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eros 2009. 12. 29. 22:18

[한국일보 사설-20091228월] 가슴 뿌듯한 한국형 원전 첫 수출 개가

한국이 사상 최초로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한다. 한국전력 컨소시엄은 27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발전사업 프로젝트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UAE 원자력공사(ENEC)는 가격과 건설공기, 안전성과 운용실적 등을 종합 평가, 한전 컨소시엄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수주에 성공한 UAE 원전 프로젝트는 1,400㎿급 한국형 원전 4기의 설계와 건설(200억 달러), 준공 후 60년 동안의 원전 운용 및 유지보수, 연료공급 (200억 달러) 등을 포함한 일괄 수출로 단일 수출계약으로도 사상 최대인 총액 400억 달러 규모다. 이로써 한국은 1978년 미국 기술로 고리 원전 1호기를 도입해 운용한 지 31년 만에 독자형 원전 수출에 성공했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조선 등의 분야에 이어 원전건설은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원전 수주는 무엇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뤄진 꾸준한 기술개발의 성과다. 1984년 '원자력 발전 경제성 제고방안'이 중점 추진 정책으로 수립된 이래 관련업계는 전남 영광 3ㆍ4호기 건설에서부터 독자기술 개발과 적용에 힘써왔다. 그런 노력은 1,000㎿급 한국형 경수로(OPR 1000)를 거쳐 1,400㎿급 신형경수로(OPR 1400) 개발로 이어졌다. 한국형 경수로의 안정성은 중단된 대북 경수로 제공 사업의 주사업자 결정 단계에서 확인된 바 있고, 이번 UAE 원전 수주를 통해 국제적 인정을 받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강조해 온 실용외교의 뚜렷한 성과이기도 하다. 프랑스 아레바와의 경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직접 UAE로 가 국가적 지원ㆍ보증 의지를 과시해 UAE의 결정에 힘을 실어 주었다. 기술력과 외교력이 결합한 대표적 모범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물론 한국이 완전한 원전 수출국이 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한전 컨소시엄에는 국내 건설ㆍ중공업 업체 외에 웨스팅하우스와 도시바 등 외국 업체가 참여했다. 이들 외국업체가 맡은 설계코드와 냉각계통, 제어계측계통 등 원전 핵심기술에 서둘러 다가가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091228월] 원전 수출이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

한국인 손으로 설계해 짓고 운영하는 원자력발전소가 수출되는 시대가 열렸다. 한국전력이 중심이 된 컨소시엄은 아랍에미리트가 발주하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를 놓고 프랑스 컨소시엄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여 사업을 따냈다. 설계, 시공 등의 비용만도 200억달러에 이르리라는 이 사업 수주를 돕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현지를 방문하기까지 했다.

원자력발전소 수출은 우선 한국인의 기술이 국제적으로 안전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첨단기술의 결합체인 원전은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까닭이다. 게다가 원전은 거대 장치산업이어서 산업계 전반에 끼치는 경제적 효과도 크다. 이것만으로도 원전 수출의 의미는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원전 수출 시대가 부를 몇 가지 문제를 냉정하게 따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의미있는 일이다. 먼저 현실적인 측면에서 원전 수출은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일종의 ‘모험사업’이다. 각종 기술을 결합해 정밀하게 작동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건설 과정부터 시련이 따른다. 게다가 원전 운영 과정에서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타격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이 때문에 과거의 공산품 수출 정책처럼 정부가 원전 수출을 독려하는 것은 위험하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원전 수출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싹부터 자를 위험이 크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가 요즘 세계인의 주목을 받자, 정부는 원자력발전이 ‘녹색 에너지원’인 것처럼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으로 볼 때, 원전은 결코 바람직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원전에서 쏟아져나오는 냉각수는 주변 환경을 황폐화시킬 위험이 있고, 원전 폐기물은 당대는 물론 후대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이런 위험들을 비용으로 계산할 때 ‘원전의 경제성’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원전보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다양한 대체에너지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하는 건 단지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은 기술 선진국들도 경제성 있는 대체에너지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이르면, 그 기술을 무기로 삼아 한국 경제를 옥죄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바싹 서둘러 대비하지 않으면 이 예고된 재앙을 피할 길 없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원전 수출에 앞장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다양한 대체에너지 개발을 독려하는 대통령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앙일보 카럼-분수대/허귀식(경제부문 차장)-20091228월] 원전 수출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는 원자력을 싫어하는 나라다. 다 지은 뒤 가동하지 않는 원전이 하나 있긴 하다. 츠벤텐도르프(Zwentendorf) 원전이다. 반핵 여론에 밀려 국민투표 끝에 1978년 11월 문을 닫았다. 반핵을 주도한 노벨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는 “원전은 가장 비싼 고철 덩어리가 됐다”며 좋아했다.

몇 달 뒤인 79년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섬의 원전에서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스트리아의 선택이 선견지명인가 싶었다. 당시 카터 미 행정부는 “새로운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86년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이 방사능을 뿜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원전에 등을 돌렸다.

프랑스는 달랐다. 자국 원전회사인 프라마톰을 앞세워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종 하나로 10년간 내리 6기를 건설했다. 기술을 익히자는 계산이었다. 82년엔 일감이 없어 고전하는 웨스팅하우스를 꼬드겨 원천기술 사용권까지 사들였다.

원자탄 두 방을 맞고 손든 일본도 50년대부터 원자력 정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인 나라다. 일본 원자력의 대부는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 55년 원자력기본법 제정에 앞장서고 59년 과학기술청 장관에 취임해 일본을 원자력 대국으로 이끌었다. 일본은 사용후연료의 재처리시설까지 세우고, 원조 미국업체를 인수해 원천기술을 손에 넣었다.

한국도 배짱 좋게 원전을 세워나갔다. 80년대부터 방폐장 선정을 놓고 반핵 시위가 일어나고, 각종 괴담이 난무했으나 한눈을 팔지 않았다. 한국의 원자력 대부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발상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전 중앙연수원 부지다. 딱 50년 전 바로 이곳에 이 대통령은 ‘원자력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지금도 연구용 원자로가 남아 있고, 가까운 곳엔 이 연구소에서 갈라져 나온 원자력병원이 있다. 30년 반핵 운동이 지나가자 원전은 더욱 안전하고 온실가스 배출도 거의 없는 청정에너지로 재조명됐다. 프랑스·일본·한국이 수천조원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마침내 27일, 한국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사업을 수주하며 원전 수출 시대를 열었다. 삶의 터전을 원전 부지로 내놓은 이들의 희생, 과학자의 땀, 그리고 역대 지도자의 꿈으로 버무린 원자력 50년의 결실이다. 이 땅의 원자력을 가꿔온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