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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브리핑중 '매워서 우는 것이란다'

eros 2015. 9. 10. 23:00

'매워서 우는 것이란다'


오늘(10일) 앵커브리핑이 고른 말입니다.

한 수필집에서 읽었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의사가 된 수필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드시던 술안주 맛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들이 그랬듯, 그의 아버지도 과묵하고 엄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컴컴한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고 곁에는 소주와 매운 안주 한 접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가엔 눈물이 잔뜩 맺혀 있었습니다.

"아빠, 매워서 울었어요?"
"그래, 엄마가 왜 이렇게 음식을 맵게 했다니?"

사실 아버지의 눈물은. 당시 방영됐던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북쪽. 황해도 연백.

어머니는 매운 안주를 준비해, 남편의 눈물이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했던 겁니다. 마음 아파서 울지 말고, 차라리 매워서 울라는 의미.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예고되고 있습니다. 등록된 이산가족은 6만 6천여 명. 이번에 가족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는 경쟁률은 663대 1에 달합니다.

북에 피붙이를 두고 온 이들 중 고령자는 자꾸만 늘어가는데 원망스러운 시간은,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은 채 빠르게 흘러만 갑니다.

어찌 보면 지금 세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감히 가늠하기조차 조심스러운 마음들일 테지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산가족 상봉이라 한들 예전만큼 큰 관심을 끌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은 우리 현대사가 빚어낸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마치 위안부 문제가 이젠 예전만큼 관심을 받지 못해도 여전히 우리 민족사의 가장 아픈 부분임엔 틀림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다시 수필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매운 안주를 핑계 삼아 마음껏 눈물 흘렸던 아버지와 그를 바라보던 아들.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버지는 결국 고향에 가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고 어른이 된 아들은 해마다 명절이 되면 매운 찌개와 소주로 그리움을 달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찌개가 매워요? 울지 말고 물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