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두 사람의 동상이 서 있다. 한명은 세종대왕, 또한명은 이순신 장군이다. 문을 대표해서 세종대왕이, 무를 대표해서 이순신 장군이 서 있다. 무관으로서 이순신 장군은 세종대왕급이라는 얘기다. 세계적인 명성으로만 보자면 오히려 이순신 장군이 앞설 수도 있다. 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과 함께 해외에서도 잘 알려진 해군 사령관이다. 이순신 장군은 적국 일본으로부터도 추앙을 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300년간 이순신을 연구해 훗날 러일전쟁 등을 승리로 이끈다. 1905년 러시아 함대를 격파했던 일본 해전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는 자신을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자 “나를 넬슨 제독(위의 트라팔가 해전의 주인공)에 비교하는것은 옳지만, 이순신과 비교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김한성 감독의 <명량>은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무찌른 세계 해전사상 유례없는 승리를 담은 영화다. 1597년 10월25일(음력 9월16일)의 일이다. <한산대첩>, <노량대첩>과 함께 이순신의 3대대첩으로 손꼽히지만 일방적인 숫적 열세속에서 일궈낸 대승이라는 점에서 감격의 정도는 다르다.
1597년 임진왜란이 벌어진 뒤 6년째. 조선은 2년간 일본과 대화에 나서지만 협상은 깨진다. 심한 병을 앓고 있던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승부수를 던진다. 조선을 빠른 시간내에 정복하겠다며 군사를 한반도에 다시 보낸다.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선조는 원균을 보내 일본군과 맞서도록 한다. 하지만 조선수군은 참패한다. 간신히 사형을 면해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충청경상전라를 지위하는 권한이 다시 주어진 것이다. 조선수군은 몰락직전이다. 이순신에게 주어진 것은 12척의 배. 한산대첩에서 위세를 떨쳤던 거북선도 한척이 없다. 수군은 전의를 상실했고, 백성들은 두려움을 떨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순신타도’를 외치며 단단히 벼른다. 해적출신 구루지마가 선봉에 나선다.
구루지마는 전쟁전 포로의 수급을 배에 띄워 조선 수군 진영에 보낸다. 두려움을 극대화해 백성들의 기를 꺾기 위해서다. 이순신은 백성들의 눈을 본다. 두려움에 빠졌다. 장수들 마저 “이 싸움은 불가하다”며 출전을 거부한다. 저 두려움을 어찌 없애야 하나. 아들 휘의 우려에 이렇게 답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래 일본수군과 붙어 단 한번도 진적이 없다. 첫승은 6월16일 옥포해전이다. 일본배 26척을 격파했다. 육상에서는 연전연패. 조선 조성은 한양을 버릴 시점이었지만 해상에서는 이순신의 승리가 시작된다. 7월에는 거북선이 첫 출전한 사천해전에서, 8월에서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적선을 격파한다. 뒤로 후퇴하는 듯하다 순식간에 적을 에워싸 공격하는 학익진으로 거둔 승리였다. 이어진 부산해전에서도 400여 척의 배중 100여척을 깨부순다. 이순신의 잇단 승전으로 한양을 함락했던 왜군은 보급로가 끊기게 된다. 조선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켜내며 반격의 기회를 갖는다.
이런 이순신 장군에게도 명량해전은 두려웠을 것임이 틀림없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는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승리를 갈망하는 자기최면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명량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해서 또 이길 수 있었을까. 명량의 승리를 이순신의 힘이라고 본다면 이는 ‘파레토 법칙’이다. 파레토법칙이란 전체 세상은 소수가 이끈다는 법칙이다. 상위 20%가 80%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로 이른바 20대 80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이탈리아 경제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는 어느날 개미를 관찰했다. 모든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줄 알았더니 전체 개미의 20%가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알아내다. 완두콩도 마찬가지였다. 소일거리로 심은 자신의 텃밭에서 자라는 완두콩을 봤더니 전체 열리는 완두콩 중 80%가 20%의 콩깍지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이런 자연현상을 근거로 고민을 해봤더니 세상의 많은 일들은 소수가 해내고 있었다.
다음은 파레토법칙의 예들이다. 사회,경제,경영 부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간단명료하게 밝힌다.
-특정국가의 부는 상위 20%가 전체의 80%를 갖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 20%의 주식이 주식시장의 80%를 좌지우지한다.
-프로야구선수 중 고소득 상위 20%가 전체 연봉액의 80%를 차지한다.
-백화점에서는 상위 매출 고객 20%가 80%의 매출액을 담당한다.
-내가 보내는 문자의 80%는 입력된 이름의 20%에 보낸다.
-내가 통화하는 사람은 전체의 20%가 통화량의 80%를 차지한다.
-소득세나 법인세도 상위 20%의 소득자 혹은 법인이 전체 세금의 80%를 담당한다.
-신발이 닯을때 전체의 20%가 주로 닯는다
-신문이나 잡지를 볼 때 읽는 기사량은 전체의 20%다.
-야구팀이나 축구팀에서 20%의 선수가 전체 경기를 지배한다
-20%의 범죄자가 전체 범죄의 80%를 저지른다
-전체 운전자의 20%가 교통위반의 80%를 저지른다.
-옷장에 걸려있는 옷 중 20%만 즐겨 입는다.
-평생에 걸쳐 얻는 수익은 인생의 20% 기간에 벌어들인다.
명량해전은 파레토법칙의 결과물이다. 명량해전에서 12척의 조선수군은 333척의 왜적에 맞서 싸워 승리한다. 이순신 장군과 그를 보필한 소수의 리더들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왜적은 쪽수는 많았지만 이순신과 같은 천재가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좁은 울돌목의 지형을 잘 이용했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능히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병법은 파레토법칙의 유용성을 잘 설명한다. 확실히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명량해전의 승리는 없었음이 틀림없다. 앞선 칠전량 전투에서 원균이 이끈 조선수군은 오합지졸에 불가했다.
천재 1명이 나머지 국민 전부를 먹여 사릴 수도 있다. 한국경제가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한국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은 고위관료와 정치권, 재벌총수 등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파레토법칙은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됐다. 1개의 기업을 집중육성하고, 엘리트에 교육투자를 집중하게됐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에 정부가 집중적인 재정지원을 하는 것이나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이 집중되는 것은 같은 논리다. 지방균형발전보다는 수도권 집중정책이 당연시 된다. 상점에 상품을 진열할 때 제일 잘나가는 주력 상품을 매대 가장 좋은 곳에 올려놓게 됐다. 주력상품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요즘 금융기관은 이른바 VVIP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VVIP는 VIP중에서도 VIP를 의미한다. 소득상위 최고계층의 사람들이 긁는 카드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은행과 증권사의 PB영업도 같은 이치다. 최우량고객은 각종 재무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고, 기업의 각종 행사에도 귀빈으로 초청된다.
쏠림이 원채 심하다보니 최근에는 ‘슈퍼 파레토법칙’도 등장했다. 20대 80의 사회가 아니라 5대 95의 세계다. 2014년 경제개혁연구소의 분석을 보면 한국의 소득상위 1%인 19만명이 벌어들이는 소득 총액은 하위 40%인 768만명이 벌어들이는 소득총액과 같았다. 토지소유도 비슷했다. 2013년 12월 기준으로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전체인구의 1%도 안되는 50만명이 가진 토지의 규모가 전국 토지의 55%에 달했다.
슈퍼파레토법칙이 적용되는 사회는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쏠림이 큰 만큼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외쳤다. 왜그랬을까? 이순신 장군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조선수군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반면 왜적들의 사기는 크게 올라 자칫 전세가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이유때문이다. 두 재벌이 흔들리면 한국경제가 일순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주력 제품에 과도하게 집중했다가 일순간 망해버리는 회사들도 많다. 2G폰에 집중했던 노키아는 3G폰 시대가 열리자 문을 닫아야만 했다.
소수에 기대는 정치도 불안전하기는 마찬가지다. 독재권력은 속도감있게 경제발전을 시킬 수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무너지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봉건시대는 왕이 절대권력이었다. 모든 권력은 왕에서 나오고 모든 책임도 왕이진다. 왕만 사로잡으면 전쟁은 끝난다. 왜군은 보름만에 한양을 점령했지만 의주로 피난간 선조를 잡지 못했다. 수도를 점령했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은 이때문이다.
하지만 명량해전의 승리가 오직 이순신장군 덕이었을까? 이순신 장군이 승리하는데는 군량미를 대고, 군함을 만들고,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던 백성들이 있었다. 영화 <명량>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조선수군 뒤에 100여척의 고깃배를 풀어놓도록 했다. 허세를 부리는 허장성세(虛張聲勢)지만 이를 본 왜군은 멈칫한다. 명량해협을 마주보는 진도와 뭍에는 백성들을 보내 마치 군이 언덕받이에 매복해 있는 것처럼 비춰지게 했다. 행여 왜군이 이 지역을 점령해 조선수군에 화포를 내려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명량해협 양측 땅에 만만찮은 조선군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왜군들은 육상을 공격해 가두보를 확보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처럼 명량해전의 승리는 이름없는 백성들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롱테일 법칙’이다. 롱테일법칙(Long Tail theory)이란 하위 80%가 상위 20%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이다. 이름없는 다수가 세상을 만든다는 논리와 같다. 소수의 엘리트가 세상을 이끈다는 파레토법칙과 반대개념이어서 역파레토법칙이라고도 한다. 롱테일법칙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연구하면서 나왔다.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은 전체 수익의 상당수가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비치하지 않았던 책들로부터 나온다. 포털사이트 구글은 거대기업이 아닌 꽃배달업체나 제과점 등 작은 기업들에서 수익의 상당부분을 얻는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앱)도 자잘하게 팔리는 다수가 소수의 히트 앱을 압도한다.
롱테일법칙(긴꼬리법칙)이라는 명칭은 많이 판매되는 상품 순으로 그래프를 그리면 적게 팔리는 상품들이 마치 긴꼬리처럼 길게 이어진다는 것에서 나왔다. 이 긴꼬리부분에 해당하는 상품판매를 모두 합치면 몇개의 베스트셀러 판매량은 넘어선다. 판매량이 많은 인기상품은 공룡의 머리, 판매량이 적은 다수의 품목은 공룡의 꼬리가 된다.
롱테일법칙은 2004년 미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잡지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이 이름 붙였다. 롱테일법칙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시비용이나 물류비용이 추가적으로 들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즉 오프라인 교보문고에서 책을 한권더 비치할려면 서가를 더 늘려야 한다. 매장비용이 생긴다. 하지만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새 책을 더 비치한다고 해서 별도의 경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책 한권을 더 비치하기 위해 증가하는 한계비용은 0에 가깝다. 한계비용이란 한 단위당 드는 비용을 말한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롱테일법칙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법칙이 된다.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다수의 대중이 이끌어가는 사회다. 민주주의 사회에는 1인1표 투표제를 채택하기 때문에 대중의 힘이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하더라 국민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부치기는 힘들다. 롱테일법칙은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SNS나 페이스북이 주요방송이나 주요 신문보다 국민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88%는 중소기업이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에 지급하는 고료의 대부분은 소액 독자들로부터 나왔다.
-선거때는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이 더 많이 나온다
롱테일법칙은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점에서 안정적이다.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이 무너지더라도 고만고만한 기업들이 또있으니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대만경제가 그런 형태다. 슈퍼 챔피언보다 히든 챔피언이 많은 경제가 튼튼한 경제다. 기업들이 문어발 투자에 나서려는 까닭도 따지고보면 롱테일법칙의 안정성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말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고. 나라는 초엘리트집단인 임금의 것이 아니라 다수 백성들의 것이라는 뜻으로 ‘롱테일법칙’의 정의에 가깝다. 영화 <명량>에서 화약을 실은 화선이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을 향하자 언덕에 있던 정씨부인이 자신의 하얀 치마를 흔든다. 이를 바라보던 백성들도 옷가지며 이불가지를 흔들며 대장선의 위태로움을 호위선들에게 알린다. 호위선들은 화선에 집중 포격을 하고, 대장선 직전에 폭발한다. 만약 백성들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순신 신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영화 말미 대장선의 격실에서 노를 저었던 한 백성이 말한다. “후세는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다는 것을 알까? 모르면 호로세끼들이지” 명량해전의 승리는 목숨을 걸고 싸운 이름없는 백성들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은 이순신 장군을 내세운 파레토법칙일까, 백성들의 목숨걸고 조선을 지킨 롱테일법칙 때문일까.
판단은 당신이다.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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