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집값 급등에 따른 ‘슈바베지수’의 상승
“100만원이면 저 집을 살 수 있을까?”
어릴 때는 정말 그랬다. 제 아무리 으리으리한 아파트도 100만원을 넘지 않을 것 같았다. 100만원은 어린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돈이었다. 김성호 감독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집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여류소설가 바버라 오코너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원작의 배경은 미국이지만 집 문제는 만국 공통의 관심사다.
10살 소녀 지소는 동생 지석, 엄마와 함께 피자배달차에서 살고 있다. 사업에 실패한 아빠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갔다. 엄마는 딱 일주일만 차에서 살자고 했는데, 벌써 한 달째다. 곧 지소의 생일에 친구들이 집에 찾아올 예정이다. 지소는 우연히 부동산에서 ‘평당 500만원’짜리 집을 본다. ‘평당’에 있는 ‘500만원’짜리 집으로 지소는 생각했다. 아마도 평당은 분당 옆 어디쯤 있을 것이다. 지소는 500만원을 벌기 위해 개를 훔치기로 한다. 개를 되돌려 주면 사례금을 받을 수 있다. 목표물은 레스토랑 마르셀의 주인인 노부인의 개 월리다.
집값이 비싸 집을 못 구하는 것은 지소네만의 얘기가 아니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크게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허리가 휘고 있다. 이를 계량화할 수 있는 지표가 있는데, ‘슈바베지수’다. 슈바베지수란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주거비의 비중이다. 주거비에는 월세와 수도요금, 난방비, 관리비, 주택유지·수선비, 상하수도·폐기물처리비 등이 포함된다.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식료품 지출의 비중인 엥겔계수와 흔히 비교된다.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주거비 부담은 저소득층일수록 커진다. 이를 ‘슈바베 법칙’이라고 한다. 고소득층의 경우 절대금액으로 보면 주거비에 쓰는 돈이 더 많지만, 지출액 전체로 보면 주거비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봉 10억원인 사람이 10억원짜리 집에 사는 것과 연봉 3000만원인 사람이 2억짜리 집에 산다고 가정해 볼 때 고액연봉자의 거주 관련 지출이 확실히 크지만 전체 지출규모를 감안하자면 그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고소득자는 주거비 이외에도 교육비, 문화오락비, 잡비, 저축 등도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고소득자의 엥겔계수가 낮은 것과도 비슷한 이치다. 독일의 통계학자인 슈바베가 1868년 베를린시의 가계조사 자료에서 이런 경향을 찾아냈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구당 가계수지 자료를 보면 소득하위 20%(1분위)의 슈바베지수는 19.40%에 달한다. 이는 상위소득 20%(5분위)의 슈바베지수 9.80%의 두 배다. 즉 소득하위 20%는 1000원 지출 중 194원을 거주비로 쓰는 반면 소득상위 20%는 1000원 중 98원을 쓴다.
슈바베지수가 높을수록 살림살이가 팍팍해진다. 그만큼 쓸 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슈바베지수가 25%를 넘어서는 가구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한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급상승하는 반면 소득증가는 정체되면서 한국의 슈바베지수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면서 상승속도는 더 가팔라졌다. 특히 저소득층의 충격이 크다. 올해 1분기 소득하위 20%의 슈바베지수가 전분기 대비 3.8%포인트 뛰는 동안 소득상위 20%는 1.92%포인트 뛰는 데 그쳤다.
지소네가 피자배달차를 전전하는 것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액의 전세보증금이 없다면 엄마가 레스토랑과 도시락공장에서 일해서 얻는 소득만으로는 도심 월세를 충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빈집에 들어가 살려고 하지만 여기서도 쫓겨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미국인들이 텐트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임대료가 지금처럼 계속 오르면 한국에서도 텐트나 차량으로 내몰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의 슈바베지수를 떨어뜨릴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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