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단어와 표현은 일상에서도 제거되어야 한다. 사람의 말 또한 위생을 필요로 한다."
레온트로츠키 <교양있는 말을 위한 투쟁> 1923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대중을 설득하는 데에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사회주의자였으니 트로츠키를 인용하는 걸 좀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얘기하는 게 낫겠습니다.
하물며 그 옛날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도 품위 있는 말을 쓰는 게 좋다고 했는데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라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트로츠키냐 하신다면…이번엔 미국으로 가보겠습니다.
물론 트럼프가 막말을 일삼고 있는 지금의 미국이 아니라 5년 전 오바마가 재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던 미국입니다.
2012년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에서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는 후보로 지명됐고, 저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 그 전당대회장에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계속됐던 전당대회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다름 아닌 연사들의 연설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니까 전당대회라는 것은 그 자체가 말의 잔치였던 셈이지요.
내로라하는 수많은 연사들이 나왔고 그중에서도 첫 날은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둘째 날은 전임 대통령인 빌 클린턴,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날 마지막 순서는 오바마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로 피날레….
즉, 끝으로 갈수록 분위기를 띄워서 마지막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구성도 인상 깊었지만, 그들의 말 어디 하나에도 험하거나 상스러운 말, 사회를 분열시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요 며칠 동안 우리 정치권에서 나온 말들은 미안하지만 다시 인용해서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주사파 운동권 정부 ... 오래 못 간다고 본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
"나라를 망하게 할 것... 다음 대선까지 안 갈 것 같다" 이철우 자유한국당 의원
"상대가 아주 나쁜 X이기 때문에, XX같은 X들" 강동호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위원장
오죽하면 사람들은 그 말들을 모아서 '아무말 대잔치'라고 했을까… 요즘 유행어인 그 '아무말'이라는 것은 '뇌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막 내던지는 말'이라는데…
그러나 그것이 차라리 아무 말이었으면… 사실은 나름의 주도면밀한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의 정치는 또 얼마만큼 가야 할 길이 먼 것인가…
그래서 광장의 시기를 지나와 또 다른 정치적 변화기를 맞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아직도 미셸 오바마의 명언은 유효한 것 같습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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