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앵커브리핑중 자서전과 타서전…"이제 간극은 없기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청년은 우물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망하는 나의 모습과 현실 속 나의 모습은 때론 같을 것이고. 때론 같지 않아 서글프기도 할 것입니다.
하물며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얼마나 다를 것인가.
"나는 광주사태 씻김굿의 제물"
그의 자서전이 논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1일) 전해진 증언집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은 당시, 환자들이 피 흘리며 누워있던 병원에까지 계엄군이 총기를 난사했다는 슬픈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타서전… 누군가는 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책을 출간했더군요. 둘 사이의 간극은 멀고도 깊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또 다른 전임 대통령 역시 같은 논란을 불러온 바 있었고, 내일 재판이 시작되는 탄핵된 대통령 또한 시민과는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자신이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의 간극을 좁히기란 이토록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극사실주의 초상화가 유행했다는 조선시대에는 세도가의 얼굴이라 해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합니다.
정조시대 재상 채제공의 초상화는 비뚜름한 시선. 즉, 사시가 있는 그대로 그려졌고 심지어 일국의 왕이었던 철종의 초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천연두 자국이나 사마귀도 있는 그대로…
그것은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스스로 보기에 부끄럽지 않음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겠지요.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젊은 시인이 부끄러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정말 부끄러워야 했을 이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제 남은 일주일… 우리는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고, 그 누군가는 그보다 먼 훗날 자서전을 쓸 것이고…
소망하건대 그 자서전은 그 뒤에 나올지도 모를 타서전과 크게 다르지 않기를… 아니 더 소망하건대 타서전은 필요 없기를…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일제 말기 암흑의 시기에 죽음으로 저항하며 항일 민족 문학의 맥을 이은 윤동주의 시는
자신의 생활에 대한 애정 있는 성찰과 자신이 지켜야 할 이념에 대한 신앙적 자세를 시 세계에 담아냄으로써
'부끄러움의 미학'이라는 독특한 체계를 세웠다.
이 시도 '부끄러움의 미학'을 바탕으로 하여 1939년 9월, 연희 전문학교 재학 당시인 22세 때 쓴 작품으로,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번뇌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애증을 서술체 문장으로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이 시에는 '우물 속의 사나이'와, 그를 들여다보는 화자인 '나', 이렇게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양분된 자아인 이 두 존재가 부정과 긍정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화합하는, 이른바 변증법적 구조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물 속에 비친 사나이'는 바로 시인 자신이며, '우물'은 자신의 삶을 투영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우물 속의 사나이'를 발견하는 자기 인식의 심리적 묘사가 함축미 있는 시어의 구사로 윤리적이고 심미적인 긴장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우물은 '산모퉁이'를 지난 '외딴' 곳에 있고, 그 곳을 '홀로' 찾은 화자는 '가만히' 우물을 들여다본다.
이것으로 볼 때, 우물은 일상의 세계와 분리된 곳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외딴'·'홀로'·'가만히' 등의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의 시어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겠다는 화자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들여다본 우물 속을 묘사한 부분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나'를 포함한 현실 세계에 대한 만족감에서 비롯된 인상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위의 풍경 아래 화자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물 속의 사나이'는 2연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화자는 그가 '미워져' 돌아가고 만다.
화자가 우물 속에서 발견한 '사나이'는 시대적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현실에 안주해서 만족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모습으로,
그는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자기 혐오감을 갖게 된다.
2연에서는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이 함께 나타나 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자신이 가엾어져서 다시 우물을 찾아가 들여다보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2연은 내적 갈등, 고민, 방황이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미워져 돌아가고 돌아가다 다시 그리워지는 화자의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3연은 우물 속의 풍경을 다시 묘사하는 동시에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추억'은 그리움, 동경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제 우물 속엔 그 '사나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다만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두 자아가 비로소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부끄러움의 미학
그의 이러한 부끄러움은 대부분 '욕됨/미움/괴로움'등의 정감과 공유적 정서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움의 결벽증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과 반성, 그리고 그에 따르는 자기 혐오와 연민의 순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에서 보여 주는 '미움/가엾음/그리움'의 변증법적 자기 인식과 사랑은
윤동주의 순결벽이 빚어낸, 청순한 젊음의 고뇌와 생래적 부끄러움의 변용적 실체인 것이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는 실향 의식과 상실감에서 모티브가 비롯되며,
존재론적 자기 인식과 정서에서의 변증법적 고뇌가 순결벽과 충돌하는 데서 부끄러움이라는 시적 정서의 실체를 획득하게 된다.
[출처] [본문스크랩] [정리,해설]윤동주 - 자화상|작성자 고운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