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8년 3월 5일 수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칼럼

eros 2008. 3. 5. 21:15
 

[한국일보 사설-20080305수] 새겨 읽어야 할 러시아정치의 문법

 

  메드베데프 전 부총리를 새 대통령으로 뽑은 러시아의 변화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후계자로 지명한 메드베데프는 3일 실시된 선거에서 71%의 지지를 얻어, 오는 5월 푸틴이 8년 동안 권위주의적 통치권을 휘두른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푸틴은 실세 총리로 남아 여전히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전례 없는 ‘권력 분점’ 체제의 러시아가 안팎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비민주적 권력승계와 선거과정을 지적하면서도 러시아 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보수적 언론 등은 향후 권력관계의 불확실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 독일총리가 논평했듯, 러시아 지도층과 국민은 ‘연속성과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 만큼 러시아는 국력과 위상 회복에 힘쓴 푸틴의 대내외 정책기조를 큰 변화 없이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망은 ‘3선 금지’에 묶인 푸틴이 메드베데프를 형식적 후계자로 삼은 의도와 일치한다. 올해 42세인 메드베데프는 크렘린 권력기구를 장악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법대 동문으로, 푸틴을 17년간 보좌한 충직한 측근이다. 따라서 그의 권위를 넘볼 수 없는 ‘하위 동반자’에 그칠 전망이다. 푸틴은 이미 경제분야 정책 결정권과 각료 임명권 등을 총리실로 이관, 국정을 이끌 채비를 갖췄다.

  푸틴이 변칙적 권력구상을 실현한 바탕은 경제회복과 민생ㆍ치안 안정을 이룬 통치 역량에 대한 국민의 지지다. 또 미국과 나토(NATO)의 동구권 확장 등에 맞서는 자주적 외교안보 노선으로 국민적 자존심을 되찾게 했다. 이에 비춰, 국제 정치게임과 얽힌 서구의 잣대에만 의존해 푸틴과 러시아의 선택을 평가해서는 장래를 올바로 내다보기 어렵다.

  러시아 언론은 메드베데프 체제를 ‘미래를 위한 교량’으로 평가했다. 또 EU는 러시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의 대응도 이런 인식을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305수] 출총제 없애기 전에 순환출자부터 막아야 

 

  정부가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도입했던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상반기에 폐지하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이미 제시했던 사안이라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출총제는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폐지를 거론하기에 앞서 그런 준비가 갖춰졌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출총제가 몇몇 재벌기업들에만 적용되는 차별적인 규제라는 점에서 일부 개선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재벌기업들이 얽히고 설킨 계열사 출자를 통해 총수 개인의 기업 지배권을 강화하고 무리한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것을 막는 장치는 필요하다. 삼성 특검에서 보듯이 아직 많은 재벌기업들이 과거의 낡고 불투명한 경영 행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출총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지는 의문이다. 현재 재벌기업들의 관심은 신규 투자가 아니라 은행 관리 아래 있는 옛 현대나 대우 계열사들의 인수에 있다. 출총제를 졸업한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인수하고 다시 대한통운을 인수한 게 좋은 사례다.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여유 자본이 인수합병(M&A)에 몰려 신규 투자가 줄어드는 결과를 빚게 된다.

  굳이 출총제를 폐지하고자 한다면 계열사간 순환출자 금지를 먼저 제도화해야 한다. 불과 2~3%의 지분을 갖고 있는 총수들이 회사 지배력을 강화하고 회사 몸집을 불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본금 1천억원의 세 계열사가 있다고 하자. ‘가’ 계열사가 ‘나’ 계열사에 1천억원을 출자하고, ‘나’는 ‘다’에, ‘다’는 다시 ‘가’에 출자한다. 돈은 빙 돌아 윈래 기업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세 회사의 자본금은 각각 1천억원에서 2천억원으로 늘어난다. 가공자본을 만들어 몸집을 불리는 비정상적인 수단이다. 현행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상호출자의 변형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말 시장을 중시한다면 공정한 경쟁을 막는 재벌기업의 순환출자부터 수술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이 과거의 낡은 경영 행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부는 출총제 폐지를 말하기에 앞서 무엇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인지 고민하기 바란다. 

 

1. 출자총액제한제도 [出資總額制限制度] :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액의 40%를 초과해 국내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

 

2. 순환출자 : 재벌들이 계열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변칙적인 출자방법의 하나. 계열기업이 여러개 있을 경우 A계열사가 B계열사에, B계열사가 C계열사로, 다시 C계열사가 A계열사에 출자하는 것을 가리킨다. 상호출자 금지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런 순환출자는 계열사 확장 등에 이용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80305수] 교수 철밥통 깨기 나선 대학들 

 

  연구실적이 부진한 교수들이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등 교수사회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우리나라의 대표적 연구중심대학인 KAIST에 이어 이런 움직임이 연세대 서강대 등 다른 대학으로도 급속히 확산(擴散)되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정치적 이유로 대학을 떠나야 했던 경우를 빼면 사실상 평생을 보장받았던 게 교수사회였지만 이제는 선진국의 대학처럼 연구성과를 토대로 엄격한 승진심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만하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대학의 경쟁력 약화,배출 학생의 질적 수준 저하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정작 교수 경쟁력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교수의 경쟁력이 없는데 학생의 경쟁력을 말하고,대학의 경쟁력을 말한다는 것은 본질적인 핵심을 제쳐둔 것이다.어느 대학 할 것없이 교수들이 순혈주의를 고집하고,학과라는 벽에 집착하며,연구평가를 마뜩지 않게 생각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수사회가 안주해 왔다는 것은 인적 흐름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국내 고급인력들은 기업이나 연구소보다 대학을 매우 선호한다.대학 기업 연구소 등 분포가 한쪽에 크게 치우치지 않는 미국 등 선진국들과는 현격한 차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교수가 되기만 하면 치열한 생존경쟁을 피할 수 있는 까닭이다.이래서는 대학이 경쟁력이 가질 수 없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의 바람이 일시적으로 그치지 않고 제도적으로 정착(定着)되도록 하는 것이다.연구실적이 부진하면 퇴출은 자연스러운 것이고,실적이 좋으면 더 좋은 대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선 엄격한 평가와 함께 도입돼야 할 게 있다. 대학간 또는 산ㆍ학ㆍ연간 인력의 이동성을 높이는 것이다.한번 재임용에서 탈락했다고 재기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국가적으로 인적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는 연구실적 부진 교수의 퇴출이 정부 등 외부가 아닌 대학 스스로에 의해서 발동이 걸렸다는 점을 무엇보다 높

이 평가하고 싶다. 이런 것이 성공하면 그토록 멀게만 보이던 대학 개혁도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20080305수] '규제 철폐 100일 계획' 세워 매일 점검하라 

 

  외국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고(高)임금과 기업 활동을 옥죄는 갖가지 규제, 그리고 유연성이 없는 노사(勞使)관계다. 지난 10년간 모든 조사 결과가 똑같았다. 조사 결과만 똑같은 게 아니라 이런 조사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시정하겠다고 새로 신발끈을 매는 시늉을 하는 정부 태도도 10년 동안 똑같았다. 이번에 대한상공회의소가 외국인 투자기업 845곳을 조사한 결과도 과거와 엇비슷했다. 국내 투자환경의 애로를 묻는 질문에 '높은 인건비'가 35.6%로 가장 많았고 '규제 및 인허가 등 행정수속 복잡'이 30.1%, '인재확보의 어려움'이 20.5%로 뒤를 이었다.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규제개혁 및 완화' 40.8%, '세제(稅制) 혜택을 포함한 인센티브 확대' 20.7%, '행정절차 간소화' 11.5% 순(順)이었다. 행정절차도 일종의 규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52.3%에 달했다. 외국기업들은 구체적인 규제·행정절차 불편 사례로 '공장 설립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행정절차가 분리돼 있는 등 인허가 과정이 복잡하다' '인허가 절차를 담은 매뉴얼도 없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절차가 복잡하다' 등을 들었다. 국내기업들도 지적해왔던 문제들이다.

  김영삼 정권 이후 들어선 정권마다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고, 규제개혁기획단을 구성해 매년 수십 건, 수백 건씩 규제를 풀었다고 해왔다. 그러나 전체 규제 건수는 2000년 말 6974건에서 2006년 말 8083건으로 계속 늘기만 했다. 오른손으로는 규제를 풀면서 왼손으로는 새로운 규제를 더 많이 만들어온 것이다. 규제를 양산(量産)해내는 공무원 심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렇게 법령(法令)으로 묶고 조이지 않으면 무식한 민간(民間)기업들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시대착오적 '관(官) 우월 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규제 하나를 풀면 그만큼 공무원 권력이 사라진다는 상실감(喪失感) 때문에 규제를 붙들고 놓지 못하는 인허가권에 대한 집착이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워 시행하겠다"고 했다. 핵심은 규제완화다. 그러나 이제까지 해온 방식대로 공무원들 손에만 맡겨서는 하나 풀고 두 개 묶는 과거의 되풀이를 피할 수 없다. 규제의 피해자인 기업들을 대거 참여시켜 정권 초기에 승부를 내야 한다. '규제 철폐 100일 계획'을 세우고 매일매일 그 실적을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앙일보 사설-20080305수] 세계적 인플레, 참고 견디는 힘 길러야 

 

  원유에서부터 각종 국제 곡물 값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1980년의 오일쇼크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새 정부도 장바구니 물가 걱정으로 첫 국무회의를 시작했다. 주부들 사이에 “남편 월급 빼고 모든 게 다 올랐다”는 한숨이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를 주문하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카드다. 정부는 유류세를 10% 내리고 각종 공공요금을 억제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진통제일 뿐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현재의 비용상승형 인플레는 세계적 현상이다. 우리라고 피해나갈 뾰쪽한 방도가 없다. 한국은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고, 식량자급률은 바닥인 나라다. 이런데도 마치 비방(秘方)이 있는 양 포장한다면 본질을 호도할 뿐이다. 정부는 오히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비용상승형 인플레는 악성 종양이다. 섣불리 손대면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기본적으로 세계시장의 수급상황이 풀릴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그동안 우리의 경제 체질은 상당히 개선됐다. 노동집약형·원료의존형에서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 등 기술집약형 산업 쪽으로 중심이 옮겨왔다. 악재 투성이의 세계시장에서도 간간이 청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한 달 보름간 미국의 휘발유 소비는 16년 만에 처음 줄어들었다. 휘발유를 마구 써온 미국의 에너지 소비 습관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인플레를 이겨내려면 굳은 의지도 중요하다. 전두환 정권은 한때 경제안정화 정책과 함께 군대 내무반에서까지 경제교육을 실시했다. 군사독재의 강제적 동원 방식이 문제였지만, 경제 안정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는 적지 않은 효과를 보았다. 그후 찾아온 3저 호황 때 우리 경제는 뜀박질을 시작했다. 이번 비용상승형 인플레도 대처하기 나름이다. 참고 견디면서 경제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또 한번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경향신문 사설-20080305수] 세계적 곡물 파동과 한·미 FTA 

 

  밀, 콩, 옥수수 등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농업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 확산에 따른 것이다. 국제 기준가 역할을 하는 태국의 쌀 가격은 지난주 20년 만에 처음으로 당 500달러대로 올라섰다. 콩과 옥수수 가격도 사상 최고치였고 밀도 고공행진 중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지난해 곡물 수확량이 크게 줄어 재고량이 세계적으로 감소했다. 중국 등 브릭스 국가의 육류 소비 증가에 따라 사료용 곡물 수요도 크게 늘었다. 미국은 고유가 대책으로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대폭 늘려 옥수수 가격을 뛰게 했다. 바이오 연료 재료인 옥수수 재배면적 증가로 밀, 대두의 경작지가 줄었다. 이는 다시 곡물시장에 영향을 준다. 

  식량자원주의는 애그플레이션의 원인이자 결과다. 주요 곡물 수출국들은 수출제한 조치로 식량을 무기화할 조짐까지 보인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이 곡물에 대한 수출관세 인상 등 조치에 나섰다. 이는 식량산업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는 ‘식량안보’의 당위성을 다시 일깨운다. 그러나 식량안보에 관한 한 한국은 포기의 길을 걸어왔다. 단순한 무역의 비교우위론에 입각해서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5위 곡물수입국이며 곡물자급률은 28%로 떨어졌다. 그나마 자급률이 100% 가까운 쌀을 제외하면 5% 선이다. 곡물재고율도 세계식량농업기구가 식량안보라는 기준에서 제시한 18~19%에 훨씬 못 미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에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이런 상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농산물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 식량자급률은 더욱 추락할 것이다. 농민들은 이를 식량안보와 농업기반의 포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농사도 상품으로서 경쟁력이 없으면 더 못 짓는다”는 논리로 한·미 FTA를 강행했다. 그와 당선인 시절의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를 자화자찬하며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한·미 FTA의 허다한 문제점들을 누차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곡물 파동은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그 비준에 신중을 기해야 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