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6년 9월 19일 화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eros 2006. 9. 20. 02:26

2006년 9월 19일 화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정부·지자체가 앞장서 올리는 분양가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이 고분양가를 선도하며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비등하자 서울시가 어제 은평 뉴타운의 분양원가를 공개했다.

파주 운정신도시에서 주변 시세보다 월등히 높은 분양가를 책정해 폭리 논란을 자초했던 한라비발디 아파트는 파주시와 협의 끝에 평당 분양가를 평균 160만원 가량 낮췄다. 두 경우는 공급자 편의주의에 따른 분양가 제도가 얼마나 무원칙하고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서울시는 지난 주 비싼 토지보상비와 첨단 기반시설 등을 이유로 평당 최고 1,500만원대의 은평 뉴타운 분양가를 결정하면서'민간에 미칠 파장'등을 내세워 원가 공개를 거부했다.

하지만 뉴타운 정책에 의문이 제기되고 주변 집값 급등 및 매물 품귀현상이 벌어지자 토지비 건축비 수익률 등 큰 항목만 마지못해 공개했다. 제반 비용이 크게 오르고 공기업의 목적에 맞는 수익도 거둬야 하는 만큼 고분양가가 당연하다는 투다. 뉴타운 건설의 취지에 맞게 분양가 인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여전히 없다.

한라비발디의 경우는 자율을 빙자한 민간업계의 분양가 산정방식이 고무줄임을 자인했다. 분양가 인하로 예상수익이 600억원대나 줄어도 사업을 계속하겠다니, 뻥튀기의 정도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민간아파트 가격은 상품가치와 입지를 판단해 업자가 정하고 그 적정성에 따라 시장에서 성패가 갈리는 것"이라고 조악한 시장논리를 들이댈 뿐이다. 낯뜨겁게 자찬하던 '부동산 3부작 장편 드라마'는 특정지역 때려잡기였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는 가급적 많은 개발이익을 환수해 저소득층 주거복지에 쓴다는 명분으로, 민간업체는 이에 편승해'일단 질러서 되면 좋고 안되면 좀 낮추고…'식의 장삿속으로 고분양가를 서로 용인하는 체제를 굳혀가는 셈이다.

남은 것은 개발지역 부근의 집값이 덩달아 오르고, 다시 신규 주택 분양가가 올라가는 악순환뿐이다. 원가공개나 분양가 상한제 전면 실시 등 특단의 대책이 3부작 후속편으로 나와야 할 모양이다.


[한겨레신문] 기부 문화 정착, 투명성이 관건이다

 

정부가 각종 비영리 단체의 기부금품 모집 행위를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모집에 드는 경비를 모금액의 최대 15%까지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에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등 투명성 기준은 크게 높아진다. 규제는 풀되 사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자율적이고 성숙한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긍정적이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현행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은 모집 행위의 폐해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오래 전부터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10여년 전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뼈대는 그대로 유지됐고, 모집 경비 비율은 모금액의 5%에서 2%로 더 줄어들었다. 사정이 이러니 연말 이웃돕기 성금처럼 개별법에 근거한 대규모 모금 외에는 사실상 법대로 모금에 나서는 게 쉽지 않다. 때문에 많은 비영리 단체들은 후원 행사를 열어 특별회비 방식으로 기부금을 받거나, 그도 어려운 곳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할당액에 목을 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모집 허가를 받는 데 몇 주일이 걸리는 바람에 신속한 모금·구호 활동을 펼치는데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한다. 기부금품 모집 건수는 해마다 크게 늘어나 규모도 한해 2000억원에 이른다. 순수한 모금 행위가 불법으로 몰리는 현실이 개선된다면 우리 사회의 ‘나눔 문화’도 한 단계 성숙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부금품의 소득·세액공제 확대 등 정부의 적극적인 추가 대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자율성이 커진 만큼 투명성은 한층 더 강화해야 마땅하다. 개정법은 사용 내역 공개와 감사를 의무화하고, 기부금품 출연을 강요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등록제가 되면 모금자 사전 검증이 불가능하다. 영리 목적의 각종 모집 행위가 난립하지 말란 법이 없다. 불법·편법 모금 행위를 미리 걸러내기 어렵고, 사후 회계 감사는 자칫 뒷북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지금도 내가 낸 성금이나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적잖은 게 엄연한 현실 아닌가.

법적 규제와 정부의 사후 관리만이 능사가 아니다. 중요한 건, 모집 단체가 스스로 투명성과 신뢰를 생명처럼 지키는 것이다. 이미 몇몇 시민·복지단체들은 수입·지출 내역을 철저히 공개하고 있다. 건전한 모금 관행은 성숙한 나눔 문화를 정착시키는 첫째 조건이다.


[동아일보] 盧정권의 스웨덴 복지모델 숭배자들 꿈 깨야

 

스웨덴 총선에서 우파 야당연합이 집권 좌파연합을 누르고 승리했다. 유권자들이 ‘대안 없는 복지’를 버리고 ‘효율과 온건한 개혁’을 택한 것이다. 독일에서 성장을 중시하는 친(親)기업 노선의 앙겔라 메르켈 내각이 작년 11월 출범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데 이은 유럽국가의 대변신이다. 이른바 스웨덴 복지모델을 숭배하다시피 해 온 노무현 정권 사람들은 세계에서 버려지고 있는 모델을 흉내 내며 ‘시대정신’ 운운해 온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스웨덴은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불려 왔지만 겉과 속은 달랐다. 1950년 이래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가 거의 늘지 않았다. 넘쳐 나는 실업자에게 정부가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주다 보니 공공 부문 취업자가 전체의 30%나 됐다. 공식 실업률은 6%로 발표됐지만 통계에서 뺀 취업연수생, 조기퇴직자, 장기 병가자(病暇者)를 감안한 사실상의 실업률은 15∼17%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집권한 좌파연합의 예란 페르손 총리는 규제를 늘리고 기업에 무거운 세금을 매겼다. 실업자에게 3년간 재정에서 지원하는 실업수당은 취업 때 임금의 80%나 돼 일할 의지를 꺾었다. 이런 ‘큰 정부, 큰 복지’는 얼핏 좋아 보이지만 오래갈 수 없다. 좌파 사민당이 1932년 이후 9년을 빼고 65년간 집권하면서 시행한 복지정책 탓에 스웨덴은 ‘바퀴 빠진 볼보’라는 악명까지 얻었다. 이런 게 노 대통령부터 열린우리당 수뇌부까지 꽃피우려 한 모델이요, 만들고 싶어 한 나라였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작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시절,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작성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스웨덴에 대해 “복지와 성장의 선(善)순환을 가져왔다”고 극찬했다. 그는 또 “(우리도) 스웨덴을 배워 큰 정부를 유지하면서 복지를 중심으로 대(對)국민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에서도 툭하면 ‘(정부가) 작은 미국’이 아닌 ‘큰 네덜란드나 큰 스웨덴’을 따르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정우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이 스웨덴은 30%인데 우리는 5%에 불과하다”고 한탄하기까지 했다.

노 정권은 이런 복지모델을 내세워 세금 더 거두기에 바쁘다. 투명한 공직사회, 노사의 타협정신 같은 장점은 제쳐 두고 하필이면 ‘비대한 정부와 복지병(病)’을 애써 배우려 한 게 노 정권이다. 그 속에서 경제성장력이 떨어지고, 소득격차가 더 벌어져 결국 서민들이 가장 힘든 역(逆)복지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다.

 

[조선일보] 朝鮮시대 王은 이런 人事 안했다

 

청와대가 18일 장관급인 중소기업특별위원장에 염홍철 前전 대전시장을 內定내정했다. 한나라당 소속 대전시장이었던 염씨는 지난해 4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올해 5·31 지방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다. 5·31선거 落選者낙선자 이재용씨에게 건강보험공단이사장 자리를 돌린 데 이어 또다시 장관급 자리를 낙선자 慰勞品위로품으로 돌린 것이다.

청와대는 “염씨가 시장을 하는 동안 중소·벤처기업 육성정책을 직접 집행한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발탁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다들 낙선자 위로용 인사라는 걸 아는 마당에 뭐라고 한들 국민이 믿어주겠느냐는 생각에 이제 뭐든 이유만 갖다 붙이는 걸로 때우기로 한 모양이다.

이 정권은 그동안 人事인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은 왕조시대의 專制전제 君主군주가 아니다.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5년 동안 한시적으로 나라를 경영해 달라는 위임을 받았을 뿐이다.

대통령은 이 나라의 지난 역사를 ‘부끄러운 역사’라고 했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책을 펴들고 과거 朝鮮조선시대 군주의 인사방식을 살펴볼 일이다. 대통령 인사 방식처럼 선거에 떨어진 코드 맞는 친구들을 내 사람이라고 국가 요직에 앉혔다가는 사간원·사헌부 등 言官언관들의 등쌀에 아무리 전제 군주라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문 밖이 시끄러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지금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국민 세금으로 월급 주는 公職공직을 배급 주듯 돌리고 있다. 조선시대보다 몇 백 년 退步퇴보된 情實정실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회사로 치자면 오너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나라 경영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최소한의 책임마저 저버린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식의 인사가 계속되는 건 정권이 남은 1년 반 동안 국민 뜻과 관계없이 내 멋대로 하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복지 대신 효율 택한 스웨덴
 
스웨덴 총선에서 복지 축소와 감세, 기업 부담 완화 등을 내세운 우파연합이 승리했다. 유권자들이 복지보다 효율을 선택한 것이다. 스웨덴은 1932년 이후 중도좌파인 사민당이 강력한 복지정책을 내세워 65년 동안 집권했다. 이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복지국가로 평가받아 왔지만 이번 선거 패배로 그 모델이 크게 흔들리게 됐다.

스웨덴식 복지 모델을 유지하는 데는 국민의 높은 부담이 필수적이다. 근로자의 소득세율은 26~57%며, 기업의 복지비용 지출은 근로자 임금의 32%나 된다. 실업자에게 퇴직 전 임금의 70~80%를 수당으로 지급한다. 높은 세금과 복지는 근로 욕구를 떨어뜨렸다.

과도한 복지 부담 때문에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서 이케아.테트라팩.일렉트로눅스 등 스웨덴 간판 기업들이 본사나 공장을 해외로 옮겼다. 경제성장률은 높았으나 일자리로 연결되지 못해 실질 실업률이 20%에 달하고 특히 청년실업률이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27.5%까지 치솟았다.

이번 총선에서 사민당은 복지 확대를 공약했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은 냉담했다. 대신 실업수당 지출 축소, 근로자 병가의 기업 부담분 축소 등 우파연합의 시장주의적 개혁을 선택했다.

스웨덴은 이렇게 방향을 트는데도 노무현 정부는 스웨덴식 복지 모델을 전범(典範)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재작년에 권오규 경제부총리를 "스웨덴 복지모델을 공부해 오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보냈고 그의 보고서는 이 정부 복지정책의 근간이 될 정도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은 거의 매년 10%가량 늘고 있고 모자라는 돈은 국채를 발행해 후손에게 떠안기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1100조원의 세금이 드는 '비전 2030'까지 내놨다. 지지부진한 기업활동은 살아날 기미가 없다.

스웨덴뿐 아니라 독일.프랑스 등도 복지 혜택을 줄이고 기업 부담을 완화해 일자리 창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실패로 판명된 유럽식 복지 모델을 언제까지 흉내 낼지 두고 볼 일이다.

 

[경향신문] 새겨 들어야 할 에이즈 감염인들의 절규
 
우리 사회에서 오해와 편견에 의해 부당하게 차별받는 대표적 집단 가운데 하나가 에이즈(AIDS) 감염인이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감과 사회적 편견이 워낙 뿌리깊어 누구라도 에이즈에 감염되는 순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에이즈 감염자가 발병으로 사망하는 것보다 사회적 냉대를 못이겨 자살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에이즈 감염인들이 엊그제 대학로 소극장에서 자신의 체험을 직접 증언한 것은 이같은 우리 사회의 낙후된 인권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 감염인은 치과 병원에서 에이즈 감염자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고 고발했다. 다른 한 감염인은 직장 내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에이즈 감염 사실이 직장 상사에게 알려져 퇴사할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에이즈 감염과 치과 진료가 의학적으로 아무 연관이 없는 데도 의사들조차 에이즈를 무조건 피하려든다는 점, 감염과 같은 신상비밀은 보건당국 외에는 알 수 없도록 에이즈예방법에 규정돼 있어도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이들의 증언이 아니어도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보여주는 사례는 그동안 종종 지적돼 왔다. 지난해 서울의 한 병원에서는 급성 맹장염으로 판정받은 환자가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수술을 거부해 물의를 빚었다. 에이즈인권단체가 2004년 전국의 공중보건의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73.6%가 에이즈가 ‘눈물과 침을 통해 감염된다’고 응답해 의사들의 인식수준을 드러낸 바 있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비이성적인 에이즈 공포를 갖게 된 데는 1차적으로 보건당국의 책임이 크다. 1987년 에이즈예방법을 만들면서 에이즈 감염자를 보건당국에서 ‘격리조치’할 수 있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나중에 삭제됐지만, 이미 국민들에게 에이즈 감염자와는 악수만 해도 위험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뒤였다.

에이즈 예방법은 지금도 감염자의 인권보다 감염경로를 통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 인권침해적 요인이 적지 않다. 감염자 본인의 의사에 반해 당국이 치료를 지시하고 강제처분할 수 있게 돼 있는 조항 등이 그것이다. 보건복지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최근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놓았다. 그렇다면 에이즈 감염자들의 절규어린 호소를 새겨들어 기왕에 제출한 개정법안에 그 내용을 반영하도록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