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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집회 관련 칼럼

eros 2016. 11. 14. 19:45


[한겨레신문 칼럼-편집국에서/김보협(디지털 에디터)-2016년11월14일월요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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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 없이 정치콩트를 써본 적이 있다. ‘끝물이라는 제목이었다. 2003년 새해 기획으로 이듬해 치러질 총선을 소재로 박용현 현 정치에디터와 함께 썼다. “거역할 수 없는 큰물이 밀려와 썩은 오리알, 냄새 나는 쓰레기, 잡동사니들과 함께 자신도 휩쓸려 떠내려가는 꿈이란 마지막 대목은 아직도 생각난다. 실제 2004년 탄핵 사태에 이어 사상 최초로 의회 권력이 교체돼 가상으로 그린 그림이 얼추 들어맞아 체면치레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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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월 다시 큰물을 본다. 12일 민중총궐기와 3차 국민행동의 날, 남대문부터 광화문에 이르는 대로를 가득 메운 시민의 행렬을 보면, 어쩌면 큰물이라는 표현도 모자랄지 모른다. 경찰과 시위대가 전면적으로 맞붙는 식의 격렬한 충돌은 없었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뒤 잠든 어린아이들을 챙기는 부부, 공식 집회가 끝난 뒤 이런 큰길에서 언제 춤을 춰보겠냐며 관객들의 손을 당기는 춤꾼들, 100만명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묵묵히 청소하는 젊은 벗들을 보면서 난 민심의 쓰나미를 봤다.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밀려드는 거스를 수 없는 물살. 동행한 고등학생 딸래미는 나중에 내 아이들한테 그 역사적인 현장에 엄마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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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201611월을 어떻게 기록할까. 19604·19혁명을 닮았다고 할까. 아니면 19876월항쟁이나 2008년 광우병 시위의 재연이라고 할까. 거대한 촛불의 행진은 2008년을 닮았다. “호헌철폐, 독재타도!”와 비슷하게 박근혜 퇴진!”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지고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시민들의 정언명령이 됐다는 점에서 19876월항쟁에 비견된다. 시민들 저편에 서 있는 집단의 천박함과 촌스러움, 아직도 대통령직을 고집하는 박근혜와 그의 비선실세들이 국가권력을 사사로이 악용한 국정농단 행태에서는 책을 통해 간접경험한 4·19혁명 즈음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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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라는 큰 틀에서 보면 중요한 변곡점마다 시민의 힘으로, 민중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조금씩 앞으로 전진시켜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매 시기 그 힘이 정치적 승리로 귀결된 것은 아니었다. 2008년 촛불이 민주주의의 퇴행을 멈칫거리게는 했지만 이명박근혜정권이 이렇게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4·19혁명은 박정희의 5·16쿠데타에 꺾이고 말았다. 1979년 서울의 봄은 이듬해 5월 광주를 짓밟은 전두환의 집권으로 이어졌고, 19876월항쟁의 단물은 노태우가 빨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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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사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광장에 선 시민들과 야권의 말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박근혜의 말일 수도 있다. 마지막 남은 지지자 5% 중에 말 잘 듣는 군 장성이나 북한에 총 몇 발 쏴달라, 대포면 더 좋고라고 공작할 정보기관의 고위급 인사가 없을까. 느슨한 틈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또 보수 기득권 세력은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하면 자신들의 가장 약한 고리가 돼버린 박근혜를 버리고 자신들의 체인을 다시 단단하게 이어줄 대체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지지층을 복원하려는 재집권 시나리오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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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무모한 시도들이 파고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눈을 부릅뜨고 마주잡은 손을 더욱 굳세게 잡는 것,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되뇌면서 이 싸움을 즐기는 것, ‘박근혜 이후를 대비하며 내가 꿈꾸는 나라를 상상하는 것, 그 상상의 최대공약수를 바탕으로 힘을 배가할 지혜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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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박건승(논설위원)-2016년11월14일월요일] ‘촛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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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그 주역은 최고 국립교육기관 성균관의 유생이었다. 조정의 부당한 처사나 이단을 비판하는 것이 주된 소재였다. 유생들은 현안이 생기면 요즘의 학생회와 비슷한 재회라는 것을 열어 논의했고, 과반수가 안건에 동의하면 행동으로 옮겼다. 대표자가 글을 짓고 모든 유생들이 서명했다. 그런 뒤 지금의 서울 명륜동 성균관에서 궁궐까지 길을 청소하게 하고 상가를 철수시킨 뒤 글을 들고 조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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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 앞에 열 지어 앉아 임금의 답변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임금이 청을 거절하면 수업 거부와 단식투쟁에 나섰다. 집단 휴학인 셈이다. 세종이 궐 안에 절을 세우자 유생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는 96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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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시위의 관통어는 돌과 방패, 최루탄, 페퍼포그, ‘닭장차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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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가 얼마나 격렬했던지 급기야 닭장차 앞에는 무석무탄(無石無彈), 인즉인(忍卽仁)’-돌 안 던지면 최루탄 안 쏜다. 참는 자는 어지니리-이 적힌 입간판까지 등장했다. ‘귀학귀군’(歸學歸軍)-학교로 돌아가면 경찰이 철수하겠다-이 나온 것도 80년대 중반 호헌공방의 격랑 속에서였다. 학생들은 즉각 무탄무석’(최루탄 안 쏘면 돌 안 던진다), ‘귀군귀학’(경찰이 철수하면 학교로 돌아간다)으로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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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회문화의 물줄기를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것은 촛불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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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희생과 결집, 희망, 기원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래서 촛불시위에서는 비폭력성과 질서, 평화를 표방한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미선·효순 사건이 도화선이 된 촛불시위는 엊그제 100만 민심을 결집해 내며 집회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법원이 광화문 전 차로와 청와대 인근 행진을 허용한 것도 촛불 평화시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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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가 풍자와 해학이 가득 찬, 그리고 자유롭게 참여하고 자유롭게 형식을 만들어 가는 시민축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광화문 대로에 노래··공연 축제가 펼쳐지고, 권력에 항거하는 내용의 플래시몹이 선보이고. 100만 민심이 촛불 파도타기를 하고, 그곳에 단두대와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부적, 그리고 오방낭에 승마복까지. 촛불 민초들의 얼굴엔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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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시위의 문법은 공감과 평화다. 무력과 폭력이 아니다. 투쟁만의 공간이 아닌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자유롭게 펼 수 있는 자리다. 100만 촛불 속의 가족 모습과 교복 차림의 중고생, 젊은 연인, 휠체어 탄 장애인, ‘혼참러’(나홀로 시위 참여자)들이 그걸 보여 주지 않았는가. 똑똑한 시민들의 당당하면서도 질서 있는 분노의 외침, 그런 우리 촛불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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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칼럼-분수대/안혜리(라이프스타일 데스크)-2016년11월14일월요일] 여가부를 폐지하라


여성가족부 장관 굴욕 시대다. 박근혜 정부의 첫 여가부 장관을 지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김희정 전 장관과 강은희 현 장관까지 줄줄이 망신살이 뻗쳤다. 특히 김희정·강은희 두 사람은 2014년 의원 시절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적극적으로 비호한 덕분에 장관에 발탁됐다는 세간의 의혹에 시달리며 사과에 눈물까지 쏟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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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자리를 둘러싼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대체 여가부가 뭘 하는 부처이기에 장관 자리 하나가 더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 말이다. 보건복지부가 얼마든지 해도 될 업무라는 지적만 잠시 잊는다면 여성 권익 증진과 청소년 보호, 그리고 여성·아동·청소년을 폭력에서 보호한다는 홈페이지상 설립 목적은 물론 근사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세계경제포럼(WEF)의 성 격차 순위는 92(2006)에서 116(2016)로 계속 떨어지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청소년 행복지수 역시 2009년 첫 조사 이후 만년 최하위를 맴돌고 있다. 잔혹성이 더해가는 아동학대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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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마시길. 여가부가 손 놓고 놀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최근 보도자료만 훑어봐도 청소년 음주·흡연 예방은 즐거운 힙합과 함께하라며 랩·힙합 공모전을 열었고,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성매매 수요 차단부터라는 정책포럼도 개최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 내 성폭력 예방 세미나를 개최해 대학 성적 조회나 수강 신청 시 폭력예방교육 필수화해야라는 참신한 주장까지 내놓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게임업계는 관련 산업이 죽는다고 아우성쳤지만 청소년보호법을 들이대며 강제 게임 셧다운제를 강행했고, 청소년 특수콘돔 구매 금지와 같은 생활 속을 파고든 규제도 여럿 내놓았다. 문제는 여가부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 우리 삶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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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여가부뿐일까. 많은 정부부처가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열심히 규제를 만든다. 최근 불거진 부산 엘시티(LCT) 문제처럼 온갖 비리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규제를 먹고산다.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 역시 크게 보면 다르지 않다. 민간에 맡기면 될 일까지 정부가 나서면서 정권 말 비리로 이어졌다. 전부 규제 만능 큰 정부의 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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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엔 앵그리 화이트뿐 아니라 규제 철폐와 작은 정부라는 경제 공약도 한몫했다. 트럼프도 하겠다는 걸 우리는 왜 못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