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18일 화요일, 조간 신문사설
2006년 4월 18일 화요일,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KDI 경고보고서 새겨들어야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과 지구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적잖은 가운데 국책 경제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엊그제 굿 뉴스와 배드 뉴스가 뒤섞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전자는 경제회복 속도가 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 활성화에 힘입어 예상보다 빨라짐으로써 올해 성장률이 당초 전망보다 0.3%포인트 높은 5.3%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후자는 고유가와 저환율로 교역조건이 날로 나빠지는 데다 미ㆍ중 경제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경기가 하반기에 꼭지점을 찍고 다시 하강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경상수지 흑자도 지난해 수준(166억 달러)은커녕 당초 예상의 3분의 1인 40억달러대에 그친다고 한다.
관심은 당연히 후자쪽에 쏠린다. 1분기에 연율로 6%를 넘었던 성장률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수출 및 내수 환경으로 인해 4분기엔 다시 4%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KDI의 비관적 전망은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이미 제기한 시나리오다. 수출 채산성 악화도 문제지만, 수출로 번 돈이 국내에서 투자-고용-소득-소비의 선순환 고리로 연결되는 구조가 정착되지 않는 한, 언제든 경기회복세가 꺾일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
물론 정부는 별도 자료까지 제시하며 “대외여건이 크게 악화되지 않는 한, 경기둔화를 말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반박한다. 작년과 달리 수출과 내수가 상호 보완적으로 호조이고, 2003년 이후 소비를 옥죄던 가계부채 문제가 거의 해소됐으며, 가계와 기업의 체감경기도 현격히 호전됐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경기 훈풍의 온기가 윗목까지 오기만을 고대하던 대다수 국민들로선 정부 얘기가 귀에 와 닿지 않는다. 지표나 설명은 복잡하지만, 쉽게 말해 정부나 정ㆍ재계가 KDI발 경고음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호황의 자락도 보지 못한 채 다시 불황의 그림자에 파묻혀야 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불황의 저주를 이기는 것은 투자와 일자리’라는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남은 것은 실천뿐이다.
[한겨레신문] 론스타는 한국 정부와 국민을 우롱하려는가
외환은행이 론스타로 넘어간 과정을 명정하게 밝히고 합당하게 조처하는 데는 흥정이 있을 수 없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으로 얻을 차익(4조5천여억원) 중 1천억원을 사회발전기금으로 기부하고, 내야 할 세금이 있다면 내겠다는 징표로 매각 대금 중 최대
7250억원을 국내 은행에 예치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론스타 미국 본사 부회장이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이런 내용의 팩스를 보낸
게 국면을 바꿔볼 요량에서였다면 한국 정부와 국민을 얕잡아 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조세회피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 온 론스타가 이제 와서 세금 낼 돈을 예치하겠다고 한 의도는 짐작할 만하다. 외환은행 매각이 차질없이 이뤄지게 해 달라는 뜻 아니겠는가. 어차피 당국이 세금 낼 돈까지 가져가는 걸 지켜볼 리도 없고, 납부 여부야 법정에서 가려질 테니 예치금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과세 차원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2003년 론스타로 외환은행을 판 결정 자체가 무효로 될 가능성까지 예견되는 상황이다. 마땅히 이 문제가 결론날 때까지는 외환은행 매각 작업이 유보돼야 한다. 우선협상 대상자인 국민은행이 스스로 인수를 미루든가, 정부가 승인을 늦추는 게 후환을 남기지 않는 길이다.
문제가 되니 기부하겠다는 것에도 불쾌감이 앞선다. 경제 규모에서 세계 10위권인 한국을 구걸하는 나라쯤으로 보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일은행을 판 뉴브리지캐피털이 200억원을 기부하고, 일부 재벌들이 편법 경영승계 등 문제가 생기니 기부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 걸 ‘벤치마킹’했다면 한참 잘못됐다.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에 협조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게 론스타가 지금 지켜야 할 도리다.
[동아일보] 公的자금 빼먹으라고 정부는 망봐 줬나
부실기업이 공적(公的)자금을 빼먹은 사례가 검찰의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또 드러났다. 공적자금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이 한꺼번에 쓰러지면 경제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 정부가 국민 혈세로 따로 만든 돈주머니다. 그런데 부실을 털어낸다면서 부실기업주, 채권은행, 부실채권처리기관, 회계법인이 제각각 공적자금을 챙기는 범죄적 행위가 만연했으니 국민은 누굴 믿고 세금을 내겠는가.
검찰에 따르면 현대차 계열 부실기업인 ㈜위아(옛 기아중공업)와 아주금속은 산업은행 등이 안고 있던 부실채권을 기업구조조정회사에 싸게 넘기게 한 뒤 이를 되사는 수법 등으로 빚 가운데 550억 원을 탕감받았다. 두 부실기업은 이런 이득을 얻기 위한 로비에 41억 원을 썼다고 한다. 이때 탕감된 기업 빚만큼의 은행 손실을 메워준 돈이 바로 공적자금이다.
의류업체 태창은 비슷한 수법으로 빚 103억 원을 줄였고 김대중 정부 때 성원건설은 대통령 아들과 처조카에게 청탁해 은행 빚을 탕감받았다. 회사 돈을 회장의 이혼 위자료로 쓴 동아건설, 사찰 시주 명목으로 쓴 성원토건그룹, 친인척 명의로 빼돌린 쌍용그룹에도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정부는 지금까지 168조2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썼지만 회수된 금액은 45.3%인 75조7800억 원뿐이다. 우리금융 매각 등으로 32조 원을 더 회수해도 전체의 36%인 60조 원은 결국 국민 혈세로 메울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공적자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하지만 ‘운용 관계자들이 제돈 10만 원은 아까워해도 공적자금 10억 원은 헤프게 쓴다’는 항간의 지적도 상당 부분 사실 아닌가. 대체 누구의 미래를 위해 국민 혈세를 그렇게 관리했는지 정부와 공자위,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산은 등의 책임소재가 밝혀져야 한다. 공적자금을 ‘주무르는’ 주체들이 자금 빼먹는 기업들을 비호하면서 ‘제 손에도 떡고물 묻히기에 바빴던’ 것은 아닌지, 차제에 국민적 불신을 씻어내야 한다.
[조선일보] 납북자 송환은 납북자 가족 심정으로 풀어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17일 국회에서 “북한에 억류 중인 拉北者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에 과감한 경제적 지원방식을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우리의 목표는 납북자의 생사를 확인하고 모셔오는 것이다. 국가 責務책무라는 차원에서 필요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했다.
북한은 여태까지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다. 정부 역시 이런 북한 눈치를 보느라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꺼려 왔다. 그랬던 정부의 主務주무부처 장관이 납북자 문제를 풀겠다고 말했으니 이것도 진전이라면 진전인 셈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납북자 송환과 경제 지원을 연계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원칙에 어긋난다. 사람을 납치한 범죄행위에 경제적 대가를 준다면 ‘테러행위에 보상해선 안 된다’는 국제적 규범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일본이 납북 일본인 문제 때문에 북한과의 國交국교협상을 중단했던 것과 비교해봐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독일도 1989년 통일 때까지 1인당 9만5800마르크(약 5000만원)에 해당하는 現物현물을 동독에 지원하고 동독 정치범들을 데려오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동독 實定法실정법에 따라 처벌받은 정치범과 북한이 불법적으로 끌어간 납북자와는 엄연히 경우가 다르다.
정부가 납북자 송환문제를 대북 지원의 새로운 구실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에선 대북 지원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쌓이고 국제사회는 위조달러를 문제 삼아 대북 제재에 나서는 상황에서 북한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 이 문제를 꺼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납북자 송환 문제는 그 원칙과 의도를 따지고만 있을 수 없는 인도적 측면이 있다. 1978년 납북된 사실이 최근 확인된 김영남씨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 살아만 돌아오면 좋아하던 계란 몇 판이라도 삶아줄 텐데…”라고 했다. 다른 납북자 가족 심정도 한가지일 것이다.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납북자, 국군포로가 1000여 명이다. 그 가족 수천명이 피 마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납북자나 그 가족들이 高齡고령인 점을 생각하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납북자 문제는 그 가족이 된 심정을 바탕에 두고 풀어가야 한다. 이 정부가 그런 자세로 납북자 문제에 접근했다면 지난 3년을 허송세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앙일보] 미군기지 평택 이전 난맥, 국방부가 문제
미군기지 평택 이전 사업을 놓고 국방부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불법 영농을 막기 위해 농수로 차단 조치를 취했으나 다음날 무위로 돌아갔다. 대한민국 국방을 책임지는 부서가 계획한 '작전'이 불과 수백 명의 방해로 실패한 것이다. 이전 예정지를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 군이 관리하는 문제를 이제 와서야 검토하겠다는 것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불상사를 막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이전 예정지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확보한 이후 국방부가 보인 태도는 그런 측면을 넘어선 무소신과 무책임이었다. 이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선 다른 어느 부처보다도 국방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그렇지 않았다. '경찰이 경비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등 구실 대기에 바빴다. 물론 충돌 시 책임 추궁을 당할까봐 국가재산 경비를 뒷전으로 미루는 경찰도 한심하다. 또 상황이 이렇게 악화돼도 입을 다물고 있는 청와대도 문제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 책임은 국방부에 있다. 주무부서라면 결코 그런 구실을 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찰이 경비를 서지 않아 작전이 실패했다'는 것을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미리 경찰과의 공조를 확실히 한 뒤에 농수로 차단을 하든지, 아니면 하지 말았어야지 어떻게 이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 군사보호구역 지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려면 진작 했어야 했다. 그런데 상황이 악화된 후에 이런 입장을 밝히니 '경찰이 막아 주지 않으니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비칠 것 아닌가. 정말 근시안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반미단체들은 "공권력이 절대 못 들어온다"고 호언하면서 투쟁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국방부 장관은 평택 방문을 극비리에 추진하다가 일정이 새나가자 충돌을 우려, 이를 취소했다. 국방부가 계속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 사업은 물 건너갈 우려가 크다.
[경향신문] '촌지' 무섭다고 '스승의 날'
휴교해서야
서울지역 초·중·고 교장협의회가 올해부터 스승의 날인 5월15일을 자율 휴업일로 결정했다고 한다. 협의회의 결정은 강제성은 없다지만 지난해에도 스승의 날에 휴교한 적이 있는 만큼 올해에는 문을 닫는 학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에게는 교직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하고, 학교 밖에서는 교권 존중의 사회적 인식을 드높이기 위해 제정된 스승의 날에 굳게 닫힌 교문을 떠올려야 하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매년 스승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촌지’ 문제가 부각되면서 교권이 추락하는 것을 목격해왔던 교육계가 아예 휴교 조처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스승의 날에 학교 문을 닫아거는 것이 합리적이거나 바람직한 모습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촌지 등의 부작용이 있다면 그것을 최소화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스승의 날 본연의 취지를 살리고 사제(師弟)의 정을 돈독히 할 수 있는 행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진지하게 논의한 뒤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도 있었다고 본다. 촌지 문제 때문에 학교 문을 닫는 것은 부대 내에서 갖가지 사고가 빈발한다고 해서 국군의 날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스승의 날을 방학 중인 2월 등으로 옮기자는 주장도 크게 보면 편의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교육의 중심축은 교사들이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생일이자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스승의 날을 이런 저런 이유로 피해가서는 안된다. 교사들이 앞장서서 거듭 이날의 본뜻을 되새기고 교육과 교권의 중요성을 드높여야 할 것이다. 교장협의회의 결정과 관계없이 교문을 활짝 열고 교사들의 노고를 기리는 학교가 많았으면 한다. 전교조와 교총 등 교원단체들도 ‘교문 여는 스승의 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주길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