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요 사설

2008년 2월 25일 월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칼럼

eros 2008. 2. 27. 22:43

[한국일보 사설-20080225월] 이명박 대통령을 맞는 기대와 우려

 

  이명박 제17대 대통령이 오늘 취임한다.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울릴 팡파르와 함께 국민의 기대도 한껏 부풀어 오른다.

  새 대통령과 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이미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한 차례 확인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 표차의 압승을 안기며, 국민이 마음 속에 품었던 것은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 이름이 변화든, 개혁이든, 실용주의든, 또 다른 무엇이든 '참여정부' 5년, 길게 보아 'IMF 위기' 이후 10년 동안 차갑게 시들어 버린 희망의 싹이라도 되찾아 가지게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의 잇따른 다짐과 달리 왜 날이 갈수록 서민 삶은 피곤해지고,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정신적 피로에 시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거듭된 물음이기도 했다. 그런 기대와 주문, 물음이 실생활과는 동떨어져 버린 좌우, 진보ㆍ보수의 대결을 넘어 '실용'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 '희망'으로 국가잠재력 깨우고

 

  그런 국민의 생각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고, 새 정부에 거는 기대도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새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또 대선 승리 이후 두 달 남짓한 '정권 인수기'에 끊임없이 강조해 온 그대로, 경제만은 확실히 살려낼 것이라는 믿음이다. 또 특유의 추진력과 실용적 사고로 사회 곳곳의 침체한 분위기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 성장 잠재력을 최대한 일깨울 것이고, 그렇게 얻어진 성장의 단물이 아래쪽으로도 흘러 내릴 것이라는 소박한 꿈이다.

  잔뜩 움츠렸던 기업들이 조심스럽게 투자와 고용 확대를 약속하고 나서는 등 적어도 변화의 흐름은 감지되고 있다. 완전하진 않지만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실용주의의 징표인 '작고 유능한 정부'의 디딤돌도 놓았다. 남은 것은 새 대통령의 지도력이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가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해 보일 넓은 무대가 펼쳐져 있고, 국민은 박수를 칠 준비가 돼 있다.

  아울러 국민을 배우고 못 배운 자, 가지고 못 가진 자 등으로 수없이 쪼개고 편을 가르려고 했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새 정부는 국민을 하나로 묶어서 끌고 나가는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는 주문도 빼놓을 수 없다. 지역과 계층, 남녀, 종교, 출신학교 등 다양한 요소를 폭 넓게 고려하고, 반드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살펴보아야 한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새 정부의 다짐에서는 희망이 보인다.

  이런 자세는 정부조직 개편에서 드러났고, 새 정부 각료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를 두고도 예고된 의회정치 차원의 갈등과 마찰을 극복할 지혜와도 곧바로 연결된다. 또 취임식 직후 바로 시작될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등 대외적 우호관계 확립으로도 이어진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대통령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은 말이다. 노무현 정부가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설로 치른 비용은 컸다. 지도자 개인의 자신감과 개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대통령은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 '실용'에 완급의 묘를 덧붙이라

 

  커다란 기대와는 달리 눈앞의 현실은 많은 우려를 낳는다. 새 정부의 앞날이 걸린 '경제 살리기' 환경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충격이 세계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한국경제는 성장과 경상수지, 물가, 고용 등 모든 부문에서 노란 불이 켜졌다. 7%에서 6%로 낮춘 성장률 목표 달성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다.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에 서민 가계가 멍들어 가고 있고, 중소기업의 조업 여건도 위태롭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와 지도자의 역할은 빛날 수 있다. 경제상황 전반을 주시, 선제적 대책까지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안이한 인식은 금물이다. 재정 확대를 통한 인위적 부양의 유혹도 크겠지만 결국 경제구조 왜곡으로 부담만 키운다는 점에서 피하는 게 낫다. 다양한 정책을 조합한 탄력적 '경기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국민의 지혜와 마음을 모아야 한다. 불굴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독선과 아집으로 흐르기 쉽다. 거꾸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사서 함께 가야 하며, 그러려면 당장의 성과를 보이기보다 '실용'을 비롯한 모든 정책노선과 목표에 완급을 가미해야 한다. 이번마저 국민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꿀 수는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080225월]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정부를 기대한다 

 

  오늘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엄혹함과 국내에 산적한 난제를 생각할 때 이명박 정부 5년은 우리나라가 선진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지를 가름할 중대한 시기가 될 듯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60년 사이 우리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을 정도의 산업화와, 평화적 정권교체가 계속될 수 있을 정도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국토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이고, 정당정치는 뿌리내리지 못했으며,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후발국을 따돌릴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부심하고 있다. 아무런 안전판도 없이 경쟁 현장에 맨몸으로 내몰린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공동체의 연대감은 급속도로 와해돼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 선진 사회로 도약하려면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심화시키고 건실한 경제발전과 복지 확충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며 남북관계 및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동북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해 내는 일이 긴요하다.

 

#선진화의 갈림길에 선 정부

 

  이명박 정부는 이를 위해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대국, 글로벌 코리아,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라는 5대 국정과제를 채택했다. 지난 5년간 갈등의 정치에 지친 국민들은 ‘섬기는 정부’라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을 섬긴다는 것은 국민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합의를 무시하는 불도저식 국정운영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든다. 500만표 이상의 표차로 당선됐음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시 지지율이 50%대로 곤두박질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정권인수 기간에 보인, 합의의 정치를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행태였음을 유념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면 그동안의 난맥상을 되돌아보고 겸손한 자세로 새출발하는 게 필요하다.

  국민을 제대로 섬기려면 그들의 삶을 옥죄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도시근로자 가계지출 가운데 주거비와 교육비의 비율은 30%를 웃돌 정도로 심각하다. 그래서 집값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 부동산 정책이 후퇴할 것이란 전망이 짙게 깔려 있다. 부동산 시장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분명한 정책 방향과 확고한 정책 의지를 빨리 밝혀야 한다. 성장과 그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여건은 좋지 않다. 세계적 경기침체 가능성이 상존하고 물가 불안은 깊어지고 있다. 경제안정을 도모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성장에 매몰됐다가 안정을 잃어 후유증을 겪었던 나라 안팎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민생 최대의 관심사이자 미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잘못된 문제의식에서 잘못된 해법을 추구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한국 교육문제의 근원인 획일성은 그대로 둔 채 경쟁이라는 시장주의 원칙만 적용하겠다는 발상이 혼란과 파행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열어줘 사회 통합을 이루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여기에 시장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경제적 배경에 따른 교육력의 격차를 피할 수 없고, 교육력의 격차는 계층 고착화와 사회적 양극화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가중시키고, 결국 국가 발전을 막게 된다.

 

 

[동아일보 칼럼-광화문에서/박원재(논설위원)-20080225월] 펀드 부자, 부동산 부자 

 

  이명박 정부의 일부 장관 후보자들이 재산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고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대신 펀드 투자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사람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바야흐로 1가구 1펀드 시대다. 국민은 투자 안목을 평가하며 승복하지 않았을까. 공정하게 경쟁하는 펀드 투자에서 그 정도로 성공한 재테크 감각이라면 국민의 질시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자진사퇴한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의 재산 목록엔 아파트 사무실 오피스텔 점포 임야 논 도로 같은 온갖 종류의 부동산이 망라됐다. 장관 후보자들이 주식형 펀드의 비중이 높고 중국 펀드에도 분산 투자해 재미를 본 ‘펀드 부자’였다면 ‘부동산 부자’보다는 보기에 훨씬 좋았을 것이다. 재산형성 과정을 물을 때 펀드 투자 성공담을 소개하면 청문회 시청률이 오르고 국민의 친근감도 커질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세상인심이라지만 정당하게 돈을 번 고수는 존중받는 법이다. 

  장관 후보자 중에 부동산 부자가 많은 것은 한국 재테크사(史)의 단면이다. ‘땅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不敗) 신화를 거듭되는 성공을 통해 체득했을 것이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했지만 값이 폭등하는 지역의 땅을 사랑하는 것이 곧 투기다. 

  재테크 현장의 패러다임은 변하고 있다. 주식과 펀드 투자가 주목 받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로 10년밖에 안 됐지만, 금융은 한국인의 경제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펀드 계좌는 지난해 말 2295만3000개로 1년 사이에 1000만 개 이상 늘었다. 그만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펀드는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터준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선물이다. 가치투자 신봉자인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 전무는 한국에도 펀드 부자가 나올 날이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그는 워런 버핏의 사례를 들며 “펀드 매니저(혹은 자산운용사)와 투자자가 서로를 믿고 의기투합하면 상상 이상으로 돈을 불릴 수 있다”고 말한다. 버핏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1965년부터 2006년까지 42년간 약 3600배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버핏의 혜안에 주목해 처음부터 투자자로 나섰다면 원금의 3600배를 벌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투자자와 펀드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양쪽 모두에게 비극이 된다. 보수적인 투자자가 단기 수익 위주로 돈을 굴리는 펀드를 택하면 수익률이 올라도 언제 잃을까 두려워 잠을 설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펀드 투자는 공개된 시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위장전입과 같은 불법이나 편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투자된 돈은 증시를 거쳐 기업으로 흘러가 경제를 살찌우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평범한 개인들이 주가가 출렁여도 환매하지 않고 펀드에 계속 돈을 넣는 것은 한국 경제가 잘되리라는 희망 때문이다. 

  10년 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타임래그(timelag·시간지체)를 장관들의 재산 포트폴리오에서 실감하는 심정은 씁쓸하다. 미래를 보고 펀드에 투자하는 국민과 부동산을 부여잡고 도덕성을 의심받는 장관이 대비된다. 재테크에도 세상을 보는 철학이 담긴다. 돈의 철학이 다른 장관과 국민의 궁합이 제대로 맞을지 모르겠다. 

 

 

[조선일보 사설-20080225월] 법무장관 "DJ에 빚 갚으려고 특별사면했다" 

 

  정성진 법무장관이 작년 12월 31일 국무회의가 의결한 특별사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현 정권의) 빚갚기 사면이었다"고 말했다. 작년 말 사면복권엔 신건 전 국정원장,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 인사가 대거 포함됐다. 청와대는 2002년 대선 때 병풍(兵風)사건 주역인 김대업씨도 사면대상에 넣으려 했다가 법무부 반대로 무산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 "사면권 남용을 억제하는 쪽으로 법개정을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그러나 일반인이 참여하는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대상 명단을 심사하게 하는 사면법 개정안은 정권이 다 끝나가는 작년 12월 21일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는 사이 이 정권은 8차례 특사를 단행했다. 김영삼 정부(9번), 김대중 정부(8번)와 비슷한 횟수다.

  결국 권력이 느끼는 특별사면 유혹을 제도로 제어하는 방법밖에 없다. 개정 사면법이 사면심사위의 심사 내용과 과정을 공개토록 한 것도 그런 취지다. 그러나 입법예고 중인 개정 사면법 시행령엔 문제가 있다.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 위원회 결정만 공개토록 한 것이다. 개별 위원 발언 내용은 특사 10년 뒤에야 공개하게 했다. 법무부장관이 심사위원 9명 중 '공무원 위원'을 5명까지 위촉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압력을 넣은 전(前) 정권이나 그 압력에 끌려간 현(現) 정권이나 그리고 그 압력을 수행한 현재의 법무부나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을 이렇게 뻔뻔스럽게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제도적 미비의 탓이 크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현기(도쿄특파원)-20080225월] 취임사

 

  미국의 가장 인상적인 대통령 취임식으로는 제35대 존 F 케네디의 취임식이 꼽힌다. 1961년 1월 20일 영하 7도의 맹추위 속에 수많은 군중은 케네디의 취임 연설문에 도취했다. “어렵고도 쓰디쓴 평화에 의해 단련된 횃불이 이제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에게로 넘어왔다.”  그의 우렁찬 취임사는 그 유명한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물어라. 그리고 전 세계 국민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우리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는 구절에서 절정에 달했다.

  케네디 취임식의 또 다른 화제는 모자였다. 이전 대통령들은 모두 취임식 때 중절모를 썼다. 하지만 케네디는 멋진 머릿결을 자랑이라도 하듯 모자를 벗고 연설했다. 모자업계는 경악했다. 실제 케네디 취임식 이후 중절모 인기는 급락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1793년 재선 취임사는 불과 135개 단어였다. 2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군더더기없는 그의 취임사는 역사의 명연설로 남아 있다. “다시 한 번 조국의 부름을 받았다. 재임 기간 중 자발적으로든 고의적으로든 어떤 경우에도 헌법의 명령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면 나는 오늘 이 의식의 증인인 국민 모두의 질책을 달게 받을 것이다.”

  반면 9대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의 취임사는 8500여 단어나 됐다. 연설문 읽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렸다. 그러나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강추위 속의 장시간 연설로 해리슨 대통령은 폐렴에 걸려 한 달 뒤 사망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001년 취임사는 ‘자유(freedom)’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같은 단어를 27번 사용했고, 형용사(free)까지 합하면 자유라는 말은 45차례나 들어갔다. 그리고 이는 재임 중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강경 노선으로 이어졌다. 취임사에서 그의 정치적 지향점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동북아’라는 말을 취임사에서 18번이나 쓴 뒤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나아간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날이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와 차별화되는 명연설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 한다. 역사에 남는 명연설도 좋고 거창한 수사(修辭)도 좋다. 하지만 국민이 진정 원하는 건 명확한 비전이다. 그래야 자신감, 에너지, 엔도르핀이 솟을 수 있다. 국민의 냉엄한 심판은 이미 시작됐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승철-20080225월] 전직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2001년 퇴임할 때 미국인들의 관심은 그가 앞으로 할 일에 쏠렸다. 호기심 속에는 그가 50대라는 젊은 나이에 퇴임하는 만큼 무엇인가 할 것이라는 기대가 숨어 있었다. 

  클린턴이 보여준 모습은 부인인 힐러리 상원의원에 대한 ‘외조’와 함께 큰 문제가 발생하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앞장서는 것이었다. 2001년 9·11테러 때는 상처받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쓰다듬는 데 힘을 보탰으며, 2004년 동남아 쓰나미 때는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모금과 복구지원에 나섰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는 별로였지만 퇴임 후의 활동으로 인기를 얻은 경우다. 그는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이나 국제적 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퇴임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전직 대통령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조세프 마리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귀향해 은둔의 생활을 보냈다. 간혹 부인과 손을 잡고 산책하는 사진이 언론에 등장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공식 모임 자리에는 얼씬하지 않으면서도 각종 자선모임에는 꼭 참석했다. 귀향할 때 이삿짐이라곤 승용차 한 대 분량의 서류뭉치밖에 없었던 드골은 숨지고 난 뒤 불과 한 평 크기의 고향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프랑스 사람들이 여전히 드골을 사랑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이 8명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퇴임 후의 모습이 별로 아름답지 못했다. 일부는 망명, 암살, 감옥행을 겪었으며 최근 대통령을 물러났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와 대북송금으로 명예에 먹칠을 했다.

  오늘 물러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출입기자단과 가진 마지막 오찬 자리에서 “대통령은 특별한 긴장감을 갖고 연기를 계속해야 하는데 이제 안 해도 된다”면서 “이것은 큰 행복이고 자유”라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 자리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도 그리 녹록한 자리는 아니다. 그는 “조금은 별난 시민”이라고 묘사했지만 실은 그 이상이다. 노대통령이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우리도 이제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