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8년 3월 27일 목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칼럼

eros 2008. 3. 27. 11:06
 

 

 

[한국경제신문 사설-20080327목] 글로벌 R&D센터 유치 더 속도내야 

 

  독일의 다국적 기업 SAP가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한다. SAP는 기업소프트웨어 분야를 선도하고 있고,특히 ERP(전사적 자원관리) 분야에선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당장의 투자규모(3년간 250억원 투자)를 떠나 대내외적 의미가 적지않다. 특히 적극적인 외국인투자 유치를 천명(闡明)한 새 정부로서는 첫 성과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기업들의 R&D센터 유치에 가속도가 붙었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물론 그 전에도 정부가 외국 R&D센터 유치에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2004년부터 각 부처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지금까지 59개의 외국 R&D센터를 유치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1160개 외국 R&D센터를 유치한 중국과는 수적으로 비교가 안된다. 욕심나는 다국적 기업 R&D센터들은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패로 끝난 사례도 나오고 있다. 2004년 외국기업으로선 최초로 설립된 인텔의 R&D센터는 한국을 떠났다. HP도 연구소를 세웠지만 지금은 이름만 남았고, 구글의 투자계획도 용두사미가 됐다. 외국 R&D센터 유치도 경제논리가 그대로 작용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동북아 허브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특화된 분야, 경쟁력 등과 연결시키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번 SAP의 경우만 해도 한국의 우수한 인적자원과 기업 소프트웨어 분야의 성장가능성이 R&D센터 설립의 주된 동기였다. 장점을 가진 분야, 인력을 바탕으로 R&D센터를 유치하면 성공 가능성도 커지고, 경제적 파급효과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임금과 땅값에서 싱가포르와 한국이 비슷해도 싱가포르를 택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개방성(開放性)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지식재산권 보호는 기본에 속하고, 노사관계 규제 생활환경 등의 측면에서 매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개방형 연구시대다. 외국 R&D센터를 제대로 유치하고 활용하면 그만큼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후속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외국 R&D센터 유치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327목] 퇴행적이고 현실성 없는 이명박 통일정책 

 

  어제 있었던 통일부 업무보고는 그간 꾸준히 진전돼 온 남북관계가 앞으로 정체 또는 퇴보할 것임을 예고한다. 통일정책의 연속성과 독자성이 크게 위축된데다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과제만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코드’에 맞춘 이런 정책기조는 남북 사이에 새로운 갈등을 부를 가능성이 적잖다.

  새 통일정책은 우선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이뤄진 성과를 부정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기본이 돼야 할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다. 정상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및 해주특구, 조선협력단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철도·도로 개보수 등이 정책 과제에서 빠진 것은 물론, 총리회담과 경협공동위 등도 언제 열릴지 알 수 없게 됐다. 대신 이명박 대통령은 1991년 노태우 정권 때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유달리 강조했다. 통일정책의 연속성을 부인하고 남북관계 출발점을 10여년 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또한 통일정책을 북한 핵문제의 종속변수로 위치시켰다. “핵문제 진전 상황을 봐 가며 남북관계 발전의 속도와 폭, 추진방식을 조정하겠다”는 방침은 핵 문제가 마무리될 때까지 남북관계에 힘을 쏟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남북관계의 상대적 독자성까지 제한함으로써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다. 정권교체 이후 사실상 중단 상태인 남북 당국간 대화를 어떻게 재개할지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접근으로는 통일 기반과 대북 발언권을 강화하기는커녕 핵문제 등 한반도 현안에서 한국의 위상만 떨어뜨리기 쉽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나들섬 구상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최우선적 해결 등 여건 조성과 남북의 정치적 결단이 필수인 사안들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다. 남북관계 수준이 높아져야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을 놓고, 중간 과정은 건너뛴 채 종착점만을 내세운 것이다. 상대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이런 태도가 비현실적임은 90년대 이전 발표된 많은 대북 제안이 거의 성사되지 않은 사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입맛대로 뒤집어선 안 될 국가 대계가 바로 통일정책이다. 앞서 이 대통령의 통일부 폐지 시도에 대해 국민 다수가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과거로 역행하지 말고 정말 국민의 뜻에 맞는 통일정책이 뭔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20080327목] ‘살얼음판 금융시장’에 엇갈린 신호 보내다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제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성장에서 물가 안정으로 바뀌었다는 최근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말 국내외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물가 안정이 성장보다 더 시급한 상황”이라며 물가 관리를 우선시하겠다고 언급한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대통령의 정책방향 제시와 경제팀 좌장의 해석이 이처럼 다르게 들리니 금융시장이 더 출렁댈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경제정책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헷갈린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가하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그제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30원까지 갔는데 단기적으로 보면 천장을 한번 테스트해본 것”이라고 말해 혼선을 키웠다. 이는 ‘환율이 이미 천장을 찍었으니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뜻으로 해석돼 환율이 6년 11개월 만의 최대폭인 20원 이상 급락(원화가치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같은 날 강 장관은 수출 확대를 위해 환율 상승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국 경제의 지휘부에서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 시장을 교란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과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외환위기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기초체력이 약해진 우리 경제로서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서민 생활에 직결되는 물가 중 어느 한쪽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성장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딱 부러지게 우선순위를 두기 어렵다는 강 장관의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나 향후 방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언급은 시장의 반응까지도 예상해 극히 절제된 언어로 해야 한다. 

  그런데도 강 장관과 이 총재는 각종 악재로 가뜩이나 취약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힘을 모으기보다는 금리와 환율 정책의 주도권 경쟁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 국면에서 유독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이에 따라 주가 하락 폭이 커졌다. 시장 참가자들을 상대로 고도의 두뇌게임을 벌여야 하는 정책 당국자들이 어설프게 자기 패를 미리 보여주는 우(愚)를 범한 탓도 있다. 

 

 

[조선일보 사설-20080327목] 세금 안 내는 사람은 의원 자격도 없다 

 

  4·9 국회의원 총선 후보로 등록한 사람들 중 26.7%가 1년에 소득세를 10만원도 안 낸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세를 아예 한 푼도 안 낸 사람도 9.7%나 됐다. 2006년 기준 국민 1인당 소득세 평균 납부액은 325만원이었다. 이 국민 평균 납세액보다 많은 세금을 낸 의원 후보자는 전체의 43%에 불과했다.

  국민이 지는 공적 의무의 출발이 세금 내는 일이다. 그런 기본 중의 기본 의무도 제대로 다 하지 않은 사람들이 공직으로 뽑아달라고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국회와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정부가 국민 세금을 얼마나 걷을지를 결정하고 걷은 세금을 함부로 쓰지 않는가를 감시하는 일이다. 의회(議會)제도 탄생 자체가 국왕과 납세자 간의 세금 갈등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제 돈으로 세금 한번 제대로 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국민 세금 아까운 줄 알 리가 없다.

  국민 세금을 얼마나 걷을지를 따지는 것이 국회 예산 심사다. 우리 국회 예산 심사는 해마다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회기 만료 직전에 벼락치기식 여야 타협으로 해치우는 것이 아예 관례가 돼버렸다. 국민 세금이 왜 이런 헛곳에 쓰여야 하느냐를 철저히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야당은 체면이라도 세우게 몇천억원 깎아달라 하고 여당은 마지 못해 그걸 받아들이는 식의 정치 쇼를 하는 게 우리 국회 예산 심사의 현실이다. 국민 세금을 어떻게 썼는지를 검사하는 국회 결산 심사는 하는지 안 하는지도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제가 고생해서 번 돈에서 꼬박꼬박 세금 내고 살아 온 사람들만 국회의원이 되게 한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세금 안 낸 의원 후보자들 중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나도 남들처럼 세금 내고 싶다"고 되레 큰소리 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운동권 출신이 돈이 없다는 것을 내세우려 흔히 하던 얘기인데, 사실은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고통과 비애와 절박함을 모른다고 자백(自白)하는 소리다. 이제 그런 소리가 통하던 시대도 다 지나갔다. 1년에 10만원 세금도 못 낸 정도라면 공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봐야 한다. 세금만 법대로 정확히 냈다면 어떤 재산가도 공직 후보자로 문제될 것이 없다.

  우리가 세계의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세금은 안 내면서 국회의원은 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늘었다는 점이다. 2004년 총선 때 1년에 소득세 10만원도 안 낸 후보자는 전체의 17%였다. 올해는 그보다 9.7%포인트가 더 늘었다.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세금 납부 경력을 잘 살펴서 심판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면 후보자의 납세, 병역, 전과, 재산 정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부터라도 투표하기 전에 반드시 들여다 볼 일이다. 

 

 

[서울신문 사설-20080327목] 연금으로 빚 갚으면 노후는 누가 책임지나 

 

  청와대가 사회적 소외계층의 새 출발을 돕기 위한 ‘뉴스타트 2008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국민연금을 활용한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구제방안을 제시했다. 신불자들이 본인이 낸 국민연금 적립액을 담보로 돈을 빌려 금융권 빚을 갚고 신용을 회복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신불자 대책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마디로 신불자들의 노후자금을 이용한 땜질식 빚 돌려막기에 불과하다. 특히 최소한의 사회 안전판인 국민연금의 존립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발상부터 잘못됐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신불자들은 자신이 낸 국민연금의 절반을 미리 헐어 금융권 부채를 갚고 이를 5년 동안 나눠 갚도록 했지만 신불자들이 과연 국민연금을 재납입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29만명에 이르는 수혜자 대부분이 안정적 소득원이 없는 상태여서 빚을 갚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재납입을 하지 못하면 나중에 이들이 받게 될 연금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나마 국민연금에 가입해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신용불량자들을 아무런 대책없이 노후 빈곤으로 몰아넣는 꼴이다.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내몰린 이들의 노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이 될 것이다.

  국민연금은 아무때나 헐어서 쓸 수 있는 적금이 아니다. 신불자를 대상으로 국민연금 담보대출을 해주다 보면 아무나 국민연금 중간정산을 요구할 수 있어 국민연금 기반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신불자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절차를 간편화하고, 금융소외계층을 상대로 소액신용생계대출을 전담하는 국책은행 설립 등 적극적인 재기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유병선(논설위원)-20080327목] 자원봉사의 한류(韓流) 

  

  비주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업이 할 일은 오직 돈버는 일이다(The business of business is business)’라는 제하의 당돌한 기고문을 게재했던 게 1970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0년도 안돼 일체의 사회적인 것을 부정하고 개인의 이기적 이윤추구를 ‘합리적 경제인 이론’으로 옹호한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는 주류의 자리를 차지했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동체와 연대의 정신은 사라지고 ‘자기만 아는 자들(Ich-linge)’의 시대가 닥칠 것이란 전망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예측은 틀렸다.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되레 늘어난 것이다.

  동료가 넘어지면 못본 척 하는 게 합리적 경제인이다. 경쟁자를 돕는 것은 바보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도박판이라면 모를까 세상은 결코 합리적 경제인 이론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로 물결친 태안이 그렇다. 자기 일도 아닌데 시커먼 모래밭에 꾸역꾸역 모여들어 기름범벅을 닦아냈다. 엎질러진 기름을 되담아주지는 못했지만, 100여만명의 ‘바보들’이 있었기에 살길이 막막해진 피해주민들은 통곡할 수 있었고, 눈물을 닦을 수 있었다.

  프리드먼이라면 혀를 찼을 바보들인 지구촌의 자원봉사자들이 다음달 2일 파나마에서 세계 대회를 연다고 한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엔 겹경사다. 우선 태안의 기적이 동행한다. 아울러 국제 자원봉사 네트워크의 하나인 세계자원봉사협의회(IAVE)의 회장 취임식이 열리는데, 그 주인공이 이강현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사무총장이다. 20년 국내 자원봉사 문화 정착에 힘써온 그의 국제무대 진출을 계기로 ‘자원봉사의 한류(韓流)’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우리네 자원봉사 참가자는 전체 인구 5명에 1명꼴이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30~50%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성장세는 괄목할 만하다. 우리의 시민의식이 빠르게 키자람을 한다는 뜻일 터이고, 신자유주의의 쓰나미에 뭉개졌던 사회와 사회적인 것이 복원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징표로 볼 수도 있다. ‘자기만 아는 자들’의 살벌한 시대를 막는 힘은 넘어진 자를 일으켜세우는 비합리적인 ‘시민’들에서 나온다. 태안의 기적을 일상 속의 작은 기적들로 나누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