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에 숨겨진 경제이야기 28 '사냥'
탐욕의 상징, 피의 역사인 금 이야기
원소기호 AU. 원자번호 79. 금이다. 인류사에서 이 금속만큼 다이내믹한 광물이 있을까. 금은 부의 상징이었고, 탐욕의 상징이었다. 금의 역사는 피의 역사기도 했다. 금사냥을 위해서는 인간사냥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금 때문에 잉카제국을 멸망시켰고, 그도 금을 탐낸 부하에게 암살당했다. 이우철 감독의 영화 <사냥>도 금 때문에 인간사냥을 한다.
강원도의 어느 외딴 산. 15년 전 탄광사고로 사망한 아들의 제사를 폐탄광에서 지내고 돌아오던 노파가 금맥을 발견한다. 이 소식을 들은 사냥꾼들이 노파 몰래 산을 찾지만 노파에게 들킨다. 실랑이 끝에 노파는 살해된다. 탄광사고의 생존자였던 기성(안성기 분)이 이를 목격하자 사냥꾼들은 기성을 쫓는다. 우연히 산속에 들어갔던 노파의 손녀딸 양순도 이들의 표적이 된다. 금맥을 발견한 노파는 동네 경찰인 동근에게 금맥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동근은 “황철석이라는 건데, 바보금이요 바보금”이라며 노파를 속인다. 동근과 금사냥꾼들은 금 앞에서 이미 눈이 뒤집혔다.
금은 유사 이래 거래의 중심에 있었다. 화폐는 금 대신에 발명된 거래수단이다. 한동안 화폐는 갖고 있는 금의 양만큼만 찍어낼 수 있었다. 이를 금본위제라고 한다. 금을 바꿔주는 돈(기축통화)으로 달러가 된 것은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부터다. 1944년 7월 연합국 44개국은 미국 뉴햄프셔주의 작은 시골마을인 브레턴우즈에 모였다. 이들은 금 1온스를 미국 35달러에 고정시키기로 했다. 다른 국가의 통화로는 금을 살 수 없었다. 일단 달러로 바꾼 뒤 그 달러로만 금 교환이 가능했다. 금과 달러의 가격을 고정시켜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 역할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중심으로 한 5개 금 거래업자들이 맡았다. 이들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지하에 있는 런던금시장협회(LBMA)의 ‘황금의 방’에 모여 금가격을 조절했다. 이들은 금가격이 35.20달러 이상으로 오르면 시중에 금을 내보냈다. 반대로 34.80달러 이하로 금가격이 내려가면 반대로 금을 사들였다. 이렇게 결정된 가격을 픽스(Fix)라고 했다. LBMA가 공시하는 금값을 ‘골드 프라이스(Gold Price)’가 아닌 ‘골드 픽스(Gold Fix)’라 부르는 이유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1971년 운명을 다한다. 베트남전쟁 당시 전비 마련을 위해 달러를 과다하게 풀자 달러 가치가 하락했다. 독일, 일본 등 무역수지 흑자로 많은 달러를 보유하게 된 나라들이 금 교환을 요구했다. 위기를 느낀 닉슨 대통령은 “더는 달러를 가져와도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미국의 신용을 믿고 달러를 계속 쓰든지, 아니면 달러를 쓰지 말라는 얘기다.
달러가 금에서 해방되자 통화정책이 생겨났다. 돈을 찍어 돌리면 경기가 부양되고, 푼돈을 환수하면 경기는 위축됐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통화를 조금이라도 많이 풀면 인플레이션이 찾아왔고, 조금이라도 적으면 경기불황이 왔다. 금시장도 독립했다. 또 하나의 원자재 상품이 된 것이다. 1974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금이 상장됐다. 금융위기 당시 금은 1온스에 1800달러를 넘어섰다. 지금도 1200달러다. 1971년과 비교하면 34배나 올랐다. 공공기관 중 가장 많은 금을 갖고 있는 곳은 한국은행이다. 104.4톤(5조6000억원)으로, 영국 런던 영란은행 지하금고에 보관돼 있다.
노파가 찾은 금맥은 얼마나 됐을까? 금사냥꾼들은 “이렇게 큰 금맥은 처음 본다”며 환호성을 올린다. 금의 가치는 순도로 따진다. 단위는 캐럿(K)이다. 캐럿(Karat)은 중동지역에서 나는 캐럽(Carob)이라는 식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캐럽을 말리면 한 손에 24개가 잡힌다. 14K는 14/24=58.3%, 18K는 18/24=75%다. 순도가 높은 18K가 14K보다 비싼 것은 당연하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