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흑인노예를 감시하면 생산량은 는다
“너는 자유인이 아냐. 조지아에서 탈출한 깜둥이야.”
뉴욕에 사는 흑인 솔로몬 노섭은 1남1녀를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예술가다. 1841년 어느날, 그에게 두 남자가 접근한다. 지상 최대의 서커스쇼 단원인데 악사가 필요하다며 순회 중인 단원들을 따라 워싱턴까지 동행해줄 것을 요청한다. 조건은 짭짤하다. 매일 1달러에 야간공연을 하면 3달러를 주는 조건이다. 하지만 두 남자는 인신매매범이었다.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됐다. 그러자 미국 내 자유주에서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성행한다. 만취돼 쓰러졌다가 눈을 뜨니 손발이 묶여 있다. 졸지에 노예가 됐다. 이름은 플랫, 출신은 노예주의 한 곳인 조지아로 바뀐다. 자신이 자유인임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노섭은 노예주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다는 남부 루이지애나로 끌려간다. 첫 주인 포드는 노섭을 이해하지만 자유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백인을 때려 노섭이 위험에 처하자 엡스에게 팔아치운다. 악명 높은 면화 대농장주 엡스는 수확량이 적은 노예에게 매질을 하고 어린 여자노예 팻시를 성노리개로 삼는다. 탈출을 기도하는 노섭. 쉽지 않다. 우체국을 통해 북부의 지인에게 편지를 보내려던 계획까지 수포로 돌아간다.
스티비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은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맥퀸 감독은 오스카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감독이 됐다. 팻시 역을 맡은 루피타 뇽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미 피플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선정했다. 이 영화의 제작자가 브레드 피트다.
노섭이 사탕수수밭 농장에 대여될 때 농장주와 농장 관리인들은 노예들이 일하는 모습을 마차 위에서 지켜본다. 엡스의 관리자들은 채찍을 휘두르며 노예들이 면화 따는 것을 독려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관리자들이 지켜보면 정말 생산량이 늘어날까? ‘호손 효과’에 따르면 그렇다.
호손 효과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을 의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를 의식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 하버드대의 산업심리학위원회는 1927년부터 1932년 사이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적정 조도를 찾기 위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이 이뤄진 곳이 미국 일리노이주 소재 웨스턴 일렉트릭의 호손공장이었다. 연구원들은 실험할 호손 노동자들을 선발한 뒤 한 쪽은 조명을 밝게 했고, 한 쪽은 어둡게 했다. 그런데 양쪽의 생산성은 모두 개선됐고, 개선 정도는 별 차이가 없었다. 노동자의 휴식시간, 근무시간, 급료 등을 달리하면서 실험을 해봤지만 역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이 뒤늦게 내린 결론은 외부 작업환경이 아닌 노동자의 마음자세였다. 자신이 실험 대상으로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안 노동자들은 행동이 달라졌다. 자신들이 선택됐다는 자부심에 외부조건이 어떠하든 열심히 일을 한 것이다.
호손 효과는 1930년대 경영학에 큰 충격을 줬다. 그 이전만 해도 경제학은 노동자를 기계와 같은 존재로 봤다. 근로환경을 적절하게 조절해 주면 생산성도 그에 따라 늘어날 것으로 봤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방법이나 앙리 패욜의 기능적 경영론이 대표적이다. 만약 농장주나 농장 관리인이 노예들을 감시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면화를 많이 따더라도 자신의 수익이 아니어서 경제적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농장주와 농장 관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팻시는 사탕수수 볏집으로 인형을 만든다.
요즘 CC-TV가 설치된 사업장이 많다고 한다. 보안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시각도 많다.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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