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8년 5월 6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eros 2008. 5. 6. 17:22
 

 

* 오늘의 사설

 

[한국일보 사설-20080506화] 역사에 길이 남을 '토지'의 문학혼

 

  드라마 <토지>가 방영되는 날이면, 남녀노소가 없었다. 만사 제쳐두고 TV 앞에 앉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시간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만주로, 일본으로, 서울(경성)로 무대를 넓혀가며 <토지> 가 생생하게 그려낸 굴곡의 현대사에 몸서리를 쳤고, 그 질곡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여주인공 서희를 비롯한 수많은 주변인물과 함께 살았다. 

  구한말에서 광복까지 50여 년 민족수난기를 도도히 흘러가며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와 삶, 한(恨)을 마치 실존처럼 생생하게 그린 <토지>는 1979년 그렇게 저 시골 할머니의 가슴 속에까지 깊이 자리잡았다.

  역사책이 주목하지 않은 민초들의 역사를 ‘역사보다 더 역사적’으로 기록한 소설 <토지>를 작가는 1969년 9월부터 1994년 8월15일까지 꼬박 25년간 매달려 썼다. 원고지 4만장 분량이 끝나는 순간, 비로소 작가는 소설 마지막에 일본 패망 소식을 들은 서희가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듯 사반세기 동안 자신을 짓눌러온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씨가 어제 타계했다. 한국문단의 큰 별이 졌다. 그는 한국문학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출판인이 뽑은 우리나라 대표소설가, 네티즌이 선정한 20세기를 가장 빛낸 여성인 박경리씨 만큼 국민들로부터 폭 넓은 사랑을 받은 소설가도 없었다. 그것은 <토지>뿐 아니라 중편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미완성으로 끝난 <토지> 이후 세월을 담으려 했던 <나비야 청산 가자> 등 그의 소설이 가진 ‘공감의 힘’ 덕분이었다. 그는 늘 역사 속을 걸으면서도 개인의 존재가치, 특히 특유의 모성적 본능이 스며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은 작가였다.

  누구보다 이 땅의 사람과 자연을 사랑했으며, 자신이 사는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지어 문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문단의 ‘어른’ 역할을 해온 박경리씨. 그는 병마 속에서도 지난달 <현대문학>에 신작시 3편을 발표하는 등 끝까지 작가로서 살다 갔다. 그가 남긴 문학의 정신과 자취를 기리고 발전시키는 일은 이제 후손과 후배들의 몫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506화] 거짓으로 점철된 한-미 쇠고기 협상 

 

  어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해 한-미 쇠고기 협상을 앞두고 전문가와 검역 당국자들이 검토한 세 건의 자료를 공개했다. 정부에서 입수했다는 이 자료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정부가 내놓는 안전 주장이 얼마나 가증스런 거짓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또 한국인의 유전자가 인간 광우병 감수성이 높다는 내용 등을 담은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비과학적인 선정 보도로 매도한 일부 보수언론의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도 확인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개정협의 대비를 위한 2·3차 전문가 회의와 가축방역협의회 회의 결과를 보면, 지난해 10월11일 마지막 협상 전까지 우리 정부의 방침은 과학적 근거에 비춰 뼈는 허용하더라도 30개월 미만을 고수하며, 소 나이에 관계없이 일곱 가지 특정 위험물질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이 특정 위험물질의 제거는 “광우병의 잠복기가 길고 한국민의 인간 광우병 감수성이 높은 유전적 특성을 고려해” 소비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 정부도 한국민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위험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검역기준을 완화해야 할 어떤 새로운 근거도 없이 참여정부가 정한 기준에서 훨씬 벗어나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포기하는 수준의 합의를 미국 쪽에 선사했다. 이와 관련해 쇠고기 협상 책임자인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이 “협상을 더 해야 할 것이 있는데, 18일에 협상을 마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전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발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현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선물로 검역주권을 포기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혹이 꼬리를 물고 국민의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스스로 근거로 삼았던 과학적 연구결과를 비과학적인 선동으로 몰아붙이고 참여정부의 뒷설거지를 했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후안무치를 연출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미국과 합의한 내용의 문제 부분을 은폐하고 왜곡해 국민을 호도하려고 잔꾀를 부리고 있는 점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어떻게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수 있겠는가? 정부는 검역문제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굴욕적 합의를 한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20080506화] 한해 절반 놀아도 봉급 주는 서울메트로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직원 A 씨는 지난해 365일의 절반 가까운 171일을 근무하지 않았다. 토·일요일 휴무(104일)와 국경일(13일)에다 병가(28일), 보건휴가(12일), 연차휴가(14일)를 빠짐없이 쉬었다. 병가를 자주 내다 보니 동료의 업무 부담이 늘었다. 이 회사 인사팀장은 “감기 같은 가벼운 병에 걸려도 병가를 내는 직원들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직원들의 건강을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병원 영수증만 제출하면 연간 30일간 병가를 쓸 수 있도록 한 노사협약이 ‘꾀병 환자’를 양산한 것이다. 민간기업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1300억 원의 적자를 냈고 누적 결손금이 5조40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부실은 고스란히 서울 시민 부담이지만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5243만 원으로 웬만한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정부 산하 공기업은 그나마 감시하는 눈이라도 많지만 지방공기업은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없는 한 개혁 무풍지대에서 온존한다. 

  서울메트로는 A 씨처럼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거나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직원 94명을 퇴출 후보로 정해 ‘서비스 지원단’에 배치하고 2010년까지 정원의 20%를 줄이기로 했다. 서울시가 ‘공무원 철밥통’을 깨기 위해 도입한 현장시정지원단처럼 근무평가가 나쁘면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자선단체가 아닌 바에야 1년에 절반을 출근하지 않아도 업무에 지장이 없는 직원을 많은 봉급을 주고 고용할 이유는 없다. 노조는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반발하지만 기득권에 집착한 노조가 오늘의 사태를 자초했다. 회사 측이 불합리한 병가 규정을 고칠 수 있도록 특별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노조의 거부로 진척이 없었다. 

  서울시의 인사개혁은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 행정에 긴장감을 높이고 공무원들의 근무자세를 바로잡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무원 조직이 변하는데 공기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서울메트로의 구조조정은 서울시 산하기관은 물론 전국의 모든 지방공기업으로 확산돼야 한다. 공공부문 개혁은 공기업이라는 견고한 요새에 숨어 놀고먹는 사람을 없애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080506화] 2초 정전(停電)에 200억원 피해, 언제까지 되풀이할 건가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지난 3일 전력공급이 2초쯤 중단되는 정전(停電)사고가 발생해 200억원이 넘는 피해가 났다. 단지 내 한화석유화학 공장의 낙뢰충격 보호장치(피뢰기) 3개 중 2개가 원인 모를 과부하(過負荷)로 불에 타는 사고가 나면서 한화 공장, 그리고 이 공장과 전선이 연결된 여천NCC, 대림산업 등 석유화학공장 5곳이 가동을 멈췄다. 여수 산업단지에선 2006년에도 GS칼텍스와 LG화학, 삼남석유화학 등의 업체들이 세 차례 정전사고로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화 측은 "한전이 공급하는 전력에 문제가 있어 피뢰기가 파손됐다"며 책임을 한전에 돌렸다. 반면 한전은 "한화 공장 측이 낡은 피뢰기를 교체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앞으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사고 원인을 가리는 것과 별도로 국가 주요 산업단지에서 정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그때마다 수백억 원씩을 날려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정유·석유화학 공장은 전기가 1초만 끊겨도 파이프라인에 남아 있는 중간제품을 모두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큰 피해가 난다. 이 중간제품이 파이프 속에서 굳어버리기 전에 강제로 태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 등 환경피해도 크다. 사고 수습을 마치고 공장을 재가동하기까지 최소한 1~2일이 걸리기 때문에 그만큼 손실도 커진다.

  그래서 석유화학단지 같은 곳에선 전기공급이 단 한 순간도 멈추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설사 정전이 되더라도 전력 공급엔 차질이 없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송전선로가 3개, 광양제철소는 2개여서 선로 하나에 이상이 생겨도 전력은 정상적으로 공급된다. 반면 여수 산업단지는 송전선로가 한 개뿐이어서 순간적인 정전사고의 피해를 막을 길이 없다. 한전과 업계는 이번 사고의 책임 공방만 벌일 게 아니라 전력공급선을 늘리는 문제라도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80506화] "최악의 신용위기는 지나갔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 해서웨이 회장이 "월가에서 최악의 신용위기는 지나갔다"는 진단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는 또 한국증시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여파로 오랜 부진에 시달리다 최근 서서히 회복세를 타고 있는 세계 증시와 한국증시에 기대감을 불어넣어주는 발언임이 분명하다. 실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위력은 약화되는 모습이 뚜렷하다. 많은 미국기업들이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내놓으면서 뉴욕증시 다우지수가 4개월 만에 13,000대를 회복했다.

  아시아 유럽 증시 역시 올 저점 대비 10~20%가량 상승하면서 낙관론에 힘을 보태는 형국이다. 한국 증시 또한 글로벌 증시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코스피지수는 올 저점 대비 15%가량 뛰어올랐고 외국인들도 다시 순매수세로 전환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중부동자금이 다시 증시로 회귀(回歸)하면서 상승국면 재진입에 대한 기대도 커가고 있다. 특히 버핏이 한국증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중소형 주식에 기회가 널려 있다"고 언급한 것은 우리 증시가 아직도 저평가돼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증시 전망을 낙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원유를 비롯한 각종 원자재 및 곡물 가격이 폭등세를 치달으면서 우리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점이 부담스럽다. 내수경기 또한 호전될 기미가 없어 올 성장률은 5% 달성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세계 경제도 성장 둔화(鈍化) 추세가 완연해 어려움이 더욱 크다. 주가가 힘찬 상승가도를 내달리기엔 제약 요인이 많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 부담을 줄이는 등 신중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일각에서 몰빵식 투자의 재연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우려를 갖게 한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달 해외펀드로 9470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지만 대부분 중국펀드로만 집중됐다는 것이다.

  몰빵투자,편중투자는 잘 되면 좋지만 잘못될 경우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펀드판매회사들 또한 지나치게 한쪽으로 투자를 유도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 오늘의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철호(논설위원)-20080506화] 이빨과 이념

 

  금강산 바로 옆 북한 온정리에는 작은 시골 병원이 하나 있다. 온정 인민병원이다. 한때 소독약과 봉합사가 없어 간단한 수술도 못했던 곳이다. 남한에선 레이저로 간단히 끝날 백내장 수술은 엄두조차 못 냈다. 아말감도 부족했다. 주민들은 끔찍한 치통에 시달렸다. 보잘것없던 이 병원이 요즘 북한의 최고 병원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1월부터 2주일에 한 번씩 남한 의사 5명이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남한에서 용한 의사가 왔다’ ‘못 고치는 병이 없다’는 입소문이 났다. 지난 1년 동안 북한 주민 1000여 명이 다녀갔다. 어둠 속에 절망하던 백내장 환자 40명이 눈을 떴다. 신기하게 지켜만 보던 북한 의사들도 빠르게 남한 의료기술을 흡수했다. 지원 창구인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신이 나 병원을 키우고 수술실을 마련하는 데 3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쉬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의 태도도 달라졌다. 남한 의사들의 입경 수속을 신속하게 도와주고, “수고하십네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탈이 났다. 너무 잘한 게 화를 불렀다. 소문을 듣고 평양과 원산의 끗발 좋은 인사들이 밀려든 게 문제였다. 지난 연말에는 고위층으로 보이는 환자가 50명을 넘었다고 한다. 금강산 휴가를 핑계대어 남한 의사가 오는 시간에 맞춰 병원을 찾은 것이다. 그 직후 북한 당국이 갑자기 “더 이상 주민 치료는 하지 말라. 의약품만 지원해 달라”고 통제령을 내렸다. 4월 중순 이후 남한 의사들의 진료는 금지됐다. 남한 의사가 북한 주민을 치료하는 유일한 숨구멍이 막힌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재단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에 맞춰 남한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짐작했다. 그래도 칼은 북한 당국이 쥐고 있다. 재단 측은 할 수 없이 좀 더 큰 고성읍 인민병원을 지원하려는 계획도 연기했다. 북한을 다녀온 한 내과의사는 “급한 대로 맹장수술은 충분히 가르쳤다”며 한숨을 돌렸다. 산부인과 의사는 “한두 번 더 다녀오면 제왕절개 수술도 배워줄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치과의사는 “틀니가 없어 음식을 못 씹는 환자도 많았다”고 걱정했다. 재단 측은 제일 고통스러운 충치 환자를 위해 아말감과 석고부터 힘 닿는 대로 보내줄 생각이다. 

  북한 당국이 겨우 열린 숨구멍을 틀어막은 처사는 치사하다. 어디 충치가 이념 보고 생기는가. 못 먹어 생긴 백내장이 장막을 친다고 나을까. 북한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될 뿐이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냉랭해도 인도적 지원은 늘려가야 한다. 지금 국제보건의료재단에는 북한에 자원봉사를 가겠다고 신청한 의사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철웅(논설위원)-20080506화]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 

  

  벌써 9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인류가 막연한 기대와 불안 속에 맞이한 새 밀레니엄 말이다. 사람들은 2000년 첫날 컴퓨터 장애로 인한 대혼란, 즉 밀레니엄버그(Y2K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등 요란을 떨었지만 별 탈 없이 새 천년이 왔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는 성서의 말대로다. 헤밍웨이의 출세작 제목처럼 ‘해는 다시 떠오른다’. 인생의 희로애락 생로병사도 그대로이고 선악의 공존·싸움도 그러하다. 

   선과 악 얘기를 꺼내니 진짜 21세기인 2001년 미국과 전세계를 뒤흔든 9·11테러가 생각난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세계를 선과 악으로 단순무쌍하게 구분했다. 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나라는 선이었고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는 악이었다.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하고 나설 때의 기세는 대단했다. 그런데 쉽게 끝낼 수 있을 것 같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1세기도 20세기처럼 미국의 시대가 될 것이냐는 것은 지난 세기 말에도 많이 제기된 문제였다. 논란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지속 쪽으로 귀결되곤 했다. 결정적인 것은 경제력과 국방력인데 이 분야에서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2007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3조2200억달러였다. 2위인 일본 4조9110억달러, 3위 독일 2조8580억달러, 4위 중국 2조5210억달러, 5위 영국 2조3410억달러를 합쳐도 못 미친다. 2009 회계연도 미국 국방비는 7060억달러다. 이는 전세계 국방비의 48%를 차지하며 2위(중국)부터 46위까지를 합한 것보다 많다.

  미국이 군사와 정치 분야에서는 여전히 초강대국이지만 다른 분야에서 밀려나면서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뉴스위크지가 분석했다. 성급한 예측 같지만 흥미롭다. 잡지는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의 징후로 세계 최고 빌딩(버즈 두바이), 최대 시가총액 기업(페트로 차이나), 최대 여객기(에어버스), 최대 영화산업 단지(볼리우드) 등을 꼽았다. 뉴스위크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은 미국 탓보다는 ‘다른 세계의 부상’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후세 역사가들이 미국이 세계화에 큰 기여를 해놓고도 정작 자신을 세계화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쓰지 않을까 염려했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형(논설위원)-20080506화] 펀칭(憤靑)/구본영 논설위원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에서 인터넷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은 애국주의 물결로 넘실대고 있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일부 네티즌들이 올림픽 방해세력에 대한 ‘마녀사냥’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이버 인민재판’의 주력부대가 분노한 중국 젊은이를 가리키는 ‘펀칭(憤靑)’이다. 이들에게 잘못 걸리면 그 누구도 성치 못할 정도다. 중국의 장애인 펜싱 선수 진징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얼마 전 프랑스에서 휠체어를 탄 채 성화 봉송 중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대와 맞닥뜨렸으나 성화를 끝까지 지켜내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서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프랑스 계열의 까르푸 불매운동에 반대한 게 화근이 됐다. 네티즌들에 의해 하루 사이에 매국노로 추락한 것이다.

  까르푸 불매운동까지 벌인 이들의 서슬에 놀라 프랑스 정부가 이미 ‘백기’를 들었다. 중국의 인터넷을 좌지우지하는 세대는 이른바 ‘바링허우(八零後)’다.1980년대에 태어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따른 중국 초고속 성장 신화의 수혜자들이다.

  한국 상품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중국 인터넷에서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한 중국인 유학생이 “(서울의 시위 사태 이후)곤경에 처했다.”는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중국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궤도에 올랐음을 입증하는 징표일 게다.

  한국과 중국은 양국 관계의 건강한 앞날을 위해 ‘인터넷 정치’의 함의를 제대로 판독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는 익명성의 그늘에 몸을 숨긴 강경파가 득세하는 사이버 공간의 역기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에 젖은 바링허우의 주장보다 국제적 상식과 정의를 중시하는 말없는 지성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선진화를 위해 인터넷상 ‘대표성의 왜곡’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연령별 디지털 격차를 감안하면 중국 인구 13억명 중 펀칭은 아직 극소수다. 그런데도 우리가 중국인 전체나 3만여 중국 유학생 모두를 중화주의의 화신으로 매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데스크칼럼/이동주(정치부장)-20080506화] 데카르트 밥상에 오른 미국 소  

  

  영원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들에게 과학의 잣대는 종종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곤 한다. 400년 전 방법적 회의론을 고안해낸 데카르트에겐 특히 그랬다. 회의론이란 한마디로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의심하는 방식'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부터 의심했다. 이 극단적 회의론자에게 생물학적 감각에 의존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당찮은 일이었다. 가령 모두가 직사각형이라고 동의하는 책상이 실제로는 마름모꼴로 보인다는 사실은 사람의 눈(시각)이 얼마나 진실을 왜곡하는지를 뒷받침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부드러운 살결도 현미경으로 보면 갈라진 논두렁 같다는 것은 촉각을 믿어선 안 된다는 방증이다. 그러니 이런 형편없는 감각기관이 어찌 나의 존재를 증명해주느냐는 논리다. 

  근원적인 의문을 풀지 못해 고민하던 데카르트는 기나긴 성찰 끝에 실낱같은 빛줄기를 찾아냈다. 아무리 의심을 거듭해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생각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언이다. 

  엉뚱한 철학 얘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는 쇠고기 논쟁이 매우 '데카르트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데카르트의 밥상 위에 올려놓고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우리 사회의 철학적 깊이에 무한한 자긍심이 생길 지경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외국 언론들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보는 웃지 못할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물론 생각이 짧았던 정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타당성이야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논쟁의 소지가 남아 있는 30개월 이상된 쇠고기에까지 문을 연 배경엔 의혹이 안 갈 수 없다. 

  정부는 미국에서 도축되는 소의 97%가 20개월 미만이라는 점을 안전성의 근거로 내세운다. 이는 3%도 안 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 개방해 봐야 한국 소비자에게나 미국 축산농가에나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뜻도 된다. 

  그런 '상징적 조치'라면 협상력을 발휘해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을텐데 한ㆍ미 정상회담에 맞춰 선심 쓰듯 허용한 이유가 뭔지 의심스럽다. '캠프 데이비드 숙박료'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뒤늦게 변명에 급급해하는 모습은 참으로 궁색하다. 

  하지만 출범한 지 두 달 남짓된 새 정부를 겨냥해 악의적 괴담을 퍼뜨리는 세력들 역시 불순하기 짝이 없다. 쇠고기는 데카르트의 밥상이 아니라 경제와 과학의 밥상에 올라야 한다. 

  철학적으로 미국의 '미친 소'를 공격하고 싶다면 한국의 '미친 쇠고기값'을 먼저 성토하는 게 논리에 맞다. 쇠고기에 그토록 예민한 사람들이 수입고기가 한우로 둔갑해 돌아다니고, 웬만한 음식점에서 손바닥만한 180g 1인분에 4만~5만원씩 받는 끔찍한 현실에는 왜 입을 다무는가. 고기 한 점 집어먹을 때마다 5000원짜리 지폐를 삼키는 듯한 기분이야말로 광우병 괴담보다 훨씬 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 계산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은 100만마리당 0.02마리라고 한다. 그것도 미국 내 가상적 상황일 뿐 한국에 수입되는 쇠고기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먹을거리에 대한 도덕성이 결코 높지 않은 한국이 유독 미국 쇠고기를 겨냥해 '뇌 없는 대통령이나 미친 소 먹어라'라는 자극적 구호를 외치는 것은 반미(反美)를 직업으로 삼는 세력의 선동이다. 심지어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사실관계를 정확히 모르는 학생을 부추기는 것은 지구촌 화제가 될 법하다. 

  이런 희극적 논쟁을 종식시킬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 있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내각 인선, 총선 공천, 추경예산 당정협의 과정에서 빚어진 소동을 보면 오랜만에 정권을 잡아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섬기는 정부'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이념척도가 얼마나 달라졌는가에 대한 감각부터 되찾아야 한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지적했던 것처럼 대통령에게 '형님, 형님'하면서 폭탄주를 수북이 쌓아 놓는 인사들에게 휘둘리면 386에 둘러싸여 고집으로 허송세월한 참여정부와 다를 게 없다. 이 대통령에게도 '컴퓨터가 고장난 불도저 아니냐'는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서동철(성장기업부)-20080506화] 음식물처리기 시장 정비하자

 

  최근 들어 음식물처리기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한 음식물처리기 업체가 지난 2월 조사전문기관에 의뢰해 수도권 거주 기혼여성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7.5%가 음식물처리기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특히 지난달에는 일부 업체들이 가격을 확 낮춘 10만원대 초반의 제품들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음식물처리기의 보급화가 좀더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음식물처리기는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가정에서 1차적으로 처리해 음식물쓰레기에 의한 환경오염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만큼 일반 가전기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음식물처리기의 보급현황과 시장규모 등과 관련된 제대로 된 통계자료는 구할 수 없다. 한 음식물처리기 업체 사장은 “일본의 경우 음식물처리기가 환경오염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정확한 통계자료를 만들어 보조금 지급 등의 정책자료로 활용한다”면서 “국내에서도 환경관련 정책집행을 위해 관련 통계자료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큰데 3년 전 한국산업기술원에서 업체 현황 등을 조사한 자료 외에는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업체마다 시장규모를 자기네 회사가 유리한 대로 추정해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 업체가 음식물처리기로 처리된 잔여물을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된다며 3월 신제품 출시와 함께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하면서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현행 법상 음식물에서 발생돼 토양을 오염시키는 침층수 때문에 음식물쓰레기는 일반 쓰레기와 분리수거해 매립지로 보낸다. 음식물의 경우 음식물처리기에서 분쇄 건조됐어도 매립지에서 비를 맞으면 원래상태로 복귀하며 건조 전과 동일한 양의 침층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제 음식물처리기는 우리 생활 필수품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의 과당 경쟁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 이에 걸맞은 제품의 규격과 성능 등의 관리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