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15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2008년 5월 15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오늘의 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080515목] ‘따뜻한 공동체’ 향해 함께 내딛겠습니다 - 사설-창간 20돌에 부쳐
세계 언론사상 최초의 국민주 신문으로 탄생한 <한겨레>가 15일로 창간 스무 돌을 맞았다. 멀고도 험난했던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회에 젖는다. 독재권력의 잔재가 위세를 떨치던 창간 초기 한겨레는 생존 여부가 불확실할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은 박해에 시달렸다. 북한 취재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리영희 논설고문이 구속되거나 편집국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권력이 강요했던 보도의 금기와 성역을 타파했다. 남북 분단의 항구화에 악용돼 온 냉전 이데올로기도 걷어냈다.
은폐돼 왔던 권력의 치부와 인권유린 실태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권위주의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한겨레는 또 제도언론이 외면했던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였다. 재벌의 부동산 투기와 정경유착 의혹을 파헤침으로써 재벌 개혁을 유도했다. 이렇듯 한겨레의 지난 20년 역사는 한국 민주화 진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회 전부문의 민주화 실현에 촉매제 구실을 했다. 한겨레가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신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런 기여도 때문일 것이다.
한겨레 창간 이후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권위주의 체제는 종식됐으며,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렸다. 이와 함께 대중의 관심사는 교육과 주거·환경·생명·의료복지 등 삶의 질 문제로 이동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민주 정권은 신자유주의에 편승하거나 방관함으로써 양극화의 심화를 불렀다. 그 결과 진보적 이념과 가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거부감은 깊어졌다.
이제 우리는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참여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에 민주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신뢰와 연대의 원칙에 입각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사회 양극화 등 한국사회가 직면한 크고 작은 위기의 타개 방안을 찾고자 한다. 물론 이는 결코 쉽지 않다.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함께 정확한 현실 분석과 장기적 전망이 요구된다. 대중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모색하는 유연한 자세도 필요하다.
우리는 평화와 인권 문제에서도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서 동북아, 그리고 세계로 외연을 넓혀 나아가야 한다. 통일을 지향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은 동북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세력과 국제적 연대를 통해 앞당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문제도 북한체제의 붕괴를 겨냥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권리 차원에서 지혜롭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미 100만이 넘은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와 점차 확산되는 다문화 가정의 문제도 더 외면하거나 미룰 수 없다.
눈길을 나라 밖으로 돌려보자. 냉전체제 종식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는 미국의 퇴조와 중국의 부상에 따라 다극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한-미 동맹 강화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대외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미 관계 개선과 중-일 화해 등 향후 동북아 질서의 역동적 재편 과정에서도 한국은 주변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에 근본적인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한국의 외교는 고립무원의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권력의 감시자이자 비판자로서 정치적, 경제적 지배 세력의 잘못에 대해 분명하게 시시비비를 가려 나갈 것이다. 우리는 또 새로운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창간 이후 추구해 온 남북의 화해협력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앞장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열린 자세로 토론의 장을 마련할 것이며, 우리와 다른 견해와 주장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나갈 것이다. 창간 20돌을 맞은 오늘, 우리는 민족·민주·민권을 추구했던 창간 정신이 여전히 유효함을 재확인한다.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시대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유연한 자세로 따뜻한 공동체 삶을 실현하기 위해 진보언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20080515목] 교원평가제 법안 폐기시킨 17대 국회의 배임
교원평가제 시행 근거가 될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그제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해 제17대 국회 임기만료(31일)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이로써 내년 3월부터 교원평가제를 전면 실시하려던 정부의 계획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교원평가제를 다시 살려내려면 제18대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다수 국민의 염원을 외면한 17대 국회의 직무유기와 배임(背任)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교원평가제 법안은 2006년 말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2.1%가 이 법안에 찬성했다. 교사들을 평가해 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공교육을 혁신해 달라는 국민의 열망이 그만큼 뜨거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 교육위원회는 1년 반 동안 이에 반대하는 교원단체들의 눈치만 봤고 법안은 결국 휴지가 됐다.
심지어 일부 의원은 교원단체들의 반대운동에 동조하기도 했다. “교원평가제는 교육정책 실패의 책임을 교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고, “교원에게 부담을 줄 수 있고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1인당 연간 4억 원이 넘는 활동비를 받는 의원들이 정작 국민의 뜻은 무시하고 교사들의 ‘철밥통’을 지켜주는 데 앞장선 것이다.
정부 법안은 평가결과를 교원의 능력개발 자료로만 활용하도록 돼 있고, 승진이나 성과급과는 관련이 없을 만큼 내용이 크게 완화됐다. ‘무늬만 평가’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국회는 이조차 깔아뭉개 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교원평가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부가 기존 법안을 그대로 국회에 다시 제출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선진국처럼 무능한 교사를 퇴출시킬 수 있는 근거까지 담은 새 법안을 내놓아야 하고, 제18대 국회는 국민의 뜻에 따라 강화된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080515목] 한·미 FTA, 이대로 날려버릴 건가
13, 14일 한미 FTA 청문회는 예상했던 대로 쇠고기 개방 논란만 벌이다 끝났다. 한미 FTA에 따른 피해 산업 대책과 비준 동의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이달 말이면 17대 국회도 끝난다. 이제 열흘 남짓 남았을 뿐이다. 다수당인 야당이 쇠고기 재협상 요구를 굽히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는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18대 국회로 넘어가면 비준동의안 상정부터 모든 절차와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원(院) 구성 문제까지 겹쳐 또 몇 달을 날려보낼 수밖에 없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아직까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의회에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FTA에 부정적인 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하고 있어 비준동의안 통과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먼저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해 미 의회와 행정부에 부담을 주고 압박해야 그나마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미 의회가 여름 휴회(休會)에 들어가는 8월 2일 이후엔 11월 대선까지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기회가 없다. 그 이전에 의회가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도록 하려면 우리 17대 국회가 일을 마무리 짓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다. 그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선 이후에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미 FTA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민주당 쪽 후보가 집권하면 최악의 경우 한미 FTA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무산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며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또다시 논란만 벌이며 몇 년을 끌게 될 수도 있다.
한미 FTA 발효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한국과 미국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한미동맹 관계의 복원(復元)과 대외 신인도(信認度) 측면에서도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FTA 협상 타결 이후 1년이 넘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두 나라 지도자와 정부, 정치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서울신문 사설-20080515목] 쇠고기 고시연기 안전성 확보 계기돼야
정부가 오늘로 예정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를 연기하기로 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어제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 출석해 “고시에 대해 334건의 의견제출이 있어 예정대로 장관 고시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정부가 장관고시를 연기하기로 한 것이 이 시점에서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광우병 괴담´으로 미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논란이 극에 달하고, 미국의 위생조건 완화를 강화로 오역하는 치명적 실수를 인정하는 등 쇠고기 수입협상이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 제시나 진상 규명도 없이 고시를 강행해 봐야 정부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킬 뿐이다. 광우병 불안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일부 국민들의 극한 투쟁에 불을 붙여 사회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가능성도 크다.
정부는 이번 장관고시 연기가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시간끌기에 머물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식품안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을 것을 당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협상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미국 정부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재발할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즉각 중단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방침을 공식적으로 양해한 만큼 이를 명문화해 고시에 반영해야 한다. 이는 검역주권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구두합의로 어물쩍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아울러 또 다른 실수가 없었는지 협상 내용을 꼼꼼히 살펴 한점의 의혹도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고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정부가 지금부터 어떻게 일을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080515목] 책임회피에 급급한 장관들의 한심한 행태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야당의 정치공세도 문제지만 관련 장관들의 무책임한 행태는 더 문제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청문회장에서 “주무 부서는 농림수산식품부다. 나는 사태가 불거진 뒤에 상세히 알게 됐다”면서 퇴장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한술 더 떠 “쇠고기는 외교부의 문제“라며 “농식품부와 복지부 장관은 대신 매를 맞았다”고 좌충우돌해 손발이 맞지 않는 정부의 실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장관 고시를 앞두고 벌어진 이 같은 장관들의 책임회피성 발언은 국민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한다. 협상을 주도했던 외교부 장관은 주무부서가 아니라고 발뺌하고 복지부 장관은 외교부 문제라고 깨우쳐주며 대신 매를 맞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지난 보름 동안 농식품부의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면 쇠고기 문제의 폭발성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문제에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이는 기본적인 자세와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오역 문제나 장관들이 발뺌하는 행태가 이를 말해준다. 힘을 합쳐도 난국을 수습하기 어려운 판에 장관의 자세가 이러하니 납득할 만한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새 정부 인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쇠고기 수입 문제는 미국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용함에 따라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야당도 더 이상의 정치공세는 무의미하다. 위생조건 고시는 방미 중인 특별점검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뒤에 해도 된다. 이보다는 손발이 맞지 않아 믿음을 주지 못하는 내각 등을 추스르는 것이 시급하다.
소통이 왜 부족했는지를 살피고 부처 간 유대관계 부족을 한탄만 할 게 아니라 문책할 사람은 문책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새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랐다. 내각을 추슬러야 국민의 불만을 달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 살리기에 탄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야당의 반대투쟁도 잠재울 수 있다.
* 오늘의 칼럼
[중앙일보 칼럼-노트북을 열며/신예리(국제부문차장)-20080515목] 아마추어는 아름답다
노트북을 열며노트북을 열며 지난 기사 보기“죄송하지만 1회용 카메라 한 대만 학급에 기증해 주겠습니까?”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1년여간 안식년을 보낸 한국의 모 여교수. 학기 초 딸아이 담임 선생님 말에 영문도 모른 채 카메라를 사 보냈다고 했다. 그 카메라는 학기가 끝날 무렵 아이 손에 들려 돌아왔다. “OO(딸 이름)의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지 않나요?”라는 편지와 함께.
알고 보니 선생님은 기증받은 카메라로 아이들 하나하나의 학교 생활 순간순간을 담아두었다가 깜짝 선물을 한 것이었다. 그토록 아이들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며 그 교수는 “과연 나 자신은 어떤 스승이었나”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나도 당시 중학생이던 딸과 함께 미국에서 연수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는 초기에 영어도 안 통하는 데다, 두고 온 친구들이 그리워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좋은 점이 딱 한 가지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을 진짜 인격적으로 대해 주신다”는 것이다.
수업 중 떠들어도 일단 좋은 말로 주의를 준다고 했다. 그래도 영 말을 듣지 않으면 복도로 따로 불러내 조용히 야단을 친단다. 다 큰 아이를 급우들 앞에서 혼냈다간 교육효과는커녕 수치심만 클 것이라는 배려 때문이란다. “그럼 한국 학교에선 안 그래?”라고 묻자 기막히다는 듯 아이가 답했다. “다 알면서 뭘 물어봐요?”
미국에서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가르치는 일을 너무 사랑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래서 박봉인 데다 교사들을 쥐어짜기로 호가 난 ‘낙오 아동 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으로 잡무가 산더미처럼 늘었어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선생님=좋은 선생님, 한국 선생님=나쁜 선생님’이란 소릴 하려는 게 아니다. 학급당 학생 수, 교사 1인당 수업시간 및 업무량… 양쪽의 교육환경을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이유가 수없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얘길 꺼낸 건 선생님들에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우리 교육의 난제들을 풀어갈 십자가를 져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구호만 거창한 교육개혁이 도대체 어느 세월에 달성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달라지면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방법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또 그 애들을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는 첫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수업 기술은 고사하고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정성마저 학원 교사만 못하다는 불만은 이내 사라질 터다. 사교육과의 경쟁을 강요당하는 이때 공교육이 생존할 길 역시 바로 그 첫 마음의 회복에 있을 터다.
이어령 선생은 최근 『젊음의 탄생』에서 “취업이나 자격시험 때문이 아니라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아마추어’가 되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사랑한다’는 뜻의 라틴어 ‘아마레(amare)’에서 유래한 아마추어는 프로보다 기량이나 수준이 떨어지는 게 절대 아니라고 했다. 자기 일을 밥벌이로 보느냐 사랑의 대상으로 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선생님들에게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돼주십사 당부하고 싶다. 해마다 경쟁률이 14~16 대 1이나 되는 교사임용고시(중·고교 기준)의 선발 기준 어딘가에도 이런 아마추어 정신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믿는다.
“다음엔 네가 어떤 글을 쓸지 기대되는 걸.” 일기장 검사 때마다 정성스레 비밀쪽지를 끼워주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덕분에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내 아이도 가슴속에 그런 선생님 한 분쯤 품고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아마추어는 프로보다 아름답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유병선(논설위원)-20080515목] 돌뗏목 위의 삶
그리스 신화에서 땅 밑은 죽음의 세계다. 죽은 자는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하데스의 궁전에 이르기까지 5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아케론(슬픔)-코키토스(시름)-플레게톤(불)-레테(망각)-스튁스(증오)의 강을 건널 때마다 강의 이름에 해당하는 이승의 것들을 던져버려야 저승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다. 이렇게 옛 그리스인들은 삶과 죽음을 지상과 지하로 나누고, 땅 밑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죽하면 제우스의 동생이면서도 하데스는 신화 속에서 장가들기조차 힘든 가련한 처지의 신으로 그려질 정도다.
소설가는 대지를 돌로 된 뗏목으로 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마라구의 1986년 작품 ‘돌뗏목’이 그렇다. 느릅나무 막대기 끝에서 땅이 갈라지고, 찌르레기떼가 하늘을 뒤덮는 이상한 예후(豫候)들이 나타나다 느닷없이 이베리아 반도가 유럽에서 떨어져나가 뗏목처럼 대양을 표류한다는 이야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지질학적 재난과 그에 허둥대는 인간들의 모습을 우화적으로 그려낸다. 포르투갈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것이라고는 하나 인간들이 발딛고 있는 흔들리는 땅을 돌뗏목으로 설정한 작가의 은유가 빛난다.
사마라구의 돌뗏목을 과학에 대입하면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이다. 지구 표면이 삶은 닭걀의 껍데기처럼 금이 간 조각판으로 이뤄졌고, 이것들이 움직여 지구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쓰나미와 지진, 화산 폭발도 판구조론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런데 이 지하세계가 과학의 대상이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이고, 판구조론이 확립된 것은 1968년의 일이다. 1940년대 빅뱅이론이 자리잡았고,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첫 우주인이 된 것에 비하면 땅 밑은 그리스 신화의 중력을 벗어나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야기됐다는 쓰촨(四川) 대지진의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모두가 돌뗏목 위의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지진의 재앙은 언제나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이번 지진에서도 두꺼비들은 3일 전부터 대이동을 했다고 한다. 어쩌면 돌뗏목 위의 사람들만 예후를 몰랐는지 모른다. 차제에 발 밑도 모르며 지구의 대주주(大株主)인 양 행세해온 우리 모두를 되돌아봐야 할 것같다.
[한국경제신문 칼럼-다산칼럼/함인희(이화여대 교수, 사회학)-20080515목] 고학력 엄마들의 再론칭
지난 3월 중순 일본 도쿄에선 미국 대사관과 일본여대가 공동 주최하는 흥미로운 심포지엄이 열렸다. 당시 심포지엄 주제는 고학력 전업엄마들에게 제2의 기회를 열어주자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에선 이미 유수 대학을 중심으로 고학력 전업엄마들의 성공적 재(再)론칭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번성하고 있음에 주목해 마련된 자리였다.
첫 연사로 나선 캐롤 코헨은 하버드 MBA 출신으로 졸업과 동시에 세계 톱5 안에 드는 투자회사의 컨설턴트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 여성이었다. 자신만만했던 그녀는 결혼과 더불어 4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동안 완벽하게 전업엄마로 변신했다. 막내가 5살이 되면서 커리어를 재개하고자 마음먹은 순간,자신이 경험했던 막막함과 좌절감을 잊을 수 없었던 코헨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엄마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책 제목은 'Back on the Career Track',성공적 재진입을 위한 7스텝이란 부제가 붙여졌다. 결과는 '대박'.전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강연 요청과 컨설팅 요구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여성들의 생애주기상 출산 및 양육 부담이 가장 높은 시기에 일단 자신의 커리어를 유보하는 여성들이 다수 존재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가운데 미국에선 최소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전업엄마 숫자가 230만명에 이르고,그 중 노동시장 재진입을 희망하는 비율이 70~93%에 이른다고 한다. 그 숫자가 190만명에 육박하는데 이 중엔 MBA를 갖고 있거나 전문대학원 졸업장이 있는 전업 엄마들 숫자 또한 무시 못할 수준이란 것이다. 노동시장에 재진입해 경력 단절을 만회하고 제2의 기회를 찾고자 하는 고학력 전업엄마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간파한 미국내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정교한 재론칭(Re-Launching) 프로그램을 개설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고학력 전업엄마들을 위한 코헨의 조언은 다음의 7가지 스텝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라는 것이다. 첫째는 자신이 진정 제2의 기회를 원하는지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는 것이요,둘째는 제2의 기회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무엇보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셋째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대안들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보라고 권유한다. 넷째는 자신의 전문성 및 숙련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라 강조하면서,다섯째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해 재진입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으라는 것이요,여섯째는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제2의 기회를 마음껏 즐기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노동시장 상황은 한국에 비해 훨씬 유연하고 선택의 폭 또한 다양하며 고학력 전업엄마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보다 우호적인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재론칭에 성공한 고학력 전업엄마들의 고백인 즉,엄마로서의 경험은 자신이 제2의 커리어를 개척해 가는데 매우 풍성한 보물창고라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 엄마들 움직임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고학력 여성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최근 자녀교육을 이유로 노동시장을 떠나는 여성들 가운데 고학력자가 상당수라는 사실 때문이다.
"집에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아이를 잡겠다 싶어 다시 일을 시작했다"는 어느 대기업 이사의 고백에 다수가 공감을 표하고 있는 우리네 상황을 필히 극복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기자24시/김태근(경제부)-20080515목] 전문가가 필요없는 사회
아직 거리에는 광우병 괴담이 흉흉하다. 죽은 소를 묻은 자리에 난 채소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린다는 얘기도 버젓이 인터넷에 올라 있다. 물론 정부의 협상력 부재와 졸속대책은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하지만 거의 '신앙' 수준으로 올라선 광우병 괴담은 이 참에 우리 모두 냉정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광우병에 대해 가장 목소리가 높은 축은 학생과 시민, 언론이다. 논란을 정리하고 사실 유무를 가려 결론을 이끌어 가야 할 전문가들은 자취를 감춘 듯하다. 학계에서 본연의 임무를 완전히 외면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수의학회, 의사협회,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표까지 나서 "광우병 위험이 극히 미미하다"는 발표를 낸 지도 한 주가 넘었다. 한국인에게 광우병 발병 유전자가 많다는 논문을 발표해 논란을 일으킨 교수 본인도 "논문의 진의가 광우병 위험에 대한 찬반세력에 의해 잘못 전해진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광우병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소위 전문가그룹, 오피니언 리더들의 자세다. 사회가 그들에게 명예와 지위를 인정하고, 존경까지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럴 때 여론의 눈치를 보지 말고 전문적인 식견을 알리라는 취지에서 그런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각종 토론의 참석자 명단에서 정부 관계자와 수입 반대진영 인사를 빼면 전문가라 할 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목소리를 낼 '심판'들이 사라진 것이다. 전문가들이 뒷짐 진 자리는 결국 광우병을 정치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려는 정치인과 시민단체가 차지했다.
요즘 아이들은 "광우병이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만 꺼내도 '무개념'으로 찍힌다고 한다. 누가 이런 지경으로 방치했는가.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에선 중요한 결정이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선진사회가 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