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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개·돼지’ 발언이 드러낸 보수정권의 인식 수준

eros 2016. 7. 10. 20:30

[경향신문 사설-20160710일요일]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경향신문 취재진에게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등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기자가 발언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해명의 기회를 줬지만 그는 당초 발언을 거두지 않았다. 평소 지니고 있던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과 시민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는 전근대적 사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시민의) 99%가 민중”이라고 말했다.


정책기획관 자리는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교육, 창의인재 양성’을 비전으로 내걸고 있는 교육부의 주요 보직이다. 대학구조개혁 같은 교육부의 굵직한 정책을 기획하고 다른 부처와 정책을 조율한다. 이런 자리에 그와 같은 사람이 앉아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만약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는 그의 말대로 한국 사회가 굴러가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극소수 부유층이 대대손손 부를 누리고 가난한 사람은 영원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처럼 기본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지난 3월 고위 공무원으로 승진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번 파문을 통해 나 기획관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는 추세가 갈수록 굳어지고 있지만 교육은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시민을 아둔한 개·돼지로 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사회에 수저 계급론이 확산되고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패배감이 팽배한 것도 나 기획관과 같은 관리들이 교육정책을 주무르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정부에서 활개 치는 것이 과연 주권자인 시민을 우습게 보는 정권 내 분위기와 무관한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