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os 2016. 10. 13. 11:59


여행 - 막심 뒤캉에게





지도와 판화를 사랑하는 어린이에게는
우주는 왕성한 식욕의 대상
아! 등잔불에 비친 세계는 얼마나 광대한가!
추억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얼마나 작은가!

어느날 아침 우리는 떠난다, 열정에 찬 머리!
원한과 쓰라린 욕망으로 서글픈 마음을 하고
그리고 우리는 간다, 선율적인 물결을 따라
끝없는 바다 위에 우리는 무한한 마음 흔들어 주며

어떤 사람은 소란스런 조수 빠져나감을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끔찍스런 요람에서, 또 어떤 사람은
여자의 눈에 빠진 점성가들은, 위험한 향기 품은
폭군 같은 시세르에서 달아남을 즐거워한다.

짐승으로 변신되지 않으려고 그들은 도취한다.
공간과 햇빛, 그리고 타오르는 하늘에
살을 에이는 얼음과 구리빛으로 빛나는 햇빛은
입맞춤의 자국을 서서히 지워 간다.

그러나 참다운 여행자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 가벼운 마음으로 풍선처럼
주어진 숙명에서 결코 빠져 나기지 못하면서
무작정 언제나 가자! 라고 말한다.

그들의 욕망은 구름의 형태를 하고
대포를 갈망하는 신병처럼 꿈꾼다.
인간 정신이 일찍이 그 이름 알지 못한
저 미지의 변덕장이, 무한한 쾌락을!





아뿔싸! 우리는 빙글빙글 도는 팽이와 퉁겨 오르는 공을
흉내내고 있구나, 잠들어 있을 때 조차도
호기심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굴리어 간다.
태양을 채찍질하는 잔인스런 천사처럼,

목표가 항상 바뀌는 얄궂은 운명
아무데도 없는가 하면, 어디에고 있을 수 있지!
인간은 절대로 지치지 않는 희망을 안고
휴식을 찾아 미친 녀석처럼 계속 달린다.

우리의 영혼은 이카리 섬 찾아가는 돛대 세 개 달린 배,
하나의 목소리가 갑판 위에 울린다. '눈을 떠라!'
미쳐 날뛰는 열렬한 목소리가 장루(檣樓)에서 외친다.
'사랑......영광......행복!' 지옥행이로군! 암초로구나!

망보는 사나이가 신호를 해주는 섬들은
모두 운명에 의해 약속된 '황금의 나라'
축제의 기를 쳐드는 '공상'이
아침 햇빛에 찾아낸 건 암초일 뿐.

오, 환상적인 나라를 사랑하는 가엾은 사나이여!
녀석을 사슬에 묶어 바다에 던져야 할까,
신기루가 심연을 깊게 만드는
저 주정뱅이 뱃사공, 아메리카 발견자를?

늙어 빠진 집시처럼, 발은 진창을 밟으면서
코를 공중에 쳐들고 찬란한 천국을 꿈꾼다.
마술에 걸린 그의 눈은 카푸아 도시를 발견하고
어디에서고 촛불이 빈민굴을 비춰 준다.





놀라운 여행자여! 바다처럼 깊숙한 그대들의 눈 속에서
얼마나 고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읽어내는가!
그대들의 풍요한 기억 담은 보석상자 우리에게 보여다오.
별과 대기로 만들어진 그 신기한 보석들을.

우리는 증기도 돛도 없이 여행하고파!
우리의 권태로운 감옥을 즐겁게 하기 위해
화포처럼 펼쳐진 우리의 정신 위에
수평선을 그림틀 삼아 그대들의 추억 펼쳐 놓았다오.

말해 주렴, 그대들의 본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보았네,
별과 물결과 모래밭을
숱한 뜻밖의 재난과 충격에 부딪치면서도
우리는 권태를 털어내지 못했다, 여기서처럼.

보랏빛 바다 위의 태양의 영광
석양 속에 잠든 도시의 영광
우리의 가슴속에 불안한 열정 불태워서
매혹적인 석양의 하늘 속에 우리를 잠기게 한다.

제 아무리 호사스런 도시도, 아무리 웅장한 경치도
구름이 무심히 만들어 내는 것들의
저 신비로운 매력엔 비길 수 없었고
언제나 욕망은 우리를 소심하게 하누나!

---향락은 욕망에 힘을 북돋워 준다.
욕망, 쾌락을 거름하여 자라는 늙은 나무여,
네 껍질은 살이 쪄 딱딱해져도
네 가지는 태양을 더욱 갈망하는구나!

너는 줄곧 켜지기만 할 테냐, 실편백보다
더 검질긴 큰 나무여! ---하나 우리는 정성들여
욕심 많은 그대들의 사진첩 위에 몇 장의 스케치를 모아두었다.
먼 나라의 것이라면, 무엇이고 아름답게 여기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코끼리 코를 가진 우상에 절을 하였고
찬란한 보석으로 장식한 옥좌에도 절을 하였다.
신화 속의 휘황찬란한 궁궐들은
그대들의 재벌에겐 파산의 꿈이 되고

눈을 황홀케 하는 의상들
이빨과 손톱 물들인 아낙네들
그리고 뱀이 애무하는 교묘한 요술쟁이가 되리.





그리고, 또 그리고는?





오, 유치한 인간들이여!
가장 중요한 일을 기억하고자
굳이 찾아다니지 않았건만, 우리는 도처에서 보았다.
숙명적인 사닥다리 위에서 아래까지
불멸의 죄악에 시달리고 있는 광경을.

아낙네는 비천한 노예, 교만하고 어리석어
심각하게 제 몸을 숭배하고, 혐오 없이 제 몸 사랑했고
사내는 탐욕스런 폭군, 방탕하고 지독하고 욕심이 많아
노예 중의 노예요, 하수도에 흐르는 구정물.

아마튜어 사형집행인, 흐느끼는 순교자
피로 양념치고 맛을 내는 잔치
독재자를 약올리는 권력의 독약
또한 휘두르는 채찍을 사랑하는 백성

우리의 종교와 비슷한 여러 가지 종교들
모두가 하늘로 기어오르고
성령은 깃털의 잠자리 속에서 딩구는 성미 까다로운 자처럼
수난과 고행 속에서 쾌락을 찾고

수다스런 인류는 제 재주에 취하여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어리석어
미칠 듯한 고뇌 속에서 하나님께 외친다.
"오, 나의 동류, 내 주여, 나는 그대를 저주하노라?"
'치매'를 몹시 사랑하는, 그래도 덜 어리석다는 자들은
'운명'에 의해 울안에 갇힌 무리들을 피하여
끝없는 아편 속에 피신하였도다!
---이것이 온 지구의 영원한 보고서니라.





쓸쓸한 예지, 이것이 여행에서 얻는 열매인가!
세상은 단조롭고 작아서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언제나 우리의 모습을 비춰 준다.
권태의 사막 속에 있는 소름끼치는 오아시스여!

떠나야 하나? 머물러야 하나? 머무를 수 있거들랑 머무르려무나.
떠나야 하거든 떠나라. 어떤 이는 달리고, 어떤 이는 웅크린다.
악착 같은 서글픈 원수, 시간을 속이기 위하여!
방황하는 유태인처럼, 또 사도들처럼.

아!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 치사한 망투사를 벗어나려면
마차도 선박도, 아무것으로도 못 당하리.
그 중에는 제 요람 안에서 그를 죽일 수 있는 이도 있다.

드디어 그가 우리 등뼈 위에 발을 올려놓으면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를 외칠 수 있으리라.
그 옛날 우리가 중국을 향해 떠나던 것처럼
눈은 바다를 응시하고 머리털은 바람에 날리며

우리는 '암흑'의 바다를 향해 돛을 올리리,
젊은 여행자처럼 한없이 즐거운 심정으로
들리는가, 매혹적인 저 구슬픈 목소리의 노래가!
"이리로 오라! 저 향기로운 '로터스'

그 열매를 먹고자 하는 그대들이여!
여기가 바로 그대의 마음 굶주려 찾는 기적의 열매 거두어 들이는 곳,
와서 취하여라, 영원히 끝이 없는
이 오후의 기묘한 감미로움에!"

귀에 익은 억양에 우리는 망령인가 여겨 본다,
저기 우리의 필라드들이 우리를 향해 팔을 뻗는다.
"그대 가슴 식히려 그대의 엘렉트라 곁으로 헤엄쳐 와요!"
이렇게 속삭인다, 옛날 우리가 그 무릎에 키스하던 여인이.





오, '죽음', 늙은 선장, 때는 왔도다! 닻을 올리자!
이 고장에 우리는 싫증이 났어, 오, '죽음'이여! 출범 준비를 하자!
비록 하늘과 바다가 먹물처럼 검다 해도
너도 잘 알다시피, 우리의 마음은 광명에 차 있다!

네 독소 우리에게 부어서, 우리의 기운을 돋우어 주렴!
그토록 그 불길에 우리의 두뇌는 타올라
'지옥'이건 '천당'이건 무슨 상관 있으랴?
심연 깊숙이 '미지'의 밑바닥에 잠기고 싶다.
새로운 무엇을 찾아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