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 재산 노리는 결혼 사기꾼들의 ‘가치사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사회가 고도로 분업화되면서 협업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사기도 혼자 치기 힘들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한탕을 노린 사기꾼 조직의 이야기다. 그런데 상대가 참 만만찮다. 나는 열심히 속인다고 속이는데, 행여 내가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 <아가씨>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을 잇는 박찬욱표 ‘복수 시리즈’를 이어간다.
원작은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다. 원작의 배경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런던이지만 영화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경성이다. 전체 흐름은 소설을 따라가지만 캐릭터들은 재창조됐다. 그럼에도 여성동성애를 다룬 ‘퀴어작품’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
어릴 적 부모를 잃은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가 있다. 후견인은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분)다. 이모부는 아가씨의 재산을 노려 강제결혼을 하려 한다. 하지만 히데코를 노리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한국인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이다. 백작은 하녀 숙희(김태리 분)를 매수해 아가씨 옆에 붙인다. 아가씨가 자신을 사랑하도록 바람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백작은 아가씨를 유혹해 결혼을 한 뒤 그녀의 재산을 빼앗을 심산이다. 아가씨의 일상은 단조롭다. 매일 이모부 서재에서 책을 낭독하는 것이 전부다. 아가씨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백작과 사랑에 빠진다. 동시에 하녀에게도 묘한 감정에 이끌리게 된다.
백작은 아가씨를 유혹하기 위해 장물아비 가족에게 도움을 청한다. 양딸인 숙희를 빌려주는 대가는 현금 5만원. 아가씨의 하녀가 될 숙희에게는 아가씨의 패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자 숙희가 반박한다. “나는 현금 10만원. 그리고 패물. 싫으면 말든가.”
최종재가 생산되려면 원재료 구입, 중간재 가공을 앞서 거쳐야 한다. 기업이 원재료를 사서, 가공·판매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가치사슬(Value Chain·VC)이라고 한다. 가치사슬에는 크게 지원부분과 운영부분이 있다. 지원부분에는 연구개발, 재무, 인사, 감사 등이 있다.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부서를 지원해주는 곳이다. 운영부분은 조달, 생산, 판매 등으로 부가가치를 실제 만들어 낸다. 198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포터(M. Porter)는 이런 식으로 기업 내부 역량을 분석하려 했다. 단계별로 경쟁우위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 생산성을 극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과 정보통신, 물류와 교통이 발달하면서 굳이 내부에서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외부조직도 손쉽게 접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재료 수입-중간재 가공-최종재 생산’을 한 기업이 도맡기보다는 더 경쟁력 있는 외부기업에 맡기기 시작했다. 연구개발, 재무, 감사 등도 마찬가지다. 더 능력 있는 외부조직에 아웃소싱을 했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찾았지만 눈은 점차 해외로 나갔다. 이른바 글로벌 아웃소싱이 시작됐다. 가치사슬이 국경을 넘어 구성되는 것을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GVC)이라고 한다. 아이폰은 미국에서 디자인하고, 삼성으로부터 반도체와 액정패널을 구입하고, 대만에서 조립한다.
백작은 여성을 유혹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아가씨 히데코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사전에 누군가가 바람잡이를 해준다면 작업은 훨씬 쉽게 진행될 수 있다. 숙희와 장물아비 가족은 백작 사기극의 ‘가치사슬’을 형성하게 됐다. 그 핵심 역할을 해야 하는 숙희는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아가씨 옆에서 자신의 정체가 들킬 경우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리스크도 크다. 그래서 숙희는 사기극에 참여하는 대가로 백작에게 ‘아가씨 패물+α’를 요구한다. 만약 백작이 이 사기극에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동원했다면 GVC로 확대됐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조선족이 주축이 되고, 한국인이 대포통장을 관리하는 최근의 보이스피싱이 이런 형태의 GVC다.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 value chain
마이클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기업이 원재료를 사서 가공·판매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가치사슬은 크게 지원부분과 운영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운영부분은 조달에서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는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부분이며, 지원부분은 연구개발, 재무, 인사와 같이 직접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않아도 이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더욱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기업내부에서 이루어지던 가치사슬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해체가 가속화 되면서 네트웍을 통한 아웃소싱이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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