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누구에게나 감미롭다. 그것도 낯선 여행지에서 스쳐 지나간 첫사랑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첫사랑이 현실이 될 때면 얘기가 달라진다. ‘외로운 각도의 턱 선과 날카로운 지성의 콧날을 가진 남자’가 지금 보니 ‘후덕함을 지닌 두 겹의 턱 선과 수시로 마음이 변하는 변덕쟁이 콧날을 가진 남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첫사랑은 그리우면서도 쉬이 만나기가 머뭇거려진다.
장유정 감독의 <김종욱 찾기>(2010)는 10년 동안 간직해온 첫사랑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김종욱’. 서지우(임수정 분)가 학창시절 인도 여행에서 만난 사람이다.
‘끝’을 알기 싫어 묻어놓은 첫사랑이지만 그 환영은 10년째 다른 사람 사귀는 것을 막고 있다. 계속되는 프로포즈 거절을 보다 못한 아빠는 지우를 ‘첫사랑 찾기 사무소’로 끌고간다.
사무소장은 한기주(공유 분)다. 한기주와 서지우는 전국에 있는 ‘김종욱 찾기’에 나선다. 그러면서 한기주는 서지우와 김종욱 간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된다. 10년 전 지우는 김종욱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김종욱의 주민등록증까지 갖고 있으면서도 찾지 않았다.
한기주는 말한다. “완벽한 첫사랑의 기억이 깨어질까봐 (당신은) 엔딩 같은 것은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서지우가 반박한다. “끝까지 가면 뭐가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어요.” 한기주가 재반박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김종욱 찾기> 원작은 뮤지컬이다. <맘마미아> <레미제라블>과 닮았다. 하지만 뮤지컬 스타일은 전혀 가미하지 않았다.
지우는 왜 김종욱을 찾지 않았을까? 행동경제학자라면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 사실이 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후확신 편향이란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편향에 빠져 판단과 결과 분석을 그르치는 것을 말한다.
잉꼬 커플로 소문났던 남자 야구선수 A와 여자배우 B가 결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홍길동이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두 사람은 원래 맞지 않았다니까.”
홍길동은 자신이 가진 생각을 뒤늦게 끼워맞춰 이들이 남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증거들을 제시한다. A가 성격이 괴팍하고, B는 자유분방했다느니 하며. 하지만 실제로 ‘결별’이라는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 홍길동은 두 사람이 잘 살지, 아닐지 확신하지 못했다.
2008년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2010년 경제학자들은 너나없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너무 방만하게 나갔고, 파생상품은 너무 위험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만 해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장밋빛 미래만을 읊었다.
사후확신 편향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미래를 충분히 예측할 분석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이는 스스로를 오만하게 만들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도록 이끈다. 또 결과가 좋으면 자신 덕분으로, 그렇지 않다면 타인을 탓하는 형태로도 많이 나타난다.
야구에서 발이 느린 1루 주자가 도루를 하다 2루에서 아웃됐다. 그러자 해설가가 말한다. “발이 느린데 뛰어서는 안 되죠. 무모했어요.” 그런데 도루에 성공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발이 느려 도루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멋진 작전이었네요. 기발했어요.”
지우는 자신이 사후확신 편향에 빠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김종욱을 찾았다가 깨졌다면 “그봐, 그럴 줄 알았어”라며 틀림없이 후회했을 것이다. 이때 그녀가 “사랑이란 다 똑같더라”라는 판단을 내려버린다면 앞으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진다. “내 예측이 맞을 거야”라는 지레짐작을 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우는 김종욱을 결국 만난다. 그녀와 김종욱은 “안녕?” “안녕!” “안녕”. 세 번 말하며 헤어졌다. 앞의 두 번은 “잘 있었냐”는 뜻이고, 세 번째는 “잘 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우는 기주를 택한다. 매몰비용인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면 사후확신 편향은 극복할 수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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