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30일 목요일, 조간 신문사설
2006년 3월 30일 목요일,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국가청렴위원회 이름이 아깝다
공직자는 직무와 얽힌 업자와 골프나 도박을 해선 안 된다는 윤리지침을 내놓았던 국가청렴위원회가 청와대가 눈을 부라리자 단번에 뒤로 물러섰다. 우리는 애초 이 위원회가 제 값을 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처음으로 그럴 듯한 윤리지침을 내놓은 것을 애써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며칠 못 가 하찮은 세간의 불평과 어줍지 않은 권력의 논리에 납작 엎드리는 것을 보면서 이런 어용 조직은 청산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위선적 권력의 장식에 불과함을 스스로 입증한 마당에 국민의 돈을 쓰는 것은 여느 공직 부패보다 훨씬 더 부도덕한 일이다.
부패방지위원회로 출발한 청렴위원회가 국민의 관심을 끈 것은 검찰이 가진 공직부패 수사기능을 따로 떼어내 맡기자는 권력의 주장에 힘입었다. 막연한 주장이지만 과거 기득권과 유착한 검찰을 불신하는 권력과 시민사회단체는 부방위 산하에 부패수사처를 설치하는 것을 공직부패 청산의 지름길인 양 부각시켰다. 우리가 이를 공허하게 여긴 것은 무엇보다 정치사회적 권력 다툼으로 본 때문이다.
그 논란이 시든 것은 순리가 지배한 결과다. 그러나 이와 함께 잊혀진 청렴위원회가 직무관련자와의 골프 금지를 권고한 것은 분명 획기적이다. 이해찬 전총리 골프 파문이 계기지만 골프가 핵심은 아니다. 공직자는 정실과 특혜와 비리로 이어질 소지가 있는 접촉과 교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선진국의 공직윤리강령을 비로소 적용하려는 의지로 보고 싶었다.
언론부터 이를 흔한 골프 금지령으로 왜곡, 못마땅한 심사를 드러낸 것은 그러려니 여길 수 있다. 청와대가 공교롭게 불거진 비서관 골프 파문을 청렴위 지침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과 기업 등의 불만을 의식한 대통령 정무특보와 민정수석이 뭐라고 한 마디하자 청렴위가 즉각 물러선 것은 권력과 하부조직이 공직부패 척결을 떠든 것이 한갓 공염불에 불과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모든 논란을 지켜보는 국민이 개탄하는 근본을 깨달아야 한다.
[한겨레신문] 건강보험의 근본을 위협하는 정책은
안된다
최근 건강보험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는 정책과 논의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면서 참여정부의 의료정책
방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송도경제특구와 제주도에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한 지 얼마 안 돼 손실형 민간 의료보험 시판과 건강보험
국고지원 축소 논의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런 우려를 자아내고도 남는다. 이 논의들을 주도하는 경제 부처들은 의료 산업화와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등이 가져올 수 있는 경제 활성화 효과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 정책들이 건강보험 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의료혜택의 부익부 빈익빈을 부르고 양극화
해소에 역행할 수 있다는 점에는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의료부문은 시장의 효율성이 작동되지 않는, 이른바 시장실패로 말미암은 합리적인 공공 규제가 정당화되는 대표적 분야다. 민간 의료보험이 국민의 다양한 의료욕구를 해소하는 제도로 자리잡도록 하려면 보험상품의 표준화와 보험자에 의한 가입 차별 해소책, 그리고 보험상품 비교공시제 개선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이런 제도들의 정비 없는 무질서한 민간의보의 팽창은 건강보험의 정착을 심각하게 위협할 게 분명하다. 특히 민간의보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종국적으로 의료이용 급증과 국민의료비 팽창, 건강보험의 보장성 약화 등 경제·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건강보험의 완전한 정착을 민간의보 활성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효율화 방안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틀을 존중하고 적정한 총의료비 지출 규모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지역의보 급여비의 50% 국가 지원은 수많은 갈등 끝에 나온 사회적 합의다. 단순한 규모 축소보다는 어떻게 정부 지원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사용해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총의료비 수준을 유지할 것이냐에 정부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포괄수가제나 총액예산제 등 건강보험 수가구조 개편, 약값 거품을 제거할 실효성 있고 정교한 정책, 비용 유발적 의료전달 체계 개편 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개선할 점이 많지만 개발도상국 가운데서는 비교적 성공한 사례에 속한다. 기업이나 경제부처도 건강보험을 노동비용에서 보는 단순한 시각을 탈피해 기업전체의 노동비용을 낮춰주는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4%대의 보험료로 노동자의 건강을 어느 정도 지켜준다면 이는 기업의 경쟁력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공적 성격을 파괴할 수 있는 의료 시장화 정책들이 의료비 급증으로 이어져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에 심각한 부담을 줄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한국처럼 극도로 상업화한 의료체계에서는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정교하지 못한 정책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다. 과도한 의료 상업화로 기업과 사회 전체가 중병을 앓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70%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기업과 국가 경쟁력 높이기, 그리고 사회통합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나는 의료 관련 정책들은 보장성 강화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의료산업의 경쟁력 확보도 좋지만 정부는 건강보험의 공공성 강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표명하길 바란다.
[동아일보] 일본 기업은 국내 투자, 한국 기업은 해외
투자
후카가와 유키코 일본 도쿄대 교수는 그제 한국에서의 강연에서 “투자 활성화와 노동 부문의 개혁, 민영화가 일본 경제의 회복을 이끌어 냈다”며 “한국은 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해외투자에 나서는 한국 기업과 달리 일본 기업들은 국내투자에 집중한다”고 자랑했다. 일본의 기업투자는 작년 8.5%에 이어 올해도 6.8% 늘어날 전망이고 공공부문 투자는 올해 6.9% 감소해 수년째 감소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작은 정부’가 민간 투자를 북돋우고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반면 국내에선 정부규제가 1998년 6820건에서 현재 8028건으로 17.7% 늘었다. 공무원은 2002년보다 2만2000여 명이 많아졌다. 이에 따라 올해 공무원 인건비는 3년 전에 비해 3조6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갈수록 민간을 더 간섭하는 큰 정부'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그제 "한국에서 큰 정부라고 얘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며 정부 비대증(肥大症)을 모른 체했다. 그의 현실인식도 문제고 정부가 민간부문에 대한 규제와 개입을 계속하겠다는 뜻 같아서 앞날이 더 걱정이다. '큰 정부를 지향하고 시장의 역할을 축소한 국가는 성공한 적이 없다'는 세계적 경험을 뒤엎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규제 많은 큰 정부’ 아래서 기업투자가 활발해지기는 어렵다. 2002년 8.4%이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3년 ―1.4%, 2004년 1.4%, 2005년 3.4%, 올해 1∼2월 1.2%로 낮아졌다.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2002년 36억 달러에서 작년 64억 달러까지 매년 늘었다. 국내투자를 외면하고 외국으로 나가는 기업들과 함께 좋은 일자리도 나간다.
최근 적(赤)신호를 켠 경제지표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그동안 내수와 투자 부진을 메워 준 수출마저 어려워져 2월 경상수지가 7억6070만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달 산업생산도 1월에 비해 4.4% 감소했다. 비대한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계속 잡으면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게이오대 교수도 최근 “글로벌 경쟁시대에 한국기업이 잠시라도 주춤거리면 중국, 인도 기업이 그 자리를 바로 차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선일보] 교육 하향평준화로 집값 잡겠다는
정부
정부와 여당이 서울 강남 집값을 잡는 수단으로 고교 學群制학군제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작년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8·31 부동산 대책' 발표를 앞두고 학군 조정 얘기를 꺼냈다가 여론이 나빠 白紙化백지화했던 그 카드를 실패한 '8·31'의 후속대책으로 쓰겠다고 다시 꺼내든 것이다.
정부·여당의 생각은 현재 11개인 학군을 4~6개, 많게는 6~8개로 줄여 廣域化광역화하는 쪽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8학군’으로 불리는 강남·서초구 학교에 강북 학생들도 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강남 집값이 비싼 것은 상당부분 강남·북의 교육격차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렇게 바꾸면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강남·북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데에는 강북에 좋은 학교를 많이 세우고 지원을 늘려 교육환경을 강남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上向상향평준화 방법과, 반대로 강남의 수준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下向하향평준화 방법이 있다. 어느 쪽이 正道정도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 여당은 엊그제 實業高실업고 대입 특별전형 비율을 정원外외 5%로 확대하고, 연간 4000억원씩 들여 실업고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는 ‘교육 양극화 해소책’이라는 것을 냈다. ‘산업인력 양성’이 목적인 실업고를 사실상 없애겠다는 이런 포퓰리즘 정책에 쓸 돈 4000억원이면 전주 상산고 같은 번듯한 자립형사립고를 매년 15개씩 만들 수 있고 강남·서초·송파·강동구를 제외한 서울 전역의 인문고 157개를 10년 안에 자립고나 자립고 수준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강남·북 교육 격차는 일거에 사라진다. 正道정도가 빤히 눈에 보이는데도 邪道사도로 가겠다는 것이 이 정부다.
사실 학군 조정으로 강남 집값이 잡히리라는 보장도 없다. 기존의 강남 주민이 강북 학교에 配定배정받았다고 해서 쉽게 집을 팔고 나갈 리 없고, 오히려 강남 학교에 배정된 강북 주민의 강남 轉入전입이 폭증해 전셋값이 치솟고 강남 인접지역 집값까지 자극할 것이라고 보는 부동산 전문가도 많다.
현행 학군경계는 1998년에 그어진 것이라 지하철과 버스 사정이 많이 나아진 지금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것도 충분한 현장조사와 심층 영향분석을 통해 신중하게 할 일이지 정치적 底意저의를 갖고 책상에 지도 한 장 펴놓고 죽죽 그려서 될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 강남 집값 잡겠다고 교육정책까지
흔드나
정부와 여당이 강남의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고교 학군을 광역화하거나 강남 8학군을 공동학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강북 학생들이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의 고교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집값이 잡힌다고 보는 모양이다. 이 정권은 소득이나 교육 양극화의 주범으로 강남을 몰아세워 왔다. 자립형 사립고 확대 유보, 실업고 특별전형 확대 등의 교육정책을 동원하더니 이제는 학군 조정 카드를 꺼내들 모양이다. 그동안 보유세 강화, 재건축 규제 등의 갖가지 규제를 해봐도 강남 집값이 안 잡히자 이제는 학군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2002년 재경부 차관 시절 주택시장 안정대책의 일환으로 특목고 확대 방안을 내놨다가 "부동산 대책에 왜 교육을 동원하느냐"고 질타를 받았다. 지난해 8월에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학군 광역화 카드를 꺼냈다가 반발에 부닥쳤다.
다른 지역보다 강남의 교육 여건이 좋고 이 점이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학군 조정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되레 강북 거주자들이 강남으로 가면서 집값이나 전셋값을 더 올릴 수도 있다.
학군을 조정하면 통학 거리가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른 교통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점 때문에 주무관청인 서울시 교육청도 학군 조정에 부정적이다. 안 그래도 정치적 목적의 교육정책들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더 헷갈리게 할 뿐이다.
학군 조정에 대해 청와대.열린우리당.교육부.재경부 등 관련자들의 입장이 제각각이고 열린우리당 의원들 간에도 찬반이 엇갈린다. 열린우리당이 서울시 교육청과는 협의하지도 않은 것 같다.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학군을 조정하려면 심층적인 연구와 공청회 등이 전제돼야 한다. 학군 조정보다는 평준화 정책을 수정해 각자가 선택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부동산 잡겠다고 교육정책까지 흔들어서야 되겠는가.
[경향신문] 한·미 FTA 협상, 국민의견 존중하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엊그제 발족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운동본부는
발족선언문에서 “국민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한·미 FTA에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이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미 FTA는 그
시작 단계부터 미심쩍은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은 지난달 초 미국에서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한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협상의 시작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국내 분위기는 조용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의사당에서 로버트 포트먼
무역대표와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는 사실은 향후 협상 주도권의 향방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한·미 FTA는 그 규모와 의미에서 과거
한국이 칠레, 싱가포르와 맺었던 FTA와는 차원이 다르다. 또 한국은 일본과의 FTA를 5년 넘게 검토하다 중단한 상태다. 그런데 정부는 현재
미국과의 FTA 협상을 내년 3월까지 마친다는 계획이다. 본격 협상이 오는 5월 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세계에서 가장 힘세고 까다로운 나라와의
협상을 10개월 만에 끝낸다는 것이다. 정부의 협상 자세도 문제다. 정부는 FTA 협상을 개시하기도 전에 이미 쇠고기 금수조치 해제와 스크린쿼터
절반 축소 등 양보조치를 했다. 정부가 협상을 서두르는 이유로 내세우는 미국의 무역촉진권한법(TPA)도 사실 우리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정부는 미국의 TPA 시한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이러다간 졸속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미 FTA를 하다가도 손해볼 것 같으면 합의를 안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격 협상에 들어가서도 이런 느긋한
자세가 통할지 의문이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인적·물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미국의 시한에 덩달아 쫓기지 않고 차분히
대처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