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8년 3월 12일 수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칼럼

eros 2008. 3. 12. 20:11
 

 

 

[한국일보 사설-20080312수] 정권 초 공기업 전면감사 헛방 안 되게

 

  감사원이 지난 달부터 45개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공직기강 특별점검을 벌인 데 이어 31개 주요 공기업을 전면 감사한다고 한다. 새 정부의 실용코드에 맞춰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고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조치라는데, 가용인력 240명을 모두 투입하는 만큼 강도와 범위가 예사롭지 않다. 일각에선 '물갈이' 등의 정치적 해석을 내놓지만, 공직사회가 '머슴 정신'으로 바로 서야 민간의 창의와 활력이 최대한 발휘된다는 점에서,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다.

  감사대상은 한전 가스공사 등 시장형 공기업 6곳과 주택공사 토지공사 등 준시장형 공기업 17곳,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 8곳이다. 그동안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지적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기관들이다. 그런 만큼 중점조사 대상도 설립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사업 및 기능 수행, 불필요한 조직 및 자회사 운영, 부적격 직원 채용, 과도한 복리후생 제도 등 전 부문을 포괄한다. 해당기관들이 긴장할 만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신이 내린 직장'으로 불려온 이들 공기업의 특권적 행태와 조직 이기주의, 낮은 생산성과 과잉 복지가 국회 국정감사와 감사원 수시감사에서 수 차례 지적됐는데도 매번 개선 시늉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위가 위협 받으면 공익성을 내세우고, 처우가 불만스러우면 효율성을 들이대는 습성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그 결과 참여정부 5년 동안 비금융 주요 공기업 24곳의 부채와 인원이 각각 74%(54조원), 64%(3만3,000명) 늘고, 결혼 상대 1순위에 공기업 직원이 오르기도 했다.

  다만 감사원이 정권 교체기를 의식한 실적주의에 빠져 마구잡이로 공기업을 휘젓는 것은 삼가야 한다.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듯이, 과잉 감사는 해당기관과 임직원의 사기와 의욕을 꺾고 오히려 무사안일을 조장할 수 있다. 감사원은 주요 공기업에 이어 70여 개 준정부기관과 190여 개의 기타 공공기관도 특별감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동요하는 이들 기관의 반발을 막고 진정한 쇄신을 이루려면 감사의 잣대가 더욱 엄정하고 절제돼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312수] 서울대의 편협된 마르크스 경제학자 임용 논란 

 

  경제학 교수 80명이 어제 ‘서울대 경제학부의 학문 다양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년퇴임한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의 후임에 이 분야 전공자를 임용하라는 내용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의 대자보로 촉발돼 사회·정치·언론·여성학 대학원생들의 성명과 학부생의 서명운동으로 확산된 것을 교수 사회가 이어받은 것이다.

  서울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경제학부 교수 33명 가운데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는 김 교수뿐이었다. 그럼에도 단 한 명의 비판 경제학자가 발붙이는 것도 막기 위해 차일피일 결정을 미뤄왔던 것이다.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마저 “마르크스 경제학자 한 명을 용인하지 못할 정도로 서울대 경제학부가 옹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는 20년 전 김수행 교수를 임용할 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옹졸했다. 당시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의 거센 요구에 떠밀려 서울대는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주류 경제학에선 마르크스 경제학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효용성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경제학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경제학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과 내재적 모순을 규명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경제학이다. 때문에 주류 경제학이 규명하지 못한 주기적인 공황의 이유,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으로 말미암은 충격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규명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함께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되고, 지구적 차원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더 높아진 지금 그 필요성은 더 커졌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문의 다양성이다. 학문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학문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은 다양성이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따라 학교에서마저 주류 경제학만 가르친다면, 그 모순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여지가 사라지고 그만큼 사회는 허약해진다. 종다양성이 파괴되면 환경재앙에 쉽게 노출되는 생태계나 마찬가지다.

  서울대는, 문제는 많지만 여전히 한국 고등교육의 상징적 존재다. 이런 대학에서 특정 학문만 편식해 입신출세자만 양성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오히려 학문의 다양성, 치열한 비판정신을 고취해 학문의 백화제방을 이뤄,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모범이 돼야 한다. 14일 교수회의를 주목한다. 

 

 

[동아일보 사설-20080312수] 외교부 거듭나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외교통상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창조적 실용주의 외교’를 주문했다. 이념을 뛰어넘어 국익(國益)에 부합하는 실리외교를 펴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시대착오적인 ‘코드외교’로 한미동맹의 이완과 한일관계의 경색으로 외교의 근간이 흔들렸던 것을 생각하면 바른 처방이라고 본다. 외교부는 대통령의 이런 외교철학을 구현할 전략과 정책을 내놓고 실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친미(親美)도 친중(親中)도 없으며 국익이 맞으면 서로 동맹이 될 수 있고, 국익에 위배되면 동맹이라는 것은 없다”고 했다. ‘동맹’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 감이 있지만 인식 자체는 옳다. 4강의 틈바구니에 끼인 우리로서는 한미동맹을 외교 안보의 근간으로 삼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당장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중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화해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인류의 보편적 행복의 차원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회피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정권에서 386 실세들의 눈치를 보면서 유엔 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했던 외교부로서는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외교부는 새 정부가 들어서자 부랴부랴 태도를 바꿔 3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상황의 개선을 요구했지만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변신처럼 보인다. 

  그동안 우리 외교가 정상궤도를 벗어난 데에는 외교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장관부터 노 대통령에 대해 “직관력이 뛰어나다”며 맹종으로 일관했으니 헝클어지고 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외교부 관리들은 이제 와서 정권 탓을 하지만, 김장수 전 국방장관처럼 소신을 지킨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유명환 장관만 해도 노 정권에서 제2차관과 제1차관을 차례로 지내며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한 당사자가 아닌가. 스스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오죽하면 이 대통령이 이날 외교부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겠는가. 5년 후, 외교부가 다시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20080312수] 야수(野獸)가 돼버린 전(前) 프로야구 스타 

 

  1990년대 프로야구 스타 이호성씨가 네 모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인간의 이성(理性)이나 선의(善意) 같은 것에 대한 믿음을 흔든다. 세상이 이리도 황폐하고 인간의 심성(心性)이 이리도 모진 것인가 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이씨가 한때 대중의 각광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래서 모든 이에게 친숙했던 스포츠 스타였기에 사람들이 겪는 충격과 좌절은 더욱 크다.

  살해된 김씨와 세 딸은 이씨를 믿고 따르고 의지했던 것 같다. 김씨는 주변사람들에게 이씨를 남편이나 곧 재혼할 사람으로 소개하고 함께 살 집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큰딸은 변(變)을 당하기 전날 친구에게 "새 아빠 될 아저씨와 가족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이씨는 그런 네 모녀를, 여리고 애꿎은 13·19·20세 딸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씨는 집에 있던 김씨와 두 딸을 살해한 뒤 외출 중이던 큰딸까지 휴대전화로 찾아 불러내 죽였다.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보니 이씨와 큰딸은 종로에서 만났다고 한다. 세 모녀의 시신(屍身)을 차에 실은 채 서울 도심을 돌아다니며 큰딸까지 추적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 더구나 경찰은 "이씨가 애초부터 김씨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씨는 김씨 집 침대에 남은 핏자국을 가리려고 잉크를 뿌리고, 아버지 묘소 근처에 시신들을 묻었다. 범행 이틀 뒤엔 김씨가 운영하는 식당의 종업원에게 김씨 휴대전화로 '주말에 식당을 잘 부탁한다'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범행 뒤 그의 행각들을 보면 그가 대중의 사랑과 인기를 먹고 살던 사람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경찰은 일단 이씨가 김씨에게 빌린 돈 1억7000만원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자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에 실패해 큰 빚을 지고 있었고 돈에 쪼들렸다고는 해도 마음속에 키우던 야수(野獸)가 이렇게 우리를 뛰쳐나올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진저리가 쳐진다. 네 모녀 피살사건은 세상이 싫어지고 사람이 미워지는 뉴스다. 

 

 

[중앙일보 사설-20080312수] 학교용지부담금 특별법 거부했어야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학교용지부담금 환급 특별법’ 공포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전국 26만 가구가 4600억원의 부담금을 돌려받게 된다. 국민이 잘못 납부한 돈을 돌려받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특별법은 국회의 변칙적인 입법 행태와 정부의 무원칙한 대응의 산물이란 점에서 문제가 많다.

  특별법은 아파트 분양자에게 학교 짓는 비용 일부를 내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이 법이 소급 적용을 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흔든다는 점이다. 부담금 환급 소송을 내지 않은 사람에게도 모두 돈을 돌려주도록 한 것이다. 

  헌재법은 원칙적으로 위헌 결정의 소급효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니 특별법이 공포되면 유사한 환급 소송과 입법이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토지초과이득세의 경우 위헌 결정을 받았지만 미환급액 7365억원을 소급해 돌려주진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이유로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자 국회는 재의 표결을 하는 대신 일부 문구를 수정한 새 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지방정부를 환급 주체로 하되 중앙정부가 이를 교부금 형태로 전액 보조해 주는 조항을 넣고 새 법이라고 포장한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꼼수로 비칠 수밖에 없다. 총선을 의식한 변칙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한술 더 떠 이런 법을 그대로 수용했다. “국민을 섬긴다면서 국회 결정을 두 번이나 거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당정 협의 과정에서 유사 입법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 이번만 예외로 수용하자”는 게 이유고 명분이었다. 그러나 변명치곤 옹색하고 무원칙하기 짝이 없다.

  일부 국무위원은 특별법이 문제가 있고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마땅히 특별법을 거부했어야 옳다. 법을 만드는 데 예외라는 단서가 달려선 안 된다. 원칙은 어렵더라도 지켜져야만 법치를 이룰 수 있다. 국회도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유사 입법은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경향신문 칼럼-생태칼럼/이유진(녹색연합 기후변화 팀장)-20080312수] 자동차 중독 치료가 먼저 

 

  식물연료의 득과 실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경유를 대체하는 바이오디젤은 열대밀림을 파괴하여 만든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나온다는 이유로, 옥수수·밀·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드는 바이오에탄올은 세계 식량가격 폭등 원인으로 지탄받고 있다. 실제 곡물가격 상승이 심상치 않다. 국제 밀값이 하루 사이에 22%나 올랐다. 세계적인 옥수수 품귀현상으로 국내에서도 5월부터 유전자조작(GMO) 옥수수로 만든 전분이 유통될지도 모른다. 전분은 우리가 즐겨먹는 과자와 빵, 아이스크림, 라면에 들어간다. 우리는 지금 식량과 에너지 문제가 한데 얽힌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바이오에탄올 붐이 일게 된 계기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바이오에탄올 소비량을 200억ℓ에서 2017년까지 1320억ℓ로 6배 이상 늘린다는 계획을 밝히면서부터다. 이후 멕시코와 브라질의 밀밭이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위한 사탕수수밭으로 급격히 전환됐다. 미국시장에 바이오에탄올을 수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미국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인구 1000명당 800대이다. 성인들은 한 대 이상의 차량을 갖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중독에 걸린 사회를 치료하지 않고, 연료만 바이오에탄올로 바꾼다면 세상의 모든 옥수수와 밀, 사탕수수를 전부 바이오에탄올로 사용해도 모자랄 것이다. 

  환경정책연구소 소장 레스터 브라운은 4륜구동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를 가득 채울 에탄올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옥수수 약 200㎏이 필요한데 이는 한 사람을 1년 동안 먹여 살릴 양식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 상황을 자동차 중독에 빠진 8억명의 사람들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20억명이 대결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식량을 과도하게 연료로 소진하는 것은 문제이다. 아무리 차가 편하고 좋다지만 차를 뜯어 먹고 살 순 없지 않은가. 

  미국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자동차 중독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자동차 연간 평균 주행거리는 일본의 2배이며, 미국보다 더 많다. 경차 비중은 6.5%로 24~55%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당장 자동차 사용을 줄이고,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면 바이오 연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식물연료의 문제점만 부각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정유회사들에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 자동차 사용을 줄여가는 것과 동시에 대체연료로 식물연료 사용은 확대해야 한다. 식물연료가 부딪힌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에서 답을 찾아보자. 유휴농지에 유채를 심고, 폐식용유를 이용해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사용해 보자. 농가 소득도 올리고, 폐식용유도 처리하고, 연료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자동차 중독을 치료하는 것이 먼저이다. 바이오 연료는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