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화 관 련

영화속에 숨겨진 경제이야기 27 '주토피아'

eros 2016. 9. 22. 17:40


<주토피아>-이상적 동물의 세계 공동체 ‘소셜믹스’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를 ‘유토피아(Utopia)라 부른다. 그리스어의 ‘없다’ 또는 ‘좋다(u)’와 ‘장소(toppos)’를 합친 단어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세상에 없는 곳이지만 동시에 좋은 곳이라는 의미다. 1516년 토머스 모어는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라는 책을 썼다. 유토피아가 추구하는 사회는 평등이다. 부자와 빈자가 없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없어야 한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서로의 개성을 인정하며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없지만 좋은 곳’이 있을까? 디즈니가 창조한 이상적인 동물들의 세계가 ‘주토피아’다. 토끼 주디 홉스는 경찰관의 꿈을 꾼다. ‘주토피아는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세상’이라고 믿던 주디는 마침내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주차단속원이다. 때마침 의문의 연쇄실종사건이 벌어진다. 경찰팀장은 주디에게 48시간 안에 사건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파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주디는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와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선다. 평화로운 주토피아의 평화를 깬 포식동물들의 만행인 줄 알았던 이 사건에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다.



주토피아는 10%의 포식자와 90%의 초식동물들이 살고 있다. 시장인 사자 라이언 하트의 철학은 명확하다. 강력한 동물 통합정책을 통해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들이 한데 어울려 살도록 한다는 것이다. 라이언 하트는 비서로 양을 두고, 토끼 주디를 경찰관으로 뽑는다.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도록 섞는 것을 ‘소셜믹스(Social Mix)’라고 한다. ‘사회적 혼합’이라는 뜻의 소셜믹스는 다양한 소득계층, 세대, 인종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통합정책 전반을 의미한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함께 사는 것이 중요했다. 서로 부대끼며 살 때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셜믹스는 사회통합과 함께 서로 다른 사회적 계층에 동등한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제임스 실크 버킹엄은 빅토리아 모델타운을 제안했다. 이 타운은 가로·세로 1.6㎞ 정사각형 부지에 직업과 소득수준이 다양한 주민 1만명이 모여 살도록 했다. 사회계층 간 반목이 심한 영국 사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조치였다. 소셜믹스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중요한 주거전략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소셜믹스 개념을 적극 도입했다. 2005년 공공주택분양 때부터 소셜믹스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섞어만 놓는다고 소셜믹스가 되지는 않는다. 추가적인 조치들 없이는 부자와 빈자 간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휴거’가 대표적이다. ‘휴먼시아 거지’라는 뜻으로 인근에서 분양주택 거주자들이 임대주택 거주자들을 폄훼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휴먼시아는 토지주택공사(LH)의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브랜드다.

라이언 하트 시장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유지돼 오던 주토피아는 주디의 한마디에 붕괴된다. 연쇄 살인사건을 좇던 주디는 포식동물들이 갑자기 거칠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주디는 “포식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야수의 본능을 갖고 태어난다”고 결론내 버린다. 두려움에 빠진 초식동물들은 육식동물을 몰아내고, 주토피아는 분열된다. 하지만 육식동물들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사나워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주디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만 이미 공동체가 무너진 뒤다.

소셜믹스는 강력한 정책적 의지가 없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서로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원체 커서 조그마한 문제로도 큰 갈등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특별해져요. 노력을 하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변화의 시작은 바로 당신이고, 나. 정확히는 우리 모두랍니다.” 연쇄실종사건을 해결한 주디의 연설에는 소셜믹스 성공의 조건이 담겨 있다.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