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os 2016. 10. 17. 10:26


   강 / 황인숙


  신이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외로운지,

   미칠 것 같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라.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근 제2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황인숙 시인의 시집 ‘자명한 산책’(문학과지성)에 수록된 시    ‘강’. 듣는 이에게 꽤 야속하게 들릴 것 같은 시 ‘강’이 작가들과 네티즌의 입에, 또 글에 오르내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소설가 김형경씨는 최근 펴낸 심리 에세이집 ‘사람풍경’(아침바다)에서 이 시 전문을 인용하며 삶의 의존성을 넘어선 진정한 자아의 독립에 대해 풀어냈다. 김씨는 “우정이며, 이타주의이며, 휴머니즘이라는 생각에서 예전에는 누군가의 하소연, 고통의 토로를 몇시간씩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행동이 내면의 고통이나 삶의 어려움과 맞서지 못한 채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방어적 태도였으며 무엇보다도 억압된 의존성의 표출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 뒤 모든 이타적 행위, 타인을 보살피는 행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한밤중에 걸려온, 고통을 호소하는 후배의 전화에 “성인이 된 네가 스스로 보살펴야 해”라고 말했단다. 의존성이 극복되는 지점이 바로 진정으로 독립할 때 맞는 감정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같은 맥락에서 김씨는 황씨의 시 ‘강’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담아낸 것으로 시를 읽을 때마다 겉으로 관대하고, 초연해 보이는 시인인 황씨 역시 자신처럼 꽤나 많은 의존적인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외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를 하소연하는 대상이 됐던 것 같다고 풀어냈다.


또 이 시는 잡지의 편집자 레터에 자주 인용되기도 하고, 숱한 네티즌들의 블로그와 카페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인생이 나한테만 관대할 거라는 환상을 버려라’라는 말과 함께 시를 인용하기도 하고, ‘사람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라는 글과 함께 시를 풀어놓기도 한다. 모든 이의 삶은 힘들다는 것을 강렬하고도 역설적으로 표현한 시가 독자들에겐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것이 김씨가 지적한 것처럼 독립적 인간들간의 관계이든, 스스로의 감정을 정리하고 만나는 젊은 세대의 ‘쿨’한 정서이든.


이에 대해 정작 황씨는 “좀 몰인정한 시지요. 엄살이 혐오스럽다는 이야기예요. 물론 그 사람에겐 엄살이 아니겠지만,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하소연하는 것 자체가 엄살이지요”라며 “결국 나도 살기 힘들다는 뜻이에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