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6년 5월 24일 수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eros
2006. 5. 24. 16:50
2006년 5월 24일 수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연금 개혁 이번엔 꼭 성사시켜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부터 국민연금개혁 작업에 본격 착수해 올해 안으로 완결짓겠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금 같은 ‘고급여-저부담’ 체제가 계속될 경우 2047년 재정파탄을 맞게 되는 국민연금의 대수술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3년 전 국회에 국민연금법개정안을 상정하고도 정치권의 외면으로 허송세월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기대를 가져보는 것은 과거보다 완결성이 높아진 개혁안을 정부가 준비 중이라는 소식 때문이다.
우선 유 장관이 연금 지급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밝힌 것은 연금 파탄에 대한 가입자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고도 재정파탄으로 정작 연금은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은 반(反) 국민연금 정서를 부추겨왔다.
유 장관은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600만 명 이상이 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문제도 대폭 해소할 뜻을 비쳤다. 그 방법으로는 한나라당이 연금개혁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해온 기초연금제와 자신이 의원시절 발의한 효도연금제를 절충하고, 단기적으로는 현행 경로연금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대타협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절충안이다.
그러나 완벽한 연금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무엇보다 이미 재정 고갈상태인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특수직연금에 대한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40년 후 재정이 파탄되는 국민연금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가입자 부담을 크게 늘리면서 이미 예산으로 밑 빠진 독을 메우고 있는 특수직연금을 그대로 두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4대 공적연금이 부처별로 분할 관리되고 있는 것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봉급생활자가 높은 보험료를 내는 불평등도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계 각층이 참여하는 연금개혁위원회를 다시 구성, 전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한겨레신문] 유권자 판단 도울 ‘공약 평가’
선거 때마다 정당이나 후보의 구호가 되다시피 강조되는 것이 정책선거다. 구체적 정책을 놓고 유권자들로부터 표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제대로 실천된 적이 한 번도 없이 늘 구호로만 그쳤다. 지역주의에 얽매인 선거풍토 등 우리 정치의 낙후성 탓이 크지만,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 판단 근거가 없었던 것도 주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전국 280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지방선거 시민연대’가 어제 발표한 ‘막개발·헛공약’은 정책선거 정착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시민연대는 광역단체장 후보 60명의 공약 997개를 모두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자문단을 가동하는 등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평가 결과는 예상대로 후보들이 여전히 장밋빛 공약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정책 등 구체적인 이행계획이 담긴 공약은 전체 997개 중 165개(17%)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실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심정에서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또 과도한 개발 및 건설 투자 등 선심성 공약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도 모두 551건(51.3%)에 이르렀다. 실현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최종적으로 추린 ‘헛공약·막개발 공약’ 44개는 열린우리당이 19, 한나라당 15, 민주당 6, 국민중심당 3, 무소속 1개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경기지사 후보 4명이 내놓은 공약 가운데 주요한 것들도 ‘문제 공약’에 포함됐다.
문제 공약에 오른 후보들은 즉각 해석이 잘못됐다며 해명자료를 내는 등 반박에 나섰으며, 일부는 반발하고 있다. 물론 모든 평가가 그렇듯이 완벽할 수는 없다. 또 선거를 코앞에 앞둔 후보자들로서는 억울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약속인 매니페스토(참공약 실천) 운동과 함께 후보자와 시민단체 사이 공약을 둘러싼 논쟁 자체가 매우 발전적인 효과를 갖는다. 더 바람직한 것은 정당과 후보자들이 정파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전문가들의 평가와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고칠 것은 고치고 잘못된 공약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동아일보] 金병준 실장, 부동산전쟁 ‘홍위병’ 모집하나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면서도 시장을 활성화해 경기(景氣) 진작, 일자리 증대, 소득 및 분배 개선을 꾀하는 것이 올바른 부동산 정책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부동산시장조차 ‘편 가르기 재료’로 삼아 서울 강남 때리기에 매달렸다. 가격 안정에도, 시장 활성화 및 이를 통한 서민 일자리 유지에도 실패한 것이 지금까지의 결과다.
이런 마당에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부동산 정상화를 막는 조직적 공격세력이 존재한다"며 '4개 집단'을 지목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복부인, 기획부동산업자, 건설업자, 일부 주요 신문이다.
김 실장이 또 정부의 책임을 딴 데로 떠넘기는 모습은 이제 측은해 보일 정도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 요직을 계속 맡아 온 김 실장이 만들어 낸 일자리보다는 그가 ‘업자’라고 지칭한 기업가들이 만든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다. 더구나 부동산 정책을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맞춰 펴 왔더라면 일부 지역의 가격폭등이 완화됐을 것이고 부동산시장이 경제성장과 분배 개선의 효자(孝子)도 됐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누구보다도 깊이 자성(自省)해야 할 김 실장이 “부동산 정책의 성패는 복부인, 기획부동산업자, 건설업자, 일부 신문과의 ‘전쟁’에 달려 있는 상황이 됐다”며 “이들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공익적 시민단체의 활동 등에 대해서도 과거와는 다른 수준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논리 싸움과 홍보전’을 강조한 그는 ‘4적(敵)과 홍위병’의 한판 싸움을 선동하는 듯하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자 편을 갈라서 다른 편을 공격하게 만들려는 광기(狂氣)와 독기(毒氣) 앞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물론 주식시장처럼 부동산시장에도 일부 투기 작전세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때문에 집값 거품이 장기간 유지된다는 주장은 ‘시장의 힘’을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것이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그것은 정부 규제로 수급(需給)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세는 서울 강남권 등 7군데 말고도 강동구 동작구, 경기 군포 의왕시 등 수도권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반면 지방의 집값은 하락세다. 게다가 현 정권의 거듭된 실정(失政)으로 빈곤계층의 빈곤화가 심해지고 있다.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 대한 책임을 느끼고 사회통합과 화해를 호소해야 할 정부가 시민단체를 동원해 새로운 전쟁을 벌이겠다니, 이게 정상인가.
[조선일보] '似而非 언론' 국정브리핑은 문을 닫아야 한다
문화관광부와 언론중재위원회는 23일 “국정홍보처 인터넷사이트 ‘국정브리핑’은 자체 취재인력이 만든 보도와 論評논평을 내기 때문에 인터넷신문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反論반론보도와 訂正정정보도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정브리핑도 인터넷 언론이기 때문에 언론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브리핑을 발간하는 법적 근거인 대통령令령에 따르면, 국정브리핑은 ‘인터넷에 의한 정부정책 홍보 및 국정정보 제공’을 맡는다고 돼 있다. 그러나 국민 가운데서 국정브리핑을 통해 ‘국정에 관한 정보’를 얻었거나 얻고 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국정브리핑의 남은 기능은 ‘정부 정책홍보’인 셈인데, 국정브리핑이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방법이 세계에서 前例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變態的변태적이고 沒常識的몰상식적이고 非理性的비이성적이다.
국정브리핑 첫 화면엔 그날그날의 보도를 反駁반박하는 정부 부처의 댓글과 조치 내용을 담은 코너 ‘오늘의 언론보도’가 떠 있다. 23일에도 홍보처를 비판하는 한 신문 기사에 대해 “취재도 안 된 기사로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식의 보도”라고 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말투부터가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사이트로 보기 낯뜨거울 정도로 상스럽다. 지난 2월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대학교수를 향해 “대단히 무리하고 무책임한 주장으로 正道정도를 걷는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人身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자기네와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무책임하고 정도를 벗어났다고 하는 이 정권의 屬性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태이긴 하지만 이런 低質저질 인신공격을 本業본업으로 하면서 언론대접을 받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낯두꺼운 짓이다.
세계 어느 정부도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만 물어뜯기 위해 이런 사냥개언론을 사육하는 나라는 없다. 더욱이 이 정권은 공무원들에게 국정브리핑에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댓글과 반박문을 쓰도록 독려하는 공문을 보내고 그 실적을 ‘혁신’ 考課고과에까지 반영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미래소설 ‘動物동물농장’에서나 벌어질 일들이 지금 이 땅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언론보고서 ‘니먼 리포트’는 공무원이나 홍보대행사가 쓴 홍보용 기사를 인터넷사이트와 지방 TV에 올리는 것은 ‘似而非사이비 보도’(Pseudo Reporting)이며 여기에 동원되는 매체는 ‘정부의 여론몰이 기계’(The Government’s Spin Machine)라고 규정했다. 한국 정부가 ‘代案대안매체’라고 선전하는 국정브리핑은 ‘사이비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여론 몰이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인 것이다. 국정브리핑은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는 것이 나라 망신을 더는 길이다.
[중앙일보] 불꽃처럼 살다간 이종욱 WHO 사무총장
이 안타까움과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시아의 슈바이처' '백신의 황제' '한국인 최초의 국제기구 수장'으로 불렸던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타계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에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라 여사, 영국, 중국에 이어 북한까지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고인이 남긴 족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경기도 안양 나자로마을이나 태평양의 서사모아섬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WHO 백신국장과 결핵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박멸 수준으로 낮췄고 북한을 포함해 19개 개도국의 결핵 퇴치에 힘을 쏟았다.
이 덕분에 2003년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WHO 수장 자리에 올라 주로 의료 혜택을 못 받는 개도국 주민의 건강을 챙기는 데 전력했다. 2005년까지 개도국 에이즈 환자 300만 명에게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를 공급하는 '3 바이(by) 5' 운동을 펼쳤다.
이 총장은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하면서 더 바빠졌다. 태국.캄보디아 등 피해 지역을 돌며 방역 체계를 점검했다. 전 세계를 향해 정보 공유, 개도국 지원, 백신 개발과 치료약 비축을 촉구했다.
이런 일을 하느라 한 해에 30만㎞ 이상 비행기를 탔고 정치인.기업인 등을 만나 금전적 지원과 국제 공조 체계 구축 방안을 이끌어냈다. 이 총장은 가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도 엄청나다"고 고충을 털어놨지만 자기 몸은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 총장의 소탈한 생활 방식은 우리를 다시 한번 찡하게 만든다. 그는 WHO 규정상 비행기 1등석을 탈 수 있지만 2등석을 고집했고 소형차와 구내식당을 애용했다. 그는 "WHO 분담금은 가난한 나라의 세금도 포함돼 있다. 이런 돈으로 비싼 1등석을 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총장의 불꽃 같은 삶과 못 다한 꿈은 전 세계인의 뇌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목을 빈다.
[경향신문] 다시 한번 세습을 생각한다
신분이나 지위, 권력, 기예(技藝) 따위를 자신의 피붙이나 특수관계인 등에 물려주는 세습이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몇 대에 걸쳐 가업(家業)을 발전시키고 있는 전문 직업인들이 숱하게 많으며, 국악(國樂) 등의 분야에서도 스승의 기량을 뛰어넘어 민족문화를 전승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세습의 대상이 국민경제를 좌우하는 대기업 등 공적 영역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능력이나 자질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도 단지 피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총수 등의 자리를 물려줘 오류가 생길 경우 그 피해는 사회 전체가 떠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이재용,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편법 세습시도에 대한 여론의 질타도 바로 그같은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자신의 아들인 김정민 부목사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주겠다며 ‘세습 의지’를 천명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알려진 대로 김목사는 교회공금 32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신도들의 피땀으로 마련된 교회 돈을 개인적 용도로 쓴 데 대해 깊이 반성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출석 교인 4만명의 세계 최대 감리교회의 지도자 자리를 2세에게 대물림하겠다는 데에는 할말을 잃을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세습에 대해서는 법적·제도적·문화적 기준을 수립·강화할 때가 됐다고 본다. 불과 몇 퍼센트의 지분으로 갖가지 편법을 통해 권력과 부를 대물림하려는 재벌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과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일반신도들의 뜻과 사회통념에 반하는 대형교회 세습 또한 중단돼야 마땅하다.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발전을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말로 설명하듯이 ‘한국적 세습문화’의 타파를 위해서는 ‘혈연에서 능력으로’가 뿌리내려야 한다.
[한국일보] 연금 개혁 이번엔 꼭 성사시켜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부터 국민연금개혁 작업에 본격 착수해 올해 안으로 완결짓겠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금 같은 ‘고급여-저부담’ 체제가 계속될 경우 2047년 재정파탄을 맞게 되는 국민연금의 대수술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3년 전 국회에 국민연금법개정안을 상정하고도 정치권의 외면으로 허송세월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기대를 가져보는 것은 과거보다 완결성이 높아진 개혁안을 정부가 준비 중이라는 소식 때문이다.
우선 유 장관이 연금 지급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밝힌 것은 연금 파탄에 대한 가입자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고도 재정파탄으로 정작 연금은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은 반(反) 국민연금 정서를 부추겨왔다.
유 장관은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600만 명 이상이 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문제도 대폭 해소할 뜻을 비쳤다. 그 방법으로는 한나라당이 연금개혁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해온 기초연금제와 자신이 의원시절 발의한 효도연금제를 절충하고, 단기적으로는 현행 경로연금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대타협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절충안이다.
그러나 완벽한 연금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무엇보다 이미 재정 고갈상태인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특수직연금에 대한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40년 후 재정이 파탄되는 국민연금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가입자 부담을 크게 늘리면서 이미 예산으로 밑 빠진 독을 메우고 있는 특수직연금을 그대로 두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4대 공적연금이 부처별로 분할 관리되고 있는 것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봉급생활자가 높은 보험료를 내는 불평등도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계 각층이 참여하는 연금개혁위원회를 다시 구성, 전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한겨레신문] 유권자 판단 도울 ‘공약 평가’
선거 때마다 정당이나 후보의 구호가 되다시피 강조되는 것이 정책선거다. 구체적 정책을 놓고 유권자들로부터 표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제대로 실천된 적이 한 번도 없이 늘 구호로만 그쳤다. 지역주의에 얽매인 선거풍토 등 우리 정치의 낙후성 탓이 크지만,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 판단 근거가 없었던 것도 주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전국 280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지방선거 시민연대’가 어제 발표한 ‘막개발·헛공약’은 정책선거 정착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시민연대는 광역단체장 후보 60명의 공약 997개를 모두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자문단을 가동하는 등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평가 결과는 예상대로 후보들이 여전히 장밋빛 공약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정책 등 구체적인 이행계획이 담긴 공약은 전체 997개 중 165개(17%)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실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심정에서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또 과도한 개발 및 건설 투자 등 선심성 공약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도 모두 551건(51.3%)에 이르렀다. 실현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최종적으로 추린 ‘헛공약·막개발 공약’ 44개는 열린우리당이 19, 한나라당 15, 민주당 6, 국민중심당 3, 무소속 1개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경기지사 후보 4명이 내놓은 공약 가운데 주요한 것들도 ‘문제 공약’에 포함됐다.
문제 공약에 오른 후보들은 즉각 해석이 잘못됐다며 해명자료를 내는 등 반박에 나섰으며, 일부는 반발하고 있다. 물론 모든 평가가 그렇듯이 완벽할 수는 없다. 또 선거를 코앞에 앞둔 후보자들로서는 억울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약속인 매니페스토(참공약 실천) 운동과 함께 후보자와 시민단체 사이 공약을 둘러싼 논쟁 자체가 매우 발전적인 효과를 갖는다. 더 바람직한 것은 정당과 후보자들이 정파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전문가들의 평가와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고칠 것은 고치고 잘못된 공약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동아일보] 金병준 실장, 부동산전쟁 ‘홍위병’ 모집하나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면서도 시장을 활성화해 경기(景氣) 진작, 일자리 증대, 소득 및 분배 개선을 꾀하는 것이 올바른 부동산 정책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부동산시장조차 ‘편 가르기 재료’로 삼아 서울 강남 때리기에 매달렸다. 가격 안정에도, 시장 활성화 및 이를 통한 서민 일자리 유지에도 실패한 것이 지금까지의 결과다.
이런 마당에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부동산 정상화를 막는 조직적 공격세력이 존재한다"며 '4개 집단'을 지목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복부인, 기획부동산업자, 건설업자, 일부 주요 신문이다.
김 실장이 또 정부의 책임을 딴 데로 떠넘기는 모습은 이제 측은해 보일 정도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 요직을 계속 맡아 온 김 실장이 만들어 낸 일자리보다는 그가 ‘업자’라고 지칭한 기업가들이 만든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다. 더구나 부동산 정책을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맞춰 펴 왔더라면 일부 지역의 가격폭등이 완화됐을 것이고 부동산시장이 경제성장과 분배 개선의 효자(孝子)도 됐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누구보다도 깊이 자성(自省)해야 할 김 실장이 “부동산 정책의 성패는 복부인, 기획부동산업자, 건설업자, 일부 신문과의 ‘전쟁’에 달려 있는 상황이 됐다”며 “이들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공익적 시민단체의 활동 등에 대해서도 과거와는 다른 수준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논리 싸움과 홍보전’을 강조한 그는 ‘4적(敵)과 홍위병’의 한판 싸움을 선동하는 듯하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자 편을 갈라서 다른 편을 공격하게 만들려는 광기(狂氣)와 독기(毒氣) 앞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물론 주식시장처럼 부동산시장에도 일부 투기 작전세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때문에 집값 거품이 장기간 유지된다는 주장은 ‘시장의 힘’을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것이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그것은 정부 규제로 수급(需給)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세는 서울 강남권 등 7군데 말고도 강동구 동작구, 경기 군포 의왕시 등 수도권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반면 지방의 집값은 하락세다. 게다가 현 정권의 거듭된 실정(失政)으로 빈곤계층의 빈곤화가 심해지고 있다.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 대한 책임을 느끼고 사회통합과 화해를 호소해야 할 정부가 시민단체를 동원해 새로운 전쟁을 벌이겠다니, 이게 정상인가.
[조선일보] '似而非 언론' 국정브리핑은 문을 닫아야 한다
문화관광부와 언론중재위원회는 23일 “국정홍보처 인터넷사이트 ‘국정브리핑’은 자체 취재인력이 만든 보도와 論評논평을 내기 때문에 인터넷신문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反論반론보도와 訂正정정보도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정브리핑도 인터넷 언론이기 때문에 언론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브리핑을 발간하는 법적 근거인 대통령令령에 따르면, 국정브리핑은 ‘인터넷에 의한 정부정책 홍보 및 국정정보 제공’을 맡는다고 돼 있다. 그러나 국민 가운데서 국정브리핑을 통해 ‘국정에 관한 정보’를 얻었거나 얻고 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국정브리핑의 남은 기능은 ‘정부 정책홍보’인 셈인데, 국정브리핑이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방법이 세계에서 前例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變態的변태적이고 沒常識的몰상식적이고 非理性的비이성적이다.
국정브리핑 첫 화면엔 그날그날의 보도를 反駁반박하는 정부 부처의 댓글과 조치 내용을 담은 코너 ‘오늘의 언론보도’가 떠 있다. 23일에도 홍보처를 비판하는 한 신문 기사에 대해 “취재도 안 된 기사로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식의 보도”라고 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말투부터가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사이트로 보기 낯뜨거울 정도로 상스럽다. 지난 2월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대학교수를 향해 “대단히 무리하고 무책임한 주장으로 正道정도를 걷는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人身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자기네와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무책임하고 정도를 벗어났다고 하는 이 정권의 屬性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태이긴 하지만 이런 低質저질 인신공격을 本業본업으로 하면서 언론대접을 받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낯두꺼운 짓이다.
세계 어느 정부도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만 물어뜯기 위해 이런 사냥개언론을 사육하는 나라는 없다. 더욱이 이 정권은 공무원들에게 국정브리핑에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댓글과 반박문을 쓰도록 독려하는 공문을 보내고 그 실적을 ‘혁신’ 考課고과에까지 반영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미래소설 ‘動物동물농장’에서나 벌어질 일들이 지금 이 땅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언론보고서 ‘니먼 리포트’는 공무원이나 홍보대행사가 쓴 홍보용 기사를 인터넷사이트와 지방 TV에 올리는 것은 ‘似而非사이비 보도’(Pseudo Reporting)이며 여기에 동원되는 매체는 ‘정부의 여론몰이 기계’(The Government’s Spin Machine)라고 규정했다. 한국 정부가 ‘代案대안매체’라고 선전하는 국정브리핑은 ‘사이비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여론 몰이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인 것이다. 국정브리핑은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는 것이 나라 망신을 더는 길이다.
[중앙일보] 불꽃처럼 살다간 이종욱 WHO 사무총장
이 안타까움과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시아의 슈바이처' '백신의 황제' '한국인 최초의 국제기구 수장'으로 불렸던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타계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에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라 여사, 영국, 중국에 이어 북한까지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고인이 남긴 족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경기도 안양 나자로마을이나 태평양의 서사모아섬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WHO 백신국장과 결핵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박멸 수준으로 낮췄고 북한을 포함해 19개 개도국의 결핵 퇴치에 힘을 쏟았다.
이 덕분에 2003년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WHO 수장 자리에 올라 주로 의료 혜택을 못 받는 개도국 주민의 건강을 챙기는 데 전력했다. 2005년까지 개도국 에이즈 환자 300만 명에게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를 공급하는 '3 바이(by) 5' 운동을 펼쳤다.
이 총장은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하면서 더 바빠졌다. 태국.캄보디아 등 피해 지역을 돌며 방역 체계를 점검했다. 전 세계를 향해 정보 공유, 개도국 지원, 백신 개발과 치료약 비축을 촉구했다.
이런 일을 하느라 한 해에 30만㎞ 이상 비행기를 탔고 정치인.기업인 등을 만나 금전적 지원과 국제 공조 체계 구축 방안을 이끌어냈다. 이 총장은 가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도 엄청나다"고 고충을 털어놨지만 자기 몸은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 총장의 소탈한 생활 방식은 우리를 다시 한번 찡하게 만든다. 그는 WHO 규정상 비행기 1등석을 탈 수 있지만 2등석을 고집했고 소형차와 구내식당을 애용했다. 그는 "WHO 분담금은 가난한 나라의 세금도 포함돼 있다. 이런 돈으로 비싼 1등석을 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총장의 불꽃 같은 삶과 못 다한 꿈은 전 세계인의 뇌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목을 빈다.
[경향신문] 다시 한번 세습을 생각한다
신분이나 지위, 권력, 기예(技藝) 따위를 자신의 피붙이나 특수관계인 등에 물려주는 세습이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몇 대에 걸쳐 가업(家業)을 발전시키고 있는 전문 직업인들이 숱하게 많으며, 국악(國樂) 등의 분야에서도 스승의 기량을 뛰어넘어 민족문화를 전승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세습의 대상이 국민경제를 좌우하는 대기업 등 공적 영역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능력이나 자질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도 단지 피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총수 등의 자리를 물려줘 오류가 생길 경우 그 피해는 사회 전체가 떠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이재용,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편법 세습시도에 대한 여론의 질타도 바로 그같은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자신의 아들인 김정민 부목사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주겠다며 ‘세습 의지’를 천명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알려진 대로 김목사는 교회공금 32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신도들의 피땀으로 마련된 교회 돈을 개인적 용도로 쓴 데 대해 깊이 반성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출석 교인 4만명의 세계 최대 감리교회의 지도자 자리를 2세에게 대물림하겠다는 데에는 할말을 잃을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세습에 대해서는 법적·제도적·문화적 기준을 수립·강화할 때가 됐다고 본다. 불과 몇 퍼센트의 지분으로 갖가지 편법을 통해 권력과 부를 대물림하려는 재벌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과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일반신도들의 뜻과 사회통념에 반하는 대형교회 세습 또한 중단돼야 마땅하다.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발전을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말로 설명하듯이 ‘한국적 세습문화’의 타파를 위해서는 ‘혈연에서 능력으로’가 뿌리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