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에 숨겨진 경제이야기 25 오즈의 마법사와 금본위제
소년은 ‘오즈의 마법사’를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제목은 ‘오즈의 마법사’인데, 주인공은 소녀 도로시라는 것이다. 도로시의 모험에 심장 없는 양철나무꾼과 겁쟁이 사자, 두뇌 없는 허수아비가 동행한다. 그렇다면 제목이 ‘도로시와 3명의 친구들’ 정도는 돼야 적당하지 않을까. 마법사 오즈는 영웅과 거리가 멀다. 그냥 늙고 쇠약한 괴짜 마법사일 뿐이다.
샘 레이미 감독의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Oz; the Great and Powerful, 2013)은 제목에 충실한 영화다. 마법사 오즈(오스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오즈가 어떻게 환상의 나라 오즈로 가게 됐으며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일종의 프리퀄(Prequel)이다. 프리퀄이란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을 말한다.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L 프랭크 바움이 1900년에 쓴 소설이다. 1939년에는 컬러영화가 나왔다. 영화의 테마곡인 ‘Over The Rainbow’는 최고의 영화음악으로 남아 있다. 마녀의 관점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한 뮤지컬도 있다. ‘위키드’다. 서쪽나라 마녀와 남쪽나라 마녀 글린다의 시각으로 풀어나간다. ‘위키드’는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괴상한 서쪽마녀의 삶과 시간’이 원작이다.
영화는 캔자스 사막, 작은 서커스단에서 시작한다. 눈속임과 트릭으로 마술을 하던 오스카(제임스 프랭코 분)는 동료를 피해 열기구를 타고 달아나다 회오리바람에 휘말린다. 그리고 뚝 떨어진 곳이 오즈다.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 경제학계에도 재밌는 논쟁을 남겼다. 1964년 고등학교 교사인 헨리 리틀필드가 ‘바움의 책에 깔려있는 우화에 대한 대략적인 언급’이라는 칼럼을 통해 오즈의 마법사가 미국의 1900년대 초 통화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에서는 금본위제를 채택했는데 ‘오즈의 마법사’는 서민을 위해 은본위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본위제란 금에 비례해 화폐를 찍어내는 제도고, 은본위제는 은을 기준으로 화폐를 찍어내는 제도다. 미국은 1873년 화폐주조법을 통해 금본위제를 확정했다. 하지만 금본위제 채택 이후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겪었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가는 이를 지지했다. 물가가 하락하면 빌려준 돈의 가치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사과 1개에 100원이다. 그런데 물가가 떨어져 50원이 됐다고 치자. 이제 100원으로 사과 2개를 살 수 있다. 돈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돈의 가치가 높아지는 게 좋다. 반면 돈을 빌린 농민, 노동자는 인플레이션이 필요했다. 그게 은본위제였다.
1990년 경제학자인 휴 로코는 ‘통화 우화로서의 오즈의 마법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을 보면 도로시는 미국의 전형적인 서민을 의미한다. 오즈(Oz)는 금의 단위인 온스(Ounce)의 약자로 금본위제를 뜻한다. 도로시가 걷는 노란 벽돌길도 금본위제를 의미한다. 도로시는 험난한 여정을 거치는데, 금본위제로 인해 혼란을 겪은 미국 사회라고 한다
에메랄드성은 수도 워싱턴 DC다. 에메랄드빛은 화폐를 상징한다. 에메랄드성에 사는 마법사는 당시 무능한 존재로 평가된 클리블랜드 대통령이다. 허수아비는 순진한 농민을, 양철 나무꾼은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산업노동자다. 사자는 용기 없던 대선후보인 윌리엄 브라이언 제닝스다. 남쪽과 북쪽의 착한 마녀는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지역이다. 동쪽과 서쪽의 나쁜 마녀는 금본위제만을 지지했던 지역이다.
그렇다면 도로시가 신고 있던 은구두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은본위제다. 마법사(대통령)도 해결해주지 못했던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가 구두(은본위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재밌는 해석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