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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브리핑중 '알함두릴라…신의 가호에 감사를'

eros 2015. 9. 17. 17:13

'알함두릴라…신의 가호에 감사를'


1999년의 이맘때 저는 제보를 하나 받았습니다. 한국 사람들 네댓 명이 입국비자까지 다 받아 미국에 도착했는데 미국 이민국이 입국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없다면서 그날 밤을 미국 감옥에서 지내게 했다는 겁니다. 발목에 쇠고랑까지 차게 하고서 말입니다. 불과 16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내용을 뉴스로 전했고, 미국 대사관 측은 유감을 표했습니다.

제가 이 얘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2015년의 또 다른 풍경. 그리스의 휴양지 레스보스. 해변이 아름다운 관광지입니다. 요즘 그 섬의 해안엔, 끊임없이 보트가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해변에 무사히 닿는 순간, 그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알함두릴라! 신의 가호에 감사를…

어느날 아침, 휴양지 해변에 조용히 밀려온 잠자듯 평온한 모습의 아일란은 바다를 넘지 못한 수많은 희생자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일란의 죽음은 유럽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사실은 더 큰 숙제가 남아 있지요.

'공존'입니다.

지금 유럽엔, 휴머니즘만 가득 차 있는 건 아닙니다. 난민을 '곤충떼'로 치부하는, 혐오감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생존은 했으나, 공존을 위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셈입니다.

참혹한 일제 강점 시대와 뒤이은 전쟁을 겪은 우리도 한때는 난민이었습니다.

아주 최근까지도 우리는 불법체류자라는 이름으로,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불과 16년 전의 일화를 말씀드린 것도, 바로 그래서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경제적 이유로 이 땅에 들어온 수많은 외부인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혐오 또한 커지고 있지요.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배경은 독일입니다. 서로 사랑해 함께 살게 된 남녀가 있지요. 여자는 50대 독일 여성, 남자는 아랍 청년입니다. 서로 사랑한다지만 여성은 청년의 주식인 '쿠스쿠스'를 극도로 혐오합니다.

작가 박완서는 이런 해석을 내립니다.

"단지 특정식품에 대한 혐오감이 아니라 상대방 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모멸과 천대…"

유럽에 발을 디딘 난민에게도, 또 한때 난민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이른바 다문화 시대로 들어가는 우리에게도 공존은 그렇게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