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에 숨겨진 경제이야기17 '암살'
<암살>-독립을 생각 못한 친일파 ‘귀납법의 오류’
대한민국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봐야 할까. 1945년 광복부터일까, 1948년 대한민국 건국부터일까.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9%는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고 답했다. 헌법의 전문에도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따랐음을 뚜렷히 명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는 건국 96년째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은 광복이 연합국의 승리로 거저 얻은 행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암살작전을 편다고 조선이 독립하겠느냐”는 말에 독립투사 안옥윤(전지연 분)은 답한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영화 <암살>의 배경은 1933년이다. 김구의 임시정부는 두 명을 암살하기로 한다.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무루와 친일파 강인국이다. 일본이 모르는 3명의 암살단원이 만주에서 경성으로 파견된다.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전문가 황덕삼이다. 이들의 뒤를 쫓는 인물들이 있다. ‘하와이 피스톨’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다.
일제시대 친일파는 왜 부역했을까. 친일경찰 염석진의 말에 답이 있다.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어?” 일제시대는 36년간이나 계속됐다. 그 시절 조선인들은 일제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염석진의 판단 실수는 전형적인 ‘귀납법의 오류’다. 귀납법의 오류란 ‘지금까지 그리 해 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을 때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귀납법은 개별적인 사건들을 연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최종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18세기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거위의 예를 들어 귀납법의 한계를 설명했다. 어느 농부가 거위에게 사료를 준다. 처음에 거위는 “이 인간이 왜 이러지?” 하면서 의심을 한다. 그런데 매일 농부가 사료를 준다. 거위의 생각이 달라졌다. “이 인간은 나를 좋아하는구나. 앞으로도 계속 사료를 주며 키울 거야” 어느날 농부는 거위를 잡는다. 성탄절 식탁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흄은 “개별적으로 관찰한 사실이나 원리를 보편타당성을 지닌 확실한 사실이나 원리로 결론 짓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롤프 도벨리가 지은 <스마트한 생각들>에 보면 귀납법의 오류를 이용한 사기행각이 나온다. 투자자 ㄱ은 경제분석가를 자처한 ㄴ으로부터 주가를 예측하는 메일을 매일 받았다. 그런데 ㄴ의 주가 예측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 마침내 ㄱ은 ㄴ에게 투자를 해달라며 거금을 맡겼다. 하지만 ㄴ은 이 돈을 가지고 튀었다. 알고 보니 그는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ㄴ이 쪽집게 전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ㄴ은 주가상승과 주가하락을 예측하는, 각각 5만개씩 10만개 메일을 무작위 수신인에게 보냈다. 주가가 상승하자 한 달 뒤 ㄴ은 주가상승 메일을 보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절반은 주가상승을, 절반은 주가하락을 예측하는 메일을 보냈다. 이런 일을 계속 반복했더니 결국은 주가를 맞춘 메일만 받은 사람들만 남게 됐다. 그들은 ㄴ을 ‘주가 예측의 달인’으로 믿게 됐다.
일상에는 이런 귀납법의 오류 상황이 많다. 우리는 항상 건강할 것이라 믿는다. 공무원들은 국가가 항상 월급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재벌 관련주는 언제나 오른다고 생각한다. 경제는 언제나 성장을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매일 똑같지 않다. 나이가 들면 건강이 나빠지고, 경제위기에 빠지면 공무원 봉급도 삭감될 수 있다. 롯데그룹처럼 오너리스크가 커지면 재벌주는 악재가 된다. 경제는 때로 뒤로 후퇴하기도 한다.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 부동산 거래를 늘리면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 신봉하면 ‘귀납법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때는 고성장 시대였고, 지금은 저성장 시대다. 귀납법은 뉴노멀 시대에는 무력해진다.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