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0일 월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칼럼
[한국일보 사설-20080310월] 양보와 신뢰로 임금 갈등 풀어가자
노사관계가 심상찮게 흘러가고 있다. 민주노총이 7일 이영희 노동부장관과의 첫 만남에서 올해 총파업까지 경고하고 나선 데 이어, 새 정부에 우호적이던 한국노총도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핵심은 역시 임금문제다. 임금 인상에 대한 노사의 견해차는 매우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6일 제시한 적정 임금인상률은 2.6% 인데, 한국노총은 9.1%, 비정규직 18.1%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8.0%, 비정규직 20.2% 인상을 요구안으로 확정했다.
양측의 주장에는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경총은 한마디로 어려워진 국내외 경제여건에 높은 임금상승까지 겹치면 우리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주장이다.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임금 안정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그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로 애를 먹는 기업으로서는 인건비 증가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노동계에 일방적 양보를 요구할 수도 없다. 한국노총의 주장처럼 경총이 제시한 2.6% 인상은 올해 예상경제성장률 4.7%의 거의 절반에 불과하며 물가상승률 3.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현재로서는 타협점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점에서 노사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임금 대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대신 그 여유분으로 비정규직과 협력업체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벌써 이를 실천한 곳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LG전자가 9일 올해 대기업으로는 처음 임금동결에 전격 합의했다고 한다.
고임금 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자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며, 근로자 자신들의 미래를 향한 투자이기도 하다. 대신 기업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말 뿐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갖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비정규직과 협력업체에만은 과감한 혜택을 베풀어야 한다. 양보와 신뢰를 통한 타협만이 노사가 살 길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310월] 중소 주물업체들만의 어려움이겠는가
대기업 눈치를 보던 중소 주물업체들이 반기를 들었다. 주물공업협동조합 500여 회원사 중 절반이 지난주에 납품 단가 현실화를 요구하며 시한부 납품 중단에 나섰다. 기업이 납품을 않겠다니, 이례적이고 명운을 건 도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물 원료인 선철이나 고철 값은 급등했지만 대기업 납품 단가는 제자리니 견딜 수 없어서다. 한 업체를 예로 들면, 2006년 말 ㎏당 270원이던 고철 값이 520원으로 올랐지만 납품 단가는 ㎏당 1000원 그대로란다. 요즘 일만도 아니다. 주물조합 말로는, 1999년부터 올해까지 고철 값이 231.2%, 선철은 121% 올랐지만 주물제품 값은 20∼30% 인상에 그쳤다고 한다. 마른 수건 짜듯 하며 견뎌 왔는데 이제 한계에 이른 것이다.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마찬가지라는 심경으로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란 게 쉬 짐작된다. 대기업들은 생산 차질이 우려되자 이제야 단가 인상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상생협력은 말로만 있을 뿐, 이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 구조의 현주소다.
주물업계만의 일일까.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원가 부담을 떠넘기고 납품가를 후려치는 따위의 불공정 거래 구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산업 전반에 걸쳐 있는 고질병의 하나다. 그 영향은 대-중소기업의 수익성 흐름 비교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예컨대 한국은행이 1540개 상장·등록 기업을 조사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07년) 3분기 기업경영 분석’ 자료를 보자. 제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1년 전의 6.0%에서 7.1%로 높아졌지만 적자 업체 비중은 33.1%에서 37.4%로 되레 뛰었다. 적자 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원자재값 상승 등의 여파를 주로 중소기업이 떠안고 있음을 읽게 한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말라가서는 이룰 수 없는 구호다. 오히려 연쇄 부도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기우만은 아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중소기업 비율이 2004년엔 열에 세 곳 정도였으나 지난해에는 네 곳 이상으로 늘었다. 반면에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해에만도 68조원이나 불었다. 연간 증가액으로 사상 최대다. 튼실한 중소기업의 뒷받침 없는 대기업 경쟁력 강화나 일자리 창출이란 있을 수 없다. 정부도 대기업도 결코 가벼이 봐선 안 될 상황이다.
[동아일보사설-20080310월] FIFA 규정 걷어찬 北의 ‘더티 플레이’
북한이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거부해 남북한 축구팀의 2010년 월드컵 예선전(26일)이 평양이 아닌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게 됐다. ‘월드컵 예선 경기장 안에는 양국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연주돼야 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 22조를 북한이 끝내 외면하자 FIFA가 내놓은 중재안이다. 시일이 촉박해 중재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북한에 규정 준수를 더 강하게 촉구하지 못한 FIFA에 유감을 표시한다.
북한 또한 FIFA 중재안에 안도하기보다는 이번 일이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에 대한 신뢰에 미칠 영향을 헤아려봐야 한다. 더욱이 한국은 2002년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 개최하기까지 했다. 그런 나라의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거부했으니 북한이 아직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에 얼마나 부족한가를 만천하에 스스로 드러낸 꼴이 되지 않았는가.
남북한은 이미 1991년 유엔 동시가입으로 독립된 국가로서의 실체를 상호 인정한 지 오래다. 이제 와서 이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부정이나 다를 바 없다. 북한이 이러니까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제안을 해도 그 진의를 의심받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남북 정상회담의 산물인 6·16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만 해도 그렇다. 북한은 입만 열면 이를 지키라고 하지만 태극기와 애국가를 인정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가. 북한의 통일신보가 8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겨냥해 “외세가 아닌 동족과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세우는 ‘민족공조’는 결국 남한을 여전히 적화혁명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위선의 증거일 뿐이다.
정부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봐서는 안 된다. 6월 22일 서울에서 열릴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북한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허용해야 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북한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제3국 경기도 불사한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080310월] 동맹정책과 대북정책간 현실적 균형점 찾아야
새 정부가 외교통상부 장관이 의장직을 맡는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를 신설했다. 지난 10년간 대외정책을 지휘해 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대체하는 기구다. 전(前) 정권에선 NSC 상임위원장을 중반까지 통일부장관이, 그후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이 맡았다. NSC 상임위는 대통령에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자문을 하거나 이런 문제들을 놓고 관계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는 기구다. 외교·통일·국방장관과 국가정보원장, 국무총리실장,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등이 참석 멤버다.
새 정부가 외교통상부장관을 신설된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의 의장에 앉힌 것은 북한정책을 남북 양자(兩者) 차원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등 동맹 또는 우방국가 간의 다자적(多者的) 틀로도 접근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전(前) 정권의 NSC상임위는 대통령의 북한 문제 가정교사나 북한에 대한 대통령의 뜻을 잘 읽고 받드는 통일부장관과 청와대 안보실장 등 코드형 인사(人士)가 돌아가며 주물러왔다. 이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을 무더기로 쏘아대고 핵실험을 했을 때도 대규모 쌀 지원 문제를 논의하고 툭하면 혈맹인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오는 일이 곧잘 빚어졌다. 이러다 보니 한미동맹이 '우호적 결별' 일보 직전이란 소리가 정권 내내 서울과 워싱턴 주변에 나돌았다. 북한이 학수고대하는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核雨傘) 철폐를 논의했던 자리도 이곳이었다.
북핵, 북한 동포 인권·남북 화해와 교류 등등의 북한 문제는 세계 차원의 국제 문제이면서 민족 차원의 남북 문제라는 양자적(兩者的) 성격을 띠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만 일방적으로 기울어서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해결책에 도달하기 힘든 것이다.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이 편향된 길을 걸은 것은 시스템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대 대통령의 생각이 그러했고 그 대통령을 지지한 세력들이 그에 동조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안보·외교·북한 문제에 대해서 역사적 안목으로 균형잡힌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동의를 이끌어내야 할 최고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사태 인식과 판단 능력이 열쇠라는 말이다.
[중앙일보 칼럼/김진 시시각각-20080310월] 손학규, 정동영 그리고 로페스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다. 미군 해병 중위 발도메로 로페스는 해병 1사단 5연대 1대대 A중대 3소대장이었다. 탄우(彈雨) 속에서 로페스는 소대원들을 이끌고 해변에 상륙했다. 눈앞에 북한군의 토치카가 기관총을 뿜어댔다. 그는 몸을 일으켜 수류탄을 던지려 했다. 기관총탄이 어깨와 가슴을 때렸고 수류탄은 부하 쪽으로 굴렀다. 로페스는 피가 흐르는 오른팔로 수류탄을 감싸 자기 몸 밑으로 넣었다. 수류탄은 터졌다. 미 의회는 그에게 ‘명예의 훈장’을 수여했다. 로페스의 마지막 장면은 ‘명예의 훈장’사이트(사진)에 실려 있다.
로페스의 나이는 25세. 10대와 총각 세월을 거쳐 이제 결혼할 나이에 그는 저세상으로 갔다. 그는 가장 낯설고 공포스러운 전투에서 선두에 섰다. 소대장 로페스의 시체를 넘어 소대원들은 총알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상륙작전은 성공했다.
통합민주당은 기로에 서 있다. 소리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죽는가 싶더니 박재승의 공천 혁명으로 겨우 한 번 싸워볼 만한 기력이 생겼다. 이제는 기력을 투지로 바꾸어 줄 불꽃이 필요하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이는 병사가 아니라 장수다. 지금 민주당의 장수는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대통령 후보다. 두 사람은 평생 조직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 이제는 자신의 희생으로 그 은혜를 돌려줄 때다.
교수 손학규는 1993년 4월 재·보선 때 경기도 광명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됐다. 당시 개혁정치로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손학규는 대통령과 당의 은덕을 크게 보았다. 그는 96년·2000년 연거푸 국회의원이 됐고 2002년엔 경기도지사에 올랐다. 중간에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서 이적한 그를 대표로 뽑아주었다. 이제는 손학규가 조직(당)에 기여할 차례다.
앵커 정동영은 96년 4월 전주 덕진구에서 승리해 국회의원이 됐다. 득표수는 전국 최다, 득표율은 전국 3위였다. 그는 2000년에도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전국 최고의 안전지대여서 그는 선수(選數)를 쌓았고, 덕분에 대통령 후보까지 될 수 있었다. 2004년 그는 비례대표를 자진해서 버렸지만 그것은 노인 폄하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진 것이다. 타의에 의한 희생이다. 이제는 자발적인 보은이 필요하다.
손과 정은 모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병사의,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병사의 마음을 얻으려면 장수는 자신의 안위를 버려야 한다. 노무현이 그러했다. 봉하마을에서 노무현은 지금 손·정 두 사람의 결기(決起) 여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손과 정은 다투어 서울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해야 한다. 절체절명 야당의 장수에게 경기도 광명이나 서울 동작을은 어울리지 않는다. 종로에는 한나라당의 재선(再選) 장수 박진이 칼자루를 만지며 기다리고 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손·정으로선 쉽게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손·정은 떨어지기 위해서라도 나가야 한다. 나가서 왜 건전야당이 필요하며, 왜 유권자가 민주당을 다시 살려줘야 하는지, 피를 토하며 외쳐야 한다.
스파르타 용사 300명을 이끌었던 레오니다스 왕은 전열의 맨 앞에서 싸웠다. 페르시아 대군 수십만을 이끌었던 크세르크세스 왕은 거대한 가마에 앉아 채찍으로 부하들을 독전했다. 수십만은 300을 이기지 못했다. 손·정은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택근(논설위원)-20080310월] 낮술
1999년 6월7일, 진형구 대검찰청 공안부장은 대검찰청 간부들과 오찬을 하면서 폭탄주를 마셨다. 그는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내정되어 서울을 떠나야 했다. 대낮에 대취한 그는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자랑삼아 얘기했다. 1998년 11월에 있었던 조폐공사 파업은 실은 검찰이 유도했다고. 그는 취했고 기자들은 말짱했다. ‘파업유도사건’은 이렇게 터졌다. 술이 깼을 때는 어제의 아침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날아가고 없었다. 확실히 낮에 취해 있으면 위험하다. 해가 떨어지려면 멀었으니 일하고 사람도 만나야 한다. 나는 취했는데 세상은 그대로이니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이 공무원들의 낮술 금지령을 내렸다. 오후에 민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하는데 낮술 때문에 그들에게 불편감을 줘서는 안되기 때문이란다. 취임후 첫 간담에서 꺼낸 얘기임을 미루어 보면 아마도 낮술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일 것이다. 또 중국 허난성 신양시가 낮술 마신 공직자들을 단속하는 현장기사를 뉴욕타임스가 8일 보도했다. 음주단속반은 예고없이 관청을 급습해서 공무원들에게 음주측정기를 들이댄다고 한다. 이러한 음주단속은 술에 취한 공무원 적발뿐 아니라 그속에 숨어있는 접대문화도 겨냥하고 있단다. 바로 공산당 간부들 사이에 관행으로 굳어진 장시간의 대낮 음주연회이다. 신양시의 낮술 단속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다른 도시들도 뒤따를 것이라고 한다.
낮술은 확실히 밤술과 다르다. 낮술에 취하면 오후가 헤프다. 점심에 시작된 술자리가 깊은 밤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낮술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낮술에 취하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 톱니바퀴처럼 빈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일탈하여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볼 수 있다. 문득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무심히 쏟아지는 햇살까지도 고맙게 느껴진다. 무심히 지나쳤던 가로수도 이름을 지닌 나무로 보인다. 골목 귀퉁이에 솟아난 풀도, 그 위에 앉아있는 계절도 보인다. 하늘도 보이고 낮달도 보인다. 그리고 내가 보인다. 마음 맞는 사람과 오후의 햇살까지 들이마시는 낮술은 맛있다. 취해서 바라보는 풍경은 근사하다. 하지만 낮술은 시간을 삼켜버린다. 그것이 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