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바보 상자'라 불렸던 텔레비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존 F 케네디에겐 '요술 상자'였습니다.
케네디와 니처드 닉슨이 맞붙은 1960년, 제35대 미국 대통령 선거. 젊은 상원의원에 불과했던 케네디에 비해 닉슨은 부통령 출신의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지도자였죠.
케네디가 전세를 역전시킨 건, 미국 최초로 실시된 텔레비전토론 덕분이었습니다.
잘생긴 얼굴과 거침없는 자신감, 그리고 시청자를 향한 강렬한 시선. 반면에 병색이 짙은 얼굴에 칙칙한 의상, 여기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미국 유권자 2/3에 해당하는 7천만명이 브라운관을 통해 이 텔레비전토론을 지켜봤고, 결국 케네디는 근소한 차이로 닉슨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이른바 '텔레비전 정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죠.
물론 한쪽에선 이 텔레비전이 정치를 지나치게 이미지화시켰다는 비판도 당시에는 나왔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이자, 이번 대선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아직 공화당의 후보로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죠.
그런데 미국 국민들이 천억짜리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다이아몬드 수저' 트럼프에게 '가장 서민적인 후보'라는 타이틀을 달아 준 것도 어찌 보면 텔레비전정치가 낳은 아이러니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그 중에서도 텔레비전토론은 여전히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됨됨이를 톺아볼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과거 < 100분 토론 > 시절, 수많은 정치인들의 토론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봤던 저로서는 단언컨대, 텔레비전토론은 이미지로 포장된 정치인들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창구이기도 합니다.
총선을 앞두고 곳곳에서 지역방송사에서 마련한 텔레비전토론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들리는군요.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텔레비전토론 참석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과태료 400만원까지 감수하고서 말입니다.
어차피 당선이라며 유권자들을 우습게 본 것인지, 아니면 민낯을 내보이기가 걱정스러운 것인지….
이들에겐 56년전 닉슨의 토론이 교훈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상시엔 텔레비전에 얼굴 한 번 더 비추려 자리싸움까지 마다하지 않는 정치인들.
보통 때라면 안봐도 그만이지만…. 선거 때만큼은 '텔레비전에 네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밑줄을 그으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사쿠라엔딩' (0) | 2016.04.05 |
---|---|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동백꽃 지다' (0) | 2016.04.04 |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정치는 비뚤어졌어도…'Pick me up' (0) | 2016.03.30 |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보이는 게 한심해도…' (0) | 2016.03.29 |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언론의 미래는 무엇일까…'STOP PRESS' (0) | 2016.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