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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여행기 7
eros
2006. 3. 31. 15:58
히말라야 여행기 7
산, 그 변화 무쌍한 일기를 체험하며 밤의 지루함이 지나고
트래킹 4일째 아침도 여전히 우유차 한잔과 비상식으로 때우고 10시에
출발했다 아침 기온은 우리의 가을같이 서늘하고 하늘은 흐려있었다.
다음 마을 시누와는 멀리 보이는 다음 산 중턱에 있었다
층계를 한없이 내려간다.
계곡 군데 군데 엄청난 산 사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없이 내려가 계곡을 지나니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없이 올라간다 볓이 뜨거워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가 고생스러웠다.
땀 을 씻어 내느라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해발 2360의 시누와를 지나고 내리막 오르막 길 한사람이 걸을 수
있는 가파른 층계가 얼어있어 곡예 하듯이 내려갔다.
다음 2310의 밤부를 지난 시간이 오후 4시였다.
가이드는 밤부 에서 머물자고 했지만 다음 롯지 도반 까지 가야했다
2600 미터의 도반에는 서울을 출발할 때 카투만두 까지 동행이었지만
트래킹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올라온 두 오래비의 일정이 거기 도반
쯤 에서 머물 것 같았다. 헤어지며 히말라야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었다
" 내년에는 니꼴을 어디서 볼것인가 "를 읽으며 기막힌 말 이라고
동감하며 홍콩 시내를 함께 다니며 즐겁게 해 주었던 두 오래비 그들
이 그 곳에서 오늘밤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발길을 재촉했다.
오후 6시반 강행군해서 도반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두팔을 번쩍들며 반기는 목 소리가 들렸다
" 여 우리가 드디어 만나는 구먼 "
" 오래비들 꼭 여기서 기다릴 것같아 강행했습니다 "
" 어 그래 그래 잘했어 어때 고생안했어 "
" 아이고 말 쌈도 마세요 암것두 못 먹었습니다 "
" 그래 안되 그럼 내 라면 끓여줄게 "
하더니 버너와 코펠 고체 연료를 꺼내와서 라면을 끓여준다
이 두 어른들의 장비 가방은 마치 이민 가방 같았다.
세상에나 벼라 별걸 다 가지고와서 그저 놀라울뿐이었다.
신 라면과 햇반의 기막힌 맛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그 뿐 아니고 소주 대병까지 꺼내왔다 기가막혀서 웃었다.
뜨거운 라면과 술이 들어가니 속이 뜨거워지고 기분이 붕붕 좋았다
"봄날은 간다" "동행" "만남" 등을 불렀고 어른들도 술에 취해 가분에
취해 녹아들었다 허기사 두 어른도 나도 트래킹 전 일정 중의 유일한
음주와 가무로 4일째 밤은 처음으로 따듯하고 인상깊게 깊어갔다.
5일째 아침,
지난 저녁의 즐거움의 여운을 안고 안나푸르나로 올라가는 나와
내려가는 그들과 뜨거운 이별의 포옹을 끝 내고 서울에서 꼭 보자
약속하고 트래킹 최종 목적지 해발 4130 미터에 만년설을 이고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앞에있는 마차푸추레 베이스 캠프를 향해
(Machhapuchhre Base Camp) 발걸음도 가볍게 출발했다.
햇반과 라면에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았다.
촘롱 이후에는 사람이 살지않고 여행자들의 숙소만 있을뿐이다
그만큼 산은 깊고 험하고 추웠다.땀도 흐르지 않았다. 산이 점점 높아
지고 수백미터 산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수없이 많은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의 거대한 소리에 사로잡혀 까맣게 올려다보며 히말라야
의 거대함을 실감했다.
저녁 6시 반 마차푸추레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고산증이 약간 있을거라던 먼저 내려간 두 오래비의 우려와는 달리
정상이었다. 그런데 밤에 자다가 가슴이 답답해서 눈을 떳다.
가슴이 무언가 짓 누르는 듯한 호흡 곤란이왔다.
바로 고산증세였다. 그러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 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추위를 잘 견디는 나지만 몸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추위와 한기였다. 온기가 없는 침대의 냉기에 떨며
히말라야가 바로 이것이다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6일째 새벽 여섯시 안나푸르나로 빙하로 향했다.
10분쯤 갔을 때 숨이차 오르기 시작했다.
심한 오르막도 아니고 평지로 걷기 쉬운 길 이었지만 호흡곤란이왔다.
3700을 통과해서 4,130까지 적응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높은 지대에
있는 넓은 평원의 풍경이 새로웠고 숨만 조금 가쁠뿐 별 탈 없었다.
등 뒤로 떠 오르는 태양의 신묘한 빛을 놓칠수가 없어 거꾸로 걸었다.
아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빙하 !!!
그 시간에 태양이 빙하를 물들이며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거대하게 서 있는 안나푸르나 봉우리
아침의 햇살을 받고 서 있는 웅장한 만년설
그 눈부시게 빛나는 찬란함에 그저 멍 했다.
처음 알라스카의 빙하를 보았을 때의 탄성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알라스카의 빙하는 배를타고 멀리서 보았을 뿐 이었다.
바로 눈 앞에 아니 내가 만년설 위에서 있었다.
그저 아 ---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었다.
얼마를 서 있었을까 안나푸르나 봉 앞에 서기 위해
여러날을 걸어와서 세 시간 머물고 내려 가려니 너무나 아쉬웠다.
원래의 예정은 최종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켐프에서 하루 자는
것 이었다. 그러나 하루 늦게 출발하는 돌발 사건으로 만년설 앞에서
하루 잘 것인가 말 것인가 가이드와 심각하게 토론했다.
하루 종일 만년설만 보는 것 보다는 다음에 또 오기 힘든 곳 포카라
에 있는 히말라야 전망대에서 휘날레를 장식 하자고 결정했었지만
안나푸르나 그 장관적 풍경 앞에서 마음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빙하 그 거대한 얼음 덩어리의 산 봉우리를 넘어 불어오는 쏴아한
청정 바람의 느낌이 독특했다. 춥다 사지가 떨려오고 뼈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얼음의 냉기가 살을 에이듯 매웁다.
빙하 위를 천천히 걸었다. 극도의 추위를 참고 서 있는데 고통을 참아
내는 묘한 쾌감이 가슴 뻐근 하도록 차오는 자기 도취에 야 참 잘왔다
난 얼마나 멋진 인간이냐 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롯지에서 밀크 티를 마시며 먼 길을 찾아온 빙하의 세상을 즐기고
있을 때 불현듯이 이번 여행의 타이틀이 되어버린 문구가 떠 올랐다.
where do you see yourself next year ?
(내년엔 너 자신의 "꼴" 을 어디서 볼 것인가?)
다음 해 이맘 때 난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까 ?
모른다 아무것도....또 여길 와 ?
내년의 방랑은 그때의 것 세상은 넓고 갈 곳이 많은 이몸이다.
히말라야, 우주의 머리가 아무리 무궁무진 하다지만 여기서 만족하자
따뜻한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빙하에 넋을 빼았긴채 보고 또 보며 온갖
상념에 잠겨 있었다.
차를 마시고도 일어서지 않으니 가이드가 내 주위를 빙빙돌고 있더니
아직도 다 못보셨 습니까 ? 조심스레 묻는다 웃음이 나왔다.
뭐라구 ? 못 보았냐구 ? 쁘리딥 넌 여기 오면 뭐 보냐 ?
저는 볼 거 하나도 없습니다.
야 그럼 사람들이 여기 왜오냐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야 난 여기 왜 온거같냐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야 나두 모르겠다야 내가 여길 왜 왔지 ?
왜 오셨는지 모르시겠습니까 ?
응 나 정말 몰라 근데 너두 몰라 ? 넌 알거 아냐 여기 사람 이래매 ?
여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여기 왜 오는지 정말 모릅니다.
왜 모를까 ?
저 얼음 밖에없는 추운데를 왜 오는지 여기 사람들은 알수가 없죠
야 좋자나 많이왔지 ?
네 많이 왔지만 머가 좋은지 여기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럼 여기 올때마다 무슨생각 하며오니 ?
저는 그냥 옵니다.
가이드는 처음으로 먼가 미안해 하지않고 진지하고 자신있게 말했다.
" 다른 사람들이 왜 여기 오는지 여기 사람들은 정말 모릅니다 "
그 말에 폭소가 터졌다. 우 하 하 하 하 모두다 똘아이 들이다
푸 핫 하 그래 이제 내려가자 볼 것두 없다야 푸 하 하 하 하
그래 내려가자 이제 부터는 이 여행 전체의 하산이다.
그리고 2004년도 영원히 하산 이다 가자
목적을 마친후의 개운함이 발 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내려오는 길은 이상할 정도로 발이 가볍웠고 힘이 펄펄 솟구쳐 훨 훨
날라 가듯이 경쾌했다.
그 매서운 만년 빙하의 에너지가 몸 속을 가득 채워준 것 같은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이 있었다.
마차푸추레 베이스 캠프로 내려오니 포터 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 시에 출발해서 10시에 도착 늦은 아침을 먹고 짐을쌌다.
히말라야 여행기 7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