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을 그으며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동백꽃 지다'

eros 2016. 4. 4. 22:30

'동백꽃 지다' 라는 작품을 보고 계십니다. 화가는 붉은 동백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제목은 사뭇 달랐습니다. 꽃피는 계절. 만개한 동백 앞에는 '지다' 라는 소멸의 단어가 붙었습니다.

화가의 이름은 '강요배', 오늘(4일) 앵커브리핑은 화가의 이름에 얽힌 조금은 슬픈 이야기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8년 전 1948년 봄. 날짜로는 바로 어제… 제주인 전체의 10%가 희생된 4.3사건이 있었습니다.

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도민들의 봉기…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이른바 '빨갱이'를 색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철희" "박순이"….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 이어도 셋이어도 구분 없이 처형되었던… 야만적 이념의 시대.

그 참담함을 몸으로 겪은 한 아버지는 결심했습니다.

내 아이의 이름은 절대 같은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요나라 요. 북돋을 배. 강요배라 지었습니다.

가슴이 묵직해지는 이야기지요. 그 후로도 68년… 숨죽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흐드러진 유채꽃만 보아도 텃밭에서 씨알 굵은 고구마가 나와도 죽임을 당해 묻힌 그들 생각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합니다.

정부는 지난 2003년 제주도민들에게 학살을 공식 사과했습니다. 4.3 위령제는 국가추념식으로 격상되었지요.

허나 낡고 견고한 이념의 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어제 열린 국가 추념식엔 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인들의 발길만 분주했을 뿐, 그들의 떠들썩한 정치적 구호는 공허했습니다.

대통령은 10년째 자리를 비웠고, 일부 단체들은 여전히 '희생자 재심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백꽃 지다'의 작가 강요배의 형의 이름은 강거배… 두 아들을 잃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몸부림.


그리고 뚝 뚝 떨어지는 붉은 동백 사이로 그렇게 망각이라는 이름의 더께가 쌓여가는 찬란한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