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2008년 5월 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오늘의 신문
[한국일보 사설-20080501목] 노사ㆍ노노 모두 착잡한 근로자의 날
근로자의 날을 맞는 노사의 마음은 한결같이 착잡하다. 살맛 나는 세상을 기대하며 근로자들이 축제만 벌이기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높고 많다.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을 통해 산업평화와 경제발전을 기대하는 사용주들로서는 여전히 실망이 크다. 같은 노동자단체끼리도 갈등과 분열이 심해질까 우려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근로자들도 큰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무너진 경제를 살려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노총은 공개적으로 정부를 지지하고, 자기 희생을 각오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새 정부는 경제정책을 복지보다는 성장 쪽으로 잡았다.
성장을 통해 고용을 늘리고 소득도 높여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삶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과감한 규제타파, 공공부문 개혁으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도 갈등과 투쟁, 대립보다는 화합과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은 자칫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더 부채질할 위험성이 있다. 때문에 어제 근로자의 날 수상자 초청 오찬에서 밝힌 이명박 대통령의 다짐대로, 정부는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약자와 가난한 계층을 위해 일해 빈부격차를 줄어야 한다. 고임금의 일부 대기업 근로자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로 대표되는 내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이해와 양보를 실천해야 한다.
일자리 확대와 높은 임금만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각종 산업재해로 사망한 우리나라 노동자는 2,406명으로 하루 평균 7명이나 되었다. 노동자 1만명 당 사망자 비율인 ‘사망만인율’이 선진국의 5배나 될 만큼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도 시급하다.
지금 우리 노동계는 입장 차이로 둘로 나뉘어 있다. 근로자의 날 행사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각각 따로 연다. ‘근로자의 날’을 제정한 취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양보와 타협으로 하루빨리 한 마음이 돼 근로자들의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501목] 어린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어제 <한겨레>가 보도한 대구 한 초등학교의 집단 성폭행 사건은 입에 담기조차 참담하다. 2년 동안 집단 성폭행과 성추행 따위를 저지르거나 당한 아이들이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귀를 씻고 싶을 정도니, 부모들의 속은 오죽하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까맣게 모르고, 그것도 모자라 이를 안 뒤엔 몇 달이나 쉬쉬하기만 한 학교나 교육청은 스스로 교육자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게 됐다. 어린이날을 만든 지 80년이 넘도록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마련하지 못한 우리 사회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일이 이곳뿐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충격은 경악과 공포로 바뀐다. 사건의 원인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바로 우리 곁의 일이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보고 이를 흉내냈다고 한다. 그들 아니라도 무차별로 쏟아지는 외설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할 법적·제도적 장치는 별반 없다. 사후 관리라도 제대로 됐으면 좋으련만, 정부 차원에서 이를 맡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두 달 넘게 위원을 선출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다.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폈는지도 따져야 한다. 이번 사건은 부모가 맞벌이 등을 하는 탓에 방과후에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비롯됐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렇게 방치되지 않도록 하려면 학교와 지역사회가 긴밀하게 협력해 방과후 생활을 챙겨주는 제도적 장치와 구체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몇 년 째 펴 온 교육복지 투자 우선지역 사업 등이 그런 것일 게다. 그런 사업은 이번 사건이 난 지역을 비롯한 많은 곳으로 확대돼야겠지만, 정작 정부는 앞으로 복지 대신 성장 쪽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한다.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없다는 점도 원인의 하나다. 지금의 초등학교 성교육은 고작 남녀의 신체적 차이 등을 가르치는 수준이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성폭력 예방이나 정보윤리 교육은 부족하다. 입시와 경쟁 위주의 교육 현실에선 이렇게 꼭 필요한 교육조차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잘못의 원인이 분명한데도 이를 방치한다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게 된다. 이번과 같은 일을 겪고도 철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아이들을 같은 위험 속으로 던지는 게 된다. 부끄러운 일 아닌가.
[동아일보 사설-20080501목] 뒷북치기 바쁜 ‘정치 눈치꾼’ 監査院
새 정부 출범 후 감사원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잇달아 대형 감사 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그 내용은 한결같이 노무현 정권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으로 현 정권의 입맛에는 맞는 것들이다. 정부위원회 난립, 혁신도시 건설 효과 부풀리기를 지적한 감사가 대표적이다. 공공기관장 교체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31개 공공기관의 부실 경영과 부조리에 관한 중간 감사결과를 내놓았다. 햇볕정책의 돈주머니 역할을 한 남북협력기금의 부실 지원 실태도 발표했다.
감사원이 갑자기 신통력이 생긴 것인가. 지난 정부에선 감사 의지 또는 발표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감사원은 오래전에 계획을 세웠던 감사인데 그 결과가 지금 나왔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국정의 궤도 수정을 합리화해 주는 듯한 내용들을 쏟아내는 속내가 들여다보인다. 지금 내놓는 감사 결과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위원회 난립과 혁신도시 및 남북협력기금의 문제점에 관해 언론 등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언제부터인가. 노 정권이 살아있을 때 진즉 손을 댔더라면 ‘뒷북 감사’니 ‘정치 감사’니 하는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감사원의 존재 목적은 예산 낭비가 없는지, 행정기관과 공무원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하는지를 회계감사와 직무감사를 통해 감시하는 것이다. 비록 대통령 소속이긴 하지만 직무에 관한 한 독립적인 지위를 갖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이나 감사원장의 4년 임기를 헌법에 명시한 것은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일하라는 취지다. 그런 감사원이 그때마다 당대(當代) 정권의 비위나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집합소처럼 비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감사원이 외국처럼 국회 소속이나 별도의 독립기관이 아니어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리가 없지 않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헌법과 법률로 엄연히 독립성을 보장받는 감사원이 제구실을 못하는 가장 큰 책임은 전윤철 감사원장에게 있다.
전 원장은 내년 6월이면 감사원법에 정해진 70세 정년이 된다. 1년 남짓한 임기를 마저 채우기 위해 새 정부 비위 맞추기 감사를 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아래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자리에 대한 미련 때문에 감사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면 딱한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20080501목] '중국식' 정의(正義)의 수준과 한국의 21세기 국가전략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9일 중국인들이 서울의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행사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경찰과 취재기자를 폭행한 사건에 대해 "사태의 본질은 성화 릴레이를 방해하려던 티베트 분리주의자들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나선 선량한 중국 유학생들의 정의의 행동이었으며, 그들의 본의는 좋은 것이었으나 과격해져서 빚어진 것"이라며 "폭력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중국인들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고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대변인은 한국 기자들과 미 CNN 방송, 영국 BBC 방송 기자들이 계속해서 "중국 정부는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냐"고 묻는데도 "현장의 중국인들은 선량한 중국인들로 본의가 좋은 것이었다"고 끝내 사과를 거부했다. 나중에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우리 외교부에 한국 경찰과 기자의 부상에 유감을 표시해 왔으나 중국측이 이번 시위를 '정의'라고까지 규정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에서 난동을 부린 중국인들은 대부분 젊은 유학생들이었다. 쉽게 흥분할 수 있는 또래다. 중국인들 전체가 천신만고 끝에 유치한 올림픽이 티베트 문제 때문에 잘못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세계 여론에서 고립된 듯한 피해의식이 강한 반발감을 불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이 잘못을 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일단 고개를 숙이는 것이 상식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집단으로 행패를 부린 사건이다. 경찰관이 피까지 흘렸다. 중국이 정중히 사과한다고 체면이 깎일 일도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위신이 올라갈 일이다.
중국인들이 미국 워싱턴이나 일본 도쿄, 영국 런던에서 집단 행패를 벌이고도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주한 중국대사는 최근 어느 자리에서 티베트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런 무식한 질문을 하지 말라"고 반박하는 상식 밖의 무식한 행태를 보였다. 주미 중국대사, 주일 중국대사가 이런 오만불손한 언사를 입에 담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무엇이 중국과 중국인들이 대한민국과 한국민을 이렇게까지 함부로 대하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은 이런 수준의 중국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21세기 국가전략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080501목] 주택공사, 공기업 자격 있나
주택공사가 분양한 고양 풍동지구 2·3블록과 화성 봉담지구 5·6블록의 주택 분양원가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그동안 시민단체 등이 주장했던 ‘폭리 분양가’의 실체가 충격적이다. 풍동 2·3블록에서는 분양원가 1946억원에 분양가 2594억원으로 분양원가 대비 수익률이 33%로 드러났다. 가구당 챙긴 이익이 5102만원이다. 특히 2블록은 수익률이 38%에 이르렀다.
민간 주택건설회사의 수익률은 대략 10~15%라고 하니 공기업이 국민에게 어떻게 이런 바가지를 씌울 수 있는지 어이가 없다. “국민임대주택 등 복지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주공의 해명으로 분양가 폭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공공 복지사업은 국민들에게 아무렇게나 돈을 뜯어내 벌이면 된다는 얘기인지 사고가 의심스럽다. 아무리 옳은 데 쓴다 해도 상식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의 수익이어야 한다. 봉담 5·6블록의 수익률이 4.9%였던 것을 보면 적정 수익을 남긴 곳도 있을 것인데 무엇이 무서워 분양원가 공개를 꺼리는지 모를 일이다. 많은 이익을 추구한 것이 공공 복지보다 사업 확장과 사내 복지를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주공이 비판 받을 또 다른 점은 분양원개 공개와 관련해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해 대법원이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도 이제껏 이런 저런 핑계로 공개를 미뤄왔다. “원가를 전면 공개하겠다” “최대한 빨리 공개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급기야 최근 판결사항 이행을 강제하는 ‘간접강제 신청’이 접수되자 비로소 원가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언론에 세부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소송 당사자인 소비자는 물론 언론을 끝까지 애먹이겠다는 것이 공기업의 자세라 할 수는 없다. 잘못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주공이지만 폭리구조와 분양원가 공개 거부를 용인해온 국토해양부의 잘못이 더 크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80501목] 경기대응 `사후약방문` 안돼야
경기 하강(下降)이 가시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광공업 생산 증가율이 두자릿수(10.0%)를 유지하긴 했지만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경기선행지수가 동반하락세다. 특히 경기선행지수는 4개월 연속 내리막길이어서 엊그제 경기 하강국면 진입 선언을 내놓은 정부의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듯한 모습이다.
산업 현장의 체감 경기도 싸늘하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4월 제조업 업황 BSI는 87로 여전히 기준치 100을 밑돌았고 5월 전망치도 92에 머물렀다. BSI가 100을 밑돈 것은 전달보다 경영환경이 악화될 것으로 보는 기업이 호전될 것으로 보는 기업보다 더 많다는 뜻이고 보면 경기 전망이 그만큼 어둡다는 이야기에 다름아니다. 경기 흐름이 이처럼 좋지 못한 것은 세계경제 성장 둔화, 원유를 비롯한 각종 원자재 및 곡물 가격 급등 같은 대외변수가 우리 경제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임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이런 변수들은 빠른 시일내 개선될 조짐도 없어 불안이 더욱 크다. 이대로 간다면 민간경제계가 우려하듯 성장률은 4%대에 그치고 경상수지와 일자리 사정 등도 예상보다 한층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ㆍ여당은 서둘러 총력체제를 갖추고 경제살리기에 매진(邁進)하지 않으면 안된다. 추경이냐 감세냐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로 소일할 게 아니라 경제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조치들을 하루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 모처럼 의욕적으로 책정한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차질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규제 또한 신속ㆍ과감하게 풀어야 함은 물론이다.
경기 하강 추세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만큼 금리인하도 이제는 적극 검토해야 할 때다.
[매일경제신문 사설-20080501목] 가정의 달 부끄러운 자화상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신록이 우거지고 만물의 활력이 넘치는 연중 가장 좋은 계절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인의날 등 기념일이 집중돼 있다. 이들 기념일을 통해 가정의 존재 의미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적인 단위다. 가정이 잘되고 화목해야 사회와 국가가 번영하고 화평이 유지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그런데도 우리의 가정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믿음과 사랑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우리 주위에서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추행 등 가정파괴 요소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여성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부 2.5쌍 중 1쌍이 1년간 배우자로부터 가정폭력(부부간 성학대,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신체적 폭력과 정서적 폭력 등 아동학대 발생률도 66.9%나 된다. 특히 아동폭력이 대부분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 거의 매일 같이 이뤄진다고 하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성추행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 경기도 일산에서 여자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일산경찰서를 찾아가 즉각적인 수사 지시를 내린 이후에도 성추행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초 같은 일산에서 남자 고교생이 길에서 여성을 성추행한 것이 그 예다. 최근 알려진 대구 한 초등학교의 집단 성추행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어떻게 교실, 운동장 등에서 가해ㆍ피해 학생이 100여 명에 달할 정도의 대형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어린이와 부녀자 성추행, 납치, 살인 등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의 가정을 되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가족친화 경영에 대한 지원을 통해 직장인들이 회사와 가정 생활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폭력, 납치 등에 대해서는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강구해야 함은 물론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긴급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터넷 음란물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 종교단체나 사회단체 등의 계몽과 교육이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오늘의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유광종(국제부문 차장)-20080501목] 분청
‘분노한 청년’이라는 뜻의 ‘분청’이란 단어가 요즘 중국권에서 유행이다. 거창한 반일(反日) 시위나 영토 분쟁 등이 생길라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격정적인 중국 젊은이들이다. 때로는 민간 선박을 이용해 일본과 영토 분쟁을 치르고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에 기습 상륙하고, 미국의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에 대해서는 격렬한 시위 끝에 미국 대사관을 습격했다.
이 말이 처음 나타난 곳은 홍콩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사회적 불평등에 불만을 표현한 젊은 계층을 ‘분노 청년’이라고 일컬으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원은 18세기 과거 계몽주의의 딱딱한 틀을 깨고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며 등장한 독일의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질풍과 노도)’을 번역하면서 파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뜻에서는 89년 6·4 천안문 사태에 참여한 젊은이들까지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본격적인 등장은 90년대 이후다. 대부분 협애한 민족주의를 지니고 있으며 인터넷상에서 갖은 욕설과 험구를 서슴지 않는 젊은이들이다.
요즘 이들이 보이는 가장 큰 공통점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민족주의다. 중국이 과거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는 점을 크게 의식한다. 그 피해의식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강한 중국’의 열망이 함께 내세워진다. 사회적으로는 중국에 만연한 관료부패 문제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부패한 관료는 모두 목을 쳐야 한다”는 극언도 자주 선을 보인다. 불공정한 사회현상에 관심을 쏟는 측면은 세계 어느 지역의 젊은이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과거 100여 년 동안 자국이 받았던 피해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은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서방 제국주의로부터의 피해의식과 이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집권 공산당의 통제적 교육의 산물이라는 분석이다. 단순하고 좁은 민족주의에 빠져 티베트에 대한 서방세계의 인식을 무조건적인 ‘중국 뒷다리 잡기’식으로 받아들이는 현상. 그것이 끝내는 전 세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폭력 등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되는 부분. 이 때문에 중국 일각에서도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중국의 젊은이들이 끝내 폭력적 성향을 드러냈다. 폭력을 행사한 젊은이들을 분명하게 가려 그 잘못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평화적으로 대열에 참여한 대다수의 젊은이와 중국인 전체에까지 무차별적인 반감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대신 주목할 것은 따로 있다. ‘중화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집단의식 속에서 키워가는 닫혀진 애국주의다. 전체주의적 흐름이 느껴지는 중국의 그 이면을 우리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살펴야 한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이용원(수석논설위원)-20080501목] 원명원(圓明園) 보물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쓰던 의자 겸 침상인 나한상(羅漢床)이 중국 고가구 경매사상 가장 비싼 3248만위안(약 46억원)에 팔렸다는 소식을 엊그제 신화통신이 전했다. 나한상은, 청 황제들의 별장인 원명원(圓明園)에서 사용한 물품으로 추정된다. 이 뉴스에 접하고서 프랑스가 아직도 무단 보유한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를 떠올린 건 두 중요 문화재의 운명이 엇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원명원은, 강희제가 1709년 수도인 베이징성에서 서북쪽으로 10㎞쯤 떨어진 곳에 세운 이궁(離宮)이다. 그의 손자인 건륭제가 즉위해 대폭 증축한 뒤로 역대 황제들이 사생활을 즐기는 장소로 삼았다. 이국(異國) 취미가 있어 외국여인을 궁중에 들이곤 했던 건륭제는 원명원 안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건물을 따로 짓기도 했다. 이번에 팔린 나한상은 서양 꽃인 달리아를 새겨넣는 등 로코코 양식으로 제작됐는데, 이도 건륭제의 취향과 관련 있을 것이다. 원명원은 황제들의 별장이자 금은보화·서화·골동품·서적 등을 모아놓은 보물창고였다. 역사학자 가운데는 원명원이 당시 세계 최고의 미술관 겸 도서관이었으리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 원명원이 1860년 불길에 싸여 사라졌다. 베이징에 침입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소장품을 철저히 약탈한 다음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 침략에 여념이 없던 구미 열강은 꼬투리만 잡으면 군사를 동원했다. 영·불연합군의 베이징 침입도 청나라가 불평등조약을 거부했다는 게 이유였다. 원명원 보물 약탈은 나흘동안 진행되었는데, 특히 프랑스군이 대부분을 탈취했다고 한다.‘운반할 수 있는 물건은 모조리 빼앗아갔다.’는 만행을 끝내고 원명원에 불까지 지른 까닭은,‘대약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진순신의 ‘중국의 역사’ 중에서)
원명원 보물인 나한상이 경매에 나오게 된 경위야 상세히 알 수 없지만, 원명원 약탈의 주범이 프랑스라는 점에서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를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문화 약탈 대국’ 프랑스는 언제나 외규장각 도서를 원주인에게 돌려줄까.
[서울경제신문 칼럼-시론/신광영(중앙대 교수, 사회학)-20080501목] 노동절과 '노동정치'
5월은 잔인한 달이다.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이 말했지만 한국에서는 5월이 더 잔인한 달이다. 각종 정치적인 사건들이 5월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많은 희생과 고통을 동반했다.
세계사적으로도 5월은 잔인한 달이다. 5월의 시작은 노동절로 시작된다. 19세기 말 8시간 노동을 외치며 등장한 노동운동은 100년이 더 지난 오늘날에도 울림이 있는 운동으로 남아 있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고단하고 강퍅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이해 추구는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의 형태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정당의 형태로 나타났다. 노동조합은 개인적인 수준에서 고용주에 대등한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어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자기방어적인 노동시장 조직으로 등장했다.
반면에 노동자 정당은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정책적으로 노동계급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조직이다. 노동자 정당도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조직이다.
지난 20년 동안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동조합운동과 정당운동이 한국에서도 발전했다. 지난 1995년 기존의 한국노총 외에 민주노총이 새로 결성됐고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됐다. 한국 노동자들의 이해를 노동시장과 정치 차원에서 대변하는 조직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노동조합 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2004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선거제도의 변화에 힘입어 13.1%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보였지만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른바 노동자를 대변하려는 정당들의 지지는 오히려 낮아졌다.
서구에서 나타나는 사회발전은 우파와 좌파의 경쟁을 통해 이뤄졌다. 누가 시민들의 삶의 질과 복지를 위해 더 나은 이념을, 더 실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둘러싸고 이뤄진 좌파와 우파의 경쟁이 서구 근대 정치사의 핵심이다.
이러한 경쟁 과정에서 노동자 경영참여와 같은 산업민주주의가 발전했고 각종 사회복지정책을 통해 사회적 시민권이 강화됐다. 좌파와 우파의 민주적 경쟁이 유럽의 복지국가와 산업체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노동정치의 저발전은 한국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민의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제대로 대변하는 정당이 발전할 때 선거를 통한 민주적 경쟁을 통해 경쟁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당들 사이의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
한국 노동정치의 발전을 위해 노동운동의 침체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에서 나타난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노동운동 침체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이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기업 정규직에 한정된 이해만을 추구하는 노조활동(파업을 포함)이 많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는 유권자들의 관심과 이해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관심과 이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신뢰와 믿음을 주지 못했다. 심지어 노동자들조차 노동자들을 대표하려는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았다. 더욱이 노동조합의 조합원들도 노동자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노동절로 시작되는 5월. 한국에서 노동정치가 제대로 발전돼 선진국의 틀이 마련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병리적인 사회에서 정상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며 건전하고 균형 잡인 사회로 발전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