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식어가는 사랑 ‘수확체감의 법칙’
1980년대 ‘책받침 스타’의 대표 아이콘은 소피 마르소다.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영화가 <라붐>(1980)이다. 남자 친구가 소피 마르소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던 장면은 각종 영상에 패러디됐다. 영화 OST인 ‘reality’는 1980년대를 상징하는 명팝송으로 남아 있다. 제작된 지 35년이 된 영화지만 국내에 정식으로 극장 개봉된 것은 2013년이다.
클로드 피노토 감독의 <라붐>은 13세 소녀 빅(소피 마르소 분)의 성장기를 담은 성장 영화다. 파리로 전학온 빅은 친구들이 주최한 파티에서 잘생긴 친구 마튜를 만나게 된다. 빅은 마튜에 대해 가슴앓이를 하며 자유분방한 증조할머니 푸펫트에게 도움을 구한다. 부모님들은 빅의 설익은 첫사랑 행보가 마뜩찮다. 행여나 사고를 치지 않을까 불안불안. 그러는 동안 빅의 아빠 프랑소와는 바람을 피고, 화가 난 엄마 프랑소와르는 별거에 들어간다. 엄마도 곧 새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빅의 가정은 위기로 치닫는다.
< 라붐>에는 13세 소녀의 설레는 첫사랑과 함께 40대 중년 부부의 사랑도 함께 담겨 있다. 첫키스만으로도 설레는 10대 소녀와 10년 이상을 산 중년 부부의 사랑은 다르다. 엄마 아빠는 빅에게 별거 사실을 밝히면서 “오랫동안 서로 사랑하면 습관이 되어서 잠시 서로를 떠나려 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사랑은 왜 이렇게 다를까.
생물은 무한히 자라지 않는다. 경제도 무한정 성장할 수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뜨거워질 수만은 없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수확체감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수확체감의 법칙은 농업에 기반하던 시절 나온 초기 경제학 이론이다. 일정한 농지에 작업하는 노동자를 더 투입시키면 처음에는 1인당 수확량이 늘어나지만 더 많은 노동자를 투입시키면 1인당 수확량이 줄어든다는 내용이다. 생산물을 생산하는 3대 요소인 자본, 노동, 토지 중 나머지는 고정시키고 노동의 투입량만 늘린다는 가정을 이용한다. 맬서스는 이 법칙을 이용해 농업 생산량을 끝없이 대폭 증가할 수 없다고 봤고, 이는 농업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갈 수 없다는 ‘인구론’으로 이어진다.
수확체감의 법칙은 농지를 벗어나 다양하게 적용됐다. 공장에 투입되는 인력을 증가시키면 어느 시점까지는 노동 투입량 대비 생산량이 늘어나지만, 일정 시점 이후에는 줄어든다. 저개발 국가에서는 경제성장률이 높지만 중진국으로 넘어가면 성장률이 과거처럼 높게 나타나지 않는다. 집값도 가격이 낮을 때는 가파르게 뛰다가 일정 시점이 되면 가격 상승이 더뎌진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양적완화의 효과도 수확체감의 법칙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산버블까지 유도하면서 이제는 돈을 더 풀어도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요인들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마튜를 열렬히 사랑했던 빅은 자신의 생일에 찾아온 또 다른 남자 친구에게 반해 함께 춤을 추는 것으로 영화는 끝맺는다. 마튜와 투닥투닥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점차 마튜에 대한 뜨거움이 식고 있다는 것을 빅은 몰랐다.
수확체감의 법칙을 개인이 얻는 만족감(효용)에 적용한 것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다.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대해 느끼는 만족감은 시간이 흐르면 줄어든다. 그 만족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된다. 경제 침체에도 경기부양을 반대하는 이론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추가경정예산이나 확장재정을 통해 한 번 돈을 투입하면 추후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2년 전 추경을, 지난해 재정확대를 했던 한국 경제가 지금 처한 딜레마가 딱 그 꼴이다.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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