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을 그으며

손석희 앵커브리핑중 "앗! 빚쟁이다…"

eros 2015. 8. 24. 13:19

"앗! 빚쟁이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60년대 중반으로 기억합니다만 신문 만화에서 본 기억을 재구성해서 다시 그려봤습니다. 제가 그린건 아니고요 <팩트체크> 맡고있는 김필규 기자가 그려줬습니다.

냉면이 이런 용도로 쓰인다는 풍자가 재밌기도 했고, 모두가 못살던 시절의 한 풍경으로 머릿속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여기서 냉면은 빚쟁이를 막아주는 단절의 기능을 하지요.

그런데 이런 냉면도 있습니다.

"북측에서 회담이 열릴 때는 평양냉면이 남측에서 열릴 때는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제공됐다." -백현석·최혜림 '냉면열전'

1970년대 초반 적십자회담의 점심메뉴로 등장한 것은 다름아닌 '냉면'이었습니다.

평양에서도, 서울에서도 하나같이 '냉면 한 그릇'을 내놓았다지요. 여기서의 냉면은 단절이 아닌 소통의 냉면입니다.

'냉면 한 그릇'.

오늘(24일) 앵커브리핑이 주목한 말입니다.

냉면 한 그릇에 담긴 마음. 무엇이었을까요.

'이산가족 상봉'을 주제로 남북이 처음 만난 1970년대.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기억이 생생하던 때였습니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 서로에 대한 적의를 풀어준 것… 음식이었습니다.

당시 생존해 있던 실향민은 줄잡아 1000만 명. 남북으로 나뉘어 있지만, 한때는 밥상을 함께한 '식구'였다는 것. 고향이 같다는 건, 입맛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십년이 흘러, 2015년…강 대 강 일촉즉발의 상황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인정하고 대화하라" 독일 '동방정책'의 설계자였던 에곤바르의 말입니다.

바로 지난주 세상을 떠난 그는 서독과 동독이 서로를 인정한 뒤 "토론하고 토론하고 토론"하면서 서로간의 접점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판문점에선, 남북간의 멀고도 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들의 테이블에도 냉면이 올라오곤 했을까… 여름이니까 물냉면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냉면은 단절을 위한 냉면일까, 소통을 위한 냉면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상황의 엄중함에 비춰볼 때 너무 한가한 것일까요?

남과 북의 냉면을 이야기한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는 얼마 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냉면 한 그릇 나눠먹자는데…" -경향신문 8월 21일

얼굴을 붉힐 수는 없을 테니까요…

또한 남과 북은 원래 서로 빚쟁이처럼 피해야 할 사이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