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앵커브리핑중 '토론은 아직 두 번 더 남았습니다'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전에서 저는 비록 경력이 일천한 진행자였지만 대통령 후보들이 릴레이로 참여하는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바가 있습니다. 당시의 주요후보는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정주영 후보 등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중 한 사람, 즉, 김영삼 후보만은 릴레이 토론은 물론이고 TV 토론에도 끝까지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한참 뒤인 2010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담에서 알게 됐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후보였을 때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를 만난 적이 있는데 대처가 이런 조언을 했다는 겁니다. "지지도에서 앞서고 있는데 왜 토론을 하느냐. 토론은 지는 쪽에서 이기는 사람을 흥분하게 해서 실수를 유발하게 하려는 것이다."
YS는 당시를 회상하며 "토론에 응하지 않아 굉장한 비판을 받았지만 그 여자 말이 참으로 훌륭하고 옳았다"고 했습니다.
더 인상적인 말은 그 다음입니다. "막상 선거 시작하니까 국민들이 다 그걸 잊어버리고 다른 곳에 초점이 가더라."
대선 토론을 기점으로 승패가 갈린 사례는 선거의 역사가 오랜 미국에는 제법 있지요. 이미 전설이 된 케네디와 닉슨의 텔레비전 토론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은 상대의 공격에 '또 시작하는군요' 라는 한마디로 분위기를 역전시켰습니다. 조지 부시는 재선에 도전할 때 초조한 모습으로 시계만 들여다봐서 졌다는 분석까지 나왔습니다.
아마도 YS에게 그런 고약한 조언을 했다던 마가렛 대처는 이런 사례들을 잘 알고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토론이란 것이 궁극적으로는 유권자의 선택을 위한 과정이라면 그것을 피하거나 최소화 했을 경우에 결국 커다란 피해를 입는 쪽은 유권자, 즉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여러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어제 JTBC가 주최한 후보 토론이 있었습니다. 많은 평가가 따랐고, 후폭풍도 있는 것 같습니다.
25년 전의 풋내기 토론 사회자가 이만큼의 시간을 돌아 어제(25일)의 토론을 진행한 소감은 이렇습니다.
당시 YS 시절의 유권자들은, 혹 그의 주장대로 선거전에 들어가면서 토론을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유권자들은 여섯 번의 주어진 토론을 하나하나 기다리며,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토론은 아직 두 번이 더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