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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브리핑중 자존심에 대하여…'항우인가 한신인가'

eros 2016. 3. 23. 23:00

자존심을 논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항우와 한신입니다.

명문가 출신이었던 항우.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타고난 장수이기도 했지요.

그는 일흔 번의 싸움에서 연전연승을 거둡니다.

그러나 딱 한번 '해하의 전투'에서 유방의 대장군 한신에게 패한 뒤 치욕을 이기기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반면 항우를 죽음으로 내몬 한신, 그는 의지할 데 없는 고아출신이었습니다.

피끓는 젊은 시절, 마을 건달이 그에게 시비를 걸죠. "나를 죽이지 못할 거면, 내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가라"

한신은 말없이 가랑이 사이를 기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타구니 무사'라 놀려댔습니다.

그러나 한신은 한때의 수치와 치욕을 견뎌냈고, 유방과 함께 한나라를 건국한 영웅이 됩니다.

항우와 한신… 두 사람 모두 자존심은 한결 같았으나 그것을 지켜내는 방법은 서로 달랐습니다.

우리 정치권에도 '자존심'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내대표를 지낸 새누리당에서 공천 여부조차 확정 받지 못한 채 쫓겨날 위기에 처한 한 사람.

그의 사무실엔 현수막 하나가 걸려있습니다.

비례대표 공천 파동으로 시끄러운 더민주도 자존심 때문에 홍역을 앓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대표… 대표직까지 내건 끝에 결국 자기 권력을 확인했습니다.

유승민의 자존심, 김종인의 자존심… 이들의 선택이, 그 결과가 항우가 될 지, 아니면 한신이 될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소외된 시민들의 자존심… 지금 이 순간도 끼니를 위해, 집세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인간으로서 자존감마저 내던져야 하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이 유권자의 자존심마저 내던지고 있는 것인가… 공천싸움으로 지새고 있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

바로 유권자들의 자존심이야말로 말없이 때를 기다린 한신의 자존심일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