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6년 5월 23일 화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eros
2006. 5. 23. 22:14
2006년 5월 23일 화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칼 테러도 끔찍한데 말 테러까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당한 테러는 갑자기 또는 우연히 발생한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다. 지난 수 년 간 우리 정치 사회가 저지르고 키워 온 언어폭력의 병리적 산물이다. 편을 갈라 대립하고 싸우면서 치고 받은 온갖 인신공격과 험한 말은 우리도 모르게 일상화 습관화돼 온 것이 사실이다.
정상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테러 수준의 말들이 아무런 제어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넘쳐났고, 그런 결과가 야당 대표가 칼의 공격을 받는 참극을 낳은 것이다.
나와 견해가 다르거나 우리 편이 아닌 상대에게는 어떤 공격이나 피해를 가해도 괜찮다는 극단적 적대감, 광기 같은 것이 이번 사건에서 진하게 뿜어져 나온다. 정치권이 인신공격과 폭언을 일상화하는 동안 다른 일각에서는 반대자에 대해서는 칼로 얼굴을 그을 수도 있다는 병적인 의식이 발전하고 있었음을 본다.
이런 와중에 ‘노사모’ 대표라는 노혜경씨가 박 대표를 향해 내놓은 냉소적 표현들은 이번 사건의 뿌리가 어떤 종류인 것인지를 잘 알게 한다.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박 대표에게 그는 “박정희의 악몽과 겹쳐 있는 구 시대의 살아 있는 유령”이라고 여전히 악담을 주저하지 않았고, “60 바늘을 꿰맸다는 것을 보면 성형도 함께 한 모양”이라고 비아냥댔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국정을 다루었다는 사람이다. 같은 여성이면서도 폭력과 테러의 피해자에 대한 입장을 헤아리는 구석을 찾기 어려운 냉혹한 말들에서 일반 정서나 상식과는 다른, 증오와 선동 광기의 문법이 엿보인다.
박 대표 테러 사건의 전말과 진상은 한 점 의혹 없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이번 테러나 지방선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년의 대선까지 더 가파르게 이어질 분열과 대립상도 이제는 예사롭게 볼 수가 없다. 대립도 할 수 있고, 갈등도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이를 포용하는 정치문화와 의식이 이미 위험수위에 와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 큰 일 날지도 모를 일이다.
[한겨레신문] 끝내 외면당한 고속철도 여승무원들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고속철도(KTX) 여승무원 280여명이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나앉게 됐다. 지난 19일의 최종 업무 복귀 시한이 지나자 철도공사 쪽은 더는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다시 대량 정리해고 희생자들이 나오게 생겼다.
여승무원들은 고속철도 개통 이후 지금까지 2년 동안 한국철도유통(옛 홍익회) 소속으로 철도공사에 파견돼 일해 왔다.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기대하며 입사했으나 현실은 열악한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였다. 그나마도 묵묵히 참고 일했으나 지난해 말 회사 쪽이 선별 재계약 의도를 내비쳐서 참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파업이 80일을 훌쩍 넘겼다.
그 사이 철도공사는 승무원 위탁업무를 철도유통에서 케이티엑스관광레저라는 또다른 자회사로 넘겼다. 기존 승무원에게는 채용에 응하면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며 파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철도노조도 이 문제를 쟁점화하겠다는 태도여서 사태 장기화는 피하기 어렵다.
승무원들의 현실은 파견직 노동자들의 차별 문제뿐 아니라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정부의 관련 정책 문제까지 보여준다. 철도 승무 업무는 철도공사 쪽의 직접 지휘를 받는 일이고, 전체 승무원 가운데 유일하게 이 여성들만 파견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구조조정 때문이다. 철도공사는 고속철도 개통에 따라 늘어난 업무를 자회사에 위탁함으로써 구조조정의 모양만 갖추려고 했다. 이는 물론 정부의 공기업 정책과도 연결된다.
고속철도 승무원 문제는 정부가 비정규직의 고통을 덜어줄 의지가 있는지, 또 정치권은 그들을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국회헌정회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를 돌아다니며 농성하는 동안 누구도 문제를 풀어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고속철도 승무원 정리해고 사태는 280여명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말로만 비정규직 억제를 외치는 한 제2, 3의 희생자들이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악순환을 끊기 위한 첫걸음은, 철도공사의 승무원 직접 고용을 위해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는 것이다.
[동아일보] 무책임한 국정브리핑과 청와대 통계 왜곡
국정홍보처가 꾸리는 국정브리핑은 세계 언론사상 유례없는 실험을 하고 있다. 국정브리핑은 자체 취재 편집 직원을 두고 보도와 논평, 그리고 이슈 제기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해 배경을 설명하고 홍보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논평가의 역할까지 자임한 것이다. 영화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직접 평론을 하겠다고 나선 격이다.
국정브리핑에 게재되는 칼럼은 차분하게 국정 현안을 설명하기보다는 비판 언론을 공격하는 내용이 많다. 국정브리핑은 ‘언론사 의제(어젠다) 독점의 시대는 갔다’며 언론이 의제 설정을 독점한 것처럼 몰아붙였다. 국가적 의제는 정부 언론 시민사회가 함께 설정해 나간다. 어느 한쪽이 독점할 수는 없다. 의제 설정에서 정부 언론사 시민사회의 역할은 각기 다르다. 정부가 언론과 시민단체의 기능을 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언론이 정부의 기능을 대신할 수도 없다.
국정브리핑과 청와대브리핑은 합동으로 ‘부동산 이제 생각을 바꿉시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언론이 갈팡질팡해 온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세금 폭탄을 비판하자 국정브리핑은 ‘보수 언론들 부동산 거품을 먹고 사나’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언론을 공격했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주요 신문이 광고 때문에 부동산 경기를 띄운다고 주장했다. 이 정부의 언론 탓과 뒤집어씌우기는 불치병 같다.
관료나 국정브리핑이 제시한 통계에는 왜곡이 많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서울 강남 3구(區)의 집값이 도시 근로자 연간 수입의 18.9배에 이르러 거품이라고 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도시근로자 연평균 소득 3901만 원을 강남 3구의 33평형 집값과 비교한 수치이다. 강남 버블을 분석하려면 강남 주민의 소득을 비교치로 삼아야 하는데 전국 표본조사에 나온 평균소득으로 비교했다. 부동산은 지역마다 시장이 다른데도 무조건 버블로 때려잡기 위해 통계 왜곡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국정브리핑은 스스로를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관영 대안매체’라고 주장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잘못된 정책을 호도하는 자화자찬의 도구이고 언론의 비판을 틀어막는 공격의 수단일 뿐이다. 이 정권의 국정홍보 실험은 언론과의 갈등을 확산하고 국민의 스트레스를 키우면서 실패한 실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 보호관찰제 구멍 속으로 들이댄 테러범 칼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습격한 지충호씨가 법무부 관리·감독을 받는 보호觀察관찰 대상자라고 한다. 前科전과 8범인 지씨는 再犯재범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보호감호 선고를 받아 청송감호소에 갇혀 있다 지난해 8월 假出所가출소했다. 열린우리당 주도로 국회가 보호감호 조치의 근거법인 사회보호법을 폐지한 혜택을 본 것이다.
보호관찰제는 범죄자를 교도소에 가두는 대신 사회생활을 하게 하면서 교육과 善導선도로 재범을 막아보자는 제도다. 보호관찰 대상자는 사는 곳을 옮기면 반드시 신고해야 하며 직업을 가져야 하는 등 법이 정한 사항들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지씨는 이를 모두 무시했다. 지난해 12월엔 한나라당 행사장에서 국회의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붙잡혔지만 관찰당국에게서 받은 制裁제재는 없었다. 그리고 5개월 뒤 서울 복판에서 제1야당 대표를 습격했다.
인권을 생각하면 사회보호법은 없앨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보호법 폐지를 계기로 ‘청송감호소 출신’ 보호관찰자만 1700여명이 늘어났다. 앞서 감호소를 나와 보호관찰을 받던 사람들까지 합치면 3200여명이다.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 등 다른 보호관찰대상자까지 합쳐 작년 말 현재 보호관찰 직원 한 사람당 223명을 감독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도하면서 보호관찰 인원과 예산은 그 前전 수준에서 전혀 늘리지 않았다.
감호소 출신 보호관찰자들이 주소지 신고 의무 등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제재하는 법적 장치도 마땅치 않다. 지씨가 국회의원을 때리고 주소를 신고하지 않아도 보호관찰 당국이 아무 조치도 못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전 사회보호법으로는 가출소한 보호관찰대상자가 법을 어기면 다시 사회로부터 격리시킬 수가 있었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罪質죄질이 무겁고 재범 가능성이 큰 보호관찰자들에게 세심한 再犯재범 방지책을 시행하고 있다.
결국 이 정권이 범죄 가능성이 큰 사람들로부터 사회를 지킬 대책은 제대로 講究강구하지 않고 덜컥 사회보호법부터 없앤 데서 이번 테러의 싹이 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중앙일보] 선생님을 무릎 꿇리는 세태
5월에는 스승의 날이 있다. 그러나 선생님들에게 올해는 '수난의 달'로 기록될 듯싶다. 상당수 학교가 촌지 우려 때문에 스승의 날에 휴교해 선생님들이 '촌지 수수 집단'으로 매도됐다. 최근에는 청주의 초등학교에서 학생의 잘못을 고치려던 여교사가 집.학교를 찾아와 거칠게 항의하는 학부모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인천의 중학교에선 종례 훈시를 하던 담임 여교사가 멋대로 나가려던 학생을 제지하려다 폭행당했다.
우리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던 전통적 스승관이 무색하다. 선생님의 올바른 교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부모 밑에서 자녀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자식교육은 가정부터'라는 말이 이제는 공허하게 됐다.
핵가족 시대에 자식 이기주의에 매몰된 부모들이 늘면서 학부모의 부당한 교권 침해가 많아진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한국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173건 가운데 학부모 침해가 전년보다 30% 증가한 52건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 교총 조사 결과 선생님들은 학생지도에서 겪는 최대 애로사항으로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23.6%)을 들었다. 이런 일을 접한 선생님들은 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선생님의 사명감.애정이 없는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어제 청주의 고교에서 어머니회가 학교에 '사랑의 회초리'를 전달했다고 한다. 때려서라도 올바르게 키워 달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교육의 참뜻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물론 일부 선생님의 교육방식.이념교육에 불만을 갖고 있는 학부모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 원인 제공은 선생님이다. 전교조의 활동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우리 학교에는 아직 이러한 갈등을 풀어 낼 충분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내 갈등을 대화와 절차로 해결하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임의기구인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상설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향신문] 이라크에 주권정부가 출범했지만
전쟁이 발발한 지 3년 2개월만에 이라크 최초의 주권정부가 출범했다. 지난 20일 구성된 이라크 정부는 점령국인 미국의 보호 아래 가동됐던 임시정부와 과도정부를 대체하는 주권정부란 점에서 이라크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이라크의 새 정부 구성에 대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알 카에다와 다른 테러리스트들에게 통렬한 패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유 이라크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전망과는 달리 ‘자유 이라크’가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우선 이라크 내부 상황이 앞날을 낙관하기 어렵게 한다. 전쟁 발발 후 악화된 종파 및 정파 간 분쟁 때문에 국방·내무장관 및 국가안보 장관 자리는 공석인 상태다.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의 의견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알 말리키 신임 총리가 대 테러전쟁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꼽았음에도 불구하고 폭탄테러는 계속됐다.
헌법 개정도 3개 정파간 갈등의 연장선에 놓인 문제다. 수니파는 정부에 남아 있는 조건으로 지난해 10월 확정된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수니파는 새 헌법의 연방제가 시아파와 쿠르드족에게 석유와 권력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다른 관심사는 외국군의 철수 문제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수니파를 정치과정에 참여시키고 이라크 군과 경찰의 치안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미군 13만4천명의 철수 조건이었다. 그러나 특히 지난 2월 수니파에 의해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야 사원이 폭격당한 이후 종파간 공격과 보복이 전국을 휩쓸었다. 올해 말까지 병력을 10만명으로 줄인다는 부시 행정부의 계획 이행이 의문시된다.
의회 개막 첫날 수니파 지도자는 “이것은 우리가 바랐던 민주주의도 자유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 정부의 출범은 미국의 이라크 개조작업이 일단락했음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유혈의 종식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일보] 칼 테러도 끔찍한데 말 테러까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당한 테러는 갑자기 또는 우연히 발생한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다. 지난 수 년 간 우리 정치 사회가 저지르고 키워 온 언어폭력의 병리적 산물이다. 편을 갈라 대립하고 싸우면서 치고 받은 온갖 인신공격과 험한 말은 우리도 모르게 일상화 습관화돼 온 것이 사실이다.
정상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테러 수준의 말들이 아무런 제어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넘쳐났고, 그런 결과가 야당 대표가 칼의 공격을 받는 참극을 낳은 것이다.
나와 견해가 다르거나 우리 편이 아닌 상대에게는 어떤 공격이나 피해를 가해도 괜찮다는 극단적 적대감, 광기 같은 것이 이번 사건에서 진하게 뿜어져 나온다. 정치권이 인신공격과 폭언을 일상화하는 동안 다른 일각에서는 반대자에 대해서는 칼로 얼굴을 그을 수도 있다는 병적인 의식이 발전하고 있었음을 본다.
이런 와중에 ‘노사모’ 대표라는 노혜경씨가 박 대표를 향해 내놓은 냉소적 표현들은 이번 사건의 뿌리가 어떤 종류인 것인지를 잘 알게 한다.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박 대표에게 그는 “박정희의 악몽과 겹쳐 있는 구 시대의 살아 있는 유령”이라고 여전히 악담을 주저하지 않았고, “60 바늘을 꿰맸다는 것을 보면 성형도 함께 한 모양”이라고 비아냥댔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국정을 다루었다는 사람이다. 같은 여성이면서도 폭력과 테러의 피해자에 대한 입장을 헤아리는 구석을 찾기 어려운 냉혹한 말들에서 일반 정서나 상식과는 다른, 증오와 선동 광기의 문법이 엿보인다.
박 대표 테러 사건의 전말과 진상은 한 점 의혹 없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이번 테러나 지방선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년의 대선까지 더 가파르게 이어질 분열과 대립상도 이제는 예사롭게 볼 수가 없다. 대립도 할 수 있고, 갈등도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이를 포용하는 정치문화와 의식이 이미 위험수위에 와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 큰 일 날지도 모를 일이다.
[한겨레신문] 끝내 외면당한 고속철도 여승무원들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고속철도(KTX) 여승무원 280여명이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나앉게 됐다. 지난 19일의 최종 업무 복귀 시한이 지나자 철도공사 쪽은 더는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다시 대량 정리해고 희생자들이 나오게 생겼다.
여승무원들은 고속철도 개통 이후 지금까지 2년 동안 한국철도유통(옛 홍익회) 소속으로 철도공사에 파견돼 일해 왔다.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기대하며 입사했으나 현실은 열악한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였다. 그나마도 묵묵히 참고 일했으나 지난해 말 회사 쪽이 선별 재계약 의도를 내비쳐서 참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파업이 80일을 훌쩍 넘겼다.
그 사이 철도공사는 승무원 위탁업무를 철도유통에서 케이티엑스관광레저라는 또다른 자회사로 넘겼다. 기존 승무원에게는 채용에 응하면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며 파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철도노조도 이 문제를 쟁점화하겠다는 태도여서 사태 장기화는 피하기 어렵다.
승무원들의 현실은 파견직 노동자들의 차별 문제뿐 아니라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정부의 관련 정책 문제까지 보여준다. 철도 승무 업무는 철도공사 쪽의 직접 지휘를 받는 일이고, 전체 승무원 가운데 유일하게 이 여성들만 파견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구조조정 때문이다. 철도공사는 고속철도 개통에 따라 늘어난 업무를 자회사에 위탁함으로써 구조조정의 모양만 갖추려고 했다. 이는 물론 정부의 공기업 정책과도 연결된다.
고속철도 승무원 문제는 정부가 비정규직의 고통을 덜어줄 의지가 있는지, 또 정치권은 그들을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국회헌정회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를 돌아다니며 농성하는 동안 누구도 문제를 풀어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고속철도 승무원 정리해고 사태는 280여명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말로만 비정규직 억제를 외치는 한 제2, 3의 희생자들이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악순환을 끊기 위한 첫걸음은, 철도공사의 승무원 직접 고용을 위해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는 것이다.
[동아일보] 무책임한 국정브리핑과 청와대 통계 왜곡
국정홍보처가 꾸리는 국정브리핑은 세계 언론사상 유례없는 실험을 하고 있다. 국정브리핑은 자체 취재 편집 직원을 두고 보도와 논평, 그리고 이슈 제기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해 배경을 설명하고 홍보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논평가의 역할까지 자임한 것이다. 영화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직접 평론을 하겠다고 나선 격이다.
국정브리핑에 게재되는 칼럼은 차분하게 국정 현안을 설명하기보다는 비판 언론을 공격하는 내용이 많다. 국정브리핑은 ‘언론사 의제(어젠다) 독점의 시대는 갔다’며 언론이 의제 설정을 독점한 것처럼 몰아붙였다. 국가적 의제는 정부 언론 시민사회가 함께 설정해 나간다. 어느 한쪽이 독점할 수는 없다. 의제 설정에서 정부 언론사 시민사회의 역할은 각기 다르다. 정부가 언론과 시민단체의 기능을 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언론이 정부의 기능을 대신할 수도 없다.
국정브리핑과 청와대브리핑은 합동으로 ‘부동산 이제 생각을 바꿉시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언론이 갈팡질팡해 온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세금 폭탄을 비판하자 국정브리핑은 ‘보수 언론들 부동산 거품을 먹고 사나’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언론을 공격했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주요 신문이 광고 때문에 부동산 경기를 띄운다고 주장했다. 이 정부의 언론 탓과 뒤집어씌우기는 불치병 같다.
관료나 국정브리핑이 제시한 통계에는 왜곡이 많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서울 강남 3구(區)의 집값이 도시 근로자 연간 수입의 18.9배에 이르러 거품이라고 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도시근로자 연평균 소득 3901만 원을 강남 3구의 33평형 집값과 비교한 수치이다. 강남 버블을 분석하려면 강남 주민의 소득을 비교치로 삼아야 하는데 전국 표본조사에 나온 평균소득으로 비교했다. 부동산은 지역마다 시장이 다른데도 무조건 버블로 때려잡기 위해 통계 왜곡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국정브리핑은 스스로를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관영 대안매체’라고 주장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잘못된 정책을 호도하는 자화자찬의 도구이고 언론의 비판을 틀어막는 공격의 수단일 뿐이다. 이 정권의 국정홍보 실험은 언론과의 갈등을 확산하고 국민의 스트레스를 키우면서 실패한 실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 보호관찰제 구멍 속으로 들이댄 테러범 칼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습격한 지충호씨가 법무부 관리·감독을 받는 보호觀察관찰 대상자라고 한다. 前科전과 8범인 지씨는 再犯재범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보호감호 선고를 받아 청송감호소에 갇혀 있다 지난해 8월 假出所가출소했다. 열린우리당 주도로 국회가 보호감호 조치의 근거법인 사회보호법을 폐지한 혜택을 본 것이다.
보호관찰제는 범죄자를 교도소에 가두는 대신 사회생활을 하게 하면서 교육과 善導선도로 재범을 막아보자는 제도다. 보호관찰 대상자는 사는 곳을 옮기면 반드시 신고해야 하며 직업을 가져야 하는 등 법이 정한 사항들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지씨는 이를 모두 무시했다. 지난해 12월엔 한나라당 행사장에서 국회의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붙잡혔지만 관찰당국에게서 받은 制裁제재는 없었다. 그리고 5개월 뒤 서울 복판에서 제1야당 대표를 습격했다.
인권을 생각하면 사회보호법은 없앨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보호법 폐지를 계기로 ‘청송감호소 출신’ 보호관찰자만 1700여명이 늘어났다. 앞서 감호소를 나와 보호관찰을 받던 사람들까지 합치면 3200여명이다.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 등 다른 보호관찰대상자까지 합쳐 작년 말 현재 보호관찰 직원 한 사람당 223명을 감독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도하면서 보호관찰 인원과 예산은 그 前전 수준에서 전혀 늘리지 않았다.
감호소 출신 보호관찰자들이 주소지 신고 의무 등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제재하는 법적 장치도 마땅치 않다. 지씨가 국회의원을 때리고 주소를 신고하지 않아도 보호관찰 당국이 아무 조치도 못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전 사회보호법으로는 가출소한 보호관찰대상자가 법을 어기면 다시 사회로부터 격리시킬 수가 있었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罪質죄질이 무겁고 재범 가능성이 큰 보호관찰자들에게 세심한 再犯재범 방지책을 시행하고 있다.
결국 이 정권이 범죄 가능성이 큰 사람들로부터 사회를 지킬 대책은 제대로 講究강구하지 않고 덜컥 사회보호법부터 없앤 데서 이번 테러의 싹이 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중앙일보] 선생님을 무릎 꿇리는 세태
5월에는 스승의 날이 있다. 그러나 선생님들에게 올해는 '수난의 달'로 기록될 듯싶다. 상당수 학교가 촌지 우려 때문에 스승의 날에 휴교해 선생님들이 '촌지 수수 집단'으로 매도됐다. 최근에는 청주의 초등학교에서 학생의 잘못을 고치려던 여교사가 집.학교를 찾아와 거칠게 항의하는 학부모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인천의 중학교에선 종례 훈시를 하던 담임 여교사가 멋대로 나가려던 학생을 제지하려다 폭행당했다.
우리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던 전통적 스승관이 무색하다. 선생님의 올바른 교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부모 밑에서 자녀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자식교육은 가정부터'라는 말이 이제는 공허하게 됐다.
핵가족 시대에 자식 이기주의에 매몰된 부모들이 늘면서 학부모의 부당한 교권 침해가 많아진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한국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173건 가운데 학부모 침해가 전년보다 30% 증가한 52건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 교총 조사 결과 선생님들은 학생지도에서 겪는 최대 애로사항으로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23.6%)을 들었다. 이런 일을 접한 선생님들은 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선생님의 사명감.애정이 없는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어제 청주의 고교에서 어머니회가 학교에 '사랑의 회초리'를 전달했다고 한다. 때려서라도 올바르게 키워 달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교육의 참뜻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물론 일부 선생님의 교육방식.이념교육에 불만을 갖고 있는 학부모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 원인 제공은 선생님이다. 전교조의 활동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우리 학교에는 아직 이러한 갈등을 풀어 낼 충분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내 갈등을 대화와 절차로 해결하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임의기구인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상설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향신문] 이라크에 주권정부가 출범했지만
전쟁이 발발한 지 3년 2개월만에 이라크 최초의 주권정부가 출범했다. 지난 20일 구성된 이라크 정부는 점령국인 미국의 보호 아래 가동됐던 임시정부와 과도정부를 대체하는 주권정부란 점에서 이라크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이라크의 새 정부 구성에 대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알 카에다와 다른 테러리스트들에게 통렬한 패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유 이라크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전망과는 달리 ‘자유 이라크’가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우선 이라크 내부 상황이 앞날을 낙관하기 어렵게 한다. 전쟁 발발 후 악화된 종파 및 정파 간 분쟁 때문에 국방·내무장관 및 국가안보 장관 자리는 공석인 상태다.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의 의견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알 말리키 신임 총리가 대 테러전쟁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꼽았음에도 불구하고 폭탄테러는 계속됐다.
헌법 개정도 3개 정파간 갈등의 연장선에 놓인 문제다. 수니파는 정부에 남아 있는 조건으로 지난해 10월 확정된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수니파는 새 헌법의 연방제가 시아파와 쿠르드족에게 석유와 권력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다른 관심사는 외국군의 철수 문제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수니파를 정치과정에 참여시키고 이라크 군과 경찰의 치안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미군 13만4천명의 철수 조건이었다. 그러나 특히 지난 2월 수니파에 의해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야 사원이 폭격당한 이후 종파간 공격과 보복이 전국을 휩쓸었다. 올해 말까지 병력을 10만명으로 줄인다는 부시 행정부의 계획 이행이 의문시된다.
의회 개막 첫날 수니파 지도자는 “이것은 우리가 바랐던 민주주의도 자유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 정부의 출범은 미국의 이라크 개조작업이 일단락했음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유혈의 종식과는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