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을 그으며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그래서 이제는…'민영방송의 사나운 운명'

eros 2017. 8. 3. 23:00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는 동네북이다."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썼던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진보 쪽이든 보수 쪽이든 PBS의 방송 내용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습니다, 특히 미국의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그들은 재정적 압박을 통해 PBS를 길들이려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PBS 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대표격인 영국의 BBC도 마찬가지여서 그 구성원들은 늘 편향적이란 공격을 받았고, 심지어는 아예 상업방송화 시키려하는 시도까지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당시 글의 제목은 그래서 '공영방송의 사나운 운명'이었고 바로 작년 이맘 때 이 앵커브리핑에서도 다룬 바가 있습니다.

원래 글을 쓸 때는 저는 공영방송에 몸담고 있었지만 작년에 그 글을 다시 꺼내들어 인용할 때는 민영방송으로 옮겨온 뒤였고, 가만 보니 방송환경이 크게 바뀐 것 같지도 않아서 재차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제목을 본격적으로 수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영방송의 사나운 운명' 이렇게 말입니다.

어제 오늘 저희들은 본의 아니게 법정에서 계속 거론됐습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신문 속에서지요.

작년 2월의 두 사람의 독대… 그러니까 지금 뇌물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독대…





그 자리의 주된 내용이 저희 JTBC에 대한 비난과 대응이었다고 하니 그것을 이제 처음 알게 된 것도 아니고, 대략 어떤 내용이 오간 것인지는 진작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들을수록 민망한 내용이 수두룩합니다.

게다가 어제에 이어서 오늘 나온 얘기는 그 강도가 더 해져서 이것이 일국의 대통령과 재벌총수 사이에 오간 얘기가 맞나 싶기도 합니다.

이적단체…특정그룹의 계열사…물론 아닙니다. 대통령의 경고…불이익을 넘어선 보복…상기된 얼굴… 민망한 단어들로 채워진 그 자리…

물론 그 뒷 얘기가 지금에서야 재판정에서 나오는 것은 얘기를 풀어놓는 쪽의 목적도 있어 보이긴 하나…광장과 촛불 이전의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어두운 유산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오늘…

국민이 레밍 같다고 했던 그 인사는 또 한 번 저희를 향해서 말로 삿대질을 했다 하니…

동네북인 신세는 PBS뿐만 아니라 저희 JTBC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그래서 이제는 민영방송도 사나운 운명을 타고 난 것이라 말씀드려도 무리가 아닐 것 같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의 세상읽기>공영방송의 ‘사나운 운명’(2003.6.26)

 

“어떤 규칙과 규정도 슈퍼마켓을 문화관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공영방송의 신봉자이고 프랑스의 공영 텔레비전인 A2와 FR3의 회장이었던 에르베 부르주가 상업방송의 한계에 대해 한 말이다. 상업방송이 벌이는 시청률 경쟁은 결국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오락적으로 표준화시키고, 비판적 감시 또는 견제 역할이라는 방송의 공공성을 자본의 싸움터에 묻어 버린다. 에르베 부르주가 회장으로 있던 공영방송들도 ‘민영방송과의 경쟁과 광고수입의 필요성에 몰려 근거 없이 저질화로 치닫는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민영화의 요구가 드세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공영방송을 지켜내기 위한 ‘비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영국의 언론비평가 데니스 포터가 BBC를 두고 한 말은 좀더 처절하다.

“우리가 구해내야 할 것은 BBC자체가 아니라 공익방송이며 그 시기가 가까워짐에 두려움을 느낀다.”

BBC는 그 시작부터가 상업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권위를 좋아하는 보수당과 사적 기업을 싫어하는 노동당’이 의회에서 합작해낸 기관으로서 정치적, 경제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공적인 문제에 대한 정보제공자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BBC는 그 자율성을 침해하는 갖가지 압박에 시달려 왔다. 구성원들은 특권을 지닌 독선적 좌파라는 공격을 받았고, 예산은 감축되었다. 보수진영의 유력한 연구소인 애덤 스미스 연구소는 93년에 이르러 ‘BBC는 민영화되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고, 결국 BBC는 직원의 대폭 감축과 사기업과의 합작투자 등으로 완전한 상업화의 위기를 모면했다. 데니스 포터의 말은 이처럼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BBC 민영화의 압박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가 받고 있는 공격은 매우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다. PBS가 담아내는 콘텐츠의 성향에 따라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양쪽이 모두 PBS를 두들겨댔다. 그래서 PBS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은 ‘동네북(drum being beaten by everyone)’이다. 물론 주로 두들겨댄 쪽은 보수진영이다.

공화당의 대선후보였던 로버트 돌은 상원의원 시절이던 92년에 ‘공영방송은 점점 더 균형감각을 잃어가고 있고, 자유주의를 선동하고 있으며 나는 이런 것들이 지겹다’고 일갈했고,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리치는 ‘공영방송에 몸담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방송을 장난감처럼 갖고 논다’고 몰아붙였다. 적어도 70년대 초반 닉슨 시절부터 시작된 이러한 정치적 공세는 PBS에 대한 예산 감축으로 이어져서 1980년에 PBS예산의 26%를 차지하던 연방지원금은 1990년에는 이미 16%로 떨어져 있었다. 여기에 보수적인 헤리티지 재단 연구소가 아예 ‘공영방송을 없애고 민영화하라’는 보고서까지 내놓은 게 돌과 깅리치가 한창 PBS를 공격해대던 92년이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공영방송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늘 압박의 대상이었다. 공영방송이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의 이데올로기와 충돌할 때 압력은 발생하는 것이고, 그러한 압력은 예외 없이 민영화 요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태생부터가 기형적이긴 하지만, 제대로 일어서 보기도 전부터 민영화 압력을 받아왔다. 또다시 불거진 민영화 논란을 보면서 우리 공영방송도 팔자가 참 사납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문화일보 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