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에 숨겨진 경제이야기3 "우리도 사랑일까"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속 "나비효과
세상의 많은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인연도 다름 아니다.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는 단단하던 결혼생활 5년이 의외로 쉽게 무너지는 일상을 보여준다. 여성감독 사라 폴리는 권태기를 맞은 아내의 복잡한 심리를 꽤나 끈적하게 묘사한다.
프리랜서 작가 마고는 결혼 5년째다. 남편은 다정하고 유머 넘치는 셰프다. 결혼생활은 행복하다. 어느날 캐나다 관광홍보자료를 만들기 위해 찾은 루이스버그 요새에서 우연히 대니얼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 된 그녀는 대니얼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알고 보니 대니얼은 자신의 집 맞은편에 사는 이웃이다. 마고는 대니얼을 외면하려 하지만 자꾸만 눈이 간다.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남편에게 마고는 실망한다. 마고와 대니얼은 30년 뒤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마음은 점점 요동친다. 마고가 또래와 수영장에서 어울린 자리, 오래된 사랑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다. “가끔 새로운 것에 혹해. 새 것들은 반짝이니까.” 그러자 옆 부스에서 샤워를 하던 노인들이 말한다. “새 것도 헌 게 된다우.”
마고는 관광지 루이스버그에서 불륜한 남자를 매질하는 퍼포먼스에 우연히 끌려나간다. 마고가 때리길 망설이자 관광객 속에 있던 대니얼이 불쑥 나타나 “좀 성의 있게 때려보라”며 채근한다. 마지못해 매질 퍼포먼스를 한 마고는 대니얼에게 톡 쏘며 말한다. “오지랖 한 번 대단하시네.”
이 작은 만남이 마고가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불씨가 된다. 사소한 일이 나중에 예기치 못한 엄청난 일을 유발하는 것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고 한다.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컴퓨터로 날씨 계산을 하다 같은 계산을 반복하는데도 자꾸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알고 보니 소수점 네 자리 이하 값을 반올림하는 데서 발생한 미세한 차이 때문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로렌츠는 1963년 ‘브라질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불 수 있다’며 나비효과를 발표했다. 기상예측이 힘든 이유도 지구상 어디선가 일어나는 조그마한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비효과는 ‘카오스 이론’으로 확대됐다. 카오스 이론이 나오기 전 과학자들은 과학은 정해진 질서에 따라 움직이며, 여기서 이탈되는 변화는 비정상적인 ‘잡음’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카오스 이론은 ‘잡음’이 질서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뀌는 질서의 형태는 예측할 수 없었다. 카오스 이론은 ‘뉴튼 이후 인간의 자연관을 가장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로렌츠는 처음에는 갈매기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그러다 나비가 더 시적이라는 이유로 나비효과로 바꿨다고 한다.
그리스 사태가 터지자 많은 전문가들이 ‘나비효과’를 걱정하고 있다. 유럽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 상황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도 있다. 때마침 중국 증시가 폭락하자 ‘그리스 사태의 나비효과’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선진국의 투자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옮겨가면서 중국 증시의 버블이 꺼진다는 것이다. 증시 전문매체인 제로헷지닷컴은 “그리스는 자신으로 인한 나비효과를 잘 알고 있다”며 그리스가 벼랑끝 전술을 펴는 이유를 설명했다
유동성 장세로 떠받치고 있는 금융시장에 대한 경고도 나비효과로 설명한다. 채권왕 빌 그로스는 “글로벌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이라 어떠한 작은 변화가 있어도 큰 재앙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실업통계가 개도국의 증시를 뒤흔드는 일은 이제 잦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마고와 대니얼은 함께 살 운명이었다’고 생각하면 전통적인 과학이고, ‘마고가 우연히 대니얼과 만나는 바람에 운명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나비효과다. 어느 쪽이 맞을까?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