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사설
[한국일보 사설-20080505월] 광우병에 안이한 정부 이제라도 달라져야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에 따른 광우병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공중파 방송사들은 안전성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반대 단체는 촛불 집회를 열어 정부의 검역주권 포기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주 기자간담회를 열어 안전하다고 해명했지만 의혹 해소에는 미흡했다. 당ㆍ정ㆍ청은 어제 긴급 회의를 열어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한데 이어 6일 고위 당정회의, 7일 국회 청문회를 개최, 의혹 해소 방안을 마련키로 했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경제 논리를 떠나 친정부와 반정부, 친미와 반미 등의 이념 대립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여당은 야당과 반정부 반미 단체들이 쇠고기 수입 개방을 빌미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등 불순한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야당은 검역체계가 허술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정부가 ‘값싸고 안전한 쇠고기’라고 해명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재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이 문제가 정치 공방으로 커진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문제점을 충분히 감안해 대국민 홍보와 사전 설득은 물론 이중 삼중의 안전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 의회 비준을 위한 걸림돌 해소 차원에서 협상 타결을 서두르면서 광우병을 유발하는 30개월 이상 소와 일부 부산물까지 개방키로 하는 등 의혹을 자초했다. 협상 타결 이후에도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언동으로 반감을 부채질했다.
정부는 정확한 정보 제공과 현지 도축장 실사, 철저한 검역시스템 구축으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30개월 이상 소는 수입을 보류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해당 지역 쇠고기 수입 중단도 검토해야 한다.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 돼 버렸다.
정부와 여야는 소모적 정치 공방으로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기보다 수입이 불가피한 미국 쇠고기를 안심하게 먹을 수 있는 완벽한 검역 방안과 원산지 관리대책을 세우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반대시위를 하는 단체들도 좀더 넓은 안목으로 문제를 보아야 할 것이다. 중ㆍ고생들이 집회ㆍ시위에 앞장서거나 일정 부분 주도해 가는 현상은 걱정스럽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505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 적용하라
며칠 전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현행 근로기준법이 노동자를 과보호한다는 지적이 많다”는 발언을 했다. 노동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일 뿐 아니라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아예 적용도 되지 않는 등 노동자 보호에 허점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노동자 1500만명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300만명 가량 된다. 노동자 5명 중 1명꼴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근로기준법은 6·25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53년 제정됐다. 따라서 노동현장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된 지도 벌써 55년이 흘렀다.
그러나 2008년 오늘까지도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될 뿐,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극히 일부 조항만 적용되고 있다. 부당해고 금지, 1일 8시간 주 40시간 노동, 연장근로 제한, 연장근로수당, 연차 유급휴가, 생리휴가 등 근로기준법상의 주요 조항은 모두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이들의 월평균 임금은 135만8천원으로,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 241만3천원의 절반밖에 안 된다.
지난달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부 장관에게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의 시기와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법 규정으로 명문화할 것,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예방 차원에서 1일 8시간 근로와 연장근로수당 조항이 우선 적용되도록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즉시 개정할 것, 근로기준법 적용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 예방적 근로감독행정 강화 및 근로감독능력 제고 방안을 마련할 것, 노동부가 직접 근로기준법과 시행령의 주요 내용을 담은 교육자료를 만들어 5인 미만 사업장에 배포하고 각 사업장에 상시 게시하도록 지도할 것 등을 권고했다.
근로기준법상의 최저기준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온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비록 뒤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이다. 노동부는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법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감독 행정력을 강화하길 바란다.
[동아일보 사설-20080505월] ‘안전시설 제로’ 나루터가 참사 키웠다
충남 보령 앞바다에서 높이 10m가량의 파도가 쳐 죽도 나루터와 인근 갯바위에서 낚시와 관광을 즐기던 가족들이 파도에 휩쓸려 22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실종자들은 대부분 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연휴에 어린이가 8명이 죽거나 다쳐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전체 피해자 중 17명이 죽도 나루터에서 바다를 구경하던 관광객이었다. 죽도는 서해안 최대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과 인접한 곳으로 평소에도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었지만 높은 파도나 해일에 대비한 대피시설이나 구명장구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번에 죽도 나루터에서 생선을 손질하던 50대 여인이 포장마차 쇠파이프를 잡고 목숨을 구한 것을 보더라도 최소한의 안전시설만 있었으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안전시설 제로지대는 나루터만이 아니다. 동해안의 경우 방파제 사고가 매년 100건가량 발생한다. 올해 2월 강릉시 안목항 방파제에서는 방파제를 걷던 관광객들이 너울성 파도에 2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 사고가 났다. 같은 달 삼척시 원덕읍 신남항 방파제에서는 사진 촬영을 하던 관광객이 파도에 휩쓸려서 바다로 추락해 다쳤다.
나루터와 방파제는 본래 관광이나 낚시를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라 파도로부터 부두와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라이프 라인이나 안전 손잡이 같은 안전시설이 거의 없어 실족 및 추락사고 발생 시 인명 피해 우려가 매우 높다. 나루터와 방파제를 만들 때 기초적인 안전시설이라도 해놓으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낚시꾼이 많이 몰리는 갯바위에도 붙잡고 파도를 버틸 수 있는 쇠기둥이라도 박아놓으면 이번과 같은 사고에서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날 사고지역 해상에는 강한 바람에 높은 파고가 예상된다는 기상 예보는 있었으나 해일주의보는 발령되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자주 발생하는 요즘 나루터나 방파제 인명사고를 천재지변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안전 펜스 설치, 구명장구 현장 비치 같은 안전 조치가 강화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080505월] 정부는 '쇠고기'를 '미선이·효순이 사건'처럼 키울 셈인가
서울 시내에서 2일과 3일 연이틀 미국산(産)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 시위가 열렸다. MBC PD수첩이 '한국인 94%가 인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 영·미(英·美)인보다 감염 위험성이 두세 배 높다' '미국 쇠고기를 먹는 사람은 실험동물과 같다'는, 광화문 네거리에 휘발유를 끼얹는 식의 보도를 내보낼 때부터 우려했던 불길이 바로 그 장소에서 솟구치고 있다. 이러다간 2002년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졌던 사건처럼 굴러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까지 갖게 된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난달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후 정부가 과연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을 하지 않았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사태를 진단하는 능력과 사태에 대응하는 능력의 부재(不在)를 절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MBC PD수첩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은 지난 4월29일이었다. PD수첩 내용은 4월25일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정부가 그때부터라도 PD수첩 보도의 비과학적(非科學的) 선정적 내용을 과학적·논리적으로 반박만 했더라면 '미국의 쇠고기를 먹기보단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어느 탤런트의 미친 발언이 인터넷을 주름잡는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정부는 신문들이 TV의 도를 넘은 광우병 부풀리기를 지적하고 나서야 국민을 안심시키겠다며 설명회를 가졌다. 4일 여권의 긴급 당정회의도 뒷북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와 정부 모든 부처, 그리고 여당이 마치 합심(合心)이나 한 듯 때를 놓치고 방법을 그르쳐 일부 TV의 무책임한 불장난으로 그쳤을 사태를 대형(大型) 화재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TV 등 일부 매체(媒體)가 유언비어의 소재(素材)를 제공하고, 거기에 일부 선동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태를 반미(反美)운동의 운동장으로 삼으려는 세력의 움직임이 합쳐져 판단력 없는 중·고교 학생들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밀려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6년 전 효순·미선양 사건과 비슷한 모습이다.
미국 쇠고기 반대운동을 벌이는 세력들의 거짓과 논리적 모순과 위선(僞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국민 1000만 명 가까이가 매년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미국과 유럽 일본 지역에 태연히 관광 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광우병 부풀리기를 한 사람들과 그 부풀리기에 올라탄 사람들도 그 대열에 끼어 맛있게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먹고 왔다. 지금 쇠고기 재협상 주장을 펴고 있는 민주당 등 야당의원들도 국정 감사차 뉴욕에 가선 유엔 한국 대사관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원료로 마련한 갈비와 육개장을 맛있게 들었다. 이 많은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론자 가운데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 가 있는 자녀들에게 '쇠고기를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식은 여태 한번도 없다. 자기 자식들에겐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먹이면서도 다른 국민들에게만은 먹이지 않겠다면서 쇠고기 수입반대운동에 팔을 걷어붙인 대한민국 위선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정부는 밀면 넘어지고 찌르면 구멍이 뚫릴 이들의 거짓과 논리적 모순과 위선에 대해 제때에 제대로 된 공박 하나 못한 채 여기까지 밀려왔다.
한마디로 국정의 예견(豫見)·조정·감시·통제 기능이 작동 정지상태인 것이다. 청와대에조차 국가적으로 대처해야 할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어떤 일이 무슨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강구하려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는지 의문이다. 인사 난조(亂調)를 되풀이하면서도 그대로 흘러가는 패턴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넋을 놓고 있다가 앞으로 무슨 암초에 부딪혀 이 정부 국정운영에 구멍이 뚫리고 가라앉게 될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서울신문 사설-20080505월] ‘어린이 지키기’ 구호만으론 의미없다
오늘은 여든여섯번째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바르고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제정한 이 날을 맞는 마음은 그러나 편치 않다. 최근 드러난 혜진·예슬양 납치 살해 사건의 진상과 뒤이은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알려진 대구의 초등학생 집단성폭행 사건 등 듣기에도 끔찍한 일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린이들은 여러가지 유형의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어린이들이 유괴와 실종, 성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며 이번 어린이날을 ‘어린이 지키기 원년’으로 선포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도 대국민 사과와 함께 성폭력예방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새삼스러울 것 없는 구호나 쳇바퀴 대책으로는 상황이 개선될 리가 없다.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제대로 보살피는 데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동안 사회의 양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이번 대구 집단성폭행 사건에서 보듯이 어린 학생들은 인터넷, 케이블TV 등의 영상매체로 성인용 음란물을 쉽게 접하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를 모방해 성폭력을 저질렀다. 가해 어린이들조차 기성세대가 방치한 음란물의 피해자임을 부인하기 힘든 것이다. 아이들의 문제이기에 앞서 어른들의 문제로 보고 어른들부터 각성해야 한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이자 사회의 희망이다. 어린이들이 밝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와 어른들의 몫이다.1년 365일 어느 하루도 빼놓지 말고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고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080505월] 내수회복 걸림돌 가계빚 부담
가계빚은 늘어나는데 갚을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가계발 금융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6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의 원리금상환부담률은 지난 2005년 말 15.3%에서 2006년 말 19.3%, 지난해 말에는 20.2%를 기록했다.
연간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의 5분의1을 대출금 갚는 데 쓰고 있는 것으로 그만큼 소비여력이 줄어 가계살림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원리금상환부담 증가와 함께 이자로 나가는 돈의 비율도 증가해 2005년 말 10.2%이던 이자지급비율은 2006년 말 12.0%, 지난해 말에는 13.2%로 높아졌다.
소득증가율에 비해 이자상환부담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문제로 경기가 불안한 가운데 앞으로 집값이 떨어지거나 금리가 뛰게 되면 한계에 달한 서민가계의 부실이 우려된다. 연소득이 5,000만원 이하이면서 1억원 이상을 빌린 가계의 원리금상환부담률은 현재 35~45%로 이미 위험수위에 달했다.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고용사정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고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을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은 “대출이 많고 신용도가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서민가계의 부실은 은행ㆍ보험 등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을 악화시킴으로써 금융부실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소비부진과 내수둔화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도한 대출은 자제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앞으로의 경제전망이 불투명한 만큼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거나 주식 등에 투자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정책적 노력도 요구된다.
가계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고물가가 걱정이긴 하지만 금리인하는 기업투자 활성화나 가계빚 부담경감을 위해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예영준(정치부문차장)-20080505월] 도시광업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이조의 좋은 사례가 19세기 중반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 주에서 있었다. 1851년 금광이 발견돼 흥청대던 벤디고의 한 호텔 바에서는 매일 저녁 바닥에 물을 끼얹어 청소를 했다. 청소도 청소지만 퇴근 후 바에 모여든 광원들의 장화에서 떨어지는 금가루들을 긁어 모으기 위해서였다. 영국·아일랜드 등 유럽인은 물론 중국의 노동자까지 불러 모아 세계 금 채굴량의 40%를 생산하던 시절의 얘기다.
극한 조건의 오지를 마다않고 노다지를 캐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골드 러시는 이젠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전인미답의 금광이 여태 남아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대신 21세기의 골드 러시는 광산이 아닌 도시 지역에서 일어날 태세다. 선진국에서는 폐전자제품 등 각종 폐기물에서 유용한 광물을 찾아내는 이른바 도시광업 (urban mining)이 주목받고 있다. 말 그대로 쓰레기에서 노다지를 캐는 산업이다.
휴대전화 한 대에는 평균 6.8 ㎎의 금이 들어있다. 1000대면 2돈 가까운 금이 들어있다는 소리다. 휴대전화처럼 경박단소(輕薄短小)를 지향하는 첨단 전자제품치고 전도성이 뛰어난 금을 기판에 쓰지 않는 제품은 드물다. 그 양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금광에서 채굴하는 원광 1t에서 얻을 수 있는 금의 양이 겨우 5g에 불과한데 비해, 못쓰게 된 휴대전화 1t을 분해하면 그 30배에 달하는 150g 이상의 금을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폐 휴대전화 1t에서는 구리 100㎏과 은 3㎏, 그 밖에 이리듐 등 각종 희소금속을 캐낼 수 있다.
일본의 한 연구기관에 따르면 일본 국내의 폐전자제품에 들어있는 금의 양이 총 6800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세계 전체 금 매장량의 16%로 최다 매장 국가인 남아공의 14%보다 많다. 시가로 따지면 22조 엔어치가 된다. 일본의 중소업체 에코시스템은 폐전자제품들로부터 한 해 200∼300㎏에 달하는 순도 99.99%의 금괴를 생산해 낸다고 한다. 어지간한 금광 한 곳에서 캐내는 양과 맞먹는다. 금액으로 치면 60억∼90억원대다.
목하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광물값이 치솟는 자원전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 우리도 도시광업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휴대전화의 보급률이 세계에서 으뜸이고, 최신 기능과 유행을 좇아 일년에 한 차례씩 전화기를 바꿔치우는 나라가 한국이다. 외환위기 시절 장롱 속의 금을 꺼내 모으던 정성으로 서랍 속에서 잠자는 전화기를 수집하는 캠페인이라도 벌인다면 상당한 양의 자원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누가 한국을 자원 빈국이라 했던가.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택근(논설위원)-20080505월] 육식의 공포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굵은 허리로 뒤뚱거리고 있다. 현대 문명은 인류를 꾸준히 육식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어느 시대보다 많은 에너지를 섭취하고 있다. 굵은 허리에는 식탐(食貪)이 도사리고 있어 더 많은 먹거리를 원하고,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한 축산업은 비약적으로 신장했다. 그러나 이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동물학대 기술이 발달했음이다. 소나 돼지, 닭과 오리는 오로지 인간의 먹이로 사육되고 있다. 끼니마다 고기를 먹는 육식 위주의 식사는 가축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고기를 생산해야 했다. 이는 ‘공축(工畜)’이라 부를 만하다. 동물들을 단기간에 어떻게 하면 살이 오르게 할까만을 연구했다.
동물들을 공장의 빵처럼 여기는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의 학대를 받다가 죽어가는 동물들. 그 사이의 불화가 마침내 재앙으로 내리고 있다. 학자들은 조류 인플루엔자(AI),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부르셀라, 광우병 등은 모두 공장형 사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과 동물간의 불화는 깊어만 가고 있다. 지구촌은 만원이고, 인류에게는 단백질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기맛을 본 사람들은 고기를 더 많이 먹으려 한다. 인도 사람들이 채식을 포기하고 모두 육식으로 돌아선다면, 중국 사람들이 모두 생선회를 즐긴다면 지구촌은 어찌 될 것인가. 아마도 물과 뭍이 급속하게 황폐해질 것이다. 하지만 저들의 욕구를 어찌 막을 것인가. 원초적인 ‘먹을 것 전쟁’은 엄연히 현재형이다.
광우병 공포가 번지고 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 그것도 동족의 살과 뼈와 피가 섞여있는 사료를 먹이는 것은 인간의 만행이다. 우직하고 착한 소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니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쇠고기를 먹고 10년 후 또는 20년 후 어느날, 갑자기 광우병에 걸린다면…. 내 아이가, 우리 젊은이가 갑자기 쓰러진다면…. 무서운 일이다. 이런 쇠고기를 들여온다면 우리 모두가 미칠 일이다. 한데 우리 땅에 있는 소들은 앞으로도 ‘미칠 일’이 없을까? 솔직히 걱정이다. AI가 온 나라의 조류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안전한 육식은 없다. 존재하는 모든 동물은 위험하다. 이러다가 육식의 종말이 올지도 모르겠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시론/엄한진(한림대교수, 사회학)-20080505월] 극복해야 할 다문화 `이중성`
최근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오성홍기'사건으로 다문화와 민족주의 논의가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인들이 새로이 경험하는 것 중 하나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이주자들과의 공존의 경험을 통해,대외적으로는 기아,전쟁,독재를 겪고 있는 저발전국에 대한 관심과 개입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있다.
그런데 세계와 인간을 얘기하던 근대 서구의 보편적인 가치가 제국주의의 빌미가 됐던 것처럼 21세기 세계시민으로서의 형제애도 점점 심화되는 민족주의,제국주의 경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성황봉송 사태는 그 압축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캐나다,호주 등 일찍이 다문화주의를 채택했던 국가들과 달리 이민족과의 공존의 경험이 일천하고 소수민족 공동체가 형성돼 있지 않는 등 다문화주의의 전제조건이 결여돼 있다.
실제 한국사회는 '다문화'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정작 다문화주의의 핵심인 문화적 차이,이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논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왔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다문화' 논의가 넘치고 있다. 다문화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은 이중적이다.
한편에는 90년대 이후 '압축적 성장'을 보인 문화,타자,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동아시아 차원에서의 한국의 아(亞)제국주의적 지위가 그 배경에 있었다. 동아시아를 무대로 한 새로운 발전 전략과 한류 열풍은 한국의 새로운 위상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주민의 유입은 한국인들이 제국주의 담론의 핵심인 오리엔탈리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근대 이후 최초로 다른 민족의 속성을 규정하고 그들 내부에 위계서열을 매기는 권력의 쾌감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배경으로 한국인들이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에서 주체로의 변신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시민으로서의 태도와 민족주의적 태도의 공존은 최근 성화봉송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사태가 갖는 여러 의미 중 하나는 유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이기는 하지만 거리에서 이루어진 매우 드문 외국인들의 집단행동이라는 점이다. 이는 1970년대 독일에서 한인 노동자들이 반독재민주화 시위를 벌였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사태가 그 때와 다른 점은 모국의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애국주의적 시위였다는 사실이다. 이 차이는 세계적으로 시민사회가 민주화를 이끌던 1970년대와 시민사회의 보수화로 특징지어지는 2000년대의 차이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대응은 이제 세계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서구의 시각과 국제사회의 표준을 따라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이번 사태의 배경이 된 티베트 독립문제에 대한 태도나 중국에 대한 인식은 국제사회의 것과 대동소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서구의 한계도 그대로 안고 있다. 첫째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이중잣대의 적용이다. 티베트는 사실 북한만큼이나 보수적이고 이란보다도 더 정교(政敎) 일치적인 사회이지만 그 평가는 북한이나 이란에 비해 훨씬 관대하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둘째는 중국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 세력간 경쟁의 측면이다. 1,2차대전이나 파시즘 등 20세기 비극의 본질이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사이의 투쟁이었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우리 일부 보수단체들의 민족주의적 대응 역시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이러한 서구 제국주의적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 땅에 들어와 있는 타자들에 대한 지나친 우리 중심적 시각을 넘어서는 것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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