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앵커브리핑중 그들이 만들어낸 어둠…시민 아닌 '폭민'
'악의 평범성' 을 이야기한 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과 글들은 유독 최근 들어 수많은 이들의 입에서 회자됐습니다.
그저 시키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라던, 그러나 결코 의문을 달지 않았던 영혼을 상실한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망쳐왔는지는 굳이 이 자리에서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말 가운데 주목하고 싶은 다른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폭민'(暴民)
아렌트는 절망과 증오로 가득한 시민들에게는 증오할 대상을 앞장서 만들어주는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의 조작에 의해 시민은 바로 '폭민'이 된다고 말합니다.
즉, 폭민은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대중을 조작해 만들어내는 변질된 시민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겠지요.
돌이켜보면 피자 폭식판을 벌였던 그 폭민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 혹은 변모해 왔습니다.
누군가는 공공연한 협박과 증오의 말들을 쏟아냈고, 광장의 한복판에서 야구방망이를 휘둘렀으며, 언론과 특검과 헌법재판소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경찰의 출석요구마저 무시한 채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직 구청장이 연루되었다는 카카오톡 방에는 종북, 빨갱이, 계엄령… 도무지 21세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단어들이 난무했지요.
오늘(4일) 나온 뉴스는 그 험악한 가짜뉴스들의 최초 작성자가 국정원 전 직원으로 드러났다는 음습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직 국정원 직원이 만들고 현직 구청장이 퍼 나르다…폭민은 바로 그들이 만들어낸 어두움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적을 품고 가야 하는 제도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지만, 끊임없이 선동하고, 시민을 '폭민'으로 조장하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들.
이들은 과연 품어야 할 가치가 있는 적일까를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해야 하는 오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펌글
2012년 독일에서 제작된 영화 한나 아렌트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지시를 따른 것은
그에게 인간에게 주어진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등장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어떤 공무원들이 했다고 하는데 바로 '공무원은 영혼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상관의 지시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변명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회가 위와 같은 변명에 동조하게 되면
그런 사회는 독재자가 나타났을 때 독재자에게 순응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 독재를 허용하는 사회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79년 1212쿠테다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일당에게
서울은 서울역 회군으로 순응의 길을 갔지만 호남의 광주가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시위진압군들은 상관의 지시에 따라 광주의 시민들을 향해 총을 발포했습니다.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곧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생각하는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 생각하는 능력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정권의 지시가 있다 하더라도
왜 그 지시에 따라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이 옳지 않으면 거절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바로 그러할 때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갖고 있는 바로 그 생각하는 능력을 사용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영혼없는 공무원'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었음에 대한 변명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 전환기는 어쩌면 항상 혼란를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혼란한 상황에서 총칼을 앞세울 경우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해도
적극적으로 그에 동조하는 경우는 분명 별개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경우는 악에 편승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도 악에 적극적으로 동조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악에 편승할 수 있습니다.
악인은 타고난 인자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다는 생각하는 능력.
사람은 누구나 이것을 갖고 있기에
평범한 사람이 악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선 바로 이 생각하는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하는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그것을 배양하지 않으면 거의 없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