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5일 목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국내외 노조의 합리적 변신을 보라
노조가 강경한 투쟁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적 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외 주요 노조에서 천명되고 있다. 첨예해져 가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노조가 활동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13일 “노사문제를 자율 해결하기 위해 대화 기구인 노사발전재단을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일자리 창출과 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해 외국인 투자유치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위원장의 발언에 공감하고 기대를 거는 것은, 그가 극렬 노동운동가 출신이며 우리 노동계의 한 축을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주장하는 노동운동의 변화가 국제 상황이나 노사관계에 적응하는 길인 까닭이다. 그는 노총 창립 60주년을 맞은 3월에도 “노동계가 산업의 변화속도를 읽고 받아들여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힘들어도 합리적 노동운동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론 게텔핑거 위원장 역시 최근 노조의 변화와 희생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위기의 미국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노조가 전통을 깨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UAW 또한 강성 노조로 이름이 높았다.
게텔핑거 위원장의 발언은 아시아 자동차업체의 세찬 도전 속에 침체일로를 걷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당면한 어려움을 말해 주며, GMㆍ포드ㆍ크라이슬러 등 자동차회사의 노사협상에서 노조가 더 양보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국내외 노동계의 노선 전환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되었지만, 노사 모두와 국가경제를 위해 합리적이고 타당한 변화이기도 하다.
이제 노조 지도부는 노조원 복지뿐 아니라 국가ㆍ국제적 흐름까지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입법 저지를 걸고 곧 총파업을 벌일 예정인 민주노총의 지도노선이 답답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민노총은 강경파ㆍ온건파 간 다툼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국내외 노동계의 변화부터 읽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경기도 응원도 ‘아시아의 자존심’답게
우리나라 축구팀이 독일 월드컵 첫 상대인 토고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월드컵 원정 경기에서 따낸 첫 승리이자, 고전하고 있는 아시아 출전국들의 자존심을 세운 경기였다. 선제골을 허용한 뒤 승부를 뒤집은 딕 아드보카드 감독의 지혜와 선수들의 뒷심은 더욱 빛났다. 경기장뿐 아니라 나라안팎 거리와 광장, 티브이 앞에 모인 ‘12번째 선수’들이 함께 일군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조 예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지만 남은 유럽팀과의 경기는 고전이 예상된다. 좋은 출발로 자신감을 얻은 만큼 ‘4강 신화’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승리는 거뒀지만 아쉬움도 많다. 수적 우위에도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고, 역전에 성공한 뒤에는 공을 돌리며 맥빠진 경기를 펼쳤다. 승리를 지키려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보기엔 왠지 불안했고, 승리에 집착하는 듯한 경기 매너에 많은 축구팬들은 야유했다. 4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축구의 힘은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투혼이었고, 그것이 바로 4강 신화의 주춧돌이었다. 국민이 염원하는 ‘다시 2002’는 단지 최상의 경기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만이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세계를 다시 한번 감동시킨다면 승패를 떠나 박수를 보낼 것이다.
‘붉은악마’들의 모습 또한 예전같지 않다. 엊그제 응원 인파가 모인 전국의 거리와 광장, 운동장에는 경기가 끝난 뒤 신문지와 물병, 종이컵 등 쓰레기가 넘쳐났다고 한다. 무분별하게 폭죽을 터뜨려 건물에 불이 옮겨붙는가 하면, 오토바이 폭주족들은 새벽까지 위험한 질주를 벌였다. 2002년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모였지만 뒷자리는 깨끗했고 안전 사고도 거의 없었다. 외신들이 붉은악마의 폭발적인 거리응원 열기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유였다.
이번 월드컵의 모토는 ‘친구와 하나되기’다. 한-일 월드컵 때 붉은악마는 자국 응원단이 별로 없는 참가국을 자발적으로 응원해 세계 축구팬들한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록 곡절이 있지만 아시아의 대표로 함께 나선 일본의 패배를 응원하면서 과연 ‘아시아의 자존심’을 자임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지구촌 축제답게 경기도 응원도 더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동아일보]‘집 한 채’ 稅金폭탄에 ‘끓는 民心’ 가볍게 볼 건가
서울 수도권과 부산 광주에서 주택의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이의 신청이 한 달 동안 무려 7만4533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 세금 부담이 과중하다는 이유였다. 이의 신청이 수용되지 않을 것 같다며 신청을 지레 포기한 사람들도 공시가격 상승과 세금 폭등에 불만을 터뜨리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구 54평형 한 아파트의 경우 작년에 298만 원의 재산세를 냈는데 올해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803만 원 내야 한다. 1년 사이에 무려 500만 원 이상 더 내야 하는 것이다. 강남 3구(區)와 경기 성남시 분당은 주택 관련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20∼40% 오른 데다 재산세에 종부세까지 내게 돼, 이처럼 한꺼번에 세금이 두 배 이상 폭등한 아파트가 많다.
세금을 늘리더라도 납세자의 부담 능력을 고려해 증가 폭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올바른 세정(稅政)이다. 한꺼번에 두 배, 세 배 올리는 징세는 수탈(收奪)에 가깝다. 국가에 징세권이 있다고 해서 가렴주구(苛斂誅求)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투기 억제가 목적이라면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만으로 충분하다. ‘청와대 브리핑’의 부동산 시리즈는 ‘4억 원짜리 주택 2채를 보유한 사람에게는 종부세를 과세하고 15억 원짜리 1채를 보유한 사람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면 형평성이 심각하게 저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당초 투기와는 거리가 먼 주거(住居)를 사회적 일탈(逸脫)행위라도 되는 양 중과세로 ‘응징’하는 것은 행정 횡포요, 학정(虐政)이다.
주택은 골프장 회원권이나 요트와는 다르다. 1가구 1주택은 보통 국민의 희망이고 상식이다. 집값이 오른다고 당장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집값 상승의 ‘정책적 책임’을 져야 할 정책 당국자는 ‘어디 한번 세금을 내보시라’며 중산층의 세금 고통을 고소하게 여긴다. 이런 정부를 위해 말없이 세금을 낼 수는 없다는 국민이 늘어간다는 사실을 노무현 정권은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듯하다.
[조선일보] 1500만 유권자가 언론에 속아 투표했단 말인가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비자가 지배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진정한 방향이다. 소비자 主權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공정한 정보 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民心민심’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용해 왔다. 하나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때 ‘民心민심이 天心천심’이라고 민심을 절대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이 정권을 비판했을 때 “민심이 잘못되면 (이에) 拒逆거역하고 直言직언해야 한다” “민심을 추종하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민심을 뿌리치는 것이다.
대통령은 5·31 선거결과에 대해서도 ‘국민의 수준’ 운운하며 그것을 (한때의) ‘民心민심의 흐름’으로 치부했었다. 그러던 대통령이 갑자기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비자가 지배하는 시장이 개혁의 진정한 방향’이라고 들고 나왔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어리둥절하다.
소비자가 주인인 ‘시장의 原理원리’는 간단하다. 소비자가 버린 상품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주인인 ‘정치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不良불량’으로 판정한 정치와 정책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전체 투표자 1911만명 중 405만명(21%)만이 여당에 표를 던졌고 1506만명(79%)은 야당에 표를 던졌다. 이것을 野黨야당제품이 ‘優良우량’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異論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집권당의 정치와 정책을 국민이 ‘不良불량’이라고 판정한 것만은 異論이론이 있을 수 없다.
설마 대통령이 이런 간단명쾌한 원리를 받아들여 이 정권의 정치와 정책이 정치시장에서 도태됐으니 그런 정치는 바꾸고 정책은 거둬들이겠다는 뜻을 나타내려고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라는 말을 끌어들였을 리가 없다. 대통령의 眞心진심은 ‘소비자 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선 언론의 공정한 정보제공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1500만명의 유권자가 언론의 不公正불공정 보도로 해서 여당의 정치와 정책을 버린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그래서 나는 5·31 선거결과에 承服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我田引水아전인수’式식 시장원리 해석과 유권자 모욕에 대해선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니 길게 더 말할 이유도 없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은 ‘나는 성격적으로 혁명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밝혔던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표 초청 청와대 오찬에 대해서다. 이 정권이 기대고 있는 양대 언론 軸축이 TV방송과 인터넷 포털사이트라는 사실은 다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터넷은 ‘정권의 포로가 됐다’는 평을 듣고 있고 ‘공영TV는 군사정권 때보다 더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런 두 매체를 불러 놓고 ‘나와 우리 정권을 지지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너무 노골적이라서 조금 민망하다. 국민 눈치도 있으니 겉으로라도 공정보도 흉내를 내다오’라는 얘기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대통령이 ‘언론의 불공정’을 들먹이며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남은 20개월이 걱정이다.
[중앙일보] 일자리 마련이 최고의 복지대책이다
서울시가 2월부터 추진해 온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이 성과를 내고 있다. 그동안 노숙인 지원은 쉼터나 무료 식사 제공 등 응급구호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숙→쉼터 입소→재노숙'의 악순환이 되풀이돼 왔다. 서울시의 새 사업은 노숙인에게 다가구 임대주택을 싼 월세로 제공하면서 정식 일자리까지 알선하고 있다. 자활의지를 다질 때까지 노숙인의 일당 5만원 가운데 절반을 보조해 준다.
아직은 일자리라고 해야 대개 월 100만원 정도의 단순노동이다. 일자리도 종로 업그레이드나 뉴타운 등 서울시가 추진 중인 사업과 관련된 민간건설 현장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자포자기나 무단이탈 등 중도에 포기하는 노숙인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1400여 명의 노숙인이 이 사업에 참여해 211명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성실성을 인정받아 월 160만~180만원의 정규직으로 채용된 경우도 많다. 지금은 노숙인들 스스로 "토.일요일에도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건의할 정도라고 한다. 한시바삐 가족과 합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자립의지야말로 빈곤의 늪에서 탈출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노력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돌려줘야 노숙인들의 정상적인 사회 복귀를 유도할 수 있다. 퍼주기나 시혜적 방식으로는 문제를 푸는 데 한계가 있다. 무료 숙식이 오히려 노숙인과 빈곤층의 자활에 독(毒)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나도 일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대상에서 탈락돼 노숙자나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서울시의 일자리 갖기 사업은 이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새로운 실험이다.
정부가 분배나 복지대책을 세울 때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다. 우리는 서울시의 일자리 갖기 사업이 보다 오래 지속되고 좀 더 확대됐으면 한다.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최고의 복지대책이라는 점을 눈으로 보여주길 기대한다.
[경향신문] 기업-어촌 자매결연이 지금 필요한 이유
언젠가부터 우리 어촌은 TV 드라마 속 한 컷의 배경화면 정도가 돼 버렸다. 아련한 그리움의 장면이 필요할 때 갈매기 우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을 찾을 뿐, 일상 생활에서 어촌은 멀어져 갔다. 한여름 해수욕장을 찾아 ‘바가지요금’을 불평하는 사람은 많아도 어촌과 어민생활에 관심을 두는 도시민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어촌은 몰라보게 피폐했다. 희망을 잃은 어민들은 바닷가를 등졌고, 남아있는 어민들은 빈곤에 시달렸다. 농촌과 농민의 어려움은 온 국민이 알아도 어가가 농가보다 더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5년 평균 농가소득은 연 3천만원이지만 어가소득은 2천8백만원이고, 거꾸로 부채는 농가가 평균 2천7백만원이나 어가는 3천4백만원이나 되는 게 현실이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어촌을 떠나는 사람은 늘어만 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어가인구는 22만1천명으로 1995년 34만7천명에 비해 36% 줄었다. 같은 기간 농가인구의 감소율은 30% 정도다. 이어(離漁)현상이 이농(離農)현상보다 더 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너져내리는 어촌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어촌은 곧 바다요, 바다는 미래의 생명 자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살리고 어촌을 구하는 일은 21세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도정(道程)이다.
경향신문이 수협중앙회와 공동으로 어촌사랑 자매결연운동에 나선 것은 이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어촌이 기업과 자매결연을 맺으면 어촌에는 희망이, 기업에는 어촌사랑이 싹트게 돼 상생의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과 어촌의 꾸준한 교류가 필요하다. 기업의 가족들이 주말 어촌체험에 나서고, 어촌에서는 자매기업에 수산물을 직송하는 등 교류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정부도 기업과 어촌의 이런 교류활성화 비용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제도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
[한국일보] 국내외 노조의 합리적 변신을 보라
노조가 강경한 투쟁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적 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외 주요 노조에서 천명되고 있다. 첨예해져 가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노조가 활동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13일 “노사문제를 자율 해결하기 위해 대화 기구인 노사발전재단을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일자리 창출과 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해 외국인 투자유치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위원장의 발언에 공감하고 기대를 거는 것은, 그가 극렬 노동운동가 출신이며 우리 노동계의 한 축을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주장하는 노동운동의 변화가 국제 상황이나 노사관계에 적응하는 길인 까닭이다. 그는 노총 창립 60주년을 맞은 3월에도 “노동계가 산업의 변화속도를 읽고 받아들여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힘들어도 합리적 노동운동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론 게텔핑거 위원장 역시 최근 노조의 변화와 희생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위기의 미국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노조가 전통을 깨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UAW 또한 강성 노조로 이름이 높았다.
게텔핑거 위원장의 발언은 아시아 자동차업체의 세찬 도전 속에 침체일로를 걷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당면한 어려움을 말해 주며, GMㆍ포드ㆍ크라이슬러 등 자동차회사의 노사협상에서 노조가 더 양보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국내외 노동계의 노선 전환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되었지만, 노사 모두와 국가경제를 위해 합리적이고 타당한 변화이기도 하다.
이제 노조 지도부는 노조원 복지뿐 아니라 국가ㆍ국제적 흐름까지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입법 저지를 걸고 곧 총파업을 벌일 예정인 민주노총의 지도노선이 답답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민노총은 강경파ㆍ온건파 간 다툼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국내외 노동계의 변화부터 읽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경기도 응원도 ‘아시아의 자존심’답게
우리나라 축구팀이 독일 월드컵 첫 상대인 토고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월드컵 원정 경기에서 따낸 첫 승리이자, 고전하고 있는 아시아 출전국들의 자존심을 세운 경기였다. 선제골을 허용한 뒤 승부를 뒤집은 딕 아드보카드 감독의 지혜와 선수들의 뒷심은 더욱 빛났다. 경기장뿐 아니라 나라안팎 거리와 광장, 티브이 앞에 모인 ‘12번째 선수’들이 함께 일군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조 예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지만 남은 유럽팀과의 경기는 고전이 예상된다. 좋은 출발로 자신감을 얻은 만큼 ‘4강 신화’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승리는 거뒀지만 아쉬움도 많다. 수적 우위에도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고, 역전에 성공한 뒤에는 공을 돌리며 맥빠진 경기를 펼쳤다. 승리를 지키려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보기엔 왠지 불안했고, 승리에 집착하는 듯한 경기 매너에 많은 축구팬들은 야유했다. 4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축구의 힘은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투혼이었고, 그것이 바로 4강 신화의 주춧돌이었다. 국민이 염원하는 ‘다시 2002’는 단지 최상의 경기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만이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세계를 다시 한번 감동시킨다면 승패를 떠나 박수를 보낼 것이다.
‘붉은악마’들의 모습 또한 예전같지 않다. 엊그제 응원 인파가 모인 전국의 거리와 광장, 운동장에는 경기가 끝난 뒤 신문지와 물병, 종이컵 등 쓰레기가 넘쳐났다고 한다. 무분별하게 폭죽을 터뜨려 건물에 불이 옮겨붙는가 하면, 오토바이 폭주족들은 새벽까지 위험한 질주를 벌였다. 2002년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모였지만 뒷자리는 깨끗했고 안전 사고도 거의 없었다. 외신들이 붉은악마의 폭발적인 거리응원 열기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유였다.
이번 월드컵의 모토는 ‘친구와 하나되기’다. 한-일 월드컵 때 붉은악마는 자국 응원단이 별로 없는 참가국을 자발적으로 응원해 세계 축구팬들한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록 곡절이 있지만 아시아의 대표로 함께 나선 일본의 패배를 응원하면서 과연 ‘아시아의 자존심’을 자임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지구촌 축제답게 경기도 응원도 더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동아일보]‘집 한 채’ 稅金폭탄에 ‘끓는 民心’ 가볍게 볼 건가
서울 수도권과 부산 광주에서 주택의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이의 신청이 한 달 동안 무려 7만4533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 세금 부담이 과중하다는 이유였다. 이의 신청이 수용되지 않을 것 같다며 신청을 지레 포기한 사람들도 공시가격 상승과 세금 폭등에 불만을 터뜨리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구 54평형 한 아파트의 경우 작년에 298만 원의 재산세를 냈는데 올해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803만 원 내야 한다. 1년 사이에 무려 500만 원 이상 더 내야 하는 것이다. 강남 3구(區)와 경기 성남시 분당은 주택 관련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20∼40% 오른 데다 재산세에 종부세까지 내게 돼, 이처럼 한꺼번에 세금이 두 배 이상 폭등한 아파트가 많다.
세금을 늘리더라도 납세자의 부담 능력을 고려해 증가 폭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올바른 세정(稅政)이다. 한꺼번에 두 배, 세 배 올리는 징세는 수탈(收奪)에 가깝다. 국가에 징세권이 있다고 해서 가렴주구(苛斂誅求)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투기 억제가 목적이라면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만으로 충분하다. ‘청와대 브리핑’의 부동산 시리즈는 ‘4억 원짜리 주택 2채를 보유한 사람에게는 종부세를 과세하고 15억 원짜리 1채를 보유한 사람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면 형평성이 심각하게 저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당초 투기와는 거리가 먼 주거(住居)를 사회적 일탈(逸脫)행위라도 되는 양 중과세로 ‘응징’하는 것은 행정 횡포요, 학정(虐政)이다.
주택은 골프장 회원권이나 요트와는 다르다. 1가구 1주택은 보통 국민의 희망이고 상식이다. 집값이 오른다고 당장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집값 상승의 ‘정책적 책임’을 져야 할 정책 당국자는 ‘어디 한번 세금을 내보시라’며 중산층의 세금 고통을 고소하게 여긴다. 이런 정부를 위해 말없이 세금을 낼 수는 없다는 국민이 늘어간다는 사실을 노무현 정권은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듯하다.
[조선일보] 1500만 유권자가 언론에 속아 투표했단 말인가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비자가 지배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진정한 방향이다. 소비자 主權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공정한 정보 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民心민심’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용해 왔다. 하나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때 ‘民心민심이 天心천심’이라고 민심을 절대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이 정권을 비판했을 때 “민심이 잘못되면 (이에) 拒逆거역하고 直言직언해야 한다” “민심을 추종하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민심을 뿌리치는 것이다.
대통령은 5·31 선거결과에 대해서도 ‘국민의 수준’ 운운하며 그것을 (한때의) ‘民心민심의 흐름’으로 치부했었다. 그러던 대통령이 갑자기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비자가 지배하는 시장이 개혁의 진정한 방향’이라고 들고 나왔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어리둥절하다.
소비자가 주인인 ‘시장의 原理원리’는 간단하다. 소비자가 버린 상품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주인인 ‘정치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不良불량’으로 판정한 정치와 정책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전체 투표자 1911만명 중 405만명(21%)만이 여당에 표를 던졌고 1506만명(79%)은 야당에 표를 던졌다. 이것을 野黨야당제품이 ‘優良우량’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異論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집권당의 정치와 정책을 국민이 ‘不良불량’이라고 판정한 것만은 異論이론이 있을 수 없다.
설마 대통령이 이런 간단명쾌한 원리를 받아들여 이 정권의 정치와 정책이 정치시장에서 도태됐으니 그런 정치는 바꾸고 정책은 거둬들이겠다는 뜻을 나타내려고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라는 말을 끌어들였을 리가 없다. 대통령의 眞心진심은 ‘소비자 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선 언론의 공정한 정보제공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1500만명의 유권자가 언론의 不公正불공정 보도로 해서 여당의 정치와 정책을 버린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그래서 나는 5·31 선거결과에 承服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我田引水아전인수’式식 시장원리 해석과 유권자 모욕에 대해선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니 길게 더 말할 이유도 없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은 ‘나는 성격적으로 혁명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밝혔던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표 초청 청와대 오찬에 대해서다. 이 정권이 기대고 있는 양대 언론 軸축이 TV방송과 인터넷 포털사이트라는 사실은 다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터넷은 ‘정권의 포로가 됐다’는 평을 듣고 있고 ‘공영TV는 군사정권 때보다 더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런 두 매체를 불러 놓고 ‘나와 우리 정권을 지지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너무 노골적이라서 조금 민망하다. 국민 눈치도 있으니 겉으로라도 공정보도 흉내를 내다오’라는 얘기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대통령이 ‘언론의 불공정’을 들먹이며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남은 20개월이 걱정이다.
[중앙일보] 일자리 마련이 최고의 복지대책이다
서울시가 2월부터 추진해 온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이 성과를 내고 있다. 그동안 노숙인 지원은 쉼터나 무료 식사 제공 등 응급구호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숙→쉼터 입소→재노숙'의 악순환이 되풀이돼 왔다. 서울시의 새 사업은 노숙인에게 다가구 임대주택을 싼 월세로 제공하면서 정식 일자리까지 알선하고 있다. 자활의지를 다질 때까지 노숙인의 일당 5만원 가운데 절반을 보조해 준다.
아직은 일자리라고 해야 대개 월 100만원 정도의 단순노동이다. 일자리도 종로 업그레이드나 뉴타운 등 서울시가 추진 중인 사업과 관련된 민간건설 현장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자포자기나 무단이탈 등 중도에 포기하는 노숙인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1400여 명의 노숙인이 이 사업에 참여해 211명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성실성을 인정받아 월 160만~180만원의 정규직으로 채용된 경우도 많다. 지금은 노숙인들 스스로 "토.일요일에도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건의할 정도라고 한다. 한시바삐 가족과 합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자립의지야말로 빈곤의 늪에서 탈출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노력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돌려줘야 노숙인들의 정상적인 사회 복귀를 유도할 수 있다. 퍼주기나 시혜적 방식으로는 문제를 푸는 데 한계가 있다. 무료 숙식이 오히려 노숙인과 빈곤층의 자활에 독(毒)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나도 일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대상에서 탈락돼 노숙자나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서울시의 일자리 갖기 사업은 이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새로운 실험이다.
정부가 분배나 복지대책을 세울 때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다. 우리는 서울시의 일자리 갖기 사업이 보다 오래 지속되고 좀 더 확대됐으면 한다.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최고의 복지대책이라는 점을 눈으로 보여주길 기대한다.
[경향신문] 기업-어촌 자매결연이 지금 필요한 이유
언젠가부터 우리 어촌은 TV 드라마 속 한 컷의 배경화면 정도가 돼 버렸다. 아련한 그리움의 장면이 필요할 때 갈매기 우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을 찾을 뿐, 일상 생활에서 어촌은 멀어져 갔다. 한여름 해수욕장을 찾아 ‘바가지요금’을 불평하는 사람은 많아도 어촌과 어민생활에 관심을 두는 도시민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어촌은 몰라보게 피폐했다. 희망을 잃은 어민들은 바닷가를 등졌고, 남아있는 어민들은 빈곤에 시달렸다. 농촌과 농민의 어려움은 온 국민이 알아도 어가가 농가보다 더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5년 평균 농가소득은 연 3천만원이지만 어가소득은 2천8백만원이고, 거꾸로 부채는 농가가 평균 2천7백만원이나 어가는 3천4백만원이나 되는 게 현실이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어촌을 떠나는 사람은 늘어만 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어가인구는 22만1천명으로 1995년 34만7천명에 비해 36% 줄었다. 같은 기간 농가인구의 감소율은 30% 정도다. 이어(離漁)현상이 이농(離農)현상보다 더 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너져내리는 어촌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어촌은 곧 바다요, 바다는 미래의 생명 자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살리고 어촌을 구하는 일은 21세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도정(道程)이다.
경향신문이 수협중앙회와 공동으로 어촌사랑 자매결연운동에 나선 것은 이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어촌이 기업과 자매결연을 맺으면 어촌에는 희망이, 기업에는 어촌사랑이 싹트게 돼 상생의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과 어촌의 꾸준한 교류가 필요하다. 기업의 가족들이 주말 어촌체험에 나서고, 어촌에서는 자매기업에 수산물을 직송하는 등 교류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정부도 기업과 어촌의 이런 교류활성화 비용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제도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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