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을 그으며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박씨가 살지 않는 우리 동네'

eros 2017. 7. 4. 23:00


오늘(4일)의 앵커브리핑은 박 씨 성을 가진 분들이 보시기엔 조금 서운할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의 연작소설 <우리 동네>에는 다양한 농촌 마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흔한 김 씨와 이 씨는 물론이고 최 씨, 정 씨, 강 씨, 조 씨 등등…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김이박 이라 불릴 정도로 흔한 성씨인 박 씨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박 씨가 살지 않는 우리 동네… 그 이유는 작가가 남긴 또 다른 수필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군사정부 시절 작가는 영문도 모른 채 정보기관에 불려가게 됐답니다. 까닭을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던 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자신의 작품 중 유독 '박' 이란 글자에 빨간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던 것…

"왜 박 씨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느냐…"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냐…"

요행히 풀려난 작가가 세운 대책은 간단했습니다.

"부정적인 인물이 됐건 긍정적인 인물이 됐건 아예 모든 소설의 등장인물에 박씨 성만은 붙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천하였다" 이문구 수필<우리 동네 시대>

박 씨가 살지 않는 <우리 동네>는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이지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놓으려 했다"




이 말을 남긴 특검은 아마도 이문구의 <우리 동네>를 읽어본 듯 저 한 마디 속에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을 모두 담고 있었습니다.


예전 그 시대처럼 때리고, 잡아 가두고, 판매를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더 교묘하고 음습한 방법으로 이름들을 지우려고 했던, 탄핵된 정부의 실세들.

이문구 소설 속에 박 씨가 등장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아버지 정부의 문화정책은 대를 이어서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독재는 습관이다. 그것은 마침내 질병으로 변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작품에서 남겼던 말입니다.

독재가 습관이듯 눈앞에서 지우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란 착각도 습관인 것일까.

고 이문구 선생의 연작. '우리 동네'가 지금 시대에 다시 쓰인다면 박 씨는 이제 자유롭게 등장할 수 있을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우리동네 이문구(李文求)1981


공업화 과정에서 생존기반을 상실한 농촌의 현실을 그린 이문구(李文求)의 연작소설.


1977년~1981년에 발표된 연작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1977년부터 경기도의 한 농촌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발표하기 시작한 중단편들의 모음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197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농촌의 소외문제와 농민들의 갈등, 전통적 질서의 해체화 과정 등을 풍자적 시각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농촌문제의 심각성과 갱생의 변증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농촌문제의 총괄적인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연작소설은 《우리동네 김씨》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우리동네 이씨》 《우리동네 최씨》 《우리동네 황씨》 《우리동네 정씨》 《우리동네 장씨》 《우리동네 조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제목으로 차용된 성씨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시대상황에 재빠르게 편승하기도 하고, 더러는 못마땅해하면서도 마지못해 합류하기도 하는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농민들이다. 이들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하찮은 몸짓 하나에까지도 순박하면서도 날카로운 현실적 비판이 상징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우리동네 김씨》는 민방위교육을 풍자적으로 그린 내용이다. 김씨는 가뭄이 들자 남의 저수지 물을 양수기로 퍼올리다가 한전 직원과 저수지 감시원에게 동시에 들켜 곤경에 빠진다. 그런데 사태는 의외로 반전되어 한전 직원과 저수지 감시원의 싸움으로 번졌다가 민방위교육이 열리는 바람에 흐지부지된다. 김씨는 민방위교육장에서도 생각없이 부면장의 말에 사사건건 토를 달아 교육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동네 이씨》에서는 농촌에까지 번진 망년회의 실태와 농촌부녀자들의 관광여행, 변칙적으로 운영되는 농협의 실상, 농촌가정의 도박풍조 등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동네 최씨》에서는 소작농인 최씨를 통해 토지소유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는 한편, 도시인들의 사냥공해와 농민자녀들이 관련된 노사문제를 다루었다. 최씨의 맏딸과 친구 영순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장노동자의 문제가 농민의 삶과도 직결된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우리동네 황씨》에서는 심각한 농약공해로 파괴되어가는 농촌의 생태계와 농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덕 고리채, 농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 부재지주의 증가, 농협을 악용하는 모리배 등 온갖 수탈로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농촌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우리동네 정씨》는 1970년대 이후의 농촌현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근대화의 주체인 농민을 소외시킨 농촌근대화정책의 허구성과 추곡수매의 비리 등을 폭로하는 가운데 옛날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농촌의 실정을 깨닫고, 점차 현실감각을 되찾아가며 자신들의 권리의식에 눈떠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긍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급격한 근대화로 인해 공동체적 질서가 붕괴되어가는 1970년대의 농촌현실에 대한 문학적 탐구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특히 작가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 느껴지는 유장한 문체로 삶의 현장을 이야기하면서 당면한 현실의 문제점에 주체적으로 대응해가는 농민들의 능동적인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작가 나름의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한 점은 이 작품의 미덕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