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8년 4월 2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eros 2008. 4. 24. 10:33
 

2008년 4월 2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오늘의 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080424목] 티베트 사태, 중국은 성숙하게 대응해야 

 

  티베트 사태를 둘러싸고 중국과 국제사회의 대립 양상이 심각하다. 지난달 10일 라싸에서 시작된 티베트인들의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성화 봉송로를 따라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홍역을 치른 성화는 어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수천명의 시위대와 맞닥뜨렸다. 27일로 예정된 국내 성화봉송 역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성화봉송 주자로 내정됐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이 지난달 26일 “부도덕한 무력행사를 하는 나라의 잔치를 거들고 싶지 않다”며 봉송 포기를 선언했던 김창현씨의 뒤를 이었다. ‘북경올림픽 성화봉송 저지 시민행동’을 위시한 여러 단체들도 봉송 저지를 공언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는 국제사회의 이런 움직임에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복귀한 중국의 모습을 만방에 자랑할 베이징 올림픽을 훼손하려는 국제사회의 음모라고까지 본다. 성화봉송을 방해한 나라의 상품 불매운동과 반대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휩쓰는 애국주의 물결은 10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대국이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국가로서의 모습이 아니다. 티베트의 봉기는 중국 정부에서 이야기하듯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외부 세력의 계획과 음모에 따른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1951년 티베트를 병합한 중국은 이곳에 한족을 이주시켜 경제권을 비롯한 대부분의 권력을 장악하게 했다. 티베트 고유문화 대신 중국문화를 보급하는 동화정책도 추진했다. 이런 티베트인 배제정책과 문화말살 정책에 대한 불만이 이번 시위 과정에서 한족과 그들의 상점 등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정에 비쳐볼 때 중국은 티베트 무력진압을 비판하는 국제사회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티베트 정책, 나아가 소수민족 정책을 되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중국은 스스로 불합리한 정책을 바로잡고, 자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며 국제사회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를 보일 때다. 그래야만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국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20080424목] 누굴 위해 미국 소를 ‘광우병 소’라 선동하나 

 

  반미(反美) 성향의 일부 시민단체가 ‘미국산 광우병 소를 먹을 것입니까’라며 미국 소들이 광우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은 과학적 검증과 국제기준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공연한 불안을 부추기는 선동은 국익과 소비자의 후생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광우병은 1986년 영국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세계 25개국에서 보고됐지만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고 관리를 엄격히 하면서 사라져가는 추세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존재하거나 도축돼 식용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설사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도축되더라도 편도와 척수 같은 위험부위(SRM)를 제거하면 안전하다는 것이 OIE의 판단이다. 

  미국인뿐 아니라 재미교포들도 같은 기준에 따라 도축된 쇠고기를 먹고 있다. 세계 117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 어느 모로 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국민 건강권 포기’라는 주장은 반미 선동에 불과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세력은 OIE 평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광우병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세력도 유럽연합(EU)과의 FTA 추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들의 목적이 식품의 안전성 확보나 농업 보호를 빙자한 반미운동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품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위험성을 사실과 다르게 부풀리는 것은 시민단체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국내 소비자가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선택할 때는 가격과 맛뿐 아니라 안전성도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야3당은 쇠고기시장 개방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반미 편승이나 무조건적 국내농업 보호는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 10위권 교역국에 걸맞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다. 

 

 

[조선일보 사설-20080424목] "자원외교, 너무 떠들면 단가(單價)만 오른다" 

 

  하찬호 주(駐)이라크 대사가 "자원외교는 최대한 조용히 실익(實益) 위주로 추진해야 하는데 청와대·총리실·외교통상부·지식경제부 등 여기저기서 너무 떠드니 오히려 자원 확보하는 데 단가(單價)만 올려주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김일수 주(駐)카자흐스탄 대사도 "우리가 자원외교 한다는 말이 너무 많이 퍼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했다. 22일 외교통상부가 마련한 자원외교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자원외교가 새 정부의 핵심 국가과제라고 밝혀 왔다. 총리 인선(人選)과 관련해서도 "총리는 앞으로 세계시장을 다니며 자원외교 등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지식경제부 업무보고 때는 "자원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한국은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나 되고, 철광석·유연탄·구리·우라늄 같은 주요 광물자원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貧國)'이다. 문제는 효율적인 자원외교의 방법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다. 정부는 최근 대통령과 총리가 직접 자원외교를 벌여 석유·가스 자주개발 물량을 현재의 하루 12만5000배럴에서 2012년 하루 57만2000배럴로 5배 가까이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로선 이 계획은 우리의 희망과 포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0년 사이 미국·중국·러시아·일본·유럽 국가 수뇌들은 중동을 이을 에너지 공급국으로 떠오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훑고 다녔고, 멀리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발길을 뻗어 다음 세대의 에너지 확보에 열을 올려 이미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바통 터치를 하듯 해외순방을 밀고 나갔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자원외교를 떠나기 전에 "우리 석유 사러 갑니다" "우라늄 캐러 갑니다"라고 광고하고 가지는 않았다. 그들의 자원외교 행적(行跡)은 그들이 훑고 간 후의 결과가 나타나서야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공연히 경쟁자를 깨워 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의 입장만 강화시켜 교섭을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다.

  뒤늦게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자원 부존국의 동향을 경쟁국가보다 먼저 읽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행동력과 최소(最小) 투자로 최대(最大) 결실을 올릴 교섭력 강화다. 지금의 세계는 자원외교라는 대통령 말이 끝나자마자 해외자원개발협회부터 만드는 구시대적(舊時代的) 겉치레 자원외교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세계가 아니다. 

 

 

[경향신문 사설-20080424목]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의 무책임한 처신 

 

  학력·경력 위조와 전과기록 신고 누락 등의 혐의로 구속된 창조한국당 이한정 비례대표 당선자의 파문과 관련해 이 당의 문국현 대표가 무책임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당초 창조한국당은 “이씨로부터 선관위 기탁금과 특별당비 등 2000만원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가, 이씨가 구속되면서 “당에 6억원을 빌려줬다”고 하자, 그제서야 “이씨 지인들이 당 채권 5억8000만원어치를 매입해줬다”고 실토한 바 있다.

  무엇보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문 대표의 언행이다. 그는 이씨의 비례대표 선정 경위에 대해 “난 모르는 일”이라거나 “이씨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며 부인하다가 최근 며칠간은 아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당 대표가 비례대표 선정 경위를 모른다면 도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창조한국당은 비례대표 선정과 같은 중대한 사안을 당 대표도 전혀 모르게 해치우는 ‘콩가루 정당’이란 말인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중요한 당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영향력도 없는 무능한 대표가 되는 셈이다. 

  돌이켜 보면 정치 신인이나 다를 바 없는 문 대표가 지난 17대 대선에서 5.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 것이나, 이번 18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의 거물 실세인 이재오 의원을 꺾은 것 등은 그가 보여준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에 힘입은 바 컸다. 유명기업의 최고경영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중심 경제’를 주창했고,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기존 정치인들과는 뭔가 다른 모습을 선보였던 것이다. 

  문 대표는 지금이라도 비례대표 파문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솔직히 밝히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동안의 무책임한 처신에 대해서도 깊이 사죄해야 마땅하다. 기존 정치권을 ‘구태정치’라고 비판해온 문 대표가 정작 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이 구태 그 자체라면 그가 설 곳은 더이상 없다. 

 

 

[서울신문 사설-20080424목] 지자체 재보선 비용이 150억원이라니 

 

  오는 6월4일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에 150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4·9 총선이 끝난 지 2개월도 안 돼 전국적으로 49개 선거구에서 또다시 혈세를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비리로 낙마하거나 총선에 출마한 지자체 장·의원들의 빈자리를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북 청도에선 4년 연속 군수선거라는 진풍경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5년간의 각종 재·보궐 선거 비용은 이미 1200억원이나 된다.

  우리는 잦은 재·보선의 귀책사유가 대부분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에게 있음을 주목하고자 한다. 비리로 낙마한 인사들 이외에 18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한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도 많다는 뜻이다. 어느 경우든 선거관리비는 광역이나 기초자치단체가 부담하게 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지역 유권자들은 행정 공백으로 주민 숙원 사업이 지체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마디로 불나방처럼 금배지를 좇아 남은 임기를 팽개친 정치꾼들을 위해 지역민들이 희생 당하는 꼴이다. 이처럼 주민들의 소명을 헌신짝처럼 버리며 의정비 인상 등 밥그릇 챙기기에는 열심이니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는 게 아닌가.

  이런 불합리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제에 제도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재·보선의 원인 제공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거나, 선거비용 부담을 약속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경기도 안산에서 총선 출마를 위해 지방의원직을 사퇴한 4명에 대해 시민단체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시민들이 나서기 전에 정치권이 예방 장치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임기중 부득이한 사유없이 사퇴하면 보선 비용을 부담케 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서 3년째 낮잠을 자고 있다니 하는 얘기다.

 

 

* 오늘의 칼럼

 

[중앙일보 칼럼-20080424목-분수대/유광종(국제부문 차장)-20080424목] 달인

 

  개그는 세상을 읽는 또 하나의 독법(讀法)이다. 요즘 그 바닥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KBS-2TV의 개그콘서트 중 ‘달인’ 코너다. 세간의 이목을 끌어 모으는 이 코너에 등장하는 달인은 엉뚱하고 뻔뻔한 거짓말꾼이다.

  그 달인을 소개하는 대목이 우스꽝스럽다. “16년 동안 단 한 번도 여자를 만난 적이 없는 ‘부킹’ ○○○ 선생”이라는 소개를 받는다. 물론 자신의 이력을 거짓으로 과장한 것. 여자를 만난 적이 없기는커녕 틈만 나면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엉큼한 인물이다. 또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신 ‘개안’ ○○○ 선생”이라는 소개를 받지만 속내는 영 딴판이다. 억지로 눈을 치켜뜨지만 손동작으로 눈감는 순간을 가리고 넘어가는 얼렁뚱땅식 캐릭터.

  가진 것은 없으나 남에게 뭔가를 내세우고 싶어 하는 거짓과 위선의 인물. 정해진 능력 검증 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마침내는 진상이 드러나 뒤통수 한 대 얻어맞고 퇴장하는 사람이다.

  잘나가는 한국의 개그코너에서 인상이 망가지고 있지만 달인은 그리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요즘 의미의 달인이라는 단어는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어느 한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실력이 출중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자(漢字) 단어가 그렇듯이 그 원전은 중국이다. 『좌전(左傳)』에 달인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성인으로서 덕을 갖췄으나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의 후손 중에는 도리에 통한 사람이 반드시 나올 것(其後必有達人)”이라고 말했다. 철리를 깨달은 사람의 뜻으로 쓰였다.

  통한다는 의미의 ‘통(通)’과 어디에 이른다는 새김의 ‘달(達)’은 뜻이 같다. 세상의 물정을 꿰뚫고 사람 사는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 나중에 중국인들은 그 뜻을 ‘통정달리(通情達理)’로 정리했다. 결국 속 깊게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를 기(技)와 예(藝)에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으로 정리한 것은 일본이다. 실질적인 능력을 중시하는 그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곳에서 다시 탄생한 달인이라는 단어가 한국은 물론 대만과 홍콩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으니 일본 문화력의 깊은 힘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정치판에는 가짜 달인들이 늘 넘친다. 총선에서 드러난 뉴타운 공약 남발도 그렇고, 당선되자마자 구설에 오르다가 곧 구속까지 당하는 비례대표 당선자들과 그 배후의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한번 뭔가를 내질러 정치적 효과를 거두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이다. 뻔히 내다보이는 거짓과 위선에 대한 비웃음. 개그코너 ‘달인’이 유행하고 인구에 회자하는 데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다산칼럼/김영세(연세대 경제학 교수)-20080424목] `식코`는 미국 영화일뿐 

 

  인간심리의 감정적이며 왜곡된 측면,때로는 조작되기도 하는 메커니즘은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경제적 의사결정에서조차 큰 영향력을 미친다. 설득에 있어서도 상대의 동정심과 정의감을 불러일으키는 서너 가지 일화가 논리정연하고 치밀한 수사 백마디보다 효과적이다.

  국내 상영중인 미국 영화 '식코(Sicko)'는 그 전형이다. 진보진영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미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점과 정책을 날카롭게 파헤친 다큐멘터리다. 병원 갈 돈이 없어 환자가 직접 바느질로 상처부위를 꿰매는 장면,손가락 1개 접합 시술비가 1억2000만원을 넘어 절단된 2개 중 1개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 등 몇몇 사례를 극명한 시각효과를 통해 내보낸다. 무어 감독은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이 의사,의료보험회사,제약회사에 천문학적 이윤을 안겨주는 반면 일반인들의 건강권을 박탈하는 '나쁜 제도'라고 지적한다. 의료비 지급은 보험회사의 자의적 기준에 의해 이뤄진다. 닉슨 정부 때부터 시작된 이런 황당한 의료시스템을 개혁하자는 공약은 선거 때마다 단골메뉴지만 한번도 시행된 적은 없다. 전미의사협회,의료보험회사,제약회사의 엄청난 로비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무어의 비판은 상당 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식코'는 우리와 관계없다. 미국은 민영보험이 의료보장의 근간이고 공보험은 보조 역할만 하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다. 저소득층 및 노령자 등을 제외한 74%의 국민이 공보험 제도 없이 민영보험 가입으로 의료보장을 받아야 한다. 와중에 5000만명의 의료 사각지대도 발생한다.

  반면 영국,프랑스,우리나라 등에서는 국민 모두가 의무적으로 공보험에 가입하고 공보험으로 부족한 본인부담 의료비만을 민영보험이 보완한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의료보장체계를 만들어 30년간 훌륭하게 다듬으면서 운영해 왔다. 그러나 공보험 보장률은 OECD 최하위인 60% 초반대에 불과해 국민들에게 의료비는 여전히 큰 부담이다. 건강보험료를 2000년 이후 매년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현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재정적자 완화 및 국민의료안전망 확대를 위해 민영보험 활성화를 검토하고 있다.

  사실 의료보장 확대는 원하되 보험료 인상에는 반대하는 국민여론 앞에 뾰족한 대안도 없다. 민간보험은 절대악이고 사회보험은 절대선이라는 무어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유럽 사람들이 의료서비스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받는 대가로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적으로 낙후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민 누구나 사각지대 없이 최소한의 건강보장을 받을 권리 확보와 의료산업 선진화를 통한 양질의 서비스 확대 간에는 상충관계가 있다.

  전국민 의무가입이라는 틀 안에서 민영보험의 보장공백 보완이라는 현행 틀은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공ㆍ사보험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의료부문에의 경쟁도입,의료기관 당연지정제 완화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의료산업 선진화를 추구해야 한다.

  영화 '식코'를 둘러싸고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미국 사례를 우리 현실인양 호도하면서 세력 결집의 동인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다. 상당수 진보단체들은 '식코' 관람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노조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의 부작용 지적에,공공노조는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를 위한 홍보 도구로 '아픈 사람들'('식코'의 한국말 의미)을 이용하고 있다. 국가 전체와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건강보장권의 설계는 감정적 호소와 시각적 조작에 속지 말 것을 요구한다.

 

 

[매일경제신문 칼럼-기자 24시/노원명(과학기술부)-20080424목] 의약품 재평가의 명과 암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좌파라는 참여정부가 체결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참여정부에 덧씌워진 좌파의 색칠은 무고였거나 아니면 과대평가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쨌든 좌파로 알려진 참여정부가 FTA를 추진하는 바람에 우리 사회가 겪은 갈등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공산진영과의 이념대결에서 보다 완고했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미ㆍ중 수교를 체결한 정치현상을 놓고 'Nixon going to China'라는 용어가 생겨났는데, 한ㆍ미 FTA 체결은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 

  참여정부의 '우파정책' 중에는 '의약품 선별등재방식(Postive List System)'도 들어간다. 참여정부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였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밀어붙였던 이 정책은 비용 대비 약효가 뛰어난 약만 보험을 인정해 주는 제도다. 건보재정 건전화의 당위에 가렸지만 "국가는 기본만 보장할 테니 나머지는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자유주의적 철학을 깔고 있다. 

  이 제도의 첫 시험대에 해당하는 고지혈증 치료제에 대한 재평가가 25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확정된다. 기존 1, 2, 3위 치료제가 모두 비싼 약값에 비해 유의미한 사망률 개선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약가가 인하되거나 급여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사들은 "약효를 사망률 잣대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항변한다. 이들은 "돈 있는 사람들은 자기 돈으로 몸에 맞는 약을 먹고, 돈 없는 사람만 대충 비슷한 보험약을 먹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약효에 큰 차이가 없다면 고가약에 소비되는 보험재정을 줄여 다른 데 쓰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단 1%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 차이에 기대를 걸고 싶은 환자의 선택권과 재정집행의 효율성이라는 경제논리 간 선택의 문제다. 좌파정부가 선택한 우파의 길을 진짜 우파정부가 어떻게 이어받을지도 관심사다.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최광(정보산업부)-20080424목] 계속되는 주민등록 남용 시대

 

  지난 2006년 초 수많은 이용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가입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에서 한국 리니지의 계정을 만들기 위해 여러 경로로 떠돌던 주민등록번호를 무단으로 도용했던 것이다. 리니지 명의도용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주민등록번호 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한 인터넷 서비스 하나 이용하는 데도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보니 주민등록번호가 돈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도 개인인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i-PIN과 같은 개인인증체계가 도입됐다. 하지만 i-PIN을 이용하는 사이트는 50개도 넘지 않으며 홍보도 부족해 발급건수는 6만 건에 그치고 있다. 한 업체의 고객정보 관리자는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이유를 ‘편리해서’라고 잘라 말했다. 수많은 고객들의 정보를 관리하면서 주민등록번호 순으로 나열하는 것만큼 편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많은 사이트들이 회원가입을 할 때 주민등록번호에다 이름ㆍ전화번호ㆍ주소 등 구체적인 개인정보까지 필수로 요구하는 실정이다. 10명의 순사가 1명의 도둑을 막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아무리 첨단 방어체계를 만들어도 인터넷의 취약점을 노려 공격하는 해커들을 100% 막을 수 있는 보안시스템은 없다.

  그렇다면 아예 해커들이 노릴 만한 정보를 최소화하고 그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인증 방법으로 i-PIN을 적극 활용하고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용도별로 각각 보관해 하나가 유출되더라도 다른 정보까지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해킹사건의 후폭풍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해커들에게 유출된 개인정보가 악용될 소지를 처음부터 줄인다면 제2,3의 피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리니지 명의도용 사태 이후 꼬박 2년이 지났지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옥션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또 다시 다른 업체로 이름만 바뀐 대형 보안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