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6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2008년 4월 26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오늘의 신문
[한국일보 사설-20080426토] 이런 공직자들이 서민정책 펼 수 있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재산 많다는 것이 무조건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고위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인사들의 재산이 그 내역도 내역이려니와 형성 과정이 의혹 투성이라면 얘기가 전혀 다르다. 이를 사회적 증오를 증폭시키려는 소모적 논란이라고 외려 목소리를 높인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박미석 대통령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의 인천 영종도 농지투기 논란만 해도 그렇다. 남편이 친구 삼촌 소개로 구입했는데, 농지 취득자격증명이 발급됐고 영농계획서도 첨부한 만큼 매입에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 재산이 25억원이 넘는 박 수석 가족이 농사를 지으려고 그곳에 땅을 샀다면 누가 믿겠는가.
농지 매입 후 인근 지역의 복합레저단지 개발, 영상단지 조성 등 개발계획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땅값이 크게 올랐다. 개발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재산 신고 때 제출한 자경(自耕) 확인서도 허위작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박 수석은 임명 과정에서도 논문표절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자신도 힘들었겠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새 정부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때 물러났더라면 땅 투기 논란으로 자신과 정권을 또 한번 어렵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측이 많은 부담을 감내하면서까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간다면 그 자체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재산을 공개한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땅 부자, 주택 부자라는 사실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심 없이 부동산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며 서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릴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ㆍ여당이 추진 중인 보유세 인하 등 부동산 부자들에게 1차적 이익이 돌아가는 정책을 펴다가는 오해와 저항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민생활을 걱정하지만 그런 각료와 참모들로 둘러싸여 있는 한 서민들에게 진정성이 먹혀 들기 어렵다.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426토] 북-시리아 핵 협력설, 6자 회담에 장애물 안 돼야
미국 백악관이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설을 공식 확인하는 성명을 그제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지난 해 9월6일 파괴한 시리아 안 시설이 원자로이며, 북한이 이 프로젝트에 협력했다는 내용이다. 100% 확실한 증거는 없다. 미국이 핵심 증거로 제시한 비디오테이프의 내용도 문제의 시설이 모두 없어진 지금 상황에서는 입증할 길이 없다. 특히 그 시설이 원자로라고 하더라도 핵무기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전무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백악관 성명도 사실을 확정하지 못하고 ‘믿고 있다’, ‘확신한다’ 등의 용어를 쓰고 있다.
문제는 6자 회담에 미칠 파장이다. 미국내 강경파들은 핵 협력설이 명확하게 규명되기 전에는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플루토늄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 이달 초 북-미 싱가포르 합의에도 반대한다. 나아가 이번 일을 계기로 북-미 핵 협상 전체를 중단시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다.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시리아와 핵 협력을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은 일단 과거의 문제다. 북한은 현재 대외 핵 협력을 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선해야 할 일은 이런 다짐을 더 확실하게 하고 검증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입증할 수 없는 과거 사안에 매달려서는 성과도 없이 논란만 키울 뿐이다. 물론 북한은 핵 협력설을 부인만 할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해야 한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과 관련해 그제 의회에 비공개로 브리핑한 내용을 지난 해부터 알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내용은 없다고 한다. 곧, 부시 행정부가 싱가포르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핵 협력설을 6자 회담 틀 안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했음을 뜻한다. 북한 핵 신고와 관련해 그제까지 사흘간 방북한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도 북쪽과 상당히 진전된 논의를 했다고 한다.
6자 회담은 비핵화와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를 향해 가는 긴 과정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면서 큰 틀을 진전시켜 나가야 것이 중요하다. 핵 협력설 등이 6자 회담 진전에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참가국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동아일보 사설-20080426토] 北의 핵 확산 덮고 넘어가선 안 돼
미국이 북한의 핵 확산 의혹을 ‘실체가 있는 진실’로 규정해 북핵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 백악관은 그제 “북한이 시리아의 비밀스러운 핵 활동에 협력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발표했다. 그 증거로 북한의 핵 전문가가 시리아 핵 전문가와 함께 있는 사진과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시리아 원자로가 북한 영변 원자로의 판박이임을 입증하는 자료까지 공개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까지 핵 확산을 시도했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보들이다.
백악관은 6자회담 틀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여유를 부릴 사안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10·3 합의에서 ‘핵 물질, 기술 및 노하우를 이전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없었다면 북-시리아 협력은 계속됐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약속 위반을 추궁하고 해명을 요구해야 옳다. 6자회담에서 검증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미 행정부가 이처럼 중대한 정보를 뒤늦게 의회에 공개한 배경도 석연치 않다. 일각에선 북한의 핵 활동에 관한 의혹을 모두 해소하기 위한 정면 돌파 전략으로 보기도 한다. 반면에 핵 확산 의혹을 북한의 간접시인 방식으로 처리한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강경파의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미 정부의 의도가 무엇이든 덮고 갈 수는 없다.
북한부터 부인하기 힘든 정보들이 공개된 만큼 시리아와의 핵 협력 전모를 밝히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북한이 다른 나라의 핵 개발까지 지원했다면 자체 보유한 핵무기를 폐기할 것이라고 믿기도 어렵게 됐다. 북한이 침묵하면 신뢰만 잃는다.
정부도 사안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백악관 발표에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차를 몰고 가다 돌부리에 걸렸다고 차가 전복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는데 안이한 상황인식이다. 이번 일이 북-미 간에 진행 중인 북핵 프로그램 신고 논의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그럴수록 면밀히 대처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080426토] 무리한 경기부양책보다 경제 체질 강화책 내놔야
1분기 경제성장률이 작년 4분기 대비 0.7%에 그쳤다. 2004년 4분기의 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고, 작년 4분기 1.6%의 절반도 안 된다. 유가(油價)·원자재값 급등으로 교역조건이 악화된 탓에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2.2% 줄었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 나빴다는 얘기다. 1분기 취업자도 정부의 일자리 창출 목표 35만 개를 크게 밑도는 20만9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경제의 모든 지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렇게 경제상황이 어두워지자 정부는 작년에 쓰고 남은 돈 가운데 3조원쯤을 경기에 입김을 불어넣는 데 써야 한다며 추경예산 편성을 밀어붙이고 있다.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내수(內需)를 살려 보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장·차관이 교대로 나서 환율을 입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는 것도 수출을 통해 경기를 떠받치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지금이 경기부양책을 써야 할 때인지는 좀 더 따져 볼 일이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진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와 원유·원자재·곡물값 급등이라는 대외여건 탓이 크다.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경기 후퇴를 겪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작년 4.9%에서 1.2%포인트 떨어진 3.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올해 우리 경제가 4%대 중반 성장률만 기록해도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작년 한 해만 빼고는 경제성장률이 계속 세계 평균을 밑돌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10년 전, 20년 전에는 경기가 나빠졌다 하면 정부가 재정을 늘리고 환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물론 그때마다 물가 불안 같은 부작용을 겪었다. 현 정부의 경제팀이 그 옛날 그 정책을 지금 끌어다 쓰겠다는 것이다. 세상 바뀐 지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근본 처방을 찾아내 실행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려 국민한테 잠시 생색내고 긴 후유증을 겪느니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교육 개혁 등 정권 초반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들에 힘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080426토] 규제개혁 하나라도 피부에 와 닿게
새 정부가 제1차 국정과제 보고회에서 내놓은 경제활성화 방안은 토지이용제도 개선을 비롯해 금융규제개혁, 중소기업지원체계 개편 등 규제완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 토지에 대한 각종 규제는 112개 법률에 397개의 용도지역으로 구분될 정도로 복잡하고 난삽해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상당히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따라서 연접개발규제 등을 폐지해 공장 증설을 쉽게 하고 관광지나 골프장 건설도 용이하도록 개선해나가는 것 등은 일단 진일보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816건이나 되는 금융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통로를 통합 재편하는 것 역시 명실상부한 원스톱 서비스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규제완화와 투자촉진을 통해 시장기능을 회복하고 경제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국정지표를 내세웠던 만큼 국정과제가 규제완화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대부분의 규제가 각종 법안 등에 구체화돼 있는 만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당정 간 협조가 불가피하다고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정부와 한나라당이 주요 법안에서 상당한 이견을 보이는 것은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다음으로 규제완화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인적 쇄신이 병행돼야 한다고 판단된다. 아무리 과감하게 규제를 혁파하더라도 현장과 일선창구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숫자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규제완화라는 국민들의 인식을 정부는 헤아릴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편에서는 규제를 없애고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규제를 만들어내는 모순도 물론 없어야 할 것이다.
규제완화 목표가 규제 그 자체를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의 선진화로 귀결돼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예컨대 특별시와 광역시의 도시기본계획에 대한 승인권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문제만 하더라도 지역 특성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지만 잘못 운영되면 난개발만 조장할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혁파가 성공하려면 각종 제도의 간소화 및 투명화와 함께 국민을 섬기는 행정이 제대로 실천돼야 함은 물론이다.
* 오늘의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양성희(문화스포츠부 차장)-20080426토] ‘우리 결혼했어요’
MBC -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가 인기다.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 프로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싱글이 늘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연예인 네 커플이 가상의 신혼부부를 연기하는 리얼리티 쇼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긴 하지만 이들의 가상 신접살림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긴다.
유명 스타들이 부부 역할을 하는 설정이니 관심을 안 끌 수 없다. 벌써 유사 프로들이 유행할 조짐이다. 스타 사생활 엿보기 프로에 따라다니는 시청자의 비판도 잠잠하다. 스타들이 잠옷 차림으로 침실을 들락거리며 스킨십을 해도 ‘낯 뜨겁다’는 식의 반응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네 커플의 캐릭터 쇼가 성공 요인이다. 로맨틱 커플, 쿨하고 섹시한 커플, 귀여운 커플, 현실적인 위기 커플의 유형이 나온다. 이들 유형에 자기 체험을 빗대어 보며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인 양 하지만 가짜일 수밖에 없는 이 프로에서 진짜 리얼리티가 출발하는 지점이다.
스타들의 실제 체험이나 이미지도 프로에 녹아 들어간다. 탤런트 신애는 데뷔 초 스캔들에 거듭 휘말리면서 상처받았던 얘기를 털어놓는다. 훈남으로 인기 높은 알렉스는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하며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 주는 모습을 보인다. 프로 속 로맨틱 커플과 실제 스타의 개인사가 뒤섞이는 것이다.
이처럼 허구와 실제를 오가는 것은 TV 오락프로에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시청자도 이 경계의 모호함을 문제 삼기보다 적극적으로 즐긴다. 어울려 보이는 커플에게는 실제로 사귀라고 여론 압박을 넣기도 한다. 거꾸로 지금까지의 모습이 전부 연출이라 하더라도 리얼리티 쇼의 한계를 크게 문제 삼을 사람은 없어 보인다.
사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진짜 눈여겨볼 대목은 그것이 결혼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그것도 조만간 부부 관계가 자동 해지될 임시 커플이다. 신혼 때 흔히 발생하는 주도권 다툼 등의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그 위기가 곧 봉합될 것임을 시청자는 잘 알고 있다. 무심한 남편을 연기해 악플에 시달린다는 코미디언 정형돈은 현실 속 남편과 달리 조만간 개과천선할 것이고, 끝까지 서로 맞지 않는다면 이혼 대신 프로그램 하차라는 해법이 마련돼 있으니 그 또한 부담 없다.
이 프로는 신혼의 환상을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어쩌면 실제 부부들의 삶이 이처럼 달콤하지 않으니 맛보기 체험 프로가 더더욱 인기인 것은 아닐까. 바로 옆 채널에서는 실제 이혼 상담 내용을 소재로 온갖 요지경 속 같은 부부 갈등을 보여 주는 KBS-2TV ‘부부 클리닉’이 8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학순(선임기자)-20080426토] 박경리
‘주홍글씨’ ‘큰 바위 얼굴’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은 언젠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설가가 되기로 한 까닭을 이렇게 썼다. “변호사가 되려고 생각해 보니 늘 누군가가 다투기를 바라야 하고, 의사가 되어 볼까 싶어도 다른 사람이 아프기만 기다려야 하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소설이나 쓰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중국 작가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뒤 신체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는 것보다 중국인의 병든 정신을 고쳐 주는 일이 더 급하다는 걸 깨닫고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가 문학에 투신한 이유는 선험적인 해학이다. “1924년 10월14일 문학과 축제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젊은 어머니가 나를 잉태한 채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의 국장(國葬)에 참가하게 되었다. 두 달 뒤인 12월19일 태어난 나는 장례식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당시의 조사(弔辭)와 조가(弔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다. 그걸 듣고 숙명적으로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동기는 한층 희화적이다. 그는 야구장에서 시원스럽게 날아가던 2루타 공의 행방을 지켜보던 순간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익살스럽지만 진지하게 털어놨다. 김동리는 ‘죽음의 공포’가 문학의 길로 들어선 동기였다고 고백했다. 그런가 하면 조성기는 “문학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고 문학적인 답변을 남겼다. 대하소설 ‘토지’의 원로작가 박경리 선생은 “삶에 대한 연민 때문에 글을 쓴다”고 한 적이 있다. 지난해 5월 13년 만의 새 작품집 ‘가설을 위한 망상’을 펴냈을 때다.
여든이 넘은 박 선생이 지병으로 쓰러져 한때 위독하기도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깝고 우울하다. 선생의 말 가운데 “언어란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 배이다. 피안을 향해 한 치도 나갈 수 없지만 언어의 배를 타지 않고는 강을 건널 방법이 따로 없는 게 실상”이라고 한 구절이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던 기억이 새롭다. 선생이 수많은 팬들의 응원과 기원에 힘을 얻어 하루빨리 쾌차하고 우리 곁에 오래 남아 ‘언어의 배’를 저어주길 고대한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이용석(수석논설위원)-20080426토] 몰자비(沒字碑)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스스로 ‘황제’라는 칭호를 만들어 사용한 뒤 2000여년, 중국 역사에서 여성 황제는 단 한 명이었다. 측천무후이다. 무후는 원래 ‘정관의 치’로 유명한 당 태종의 후궁이었으나, 당 태종 사후 그의 아들 고종에게서 거듭 사랑을 받았다. 이를 기화로 황후를 죽여 그 자리를 차지하고는 병약한 고종 대신 권력을 휘둘렀다. 고종이 죽자 무후는 고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셋을 차례로 황태자·황제로 세웠다가 내쫓고는,690년 국호를 주(周)로 바꾸고 자신이 황제로 즉위했다.
무후는 이처럼 중국사를 대표하는 여걸이자 악녀였다. 제 아들이건, 선대의 중신이건 뜻을 거스르는 인물은 여지없이 숙청하는 공포정치로 권력을 유지했다. 반면 민생을 잘 보살펴 백성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무후가 권력을 휘두르는 동안 당의 황족들이 여러차례 반란을 일으켰지만 민간의 호응은 전혀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고종이 죽어 묘소인 건릉을 조성할 때 무후는 고종의 덕을 기리는 현덕비 옆에 거대한 석비를 나란히 세웠다. 자신이 훗날 고종과 함께 묻히면 그 비에 업적을 새겨주리라 믿은 것이다. 하지만 무후가 병석에 들자 주나라 대신 당 왕조가 다시 섰고, 당나라가 망할 때까지 그 비석은 문자를 새기지 않은 비, 곧 몰자비(沒字碑)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아울러 ‘몰자비’는 ‘허우대는 멀쩡한데 교양 없고 글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자고로 돌이나 쇠에 글을 새기는 까닭은 그 기록이 천년, 만년 남기를 원해서이다. 그러나 절대권력을 휘두른 측천무후조차도 몰자비의 수모를 당한 것은 당시에 이미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임기 만료를 눈 앞에 둔 제17대 국회가 광개토대왕비(높이 6.39m)보다 더 큰 7m짜리 거석을 최근 본관 후문 쪽에 세웠다. 국회 관계자 말로는 정치권 인사에게서 기증받은 것이라는데, 그 큰 돌이 어떤 구실을 하게 될지 걱정된다.17대 국회가 국민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지 국회의원들은 모르는 걸까. 행여 그 돌에 본인 이름 석자를 새기길 원하는 이가 있다면,‘몰자비의 우화’를 다시금 되새겨 보길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박성희(수석논설위원)-20080426토] 착한 몸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문구가 퍼진 적이 있다. 움직이는 게 어디 사랑뿐이랴.시간은 진리나 상식,심지어 낱말의 뜻까지 바꿔놓는다. '엽기적'이 '괴이하고 끔찍한' 대신 '기발한''독특한'으로 쓰이고,'발칙한' 역시 '버릇 없고 막돼 괘씸한'이 아닌 '기발하게 깜찍한'으로 통용된다. 유행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말도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걷잡기 어렵다. 툭하면 오르내리던 '엽기적'이 시들해지고 '발칙한'이 뜨더니 근래엔 온갖 것에 '착한'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착한 몸매'부터 '착한 가격''착한 고기' 운운하는가 하면 '착한 자본''착한 사랑'도 있다. 몸매가 착하다는 건 이른바 '쭉쭉 빵빵' 날씬하다는 얘기고,가격이 착하다는 건 품질 대비 값이 적절하거나 저렴하다는 말이다. 착한 고기는 좋은 고기,착한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을 의미한다. '착하다'의 의미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어질다'라는 사전적 풀이와 달리 '좋다''훌륭하다''적절하다'로 대체된 셈이다.
기이한 일이다. 본래대로 쓰이는 '착한 사람'의 '착하다'는 '어리숙하다''바보같다''멍청하다'와 동의어로 여겨지더니 갑자기 칭찬 내지 찬양하거나 자랑하고 싶은 데다 갖다붙이게 된 건 무슨 연유일까. 더러는 '법 없이 살 사람'이란 얘기가 욕이 된 세상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라고 한다. 삭막한 세상에서 의미가 전도된 '착하다'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현상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품성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꼽거니와 '착하다'의 가치는 변할 수 없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사악하고 고약한 욕심쟁이들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선량한 이들이 떠받친다. 제 목숨 내놓고 남을 구하는 사람도 있고,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이웃집 아이의 비명소리에 달려나가는 여대생도 있으니 괜찮지,남이야 어떻게 되든 제 욕심 채우기에 바쁜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아직도 멀쩡하랴.'착하다'가 몸매나 가격보다 '마음,성품,이웃,관리'처럼 원래 쓰일 곳에 쓰였으면 싶다.
[매일경제신문 칼럼-기자 24시/김헌철(산업부기자)-20080426토] 해외에서 본 초라한 '기술한국'
지난 20일 독일 하노버 콘그레스센터에서 세계 최대 산업박람회인 하노버메세 개막식이 열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옆자리에는 특사 자격으로 파견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앉았다. 일본 전통 무용단의 축하 공연도 성대하게 펼쳐졌다. 일본이 이처럼 환대받은 것은 올해 하노버메세의 파트너 국가였기 때문이다.
하노버메세는 25일 폐막식에서 한국을 내년도 공식 파트너로 선포했다. 주최 측이 흥행을 위해 파트너 국가를 돌아가며 선정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우리에게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하노버메세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전후 재건 차원에서 출범시킨 국제 산업박람회다. 정보기술(IT)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산업기술을 망라하는 박람회다. 이미 전 세계 60개국, 5100여 개 업체가 참여하는 초대형 박람회로 자리잡았고, 전시회 기간 동안 20만명 이상이 하노버를 찾는다.
그러나 현지에서 본 '기술 한국'의 위상은 초라했다. 박람회에 참가한 국내 기업은 국고 지원을 받아 공동 참여한 업체를 다 합쳐도 40곳에 못미쳤다. 이에 비해 중국은 260개 업체가 참여했고 인도와 터키도 각각 150개, 130개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관문으로 하노버메세를 택했다.
하노버메세는 단순히 기업 브랜드를 홍보하는 전시회가 아니다. 업그레이드한 제품을 선보이고, 고객들의 요구를 새롭게 수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내년 '한국의 해'도 형식에 그쳐선 안 된다. 일회성 행사를 위해 참여 업체 머릿수를 채우는 데 급급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내후년에 한국 업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려면 아예 규모는 작더라도 내실을 기하는 편이 낫다. 관련 부처나 단체는 앞서 하노버메세에 참여해온 한국 기업들의 노하우부터 철저히 챙기고, 국내 기업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쪽으로 당장 준비에 착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