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6년 3월 21일 화요일, 조간 신문사설

eros 2006. 3. 21. 12:20

2006년 3월 21일 화요일,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입맛 떨어지게 하는 고소득자 탈세

 

국세청이 어제 발표한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 실태와 규모는 사회적 공분을 낳기에 충분하다. 공평과세로 가는 길이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는 것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금탈루 혐의가 구체적으로 포착된 422명을 지목해 집중 조사한 것이어서 자영업자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해도, 우리사회에서 매년 수억원씩 세금을 탈루하는 집단이 떵떵거리며 자산을 불려나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선 입을 다물기 힘든다.

2003~4년 두 해를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에서는 가구 당 1년에 6억3,000만원을 벌어 57%인 3억6,000만원의 소득을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웨딩홀 골프연습장 대형 사우나 등 대규모 재산을 가진 기업형 자영업자의 소득탈루율은 74%(6억원)에 이르렀다.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직과, 유흥업소 집단상가 등 기타 업종도 50% 안팎인 2억~4억원을 은폐해왔다고 한다. 월급으로 힘들게 살면서 유리지갑에서 세금을 100% 원천징수 당하는 봉급생활자들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모두 3,000여억원의 세금탈루가 밝혀져 1,000여억원을 추징당한 이들 422명의 총 재산이 10년 전의 2.8배인 1조 6,000억원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탈루소득으로 부동산 투기 등을 일삼아 재산을 천정부지로 불려왔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이번 적발이 음성거래 척결 등 과세정상화 기반을 착실히 쌓아온 데 따른 첫 성과물”이라는 정부의 말도 귀에 잘 와닿지 않는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은 조세정의는 물론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사회 전반의 형평성과 직결된 과제다. 국세청이 어제부터 기업형 319명을 2차로 집중 조사하는 등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것은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의욕이 지나쳐 가진 자 전체를 매도하거나 ‘본보기를 통한 학습효과’에 너무 기대면 메시지가 흐려지고 또 다른 내성을 키워 정책의 실효성을 잃게 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겨레신문] 3년 ‘살육’도 부족한가
 
3년이면 1100일 가까이 된다. 이 기간 이라크에서 미군이 하루 평균 2명남짓 숨졌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하루 50명꼴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 한 명에 저항세력 25명의 비율이니 미국은 ‘효율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이들 외에 이라크 민간인도 적게는 3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까지 목숨을 잃었다. 하루 30~90명이나 된다. 이게 살육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라크 침공 세 돌을 맞은 어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해방 시작의 세 번째 기념일”이라며 “우리는 승리로 나아갈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더 많은 살육이 필요하다는 태도다. 지구촌 주요 도시마다 반전시위가 벌어지고, 이라크인 대다수가 미군 철수를 바라고, 미국인 절대 다수까지 ‘가치 없는 전쟁, 지는 전쟁’이라고 비판해도 부시 행정부는 모르쇠다.

이라크 침공 정당성 여부는 이제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다. 거짓 명분 뒤에 감췄던 미국의 벌거벗은 패권욕과 이권욕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태를 악화시켜 놓고는 ‘미군이 떠나면 상황이 더 나빠진다’고 협박한다. 나아가 최근에는 이란 공격설까지 솔솔 흘러나온다. 끝없는 ‘미국발 세계 안보불안’이다. 중동 민주주의는 중동인 스스로 피와 땀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지 미국이 탱크와 미사일로 강요할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살육을 멈추지 않는 것부터가 반민주적이다.

베트남전이 ‘20세기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였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점령은 21세기 인류 양심의 시험대다. 세계는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전제로 이라크 및 중동 문제의 해결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줏대없이 자이툰 부대를 보낸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동아일보] 財界를 갑자기 살갑게 대하는 열린우리당

 

어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실로 오랜만에 경제4단체장과 정책간담회를 했다. 여당 측은 경제계의 건의를 들은 뒤 “투자활성화 등을 위한 건의사항을 모두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양측의 간담회는 19개월 만이다. 북한 정권과의 관계보다도 멀었다고 할 정도다. 게다가 2004년 8월 18일의 간담회 분위기는 적대적(敵對的)이었다. 재계가 반(反)기업 정서를 걱정하자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존경받을 일인데 그렇게 안 되고 있다”면서 “가진 사람이 먼저 오픈하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또 재계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비롯한 규제의 완화를 요청하자 강봉균 의원은 “시민단체부터 설득해 보라”고 되받았다.

그러던 여당이 갑자기 재계를 살갑게 대하니 나쁠 것이야 없겠지만, 지방선거를 70여 일 앞두고 뭔가 분위기를 띄워 보려는 의도가 아닌지 궁금해진다. 재계는 이번 간담회를 자청한 여당의 진의(眞意)를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재계를 개혁 대상, 더 나아가 타도 대상으로까지 여기던 여당이었으니 재계로선 그럴 만도 하다. 경제계 주변에서는 그동안 ‘세상 물정 모르는 386 의원들’에게서 두꺼운 벽을 느꼈고, 국내에서 기업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懷疑)도 컸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전후해 삼성 등 ‘대기업 때리기’에 앞장섰던 쪽도 여당이다. 대통령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거들었다. 오죽 몰렸으면 정부에 싫은 소리를 삼가고 엎드려 있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작년 10월 이례적으로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가 지나치게 확산돼 기업활동 위축과 브랜드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발표문을 냈을까.

열린우리당이 진실로 태도를 바꿨다면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을 중시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활성화 방안을 ‘기업 편에 서서’ 찾아내야 한다. 표를 노린 ‘일시적 살가움’이라면 역겨운 일이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 만들기’는 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을 위한 과제다.


[조선일보] 국세청 다음엔 어디가 '양극화 선동' 나서나

 

국세청이 작년 말 세금 脫漏탈루 혐의를 잡은 고소득 자영업자 422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한 결과 평균 소득 탈루율이 57%였다고 발표했다. 탈루율이란 실제 번 소득 중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은 소득의 비율이다. 그러니까 이들 자영업자가 가구당 1년 평균 6억3000만원을 벌어 2억7000만원만 신고하고 나머지 3억6000만원(57%)에 대해선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세청 발표대로라면 우리 사회의 고소득층은 국민의 기본 의무마저도 외면하는 나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국세청 통계는 의도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통계를 이용한 일종의 詐術사술이다. 만일 性犯罪성범죄 前科전과가 있는 혐의자 100명을 데려다 조사해보니 범죄율이 99%였다고 하자. 그게 의미 있는 통계일까. 강도 전과의 前歷전력이 있는 용의자 400명을 체포해 조사해 봤더니 90%가 실제 범행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세청이 이미 탈루 혐의가 확인된 저소득 자영업자 400명의 평균 소득탈루율 통계를 냈다고 해서 거기에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 수 없다. 틀림없이 국세청도 이런 건 발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번에 ‘財産家型재산가형’ 자영업자 탈루율이니,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자영업자 탈루율이니 하며 국세청이 온갖 공을 들여 내놓은 업종별 탈루율 통계는 의미가 없는 죽은 숫자다.

국세청은 그간 매년 고소득층 탈루자에 대한 세무 조사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평균소득탈루율이란 걸 집계해 내놓은 적도, 더구나 그들의 지난 10년간 보유재산 變動변동까지 추적해 재산이 몇 배가 늘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표로 만들어 돌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국세청이 왜 이번에 이런 유별난 행동을 했을까. 그 이유는 “(고소득층의) 소득탈루는 공평과세의 문제만이 아니라, ‘富부의 兩極化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발표문 속의 바로 이 대목을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국세청은 발표자료 한편에는 ‘이번 통계를 고소득 자영업자 전체의 평균 탈루율로 볼 수는 없다’고 단서를 달아놓았다. 국세청 스스로 지금까지 한 말은 전혀 無意味무의미하다고 실토한 셈이다. 결국 汎범 정부적 양극화 선동에 국세청만 팔짱 끼고 있을 수 없어 강제 徵用징용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해도 특정 계층의 탈루율이 60~70%라는 얘기는 뒤집어 보면 그만큼 국세청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발일 따름이다.


[중앙일보] 복지병폐가 부른 프랑스 대학시위

 

최초고용계약(CPE) 도입에 반발하는 프랑스 대학생 시위가 150여만 명이 합세하는 대규모 폭력 시위로 치닫고 있다. 고용주가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채용 2년 이내에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한 법 때문이다. 연 2%의 낮은 경제성장률에 20%를 웃도는 청년 실업률을 고용 유연화를 통해 돌파하려는 프랑스 정부의 시도가 반대 시위로 좌초될 위기다.

이번 시위는 외견상으로 젊은 세대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과잉복지가 낳은 병폐가 곪아 터진 것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근로를 국민의 권리로 간주한다. 일자리 찾아주는 것은 정부의 의무로 여겼다. 마음에 안 드는 직장을 거부할 수 있고, 실업자는 두둑한 실업수당을 받는 게 제도화돼 있다. 이런 시스템은 경제가 잘나갈 때면 별 탈없이 굴러갈 수 있다. 그러나 국제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제가 저성장에 빠지면 경직된 고용제도와 과잉복지는 족쇄로 작용한다. 프랑스 정부의 CPE 도입도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복지와 고용시스템은 한번 혜택을 올리게 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이 함부로 선심 쓸 대상이 아니다. 이미 기득권으로 굳어진 혜택을 누가 쉽게 포기하겠는가. 프랑스같이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면 대응하기도 고약하다. "자기들은 다 누려놓고 왜 우리 세대에겐 고통을 강요하느냐"는 젊은 세대의 항변을 공권력으로 누르기도 어렵다.

프랑스 시위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4월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비정규직 법안이나 정부가 손질을 검토 중인 국민연금개혁도 본질은 마찬가지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청년층 반발을 무마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이런데도 저소득층 긴급복지 지원 등 선심성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17대 국회 들어 의원발의 법안 3000여 건을 시행하려면 매년 138조원이 들 판이라고 밝혔다. 버는 데는 관심이 없고 쓰는 데만 관심이 있으니 걱정이다.
 

[경향신문] 남북 철도 연결사업과 철도공사 사장

 

국제관계에서 합의문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합의문의 문면보다는 합의 이면에 숨어 있는 내용이나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현실인식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 문제가 좋은 예다.

남북한과 러시아의 철도 책임자들은 최근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서 만나 TKR와 TSR 연결을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합의했다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고 한다. 철도공사는 의장성명에 대해 “국영 러시아 철도가 가까운 시일 안에 한반도 종단철도의 주요 구간인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 구간 개량사업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음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TKR와 TSR 연결사업 논의에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시사하는 철도공사의 해석이다.

정부의 평가는 철도공사와 차이가 있다. TKR와 TSR 연결사업에 대해서는 그동안 3자 간에 몇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원칙적 합의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논의도 그 수준에 머물렀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분석이다. 철도공사가 의장성명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해 국민의 기대감만 부풀린다는 얘기다.

철도공사는 지난달초 이철 사장의 방북을 앞두고 경의선 열차를 타고 독일 월드컵을 응원하러 가자는, 이른바 ‘월드컵 평화열차’를 홍보했다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준 적이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 정치인 출신 사장 때문에 철도공사가 홍보에 너무 매달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의선 연결과 TKR-TSR 연결은 민족적 사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다. 그렇지만 실질적 진전 없이 말만 앞세우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철도공사는 남북 철도연결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홍보보다는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진력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