 어찌 독도가 일본 땅인가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이 있거니와 일본이 걸핏하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매년 연례행사처럼 우리의 심기를 건드린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AD 512년) 때부터 엄연한 우리 영토이다. 그런데 일본은 지난 1905년 1월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로 전제(前提), 일본 영토에 편입 결정해서 자기 영토라는 것이다. 즉 일본은 일방적으로 시마네현(島根縣) 고시(告示) 40호로 일본에 편입시키고 이 사실을 이듬해 1906년 9월 한국에 통보했는데 한국은 항변권(抗辯權) 행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법상 자기네 땅이라는 것이다.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는 이로써 중단됐다는 것이 일본이 내세우는 주장이다. 그러나 억지도 분수가 있는 법이다.
당시 일본정부는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조회하거나 통보하지도 못하고 독도편입을 중앙관보에 게재하지도 않고 있다가 1905년 2월22일 시마네현의 현보에 몰래 도둑질하듯 고시했다. 2005년에 와서 한국 침략을 노골화한 을사늑약을 맺었던 1905년 2월15일, 이날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는 웃지 못할 연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김치의 종주국이 자기라고 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독도는 무주물도 아니며 대한제국은 이미 1900년 10월25일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울도군(울릉군)으로 승격시키고 울도군의 관할구역으로 울릉 전도와 죽도 및 독도가 대한제국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중앙관보에 독도가 울릉군의 부속도이고 우리의 영토임을 고시해 무주물이 아닌 것이 밝혔다. 일본의 주장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연합사령부도, 1946년 연합사령부의 지령677호도, '연합국의 영토처리에 관한 합의서'에서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판정하고 있다. 또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사(每日新聞社)가 발행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설명서에 실린 일본지도역시 한국지역으로 표시하고 또 미국이 설정한 반공통제구역에도 한국 영토로 돼 있음은 이미 다 아는 사실들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우리의 고유 영토임이 분명함에도 그들의 영토 운운은 우리 주권에 대한 모독이요, 도전인 것이다.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도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하는데도 일본은 그 야만적 침략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왜 이들은 악착같이 독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 여기에는 동해의 이해득실이 계산을 염두에 두고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해양질서를 마련하는 중요한 때이기에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설정하는데 어업협정과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 등에 우위를 점해 독도의 해저의 자원과 어업자원 및 일본영역을 넓혀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때문에 일본은 의도적이고 도전적이며 치밀한 책략으로 다가오는데도 우리는 한일협정이나, 어업협정, 더구나 신 어업협정 등에서 번번히 그들의 공략에 당하는 무능무지로 독도영유권에 훼손을 가져왔다. 여기에 일본은 용기백배해 독도 침탈까지도 넘보며 우리를 식상하게 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대륙 침략을 가일층 획책하며 1902년 러일전쟁을 도발한 뒤 울릉도에 해군망루를 건설하고 해군정박지와 망루를 연결하는 해저전선을 부설, 울릉도 침탈을 강화해 1910년 소위 한일 합방으로 인해 울릉도와 독도가 한때 일본영토에 편입 됐던 것이다. 제2차 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독도는 한국 영토로 되돌아왔다. 1946년 1월29일 연합국 최고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정령677호에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독도는 일본 소유에서 분리되며 한국 영토'라고 규정했고, 정령1033호 역시 일본 정부에 보낸 각서에서 제주도ㆍ울릉도ㆍ독도를 일본의 통치권에서 제외시킴으로써 한국 영토임이 국제적으로 공인됐다.
이것은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일본이 패전과 함께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1943년 '카이로선언'의 "일본은 폭력 및 탐욕에 의해 약취(略取)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된다"와 1945년 '포스담선언'의 "일본주권은 본주(本州) 등 4개섬과 연합국이 정하는 제소도(諸小島)로 국한한다고 했다. 이후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침략으로부터 얻은 모든 영토를 원상 회복한다'는 '카이로선언'과 '포스담 선언'을 수용했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의 대일강화조약에서 이를 확인했다. 이로써 독도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 권원(權原)은 원상회복이 됐다. 그들의 1951년 샌프란시스코의 대일강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로 인정됐다는 것도 완전한 거짓이다.
일본은 대일강화조약 1차초안에서 5차초안까지 한국 영토로 등재된 것을 5차초안을 입수해 휴회기간 3개월 동안 로비를 해 독도를 미 전투기의 폭격연습장으로 제공한다는 등의 로비활동을 전개해 거짓되게 "독도는 무주지였으며 1905년 일본에 합법적으로 영토 편입됐다"고 6차초안에서 독도를 일본영토에 포함시키는 일들을 꾸몄으나 영국ㆍ호주ㆍ뉴질랜드 등 다른 연합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했다. 또한 독도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무주지도 아니었다. 이러한 우회 곡절 끝에 1951년 9월8일 조인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모두 빠졌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엄연한 우리의 영토이다.
이제 우리는 독도가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첫 희생물이었던 사실과 대한민국 독립의 상징임을 잊어서도 안되며 앞으로 일본의 독도 영토분쟁에 대해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 침략으로 강점했던 영토들을 패전과 함께 사죄하고 모두 포기해야 함에도 철면피하게 자기 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일본의 몰염치에 함구무언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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