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8년 3월 20일 목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칼럼

eros 2008. 3. 20. 22:26
 

 

[한국경제신문 사설-20080320목] 레미콘 파업 갈등해법 아니다 

 

  레미콘 업체들이 건설업체에 대해 공급가격을 올려 달라며 어제부터 일제히 파업에 돌입,생산을 중단함으로써 건축공사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전국적인 공사차질과 엄청난 손실이 불보듯 뻔하다.

  최근 주물업계에 이어 원자재값 폭등에 따른 대ㆍ중소기업 간 납품가격 갈등(葛藤)이 결국 공급중단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이런 사태가 다른 산업계로도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보면 그 혼란과 경제 전반의 피해를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레미콘 업계가 생산중단이라는 극단적 행동에 나설 정도로 한계상황에 몰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자재값으로 주물이나 레미콘뿐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들이 기존 납품단가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추기 힘든 현실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수요업체인 대기업들도 심각한 원가압박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힘겨루기식 공급중단과 버티기만 고집한다면 양쪽 모두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생존마저 위협받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하루빨리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슬기로운 해결방안 모색과 타협이 시급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4단체장들이 어제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경제살리기와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결의'를 통해 경제회복의 선도적 역할,상생의 노사관계 조성,대ㆍ중소기업간 상생협력 등에 힘쓰기로 다짐한 것은 대 증소기업,노사간 협력체제 구축의 전기가 될 만하다. 특히 전경련이 납품가 문제와 관련해 중소기업과 대책을 논의키로 하는 등 적극적인 원자재값 파동 해결 의지를 보인 것은 난국 극복을 위한 돌파구(突破口) 마련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로선 원자재값 상승은 곧바로 기업의 생산비 증가 및 수익감소에 따른 경쟁력 약화와 투자여력 잠식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깊은 주름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대ㆍ중소기업 모두에게 위기의 요인이라는 얘기다. 이런 때일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고통을 나누고 상호 협력체제를 굳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방도를 함께 모색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320목] ‘야만의 전쟁’ 5년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겠다는 결정은 내 임기 초반 올바른 결정이었다. 내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이 순간에도 올바른 결정이고, 영원히 올바른 결정일 것이다. … 자유는 신이 모든 인류에게 주는 선물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지 오늘로 다섯 돌이 되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의 태도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는 최근 연설에서도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과 민주주의 확산론을 강변했다. 미국이 신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무리 낮춰 잡아도 지난 5년 동안 이라크인 수십만명이 숨졌다. 100만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4천명 수준인 미군 사망자 수의 100~200배가 넘는 규모다. 고향을 떠나 떠도는 이라크인도 전체 인구의 20%에 이른다. 미국의 전쟁 비용도 엄청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 부총재 등이 최근 펴낸 <3조달러 전쟁>은 이자와 사회비용 등을 합친 미국의 전비 지출이 3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계산했다. 중동 정세는 훨씬 더 불안해졌고, 침공 당시 배럴당 20달러대 중반이던 국제유가는 100달러를 돌파했다. 이런 어리석고 광기 어린 전쟁이 또 있을까 싶다.

  모든 책임은 부시 행정부에 있다. 부시 행정부는 침공 명분으로 삼았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개발·보유설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중동 민주화론으로 점령을 합리화하려 했다. 중동 지배와 석유 장악을 위한 제국주의적 기획을 민주주의 확산으로 포장한 것이다. 이 또한 중동 여러 나라를 비롯한 지구촌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얼마 전부터는 대안부재론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일부 인정하지만 미군이 철수하면 사태가 더 나빠질 터이므로 점령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협박이다. 부시 행정부는 2006년 말 초당파 기구인 이라크연구그룹이 내놓은 외교노력 강화 제안을 거부할 때도 이런 논리에 기댔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 반성은 물론이고 전쟁을 마무리할 의도도 능력도 없음이 분명하다. 미국의 정권교체만이 이라크 사태를 풀 수 있는 것 같은 상황이다.

  딱한 것은 한-미 동맹 강화와 현지 이권 확보를 주장하며 파병을 계속 중인 한국 정부다. 야만의 전쟁에 동참하는 대가로 실리를 챙기겠다는 이런 태도는 국익 추구도 실용주의도 아니다. 나라가 커질수록 떳떳하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그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과 대가가 따라오는 법이다. 

 

 

[동아일보 사설-20080320목] 1차대전 참전 老兵을 위한 프랑스 國葬을 보며 

 

  프랑스는 17일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중 최후의 생존자였던 라자르 폰티첼리(110)의 국장(國葬)을 TV로 생중계하며 엄숙히 거행했다. 나폴레옹 황제가 묻힌 파리 앵발리드에서 진행된 장례식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정부 및 군(軍) 수뇌부가 대거 참석했다. 공공건물엔 조기(弔旗)가 걸렸고 공무원들은 1분간 묵념을 올렸다. 프랑스는 사병(士兵) 출신 노병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시한 것이다. 

  장례식을 주관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우리는 결코 푸알뤼(참전용사·용감한 사람이란 뜻)를 잊지 않을 것”이라며 “프랑스 젊은이들이여, 조국을 지켜낸 이들에게 빚지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6일 1차 대전 참전용사 중 유일한 생존자인 프랭크 버클스(107) 씨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미국 국민의 고마움을 전했다. 국방부 청사엔 그의 초상화도 내걸었다. 

  감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 이런 국가와 정부를 위해 기꺼이 총을 들고 전선(戰線)으로 나간다. 2차 대전 후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긴 평화의 시기가 계속되고 있고, 국가 간에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지만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 평화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우리는 어떤가. 6·25전쟁을 겪었고, 지금 이 순간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장병들이 아니었더라면 대한민국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참전용사가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북한에 생존해 있는 580여 명의 국군포로만 해도 벌써 70대 이상의 노인이 됐지만 송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남북 화해 협력이란 미명 아래 송환 요구를 부담스러워 했다. 2002년 서해교전 때 희생된 장병 6명에 대한 추모행사도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일선부대 단위 기념식으로 축소했다. 남의 나라 노병의 국장 앞에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다. 

  참전용사들을 기억하지 않는 정부와 국민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 

 

 

[조선일보 사설-20080320목] 태국의 탈북자들 하루빨리 데려오라 

 

  태국 정부는 1월 우리 정부에 "태국 내 탈북자를 가능한 한 많이 데려가라"고 통보했는데도, 우리 정부는 국내 수용 시설 부족 등을 들어 단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방콕의 이민국 수용소에는 현재 300여명의 탈북자가 수용돼 있고, 이외에 경찰서와 민가 등에도 800여명의 탈북자들이 한국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 정부는 매주 40~50명 정도씩 태국 탈북자를 입국시키고 있다.

  탈북자들의 태국 내 생활은 비참하다. 260㎡(80평) 넓이의 수용시설에 300여명이 한꺼번에 머무는 바람에 생활이 말이 아니다. 아이를 안은 채 서서 졸던 엄마가 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샤워장은 물론 화장실까지 사람이 들어차 거기서 잠을 청해야 하는 형편이다. 열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의식불명이 된 경우가 많다는 증언도 있다. 중국 공안원의 눈을 피해 수천 ㎞를 가로질러 사지(死地)를 탈출한 그들이 오죽하면 "죽어버릴까 생각했다" "숨어 다닌 10년보다 더 힘들었다"고 하겠는가.

  탈북자들이 태국으로 몰리는 것은 2004년 7월 우리 정부가 베트남에 수용돼 있던 탈북자 450여명을 한꺼번에 데려오자 북한이 강력하게 항의했고, 이후 베트남이 탈북 루트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국내 수용 규모를 감안해 단계적으로 탈북자들을 데려오고 있다고 했으나 사실은 북한 눈치를 보면서 소리 나지 않게 하려는 뜻이 더 강했다.

  북한에 대해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던 전(前) 정권들과 달리 "할 말은 하겠다"는 새 정부가 출범한 마당이다. 새 정부는 이미 북한 인권에 대해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북한 인권 문제 중에 우리가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는 확실한 부분이 탈북자 문제다. 불필요하게 북한 정권을 자극할 필요는 없겠지만 탈북자의 안전과 조속한 국내 송환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가 탈북자 수용·교육시설 하나원의 규모를 들어 대규모 귀환이 어렵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나원의 규모는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임시 시설을 마련할 수도 있다. 작년에만도 2500여명의 탈북자가 들어왔다. 국내 입국한 탈북자는 1만3000명을 넘어섰다. 북한 상황으로 보아 언제 대량 탈북 사태가 터질지도 모른다. 하나원 시설 확충에 쓰는 세금을 아깝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신문 사설-20080320목] 재혼·입양 가정 울리는 가족관계 등록부 

 

  호주제 폐지에 따라 올해부터 호적 등·초본 대신 사용되고 있는 가족관계 등록부가 재혼·입양 가정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 변화하는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다 과도하게 개인신상 정보를 노출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새 가족관계 등록부 제도는 개인 중심으로 등록부를 기재하고, 목적별 발급으로 개인정보 보호의 수위를 한층 높였으며, 원하는 경우 성과 본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긍정적 변화에 대한 기대를 안고 시행됐다. 그러나 실제 시행 결과 재혼 가정의 경우 가족관계 증명서에 새 남편의 아이들이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제되는가 하면 친권이나 양육권이 없는 자녀들은 기재되는 모순을 낳고 있다. 가족관계를 친부모의 혈통 위주로 작성한 결과다. 입양 아동의 개인증명서에는 ‘버려진 아이’임을 입증하는 기아발견 상세기록이 여과없이 기재된다. 혼인관계 증명서에는 과거의 이혼 경력이 고스란히 누적되어 발급된다.

  입양이나 과거의 출산경력, 재혼, 이혼 등 과거가 알려지면 어떠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타인이 알 필요가 없는 정보들이 공개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부당하게 노출되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마련된 가족관계 등록부 제도가 오히려 가정 파괴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 시정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새 제도를 다양한 가족의 존중과 포용이라는 당초의 취지를 살리고,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보완할 것을 당부한다.

 

 

[경향신문 사설-20080320목] 집회·시위를 ‘떼쓰기’로 인식해서야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국민 대부분이 법과 질서보다 떼를 쓰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또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앞으로는 ‘떼법’ ‘정서법’이라는 말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법질서 확립에 앞장서겠다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또 불법·폭력 집회와 정치파업의 주도자 및 배후조종자를 추적해 엄단하고, 법질서 파괴행위에 대해서는 사태가 종료된 뒤에도 책임을 끝까지 묻는 이른바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법치국가에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법집행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이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과 김 장관의 언급 곳곳에서 마치 민주화된 지금의 시계를 수십년 전 군사독재시절로 되돌려 놓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국민 대부분이 떼 쓰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언급은 사실관계 자체가 맞지 않을뿐더러 우리 국민의 법의식을 폄훼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감스러울 뿐이다. 4700만 국민 가운데 4300만~4400만의 국민이 법질서에 대한 의식없이 불법 단체행동이나 일삼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집회와 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나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또한 불법 폭력시위는 점차 사라지고 이제는 평화적 시위가 정착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고 집회 시위 자체를 척결해야 할 사회악쯤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국민을 섬긴다’는 이명박 정부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다. 정부는 평소에도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이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야 한다. 또 이들이 거리에 나설 경우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폭력 등 불법행위가 있으면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집회·시위에 대한 경직된 인식을 과감히 버리기를 촉구한다. 

 

참고할 내용

 

노동 3권 :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말하며, 근로 3권이라고도 한다. 노동자의 권익(權益)과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으로서 생활권(생존권 또는 사회권)에 속한다. 한국 헌법 제33조에서는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으나,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로 인정된 자(예:단순한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등)를 제외하고는 근로 3권이 인정되지 않으며, 국가 ·지방자치단체 ·국공영기업체 ·방위산업체 ·공익사업체 또는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